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8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78)
케이라의 마법 융단은…… 느렸다.
홀시딘에게 한 밤에 납치당한 꼴로 겪기 시작했던 바람의 길, 단단한 에어록에 의해 휘감겨서 감금당한 꼴로 날던 속도에 익숙해진 다음이라 그런지 투란에게는 꽤나 느리다고 여겨졌다.
‘기분은 좋은데…… 흠.’
느린 덕분에 날면서 볼 수 있는 것을 차분하고 느긋한 기분으로, 미풍(微風)이 살랑거리며 부드럽게 더듬는 느낌을 즐기며 구경할 수 있었다.
밤하늘의 별빛 가득한 풍경, 아래로 넓게 펼쳐진 지상의 구릉(丘陵), 한쪽으로 거칠게 삐죽거리며 돋아난 채로 멀리 지평선을 지우고 감추는 듯한 갈기 산맥의 위엄(威嚴)과 위협(威脅)이 동시에 느껴지는 광경…….
투란에게 분명히 기분 좋은 비행이었다.
홀시딘도 비슷하게 느낀 듯, 가볍고 밝은 표정으로 ‘오오!’로 시작해서 ‘바람이 시원하구나!’라든가 ‘과연 산뜻하게 보완되었구나.’ 따위의 칭찬을 하나씩 늘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아침 햇살과 함께 새하얀 안개가 맴도는 물가의 풍경이 보일 무렵이 되자, 너무 좋아서 참을 수가 없다는 것처럼 들뜬 목소리로 스승은 제자에게 청하기까지 했다.
“케이라, 이것 참 좋구나!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려주지 않겠니? 날면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마법이라니, 생각도 못했어. 가끔 이렇게 날고 싶은데, 이 융단 만드는 법 좀…….”
“안 돼요.”
“……케, 케이라?”
단칼에 잘라버리는 대답에 홀시딘이 당황한 모습을 허둥지둥하는 태도로, 투란이 보기에는 좀 노골적으로 꾸민 듯이 드러냈다.
‘어라?’
앞만 바라보는 케이라에게 보일 리가 없을 텐데, 아무리 마력으로 감지한다고 해도 저렇게 세심하게 갖춘 당황스러운 모습이나 태도는 그저 말투로밖에는 전해지지 않을 텐데, 홀시딘이 너무 세심하게 꾸미고 있다?
대체 왜?
케이라가 돌아보지 않은 채로 융단 위를 짜릿하게 스쳐가는 목소리로 스승을 향해 내놓는 말이 이런 투란의 의아함에 답이 되고 있었다.
“춤추는 꼭두각시, 저 아직 잊지 않았거든요.”
“……어? 그, 그건!”
이번에는 꾸밈없이 당황한 홀시딘을 엿볼 수 있었다.
투란은 슬그머니 멀리 보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홀시딘을 지켜봤다.
아까는 케이라의 반응을 예상해서 미리 준비한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였는데, 꼭두각시란 말이 나오자 진짜로 당황하다니…… 대체 왜?
스윽, 케이라가 고개를 반쯤 돌리고 아침햇살 속에 은근히 황금색 광채를 띤 녹색 눈동자의 한쪽만 보이는 채로 서리처럼 차갑게 말한다.
“춤추는 꼭두각시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면서, 원하는 춤을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제가 만든 오토마타 세트를 몽땅 가져다가 무슨 짓을 하셨는지, 잊었다고는 못하실 텐데요?”
“그, 그게 언제 적 일이냐! 케이라, 그건 순전히 네 자질을 알릴 필요가 있어서…….”
“어린 시절! 저에게는 그 애들만 제 친구였다고요! 춤을 추고 함께 놀아주는! 그런데 스승님이 그 애들한테 갑옷 입히고 칼을 들려주고! 심지어 우드 가디언까지 제 오토마타 세트를 이용하셨잖아요!”
“케이라! 내가 그 인형들을 직접 가져다 쓴 것도 아니잖니? 난 그저…….”
“예, 제게서 제가 고안해낸 마법의 기술(技術)만 가져가셨죠. 그저 어린애가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기 위해 고안한 듯한 마법이 사실은 얼마나 대단하게 쓰일 수 있는가, 아주 잘 과시하셨지요. 알아요, 저도 잘 알아요. 그러니까 스승님이 이 융단을 만들 수 있게 되면 어디다 어떻게 쓰려고 하는지, 아주 자아아알 알 수 있거든요! 절대로 알려드리지 않을 거예요. 직접 궁리해서 만드세요.”
휙!
세차게 고개를 돌리는 케이라의 태도에서 풍겨나오는 찬바람이 미풍을 가르듯이 스쳐간 분위기가 짙게 퍼져나갔다.
투란은 곧바로 홀시딘에게서 낭패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케이라의 말에 제대로 급소를 찔린 듯한 홀시딘이었다.
투란에게는 갸웃하게 하는 이야기였고, 궁금한 이야기다!
‘이거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려운 마법인가? 케이라만 아는 마법?’
―아니, 절대로 아니지. 발상만 있으면 수준 되는 마법사 누구라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마도구야.
‘……뭐?’
―너무 간단해서, 흉내 내기도 쉬운 마도구다. 하지만 그 간단한 구조에 담긴 여러 가지 마법의 조율(調律)이 문제야. 발상을 하고, 그걸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마도사 케이라의 독특한 성향이 짙게 반영되어 있지. 흉내 낸다고 해도, 절대로 똑같을 수가 없고…… 그 차이점이 마도구의 품질에 아주 크게 영향을 끼칠 거다.
‘그렇다면……?’
―막상 만들게 되면 케이라의 융단보다 효율이 떨어지거나 성능이 아주 망가진 마법물품이 나온다고. 정확하게 케이라가 어떤 식으로, 몇 가지 마법을 어떻게 조합해서 배열했는가를 알아야 이 융단이 재현된다는 말이다. 홀시딘은 그걸 물은 거야.
‘오토마타 세트란 것도?’
―그건 더 복잡하지. 인형에 특정한 행동을 시키는 단순한 주문을 어떤 식으로 연계시키는가를 규정한 순서의 모음을 오토마타 세트라고 한다. 길고 복잡한 동작이라도 단순한 동작의 연계를 통해, 이미 갖춰진 주문을 통해 간단한 형식으로 끌어낼 수 있어. 문제는 그 단순한 동작을 얼마나 단순하게 지정해놓는가, 얼마나 간략하게 복잡한 동작을 파생시킬 수 있는가. 역시 세트 하나를 구상한 마법사의 발상과 성격이 깊이 영향을 끼친다. 제대로 춤을 추게 했다면, 아마 인형의 구조가 허락하는 모든 동작이 가능했다는 뜻이겠지. 다른 마법사의 손에서 전혀 다른 용도가 가능할 정도로 말이야.
‘흐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투란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케이라가 알기 쉬운 뭔가를 만들어내면, 그건 케이라만의 특별한 뭔가가 된다.
홀시딘은 그 뭔가를 가져다가 케이라가 좋아하지 않는 방향으로 틀어서 쓴다!
몇 번 당한 케이라는 이제 속지 않는다.
과연 속셈을 들킨 홀시딘이 여기서 물러날 것인가?
“케이라…….”
위엄을 잔뜩 뽐내듯이 실은 목소리가 홀시딘에게서 울려나왔다.
투란은 그런 홀시딘의 태도에 살짝 감탄했다.
아침 햇살이 짙어지면서 홀시딘의 세 갈래 은색 머리카락이 나부끼는 모습을 보다 선명하게 비춰주는데 저런 목소리를 내니, 뭔가 대단해 보인다!
물론 케이라는 뒤돌아보는 척도 하지 않고 싹 무시하는 태도였다.
그래도 홀시딘은 한껏 무게를 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너도 이제 아이가 아니잖니. 너도 이제는 알드바인 상아탑의 마스터잖니. 그러니까 그런 지난 일은 잊고……, 음, 잊을 수 없으면 일단 마음 한구석으로 치워놓고 말이다, 에, 그래! 마스터로서의 중요한 의무를…….”
빙그르!
케이라가 돌아앉았다.
융단이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지는 듯했고, 보다 힘차게 기지개를 펴듯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투란의 엉덩이를, 대고 있는 손을 자극했다.
‘흠?’
―호오? 이거 바람의 길을 따라 혼자 날 수도 있었군?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드라고니아가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투란에게는 ‘뭔 소리냐!’라고 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쓴웃음과 함께 드라고니아의 설명이 곧바로 덧붙여진다.
―짐 실어놓은 마차가 사람 없이 말도 매지 않은 채로 저 혼자 목적지까지 짐 나를 수 있다는 얘기야. 마차보다 훨씬 뛰어난 운송(運送) 수단이 된다는 거다. 아마 홀시딘은 이것까지 알아차렸을 테지…… 과연 탐낼 만하군.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투란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케이라의 단정하면서 차가운 목소리가 먼저 울려나온다.
“스승님…… 싫어요.”
짧고 강렬했다.
투란에게는 마치 ‘스승님이 싫어요.’라고 한 말이 아닌가 싶을 지경!
홀시딘도 비슷하게 느낀 듯,
“스, 스승을…… 나를 싫어한다고!”
황당하다는 듯이 되뇌었다.
케이라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면서 가벼운 바람결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모습으로 대꾸한다.
“이럴 때 스승님은 그냥 밉고요. 융단에 대해서 알려드리기 싫다고요. 마스터로서 말한다면, 그럴 수 없어요. 이 융단을 스승님이 마구 만들어서 여러 사람이 쓰게 되면, 알드바인에 사람이 필요하다는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될 테니까요. 오토마타로 마차 몇 대 만드는 거랑은 전혀 다른 상황이 될 거라는 거, 여러 가지로 예측되거든요. 아시잖아요, 알드바인에서 살아가는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운송에서 일감을 얻고 있잖아요. 상아탑의 바람 마법 때문에 일감을 잃을까, 그런 걱정과 근심 때문에 상아탑을 도시에서 몰아내려 했다는 옛날 기록도 잔뜩 있잖아요. 이건 안 돼요, 마스터 홀시딘!”
“끄응―!”
밉다는 말부터 인상을 구겼던 홀시딘은 낑낑대면서 머리를 쥐어짜내 뭐라 대꾸하려고 궁리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대꾸를 기다리지 않고 케이라의 말이 이어진다.
“물론 상아탑 사이에서 이용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얼마나 말이 안 되는가, 제가 아주 잘 아니까, 포기하세요. 바람의 길만으로도 상아탑 사이의 물자 운송은 충분해요. 그보다 더 효율이 좋지 않은 융, 단, 이거든요.”
투란은 말투를 통해서, 케이라가 홀시딘이 할 말을 미리 틀어막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옛날부터 홀시딘이 제자를 놓고 이런저런 소리를 잔뜩 늘어놓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속여 저지른 일이 많아 보인다!
물론 이래저래 할 말이 막혔다고 홀시딘이 입을 다물지는 않았다.
“머, 멀리…… 그렇게 멀리 생각할 필요가 없잖니? 당장 알드바인도 제법 넓고 알드바인 안에서도 짐 옮길 일은 잔뜩이야! 마법사가 짐꾼 부리려 한다면 대놓고 금전 내놓으라는 헛소리하는 놈들 많잖니! 동전이면 충분한 것을! 그런 녀석들이랑 실랑이 할 시간을 줄일 수도 있고…… 사람 쓰지 않고 간단히 많은 일을…….”
“결국 절약이군요? 돈을 쓰는 대신에 차라리 마법을 쓰겠다! 불꽃 휘날리는 일 아니면 돈 아끼는 일에 그렇게 몰두하니까 수전노라고 하잖아요!”
“그, 그건 마스터로서…….”
“스승님! 이번에 굉장한 일을 마치셨잖아요! 이제는 불타는 평야에 맺힌 일도 푸셨고, 그레이우드를 통과할 수 있는 새로운 교역로도 확보하셨다고요! 알드바인의 물자 상황도 훨씬 좋아질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러니, 이제 고치세요! 그 수전노 소리 더 안 나오게 할 때라고요!”
홀시딘은 입을 벙긋거렸다.
어쩐지 제자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야기에 휘말리면서 꽁꽁 묶여가는 것이 저절로 느껴져서 당황하는 스승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투란도 뭔가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리면서 당황스러운 기분이 솟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헤에…… 엄청 절약하나보네?’
―보상금도 절약하려 들까 봐 걱정되냐?
‘헤에…… 허으?’
―캘러미티 로드니 뭐니 하면서 단숨에 널 끌고 시련이란 이름하에 오랜 문제를 해결하는 솜씨로 봐서는, 그럴 일은…… 으흠…… 그럴 수도 있을까?
갸웃하면서 말꼬리를 흐릿하게 얼버무리는 드라고니아!
투란에게는 놀리는 소리로 들렸다.
뭔가 복잡해지는 분위기가 흐르는데, 그 와중에 서서히 드러나는 알드바인의 높고 뾰족한 상아탑을 등 너머 풍경으로 두게 된 케이라의 말이 이어진다.
“이제는 그런 소리 듣지 않고도 절약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스승님. 더 이상 몰튼노트의 변이에 대해서, 불타는 평야의 재앙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아도 되고…… 보다 더 강력한 불꽃 마법을 연구한다고 금전 날릴 일도 없어요. 그러니까 소소하게 동전 아낄 일은 이제 궁리하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잠깐! 케이라, 지금 그 말은 설마!”
“당분간 연구할 일도 없으실 테니, 연구비부터 삭감하는 게 당연하잖겠어요? 마스터로서! 그렇죠, 스승님?”
“그건 아니지이이―! 불꽃에 집중하느라 뒤쳐진 다른 분야에 대해서어―!”
“아,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않으셔도 돼요. 생각해보니, 다들 은퇴했다고 착각할 안식기(安息期)를 신청해놓으신 것도 있군요? 몇 년 편히 푹 쉬세요. 오랫동안 연구해온 것도 이제 명상과 함께 정리하시면 되요. 와우! 그러고 보니, 이제 마스터 홀시딘을 통해 엄청난 예산 절약이 가능해졌군요! 좋은 일이네요!”
“케, 케이라아―!”
“걱정 마세요. 맛있는 거 드실 정도의 용돈은 제가 꼬박꼬박 챙겨 드릴 테니까.”
“허엇? 너 설마 내 용돈까지―!”
“마스터의 용돈은 공금(公金)이라죠? 다들 존경할 거예요, 스승님.”
“그건 아니지! 그동안 내가―!”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고민하고 고생하셨어요. 이제 몇 년 푸우욱! 쉬어도 될 때예요.”
이제 케이라의 목소리는 아주 가벼웠고, 날고 있지만 한층 더 높이 날아갈 듯이 시원하게 울려 퍼졌다. 홀시딘은 잠깐 드리웠던 무게감 있는 태도를 깡그리 잊은 채로 당황하는 중이고…….
투란의 마음에는 제대로 걱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다 보상금까지 다 털리는 거 아냐?’
―충분히 그럴 수도 있어 보인다.
드라고니아도 조금 질린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