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8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77)
후우웃!
케이라는 먼저 깊이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그 숨소리에 곧바로 홀시딘이 파릇한 얼굴로 뭐라 하려 했지만, 홀시딘의 입술 사이로 한마디가 나오기 전에 케이라의 목소리가 쩌릿쩌릿하게 울리며 모닥불을 밀어붙이는 듯한 광경과 함께 퍼졌다.
“스― 스응― 님! 제자에게 가르친 대로 행동 좀 하시이이―지요옷! 마력으로 몸을 보호한다고 해도 분명히 한계가 있으니 뭔가를 검증하고 실험하는 데는 반드시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신 분이! 대체 뭔 짓을 하고 계셨던 거예요! 제자로서 스승님 하신 대로 한번 해보고 싶어지네요! 뭘 하셨는가 있는 그대로 한번 털어놔 보시지요!”
“제자야―! 제자는 스승에게 배운 대로 하면 되는 거야! 스승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는 게 아니란다! 난 마스터 엘투란에게 이렇게 배웠으니까 이러는 거고! 넌 나에게 도구를 쓰는 법을 배웠으니, 도구를 써야지!”
제자의 사나운 목소리에 스승이 큰 소리를 내며 대꾸하는 광경 속에서 모닥불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춤을 추는 듯했다. 투란에게는 마치 둘이 이야기를 나눈다기보다는 마력으로 상대를 옭아매서 조이고 다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제대로 느낀 거다. 딱히 실행에 옮길 마음은 아니라서 그저 감정적인 표현을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마음먹으면 지금 너 느낀 대로 마력이 상대를 제압할 거야.
드라고니아가 뭔가 툴툴거리는 말투로 이리 말하지 않는가!
‘와아, 마법사란 정말 쓸데없는 일에 힘을 막 쓰는구나!’
투란으로서는 어딘가 비뚤어진 감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는 이런 투란을 향해 한숨이 섞인 묘한 웃음이 담긴 소리로 대꾸한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 때문이겠지. 상아탑의 마법사에게 그 관계는 한쪽이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 가르침과 배움의 연쇄라고 하니까. 기분에 따라 마력을 방출하는 건, 둘 다 마도사인 탓에 어쩔 수 없는 걸 수도 있고.
‘흠…… 그런가.’
어딘가 알 듯 말 듯한 느낌 속에 투란은 여전히 툭탁대는 스승 홀시딘과 제자 케이라의 모습을 잠시 지켜봤다.
“시약값을 아까워하지 말라면서요!”
“그래! 마법사라면 그래야지!”
“스승님! 시약값 아깝다고 자기 몸을 시약 대신 이용하신 거는―!”
“난 그렇게 배웠다고! 버릇이야, 버릇! 이 나이에 고치기에는 너무 늦었다니까!”
“늦긴 뭐가 늦어요! 그냥 돈 아까워서 그러시는 거잖아요!”
“돈 아끼면 좋지! 알드바인은 물자가 늘 모자라니까! 물론 내 젊은 시절보다야 나아졌다고 하지만, 나는 아끼는 게 버릇이 되어 있잖니!”
“지금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에이, 버릇이라니까, 버릇!”
오가는 이야기 속에 홀시딘은 이제 모든 것을 ‘버릇’이라는 한마디로 덮으려 하고 있었다. 나이가 너무 들어서 이 ‘버릇’은 고칠 수 없다는 것으로 다 얼버무릴 작정이란 속내가 아주 훤히 드러나 보인다!
케이라가 으득 이를 가는 표정으로 잠시 말을 멈췄다.
홀시딘은 제자의 그런 모습에 은근히 승리의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케이라의 말은 조금 있다가 착 가라앉은 채로 이어졌으니,
“마법을 쓸 때는 파나틱 플레임, 돈을 쓸 때는 수전노! 그런 별명으로 불리시는 거, 알드바인의 상아탑 마법사들이 얼마나 불편해 하는지 아세요?”
“……응?”
갑자기 나온 ‘마법사들’이란 한마디가 홀시딘을 주춤하게 한 모양이었다.
케이라는 그 주춤한 틈새를 더 크게 째겠다는 듯이 말을 이어간다.
“알드바인의 마스터시잖아요, 스승님. 상아탑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시는 분이 그런 식으로 불리는 거, 알드바인 상아탑에 소속된 마법사들에게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라고요! 오죽하면 틈 날 때마다 다들 한마디씩 저한테 잔소리를 하겠냐고요! 그나마 제자인 제 말은 들을 줄 알고들 그런다고요! 그러니까, 제발 말 좀 들으세요!”
“……나한테 말 못하고 널 괴롭힌다고! 이런 못된 것들이이이―!”
“잔소리를 괴롭힌다는 말로 바꾸지 마세요! 다들 왜 그러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시잖아요!”
“할 말이 있으면 나한테 직접 할 것이지, 감히 내 제자를―!”
“제자가 하는 말 좀 들으시라고요오!”
화르르, 모닥불이 두 방향에서 몰려온 마력의 바람에 갈 곳을 잃은 것처럼 위로 길게 치솟았다. 그 순간을 노린 듯이 투란이 약간 소란스럽게 들뜬 소리를 낸다.
“우와, 불이 사납네요! 이거 어떻게 피운 건데 이러죠?”
마력의 충돌이란 현상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척하는 말이었다.
순간, 모닥불은 갑자기 찬물을 들이켜고 찬바람에 눌린 것처럼 가라앉았다.
스승과 제자가 투란을 흘깃하면서 미묘한 한숨을 동시에 내쉬었다.
홀시딘은 살그머니 상황이 진정된 것에 안도하는 듯했고, 케이라는 스승과 말다툼하는 꼴을 낯선 사람 앞에서 고스란히 드러낸 것을 조그맣게 후회하는 듯했다.
투란은 그런 낌새 따위는 모른다는 듯이 모닥불을 향해 ‘어? 얌전해졌네?’라는 중얼거림을 토해냈다.
재빠르게 홀시딘이 그 중얼거림에 얹듯이 말한다.
“아무튼! 그 녀석들이 너한테 잔소리해댄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사냥해놓은 거미랑, 연구해놓은 거미줄 샘플이랑 정리하는데 얼마나 걸리겠니? 일단 정리하고 알드바인으로 돌아가야 하잖겠니? 지금 알드바인의 마스터라고는 둘뿐인데, 자리를 오래 비울 수는 없잖느냐. 아, 그리고…… 케이라, 이곳에서 더 이상 거미 군단이 진격해 나갈 일은 없다는 거, 네가 왕국이랑 다른 녀석들에게 좀 알려주겠니? 원인이 되고 있던 것을 제거했으니까 말이야.”
“……분명히 아라크레온을 포착하고 잡아냈으니까, 거미 군단의 진격은 막았다고 해야겠지요. 하지만 스승님, 마수로서 이미 자리 잡은 거미 무리가 흩어지게 돼버렸잖아요. 그 마수 거미가 조금이라도 뭉쳐서 몰려나간다면, 거미 군단이라고 착각하기 쉬울 거예요. 그런 경우가 나타나면 당분간 거미 군단의 원인을 제거했다는 말도 듣지 않는 척하거나 의심하는 척하면서, 보상금도 몇 년 뒤로 미루려 할 거예요.”
“응? 케이라, 그런 꼴을 그냥 두고 봐야 한다고 말하는 게냐?”
“스승님…… 거미 군단을 막아내는 데 걸린 보상금은 십 년 동안 군단을 유지할 비용이라고요! 거미 떼의 습격이 완전히 진정될 경우,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쓸 돈을 아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지급하겠다고 책정된 보상금이잖아요. 불타는 평야나 그레이우드처럼 막무가내로 받아내려 하면 칠왕국 내에서 반발만 커질 거예요. 게다가…… 그 몬스터 로드, 투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털어놓지도 않으실 거잖아요? 그러면 설명만 더 힘들고 시빗거리만 많아질 거예요. 그러니까, 한 이삼 년 정도 알아서 상황 파악 하도록 냅두고 느긋하게 받아내는 편이 좋아요. 이건 제자가 아니라, 알드바인의 마스터로서 마스터 홀시딘에게 드리는 말이에요.”
“쳇, 알았어. 군비 절감해서 주는 보상금이라는 걸 깜박했다. 하지만 케이라, 알드바인 상아탑을 이끄는 마스터로서 불타는 평야랑 그레이우드의 보상금은 그렇게 기다릴 수 없다! 당장 금전 내놓지 않겠다면 현물로 받아낼 거야! 거미 군단이랑 다르게 그 둘은 보상금이 매년 적립되는 경우니까, 핑계는 받아들을 수 없어!”
홀시딘이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니, 케이라는 잠깐 한숨을 쉬며 투란을 흘깃하고는 말한다.
“그건…… 일단 알드바인으로 돌아가서 다시 얘기하죠. 마침 정리가 끝난 모양이네요. 밤하늘을 날아가도 상관없겠지요, 투란?”
“에? 밤하늘…… 상관은 없는데…….”
투란은 홀시딘의 눈치를 보며 어리숙하니 대답했다.
느닷없이 녹색 눈동자로 겨냥해서 쏘아진 듯한 물음이 당혹스럽다는 듯!
하지만 그 물음보다 더 투란을 당황시킨 일은 그다음에 어기적거리면서 땅을 기어 나타난 것이었다.
어둠 속에 땅에 찰싹 달라붙어서 가까이 왔고, 복슬거리는 털로 덮인 듯한 윗부분과 뭉클거리면서 꼼지락거리는 묘한 아랫부분이 두툼해 보이는…… 모닥불빛에 겨우 그 전체 형상이 커다란 마름모를 닮았다는 것이 드러난 융단이었다.
두께가 이십에서 삼십 센티미터는 될 듯한 두터운 융단이 땅을 기어 다가온 광경을 놓고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왜 마법사 둘은 전혀 놀라는 낌새가 없는가? 드라고니아는 뭣 때문에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았는가!
“투란, 타라.”
홀시딘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둥실 떠올라 융단 위로 옮겨갔다.
투란은 맹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일어나서 케이라 역시 융단 위로 옮겨가 앉는 모습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슬그머니 발을 딛고, 손으로 짚으면서 계속 엉거주춤한 태도로 그 위에 앉아보면서 ‘누가 설명 좀 해줘!’라는 표정도 지으면서!
그런 투란을 향해 홀시딘이 히죽 웃으며 말한다.
“마법이다, 투란. 내 제자가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동화 속의 마법이지. 하늘을 나는 융단이라고!”
“……아, 그런가요?”
투란은 툭툭 융단을 치면서 부드러운 감촉 아래의 두툼하게 채워진 것은 대체 뭐냐고 의아해 하는 눈길을 홀시딘에게 보냈다. 하늘을 나는 융단 이야기는 얼핏 투란도 들은 적이 있지만, 그 융단이 무슨 배불러 터질 지경인 꼴로 아랫부분에 뭔가를 두툼히 채워넣은 꼴로 땅을 긴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으므로!
―오토마타를 부여해서 창고로도 쓸 수 있는 마도구야. 맨 처음에 꺼냈을 때는 손수건 크기였다. 하지만 담는 물품의 양에 따라서 계속해서 커지더군. 너랑 홀시딘이 모아둔 거미의 잔여물을 전부 담은 게 지금 이 크기라고. 꽤 흥미로운 방식의 마법이니까, 일단 잘 봐둬라.
‘……전부 담아?’
투란은 놀랐다.
새삼 보니 융단은 마름모 모양으로 앞뒤를 삐죽하게 내밀고 꾸물거리는데, 모서리가 대강 7, 8미터는 되어 보였다. 거기에 거의 30센티는 될 듯한 두께……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투란이 사냥하고 홀시딘이 쌓아온 거미를 몽땅 담은 채로 날아갈 수 있다니……?
수백 마리에 달하는 거미, 거의 천 마리 가까운 자캬라 산림의 마수를 정말 한꺼번에 담고 날 수가 있을까 한번 의심해보는 투란이었다.
그리고 케이라는 누가 자신을 의심하는가 어떤가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손짓으로 모닥불을 끄고 주변을 정리한 다음에 융단의 앞쪽인 듯한 끝에 자리 잡고 말한다.
“그럼, 출발하죠.”
말과 함께 가볍게 위로 들어올리는 손짓, 땅을 기던 융단이 꾸물렁거리면서 앞으로 미끄러지고 잠깐 퉁기는 듯하더니 바로 날아올랐다. 마치 잠깐 달리다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라도 된 것처럼!
“우아― 와앗!”
투란은 아낌없이, 그래도 목소리를 낮추는 시늉을 하며 외쳤다.
홀시딘처럼 에어록을 덧씌운 채가 아니었다.
케이라의 마법 융단은 바람결을 고스란히 올라탄 이들에게 느끼게 해주는 듯했다.
홀시딘에게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던가, 잔소리가 바로 튀어나온다.
“케이라―! 이러다 바람에 밀려서…….”
“그거 이미 보완해놨어요! 스승님 머리카락이 뜯겨서 좀 날아갈 수는 있어도 떨어질 일은 없어요! 융단에 몸을 붙이고 앉아계세요!”
케이라는 살짝 고개를 돌린 채로, 둥실거리는 채로 잔소리 하려는 홀시딘에게 말하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그 의미가 금세 느껴졌다. 바람이 몸을 스쳐가기는 하는데, 융단의 부드러운 털이 자신을 단단히 붙든 듯했다. 몸을 눕히고 뒤척이거나 일어나서 걸어볼 수도 있을 듯했고, 그렇게 해도 융단의 윗부분에 돋은 털은 올라탄 이들이 휘날려 가는 것을 막아주는 듯했다.
그러나 짧게 오간 이야기를 놓고 보면 원래는…….
‘헤에, 누가 탔다가 이 바람에 휩쓸려 떨어지기도 했나보네?’
―주요 기능에 몰입하다가 탑승자의 안전이란 부분을 소홀히 했나 보네. 마법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지.
사소하지만 중대한 결함이 있던 마도구였던 모양이다!
홀시딘은 융단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잠깐 확인하고서 다시 말한다.
“케이라, 내가 에어록을 걸어둘까? 이거 속도를 높이다가는…….”
“전부 보완했다니까요! 제자를 좀 믿어보시죠, 스승님!”
케이라가 홱 돌아보면서, 스승을 향해 약간 성난 눈빛을 번뜩이며 외쳤다.
홀시딘이 움찔했고, 투란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둘은 곧 케이라의 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융단이 더 높이 빠르게 날면서 거세지던 바람결이 어느 순간에 착 가라앉으며 부드럽게 스쳐가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뜯어갈 듯했던 강풍(强風)이 순식간에 미풍(微風)이 되어 다독여주는 듯했다.
―호오? 닥쳐오는 바람의 세기에 오토마타가 바로 반응하는군. 이건 급할 때 바람 계열의 방벽 노릇도 한다는 거로군. 꽤 하는데? 한 가지 마법으로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하도록 처리해놨어. 그냥 단점만 보완한 게 아닌 모양이다, 투란.
‘그래? 어쨌든…… 기분 좋은데?’
문득 어떤 강풍이라도 비늘을 스쳐가는 미풍으로 느끼면서 날던 드레이크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가만히 손을 올려 바람결을 맛보았다. 알드바인을 향한 비행은 생각보다 즐거운 기억이 돼줄 듯했다.
제자의 마법을 자랑스러워 하다가 그 결함을 뒤늦게 기억해낸 홀시딘도 어느 정도 안심하는 듯했고…… 그 모습은 문득 투란의 입술을 삐죽거리게 한다!
‘금전 이만 닢을 한 방에 날려보낸 마법사님께서 사실은 수전노라 불린다, 이거지?’
스쳐가는 바람 속에서도 잊을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