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8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79)
알드바인에 가까워지면서 융단이 더 높이 치솟았다.
옥신각신 용돈 문제를 놓고 다투던 스승과 제자가 조금 지친 모습으로 잠시 고요해진 사이, 높이 치솟은 융단은 알드바인의 상아탑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를 잡고 멈췄다.
“어, 안 내려가나요?”
훅훅, 숨을 몰아 내쉬는 스승과 제자를 향해 투란이 물었다.
아침햇살은 더욱 짙어졌고, 높은 하늘이라 그런지 완전히 밝은 낮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얀 안개가 얽힌 광대한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이상할 정도로 맑고 시원해서 잠시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스승과 제자가 다시 툭탁대며 말다툼을 잇는다면 이 좋은 기분도 금세 지루해질 듯하니, 투란으로서는 슬그머니 한마디 던져본 셈이었다.
“내려가야지.”
“내려가요.”
홀시딘이 끄응하며 대꾸했고, 케이라는 다시 몸을 돌리면서 융단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가볍게 귀퉁이를 펄럭이며 융단이 알드바인의 상아탑을 향해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상아탑의 정상에 융단이 꽂히려나 싶을 정도로 과감한 활강(滑降)이었고, 한순간에 적막한 어둠에 잠겨들었다.
‘어?’
투란이 움찔하는 순간, 융단은 한쪽이 훤히 열린 실내…… 홀시딘이 예전에 마법을 휘날리던 크고 넓은 방안에 얌전히 내려앉고 있었다.
케이라가 일어서서 융단 밖으로 걸음을 디디며 묻는다.
“마스터 홀시딘, 이 거미 무리…… 마수의 잔여물과 추출물은 테스트해서 남겨주신 자료를 토대로 해서, 제가 처리할까요?”
툴툴거리는 스승의 표정을 무시한 채로, 알드바인의 마스터로서 할 일이나 하겠다고 아주 공적인 자세와 태도로 하는 말이었다. 투란에게 뭔가 ‘우와, 무서워!’라는 표정을 짓게 하는 분위기를 풀풀 휘날리는 채로!
삐죽거리는 입술을 움직이면서 홀시딘 역시 질 수 없다는 듯이 공적인 자세와 태도를…… 보다 근엄하고 무게 잡은 모습으로 꾸미면서 대답한다.
“그래, 몬스터 거미의 가죽은 거미 군단의 위협을 제거했다는 증거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게야. 그쪽으로 결과를 알리는 일은 마스터 케이라에게 위임하도록 하지. 하지만 보상금과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내가 직접 해야 할 일이 많군. 그러니 케이라는 상아탑의 마스터로서 이 일의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설득을 써봐. 공연히 앞으로 없을 거미 군단의 침공에 대비한다고 힘 낭비하지 않게 말이야.”
“그래야겠죠. 그런데…… 그 보상금에 알드바인의 몫은 있는 건가요, 마스터 홀시딘?”
케이라가 잠깐 눈매를 좁히면서 신중하게 물었다.
홀시딘은 가만히 오른손을 들어 손등을 보이면서, 그 손등에 기묘한 마법의 빛이 어리게 하면서 대답한다.
“율법에 서원한 마도사로서, 그 보상금은 마땅히 받아야 할 자가 받을 거라고 말하겠다. 케이라, 그에 관련된 다른 사항에 대해서는 내 마음대로 말해줄 수가 없구나. 약속을 했거든.”
“그렇군요…….”
살짝 아쉬운 듯했지만 케이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융단을 향해 손짓했다.
융단 아래 돌바닥이 훤히 열렸고, 융단으로부터 한가득 거미의 잔해가 쏟아져 내렸다. 속을 비운 듯한 융단은 점차 얇아졌고, 작아졌다. 마지막 거미의 조각이 떨어진 다음에 융단은 조그마한 손수건 크기가 되어 케이라의 손으로 날아갔다.
열렸던 바닥이 닫히고, 케이라가 돌아서는데 홀시딘이 불쑥 묻는다.
“제자야, 너 정말로 스승의 용돈을 삭감하려는 거는 아니지?”
“삭감이 아니라, 긴급자금으로 끌어다 쓰신 비용을 메우려는 거죠. 불타는 평야를 해결하고 나면 이렇게 될 줄 알고 계셨잖아요?”
찬바람을 휭휭 날리는 듯한 대답이었다.
홀시딘이 불쌍한 표정으로 달달 떠는 말투까지 써가며 따진다.
“어흐―! 케, 케이라! 너 정말 그럴 거냐? 너무하잖아! 긴급자금을 메우는 데 스승의 용돈을! 이제 좀 쉬면서 스승이 군것질도 좀 하고, 갖고 싶은 것도 좀 갖고…… 여유 있게 좀 살게 해주면 안 되겠니?”
“알드바인의 마스터답게 행동하세요! 무슨 애처럼 징징대지 마시라고요!”
스승이 보이는 애절함 따위에 털끝만큼도 애처로움이 없다고 단언하며 케이라는 휭 돌아서서 떠나려 했고, 홀시딘은 정말 애절하고 억울하다는 듯이 손을 허우적대는 모습으로 말을 덧붙이는데,
“……애라니! 내가 기저귀 갈며 키운 제자에게 이 무슨―!”
콰앙!
바닥돌 한쪽이 쪼개지면서 두 덩어리로 치솟았다.
“스, 승, 님! 진짜로 제자에게 제대로 한번 맞아보실래요? 갓난아기 시절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휙 돌아서면서 무시무시한 눈빛과 함께 외치는 케이라였다.
순간, 홀시딘의 손이 바닥을 짚었고 입에서는 급한 외침도 터져 나온다.
“아참, 우리 일도 마무리 지어야지! 투란, 내 집무실로 갈까!”
“어…… 에? 으엇!”
바닥이 푹 꺼지면서 투란은 홀시딘과 함께 아래로 추락하는 상황에 ‘나, 당황했음!’이란 비명을 가차 없이 질러줬다.
그리 길지 않은 추락 다음, 투란은 홀시딘이 털썩 의자에 내려앉는 광경을 보면서 자신의 발끝이 깃털처럼 단단한 돌바닥을 사뿐히 딛는 것을 느꼈다.
천장이 닫히면서 홀시딘과 함께 새로운 방에 들어온 것을 느끼며 투란이 주변을 휘휘 둘러봤고, 홀시딘은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중얼거린다.
“젠장, 이대로면 내가 쓸 돈이 한 푼도 안 남겠는걸! 애가 진짜로 스승을 패고 싶을 정도로 삐칠 줄은 몰랐는데…….”
방문과 책장, 그리고 책상 너머에서 의자에 몸을 푹 파묻은 채로 떠드는 홀시딘에게로 눈길을 옮기다가 투란이 스윽 책상 위에 윗몸을 얹었다. 그리고 나긋하게 말한다.
“저기요, 마스터 홀시딘…….”
“응? 왜?”
“……화낼 줄 뻔히 알면서 왜 자꾸 긁냐고요, 긁기는! 척 봐도 퍼런 번개가 뿜어질 것처럼 무서운 눈빛이더만! 왜 자꾸 무서운 제자 성질을 긁어요! 긁지 말라고요! 나 없는 자리에서 긁든가! 나까지 휩쓸려서 두들겨 맞을 뻔했잖아요!”
“무서워? 케이라의 눈빛이? 뭔 소리야? 에메랄드 블루의 아름다운 눈빛에 반했다면서 약혼까지 깨면서 청혼하는 왕자가 있을 정도인데!”
뚱하니 나온 홀시딘의 대꾸는 뭔가 투란의 상상에서 많이 벗어나 있잖은가.
“……에?”
“음, 그러고 보니 역시 그때부터인가…… 그 전에는 잘 울고 웃고 화를 내기는 했지만, 저렇게 서늘하고 난폭한 짓은 하지 않았는데…… 역시 그 웃기지도 않는 왕자 놈이 지긋지긋하게 까부는 꼴에 질린 다음부터 많이 난폭해졌어!”
팔짱을 낀 채로, 느닷없이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을 떠올린 것처럼 홀시딘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투란은 잠깐 눈을 깜박이면서 보다가 책상에 윗몸을 얹은 채로 두 손을 내밀어 홀시딘의 두 팔을 잡고 당겨 어깨를 짚은 다음에 말한다.
“마스터 홀시딘, 사람 패겠다는 제자라도 이뻐한다는 건 잘 알겠어요. 그런데, 보상금 제대로 나오는 거 맞겠죠?”
“응? 아, 보상금! 후후훗, 걱정하지 마! 동전 한 닢도 놓치지 않고 깡그리 받아내고 말 테니까! 후후훗!”
“……알드바인에서 준비할 보상금은 없어요?”
슬쩍 수상함이 뱃속에서 샘솟는 것을 느끼면서, 아무래도 ‘내가 돈 내는 거 아니니까 신나게 털어주마!’라는 낌새가 이상해서 투란이 넌지시 물었다. 홀시딘의 대답은 지체 없이 아주 호쾌하게 나온다!
“없어! 백 년도 안 된 알드바인이라고, 무슨 잔심부름하는 경계도시 취급을 했지! 그러니까 그런 보상금을 걸지 못하는 대신에 광대한 영역의 순찰이나 하라고 했거든! 음하핫! 덕분에 바람의 길을 누구보다 잘 타는 마스터의 비전마법까지 고찰해냈을 정도니까. 그래서…… 알드바인이 낼 보상금은 없지! 우하핫! 걱정 마, 투란! 이놈들, 내가 현물로 쥐어짜내서 경매로 팔아치워서라도 보상금은 동전 한 닢까지 챙겨준다니까! 으헤헷!”
“…….”
입을 벙긋거리면서도 투란은 뭐라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소리도 못 냈다.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지금 홀시딘의 모습에 대해서 드라고니아가 한마디 한다.
―이 마법사, 악당 아니냐?
‘여, 역시 그렇게 보이지?’
안팎으로 당황해하는 투란을 뒤늦게 깨달은 듯, 홀시딘이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이 말한다.
“아참, 정말로 우리 일도 마무리 해야겠군! 일단…… 그래, 시알라한테 가봐야겠지? 쟈카라 산림에서 간간이 메시지를 보내놓기는 했지만, 네 남매가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가도 확인해야 하고…… 가서 맞춰볼 얘기도 있고 말이야.”
“어, 예…… 가보죠.”
투란은 스윽 몸을 일으키면서, 약간 어리바리한 태도로 홀시딘을 흘겨보면서 대꾸하고 말았다. 대체 이 마법사 악당을 어찌해야 하는가, 고민이라도 하듯이!
홀시딘도 이런 투란의 묘한 분위기를 잘 느끼는 듯, 다시 헛기침을 하고 깡총 의자에서 뛰어오르면서 덧붙이듯 말한다.
“보상금 걱정은 하지 말라니까. 상아탑의 규정은 꽤 엄격하다고. 케이라도 누군가 받아가야 할 사람이 있다는 말 듣고 가만히 입 다무는 거 봤잖아? 마스터 레벨 메이지가 보증한다니까! 흐흐흣.”
말꼬리에는 결국 누군가를 털겠다는 의도가 선명하게 엮여 나오는 소리였다.
듣다보니 왠지 심술이 나서 투란으로서도 한마디 안할 수가 없잖은가!
“근데, 여러 곳에서 걸어둔 보상이니까 결국 각자 부담은 나름대로 적은 것 아니에요? 적립이라고 했으니까, 단번에 준비하는 것도 아닌 모양이고…… 그냥 쌓아둔 돈 내주는 건데 별로 곤란할 거는 없잖아요?”
쫓아가서 보상금 핑계로 누군가를 괴롭힐 궁리 하려 하지만 의도대로 될 리가 없잖냐고 넌지시 짚어 보는 물음이었다.
홀시딘이 히죽 웃었다.
“그래야 정상이지. 그런데…… 한 몇 년 금전이 쌓이는 꼴을 보면 말이야, 그게 한 십 년쯤 되고나면 대체 어떤 놈이 사냥한다고 나설까 의아해지기 시작하지. 그리고 그게 한 이십 년 지나다보면, 쌓인 금전을 급히 써야 할 상황이 된단 말이지. 언제 지급하게 될지 모를 보상금, 당장 돈 새나갈 구멍! 그러다보면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고 일단 쓰게 되는 것! 그게 상아탑이고 왕국이고 가릴 것 없이 일어나는 일이란 말이야. 크흐흐흣!”
“……잠깐만요, 그 얘기는 당장 내줄 보상금이 없다는 거예요!”
“아마 그럴걸! 후후훗, 한 곳에서 감당할 금전이 한 백 몇십 닢 정도 될 테니까, 당장 내놔 해서 나중이라는 말이 한마디라도 나오면 그 자리에서 물건으로 털어오는 거야! 음하핫!”
“그 물건이 우리한테 쓸모없는 거면!”
“응? 경매한다니까, 경매! 왕국이나 상아탑에서 제법 값이 나가는 물건들을 경매 내놓으면 몇 배로 팔릴 수도 있어. 그러니까…… 결국 보상금이 배로 늘어날 수도 있다, 이거지! 아하핫, 투란 좋은 일이야, 좋은 일!”
“……아, 네.”
“응?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 받아 준다니까! 아, 얼른 시알라네한테 가자! 가서 일단 너네 신분 문제를 마무리 짓고…….”
활짝 웃으면서도 할 일 하겠다는 상아탑의 마도사를 보면서 투란은 기분이 괴상해지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악당이야, 악당! 투란, 너 악당과 손잡은 거야!
드라고니아는 그런 기분과 느낌을 확인해주겠다는 듯이 나불댔다!
그런데…….
* * *
“마스터 케이라, 상아탑 전문(傳文)이 각지에서 몰려들고 있습니다! 왕국 여러 곳에서도 몰려옵니다! 마스터 홀시딘께서 귀환한 소식이 전해진 모양 때문인 듯합니다만, 이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지침을……!”
귓가에 빠르게 꽂히는 메시지에 케이라는 녹색 눈동자를 반쯤 감으면서 의아한 표정부터 지었다. 알드바인과 다른 상아탑, 왕국 사이를 잇는 전언을 담당하는 마법사는 나름대로 외교(外交)를 맡아 능숙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째서 이렇게 당황해서 지침을 달라 하는가? 딱히 달라진 일도 없는데, 대체 무엇 때문에 지침이 필요한가?
“왜 그래요? 규정에 없는 일이에요? 규정대로 할 수 없는 일이란 거예요?”
“금전을 한꺼번에 지불하라고, 마스터 홀시딘이 보낸 전언 때문입니다! 그 많은 금전을 어떻게 한꺼번에 지불하냐고, 나눠낼 수 없느냐고 문의하는 거랑…… 추신으로 대체 어떻게 해결한 거냐고, 확인 후에 보낸 메시지가 잔뜩입니다. 제가 대답할 수가 없는 일뿐이라서…….”
“많은 금전……? 말로란, 얼마나 되기에 단번에 지불 못하겠다고 하는 건가요?”
“예? 아, 그게…… 삼천 오백 닢씩이라서…… 단번에 그 많은 금전을 보낼 수가 없다고 하는데…… 마스터 홀시딘께서 기한 내에 안 보내면 가서 현물로 받겠다고 하시고서 전언 닫아버리고 이제 돌아오셨다는 소식에 발칵 뒤집어진 모양입니다. 어, 기한이 이제 겨우…….”
“……씩? 말로란, 잠깐! 전부 합해서 삼천 오백 닢이 아니란 거예요?”
마스터 케이라의 당황스러움은 전언을 담당하던 말로란에게 충분히 전해진 모양이었다.
“어, 그게…… 예전부터 이쪽으로 제대로 상금액 지정서를 보내주질 않아서 말이죠. 아무래도…… 음, 각 왕국과 다른 상아탑 지부가 모두 개별로 삼천 오백 닢을…….”
“아놔! 진짜 스승님 한 대 패고 싶어어어!”
“마, 마스터 케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