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8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80)
케이라는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거미의 잔여물을 정리할 때가 아니었다.
스승의 귀환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대소동을 진정시키는 일이 먼저였다.
그래서 한 이틀 뒤에나 다시 보려 했던 스승을 고작 이십여 분 만에 다시 보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스승님?”
텅빈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 다녀온다는 말 따위는 남기지도 않은 채, 스승은 또 사라졌다!
케이라의 손끝이 잠시 찌푸러드는 이마를 문질렀다.
거의 한달 가까이 사라졌다가 돌아온 스승, 알드바인의 상아탑 마스터 홀시딘이 그새 또 어디 갈 곳이 있단 말인가? 잠깐 사이에 사라진 상황으로 봐서는 그냥 걸어나간 것도 아니고 또 마법으로 휭 날아가버린 모양인데…….
‘투란?’
문득 함께 있었던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케이라의 눈살이 조금 더 찌푸러들었다. 기억을 다시 더듬어 봐도 아직 스무 살이 되지 않았을 모습이었지만, 그 첫인상이 남긴 기묘함은 여전히 케이라에게 의혹을 품게 하고 있었다.
투엘이란 누군가가 날아간 다음, 홀시딘 곁에서 다가서는 케이라를 향해서 투란이 보였던 눈빛…… 그 눈길은 ‘이건 또 뭐하는 생물체인가?’라고 판별하려는 듯했고, 결코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소년으로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수많은 세월을 겪어온 바위가 뭔가를 느리게 검토하고 판별하려 든다는 그런 느낌을 투란은 케이라에게 짙게 드리워놓은 것이다. 때문에 스승이 휙 사라진 지금, 대뜸 그 첫인상부터 떠올리게 할 정도로!
냉정하게 생각해본다면 그 첫인상에는 분명히 근거가 있기는 했다.
아라크레온과의 격전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했다면 결코 보통내기라고 여길 수는 없으니까. 특히나 쟈카라 산림에서 그 많은 거미 무리 틈새에서 홀시딘과 함께 마지막까지 함께 서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단순한 심부름꾼이라든가 사람 소개해준 정도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케이라는 스승에게 투란에 대해 묻지 않기로 했다.
투란에 대해서 묻는다면, 대놓고 가짜인 이름을 남기고 가버린 투엘에 대해서 묻는 꼴이 될 것이고 그건 스승이 밝혀줄 리가 없는 일이었다. 오랜 숙원을 해결해준 이가 지켜달라 부탁한 비밀일 테니까.
‘거미, 오우거, 몰튼노트까지…… 투란도 모두 함께 했으려나?’
케이라는 한숨을 쉬었다.
스승 홀시딘은 제자인 케이라에게 알드바인의 모든 일을 맡긴 채로 안식기를 취하겠다고 해놓고서는 낼름 뛰쳐나가 숙원을 해결했다. 전혀 누군지 모를 낯설고 이상한 이들을 동반해서!
그리고 돌아와서도 여전히 제자보다는 그쪽과 관련된 뒷마무리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알드바인에 몰아닥칠 소동의 씨앗을 뿌려놓은 채로!
‘으―! 진짜 한 대 쳐버릴까?’
뽀득, 주먹이 저절로 쥐어지며 근육이 팽팽해지는 소리가 케이라의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지금 누가 건드리면 예민해진 성질이 그대로 터질 듯한데,
“마스터 케이라?”
말로란의 메시지가 쿡 쑤셔 오잖는가!
케이라는 마음을 정했다.
“말로란, 보상금에 대해서 마스터 홀시딘의 착오는 왜 일어난 거죠?”
불쑥 묻는 말에 말로란이 잠깐 침묵하는 것이 느껴졌다.
케이라의 입꼬리가 살짝 삐쳐 올라갔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말로란이 무슨 표정을 짓는가 훤히 보이는 듯했다.
‘아오, 이 아저씨 신나 있었잖아!’
중년의 중급 마도사 말로란, 사방에서 날아드는 전문 때문에 몹시 당황하긴 한 모양인데 이제 슬슬 진정하고 나니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과연 미묘하게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린 다음, 말로란의 침착한 저음(低音)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음, 그게…… 원래 왜곡이 없도록 보상금 지정서는 탑의 상급 마법사가 주기적으로 갱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만…… 한 십몇 년 동안 마스터 홀시딘께서 헌터 길드에 물어보면 된다고 신경을 쓰지 않고 계셨지요. 아시다시피 다른 쪽으로 전혀 관심 돌릴 여유도 없으셨고 말이죠. 음, 그래서…… 다른 탑에서도 어차피 받아갈 때 제대로 받아가면 되는 일이라고 이쪽으로 따로 갱신된 보상금 지정서를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마스터 홀시딘께서 한 십몇 년 전 지정서만 갖고 계셨던 모양인데…….”
“이쪽 정신없는 거야 다 알고 있었을 테고, 그런 사소한 일에 우리 사정은 조금도 봐주지 않고 있다가 일 터진 다음에 당황하는 거군요? 그래서 스승님이 보상금 지정에 대해 확인도 않고 일 저질렀다 그러니, 따져보자 이런 이야기인가요?”
케이라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물었다.
말로란 역시 저음의 목소리를 더욱 낮게 깔면서 신중하게 말을 골라서…… 분명 그 얼굴을 신나게 처웃을 듯한 상상을 케이라에게 듬뿍 심어주면서 말한다.
“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 테니까요. 알드바인에서 상급 마법사는…… 마스터 케이라와 마스터 홀시딘 두 분이 순전히 개인적인 기량으로 도달해 있을 뿐이고, 나머지는 기껏해야 중급 마법사잖습니까? 덕분에 평소에 교류도 어렵고 힘들다고 불평이 많았죠. 보상금이야 줄 때 정확하게 주면 그만이고, 헌터 대공방과 함께 상주하는 길드 지부에 가면 언제라도 확인할 수 있으니까…… 사실 그렇게 관심 둘 일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딱히 우리가 책임질 일은 아니겠군요?”
빙빙 돌리는 말로란의 말에 케이라는 슬쩍 마력이 담긴 손짓을 해서 한쪽에 빛의 고리를 만들면서 되물었다. 대답은 곧 느릿하게 나오는데,
“어, 이 일에 대해 서로간의 귀책사유에 대해서 말하자면…….”
툭, 케이라의 손끝이 빛의 고리를 건드렸다.
고리가 확장되면서 고리 안에 자기 볼을 꼬집으면서 말하는 마법사, 말로란의 모습이 투영되며 바로 보였다. 케이라가 바로 나직하게 으르렁대는 소리를 낸다.
“아저씨, 귀책사유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말해봐요. 왜 그리 신나 있어요?”
말로란은 화들짝 놀라서 뒤로 몸을 젖히다가 말을 더듬으며 대꾸한다.
“……흐핫! 왜, 왜 갑자기―!”
“얼굴 안 보여도 괜히 내리깔고 말하는 목소리 들으면 바로 알게 되잖아요. 지금 이 상황이 대체 왜 그리 신나는 일이 되었냐고요, 아, 저, 씨!”
“어? 에, 으흠! 그, 그러니까 그건 그냥 개인적인…….”
“그래서 지금 이렇게 아저씨한테 개인적으로 묻고 있잖아요!”
독촉하는 케이라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 말로란은 끄응하면서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내리며 한숨부터 쉬었다.
“……그야 평소부터 쌓인 것 때문이지. 뭐 다른 거 있겠어? 케이라, 너도 알다시피 그 녀석들 우리한테 알드바인 촌뜨기니까 근성은 있으시겠네 어쩌네 하면서 웬만한 일은 알아서 해야하잖느니 뭐니 하면서, 다른 탑이라면 적당히 해줄 일도 꼭 이쪽으로 떠넘기잖아. 이번 일도 축하한다는 말보다 먼저 보상금의 일시지불에 대한 얘기부터 떠들었다고! 아예 축하한다는 말 빼먹은 경우가 더 많기도 했고. 음, 뭐 그러니까…… 마스터 홀시딘한테 잠깐 골탕 좀 먹어봐도 괜찮다 싶어서…….”
“아저씨…… 진짜 이상한 근성 좀 드러내지 마세요! 진짜 그럴 때는 스승님이랑 꼭 닮은 거 아세요?”
골탕이니 뭐니 하며 웅얼거리는 말로란을 향해서 케이라는 타박부터 했다.
홀시딘과 닮았다는 소리는 말로란을 움찔하게 했다.
“에이, 내가 닮았을 리가…… 닮았다면 내가 지금 적어도 상급 마법사는 되어있어야잖겠니? 어, 나보다는 케이라가…… 근데, 케이라 왜 그렇게 수상하게 웃고 있니?”
“음? 제가 웃었나요?”
케이라는 손끝으로 입술을 더듬으면서, 자기가 진짜 웃고 있나 새삼 확인해봤다. 그러나 그런 케이라를 향해 말로란은 저편에서 거울을 들이대며, 마법으로 비춰진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해 보여준다.
“……조금 웃고 있네요.”
“아니, 그거 굉장히 깊이 수상하게 웃는 거잖아!”
말로란은 어린 시절부터 케이라를 봐온 어른으로서 강력하게 말하고 있었다.
케이라는 저편의 거울을 보다 피식 얼굴을 흐트러뜨리는 웃음을 짓고 대답한다.
“교신 담당 마법사 말로란, 전문을 보낸 상아탑과의 동시대화를 준비해주세요. 준비가 끝나면 저랑 바로 이어지도록!”
돌연 위계(位階)에 따라 마스터로서 명령하는 케이라를 보며 말로란은 낯을 찌푸렸다. 뭔가 제대로 캐물으려 했더니, 사적인 대화를 끊고 바로 공무(公務)로 돌아가겠다니! 좀 너무하잖냐고 따지고 싶어 하는 낌새가 뚜렷했다. 하지만 말로란은 곧 자신이 공무 중이란 것을 되뇌며 위계에 따른 사무적인 대답을 한다.
“준비하겠습니다, 마스터 케이라.”
케이라는 빛의 고리를 흐트러뜨린 다음, 가만히 선 채로 생각했다.
텅 빈 스승의 집무실, 어디 갔나 단서를 남긴 낌새는 없었다.
간단히 봐도 홀시딘은 지금 누가 자신을 찾을 거란 생각은 없는 듯했고, 찾는 경우라도 알려줄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지난 이십여 일 이상을 케이라가 찾아 헤매게 한 것처럼!
“흠, 그렇다면 일단 스승님은 행방불명이신가…….”
스윽, 손을 들어 벽을 열고 직행통로를 만들어 케이라는 바로 거미 무리의 잔여물을 쏟아부은 창고실로 움직였다. 이제부터 대화를 위한 준비를 해야했다.
열일곱 번째 상아탑을 대표하는 마스터로서, 다른 열여섯 곳의 상아탑 마스터들과 마법으로 투영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마스터 홀시…… 케이라?”
“어? 마스터 케이라?”
“아니, 홀시딘이 돌아온 것 아니었나?”
“마스터 케이라! 자네 스승님은?”
와글와글.
말로란과 이어진 빛의 고리를 작게 축소시켜 놓고, 활짝 열린 열여섯 개의 고리 속에 나타난 모습들을 주욱 둘러보면서 케이라는 침착하게 한숨을 쉬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홀시딘을 기대한 그 모습들을 보니, 케이라는 곧바로 말로란이 무슨 장난을 쳤는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알드바인 마스터께서 대화를 신청하십니다.’라고, 아주 짧은 단문형 메시지를 날렸을 것이다. 지금 당장, 동시에 대화를 하자는 말을 거부할 경우에 대해서 저쪽이 잔뜩 염려할 분위기를 담아서!
‘진짜 이상한 근성을 발휘한다니까. 그 근성으로 마법을 팠으면 이미 상급 마법사가 되었을 텐데…….’
다시 떠오른 말로란에 대한 짧은 평가를 뇌리에서 지우며 케이라는 차분하게 열여섯 얼굴을 둘러봤다. 마법의 창이 열리자마자 할 말부터 바쁘게 쏟아내던 열여섯 얼굴이 움찔하는 광경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마스터 홀시딘께서는…….”
아주 공식적인 발표을 하는 자세로 케이라는 입을 열었다.
한번 더 움찔거리는 낌새가 열여섯 얼굴에 꿈틀거리는 듯했다.
“……현재 심신에 쌓인 지극한 피로로 인해 절대안정이 필요한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케이라가 살짝 숨을 고르기 위해 쉬는 듯하는 순간,
“저, 절대안정?”
“휴식이라니!”
“오우거 해결했다고 연락 보낸 지가 이십 일이 넘었다고!”
“그동안 충분히 쉬고 있던 것 아닌가!”
“마스터 케이라, 마스터 홀시딘 돌아오기는 돌아왔나?”
“설마 행적 감추고 날짜 세는 거는 아니겠지?”
“숨어 있다 기한 넘기면 바로 와서 털어가겠다는 건가!”
왁자지껄, 와글와글.
둘까지 세고 나서 손을 들어 떠드는 소리를 막으면서 케이라는 느릿하니 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비추는 마법의 창이 자신이 서 있는 곳, 주변의 풍경을 조금 더 선명하게 저쪽에 보이도록 마법의 조명(照明)을 뿌리면서!
“스승님께서는…….”
가다듬은 목소리로 케이라는 다시 입을 열었고, 열여섯 얼굴이 지금 보이는 풍경을 눈치채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멈췄다. 이제 케이라의 머리 위로는 높이 걸린 아라크레온의 가죽이 보일 터였다. 좌우로 거미 마수가 잔뜩 웅크린 듯한 풍경과 함께!
“……그레이우드의 확장을 해결하신 다음, 쟈카라 산림으로 바로 옮겨서 거미 군단의 원흉을 사냥하시는 일에 참여하셨습니다. 지난 이십여 일 동안 연락을 할 수 없는 치열한 상황이었고, 여기 이 몬스터의 사냥이 끝난 다음에 바로 제가 위치추적이 가능하도록 해주셨지요.”
파라락, 말을 하면서 케이라는 몬스터 도감을 펼쳤고 ‘신수 아라크레온을 참고할 것.’ 이라는 짧은 문장과 함께 하는 태그를 모두가 볼 수 있게 손끝으로 짚어줬다.
침묵,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서 마법의 창 열여섯 너머에서는 무지하게 바쁘게 움직이는 광경이 비춰졌다. 이쪽으로 뭔가 전하기 전에 케이라가 알려주는 정보를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몇몇은 아라크레온의 가죽을 보자마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것으로 봐서, 정말 맞는가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바로 신수 도감을 펼치는 듯했다.
다시 무슨 말이 나오기 힘든 분위기를 파악하며, 잠깐 침묵을 즐기던 케이라가 재빠르게 누군가의 입이 열리기 전에 말한다.
“보상금에 대해서는…… 참여한 몇몇 모험가에게 분배할 일도 있어서 제가 끼어들어 뭐라 할 수가 없는 데다가, 스승님께서도 보상금 문제는 아예 전담하겠다 말씀하시더군요. 음, 그러니까…… 며칠 뒤에 스승님이 휴식을 마치시고, 제정신이 돌아오실 때 다시 연락을…….”
“가겠다! 그렇게 피로하다면, 내가 가서 직접 얼굴 보고 얘기하도록 하지!”
맹수가 포효하듯, 누군가 외쳤다.
곧이어 ‘나도!’라는 소리와 함께 ‘마스터 수전노가 쉬고 나서 털러오는 꼴 못 봐!’라는 괴상한 소리가 섞인 채로, 알드바인으로 방문을 예약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케이라는 방긋 웃었다.
열여섯 상아탑에서 한꺼번에 저렇게 몰려든다면, 스승인 홀시딘은 분명히 한 대 세게 맞은 얼굴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