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8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81)
Chapter 97. 고대의 신목(神木)
홀시딘이 빙그레 웃었다.
시알라는 ‘이 수상한 수작은 뭐야?’라는 눈빛을 흘렸다.
페란드는 ‘뭐가 잘못되었나?’라는 표정으로 일단 볼을 긁적였다.
제란드는 ‘우리가 이렇게 친했었나요?’라는 황당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멜란드는 슬쩍 투란의 어깨 너머 등 뒤로 얼굴을 감추면서 ‘무서워, 왜 저러신데?’라는 중얼거림을 대놓고…… 하지만 나직하게 투란의 귓가에 흘려넣고 있었다.
투란은 멜란드의 중얼거림에 입가를 실룩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나란히 둘러앉은 곳을 둘러보고는 싱긋 웃을 수 있었다.
―너, 이곳이 편하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기분이 묘하게 들뜬 것을 의아해하고 있었다.
투란은 드라고니아를 향해 대답하듯, 이곳의 분위기를 어떻게 느끼는가를 알리고 싶다는 듯이 입을 열어 소리 낸다.
“좋은 곳이네. 여기 대체 어떤 곳이에요, 마스터 홀시딘?”
“여기는…… 어떻던가? 이곳에서 지내본 소감은?”
투란에게 대답하려는 듯하다가 홀시딘이 시알라부터 남매를 차례로 둘러보면서 빙긋빙긋 웃는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시알라가 한층 더 ‘대체 이 마법사, 뭔 수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표정을 지어보였고, 페란드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제란드와 멜란드를 바라봤다. 멜란드는 흘깃 제란드를 보며 계속 투란의 등 쪽으로 슬슬 몸을 기울이며 뭔가 이 대화에 끼는 것은 위험하다는 시늉을 해 보였다.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제란드가 입을 연다.
“꽤…… 지내기 편안했군요. 보내주신 메시지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위험하고 머물만한 곳이 아니기는 했지만 우리에게는 상당히 안락했어요. 미로가 되버린 나무 뿌리를 헤매이던 고블린 무리도…… 나름대로 돈벌이가 된 셈이고 말이죠.”
“후훗, 역시 그렇지?”
홀시딘이 활짝 더 짙게 웃으면서 자신의 예상대로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꼴에 시알라가 ‘더 못 참겠어!’라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수전노의 상금으로 돈벌이 하는 중이라니까, 다들 미친 놈, 미친 년 보듯하던데요?”
“응? 수전노?”
투란이 바로 짚어 물었고, 홀시딘은 웃는 그대로 굳은 듯한 얼굴로 바쁘게 입술만 움직여서 변명한다.
“에이―! 이 고목(古木)의 뿌리를 타고 오는 고블린 상금이 왜 적은가에 대해서도 들었을 텐데? 이 주변에 온통 우드 가디언을 뿌려놓은 것도 봤잖아!”
“음, 그거…… 상금이 적어서 다들 피하니까 어쩔 수 없이 마법의 파수꾼을 세워놓은 거라던데요?”
페란드가 불쑥 중얼거렸다.
멜란드가 ‘아, 그랬어!’라고 장단 맞추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시알라는 ‘그랬지!’라는 한마디와 함께 입술을 삐죽였다. 급격히 나빠지는 듯한 분위기에 홀시딘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뭐라 하려는데, 제란드가 쓴웃음과 함께 재빨리 말한다.
“수십 년 동안 세워놓은 가디언이고, 원래 상금은 걸어놓지도 않았다고 했잖아. 그나마 붙어 있는 상금은 삼 대째인 마스터 홀시딘이 마스터 엘투란의 뒤를 이은 다음에야 겨우 책정된 거고 말이야.”
“고블린 상금이 얼마인데?”
투란이 오가는 소리에 귀를 쫑긋 거리다가 홀시딘이 뭐라 하기 전에 얼른 물었다.
멜란드가 잽싸게 투란의 귓가에 소곤거리듯이 대답한다.
“은전 두 닢! 보통 고블린도 아니고 고블린 부루탈인데 은전 두 닢!”
“……?”
투란은 입을 벙긋거리면서 ‘어머, 너무 당황해서 내 입에서 소리가 안 나요!’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쩐지 이 거대한 나무 속의 그늘진 어둠 속에서 무서운 것이 나와 놀랐다는 것처럼!
홀시딘이 연속적으로 자신의 말을 앞지르는 남매와 투란을 향해 투덜거리듯이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명목상 상금이라고, 명목상! 안 붙여놓을 수가 없으니까, 일단 붙여만 놓은 거고…… 되도록 이 고목 안은 기웃거리지 말라고, 목숨 걸고 돈 벌 만한 곳이 아니라고 경고삼아 붙여놓은 상금이라고!”
“그러면…… 설마 아예 안 주는 거!”
투란이 ‘우아, 날강도다!’라는 표정으로, 말문이 갑자기 트였다는 듯이 불쑥 물었다. 눈매는 가늘게 한 채로 매우 수상하다는 듯이 홀시딘을 보며 묻는 말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다시 제란드가 뭐라 대꾸하려는데, 홀시딘이 번뜩 눈을 부릅뜨며 으르렁거리듯이 대답한다.
“줘! 명목상 붙여놓은 거라도 주긴 줘! 하지만 사냥을 북돋워주려고 붙여놓은 상금은 물론 아니지! 고블린 부루탈에 은전 두 닢이란 말은 잡지 말란 소리라고! 그걸 잡겠다고 여기 들어오는 정신 나간 짓은 하지 말란 뜻이지!”
“……그렇게 외치시는 분께서 우리에게 여기서 지내라고 하셨죠?”
시알라가 아주 깊이 가라앉아 수렁에 빠져드는 듯한 분위기를 풍겨내면서 불쑥 홀시딘의 말에 꼬리를 붙였다. 누나의 말에 세 형제가 쓴웃음을 지으며 홀시딘을 바라봤다.
투란을 돌돌 말아 데려간 밤 이후, 홀시딘은 네 남매에게 알드바인에서 기다리며 나름대로 적당히 어울릴 방법을 알려줬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일행이 모여 앉아 있는 고목의 안쪽…… 성벽의 안팎을 넘나드는 거대한 나무뿌리를 이용해서 파고들려는 고블린 무리를 적당히 상대하며 머무는 일이었다.
이 일감이 이모저모로 꽤나 괴상했다.
우선은 상금이 이상했고, 그다음에는 사람들의 태도가 괴상했다.
성벽을 무시한 채 들어오는 고블린 무리라면, 성벽 안에서 사는 이들에게는 굉장한 위협일 텐데…… 알드바인에서 이 남쪽 성벽의 고블린 침투에 대해 신경 쓰는 이들이 거의 없다니!
이 얘기를 꺼내면 대부분 알드바인에 처음이라고 바로 알아차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보니, 우드 가디언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대답이었고 헌터보다는 마법사들이 더 신경 써서 경계를 서는 곳이라는 이야기였다. 알드바인의 성벽이 완성되기 전부터 있던 곳이고, 성벽이 완성된 다음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그저 성벽 안이기만 할 뿐이라는 묘한 곳이었다.
여기서 계속 뭔가 해야하는가 네 남매가 의아해 했지만, 홀시딘은 그날 밤 이후로 간혹 메시지를 보내서 일단 이곳에서 사냥하는 시늉이라도 하며 알드바인에 익숙해지는 척하며 기다리라 했다.
홀시딘은 시알라가 의심 가득한 가늘고 날카로운 눈길을 보내는 모습에 한숨을 쥐어짜내면서 대꾸해 말한다.
“그러니까, 적당히 알드바인의 상황을 느끼면서 시간 때우기 적당한 곳이라고 했잖아. 설마 그동안 진짜로 진지하게 고블린 사냥이라도 하고 있었던 거야?”
시알라가 입을 꾹 다물었고, 제란드가 대답한다.
“그야…… 했죠. 자연스럽게 어울리려면 뭔가 사냥해서 팔고 사는 척하며 공방을 둘러보고, 급한 대로 은전 몇 닢이라도 챙기는 척하는 게 쉽잖아요. 그래서 권하신 거라 여기고…… 음, 꽤 잡았지?”
마지막에 숫자 세는 일은 페란드에게 맡겨졌다는 듯이 그쪽으로 넌지시 묻는 말이었다. 동생의 물음에 페란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하루에 못 잡아도 이십 마리는 꼬박꼬박 잡은 것 같지. 험악하게 튀어나오는 날에는 거의 백여 마리 가까울 때도 있었고…… 덕분에 고블린에 원한을 품은 고블린 슬레이어라는 별명이 생길 지경이기도 하지만…….”
“……슬레이어?”
투란이 어이없어 하면서 실룩거리는 얼굴을 참는 표정을 보였다.
시알라가 그런 투란에게 단호하게 한마디 한다.
“웃지 마! 어디 가서 뭘 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연락도 안 했으면서 웃지 말라고!”
“응? 아니, 그건…… 홀시딘, 우리 뭐하고 있는가 메시지 보내던 거 아니었어요?”
투란이 의아해서 홀시딘에게 물었고,
“어? 보냈지. 적어도 닷새에 한 번씩은…….”
홀시딘이 당당하게 대답하다가 시알라와 세 형제의 눈길이 조금 음침하니 가라앉으며 수상해지는 분위기에 말꼬리를 흐렸다. 투란이 재빨리 그 분위기에 얹듯이 묻는다.
“왜? 제대로 메시지가 도착하지 않았던 거야?”
“……메시지야 왔지. 살아있음, 이라고.”
시알라가 바로 으득하며 이를 가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투란이 눈을 껌벅였다.
홀시딘이 주춤하는 태도로 말한다.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다고 메시지 보낸 거지!”
“……그뿐?”
뚱하니 투란이 물었다.
“충분하잖냐?”
홀시딘이 얼굴을 강철방패처럼 빳빳하게 하면서 대답했다.
“몽땅 떠넘기려고 하지 마! 라비엔을 지나면서 우리도 메시지 가능하다는 거, 다 확인했잖아, 투란!”
시알라는 ‘아, 이건 전부 홀시딘 탓이야.’라는 시늉을 하는 투란에게 바로 으르렁거렸다. 투란이 방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맞아, 그랬어! 홀랑 까먹고 있었다! 아하하, 마스터 홀시딘이 메시지로 연락 잘 한다니까, 미처 생각을 못했어! 아하핫!”
여지없이 홀시딘에게 떠넘기는 소리를 뻔뻔하게 뱉어내고 있었다.
시알라가 보다 더 험상궂게 낯을 구기는데, 슬그머니 멜란드가 중얼거린다.
“맞아, 정말 미처 생각을 못할 때가 많기는 해.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주변에 누가 있으면 마법 쓰는 거 티 안내려고 하다가 자주 잊기도 하고 말이야…….”
“어, 그렇기는 그래.”
슬쩍 제란드도 한마디 했고, 페란드는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시알라는 그런 동생들과 투란, 홀시딘까지 싸잡아 흘겨봐줬다.
세 형제가 살짝 누나의 눈길을 피했다.
투란은 그 광경에 알드바인에서 셋이 종종 어디서 뭘 하는가 제대로 시알라에게 말하지 않고 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험한 숲에서 간간이 주변을 말없이 돌다가 혼날 때 모습이랑 닮았잖나!
홀시딘은 ‘허억? 제자 피해 왔다가 여기서 또 잔소리 듣나!’라며 당황해 하는 듯했다. 그래서 투란은 홀시딘에게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긴 척 말을 던지면서, 이 상황을 일단 피하려 했다.
“그런데 이 나무 대체 뭐예요? 이렇게 속이 파였는데 별로 썩는 것 같지도 않고…… 대체 뭔 나무인데 이렇게 커요? 원래는 훨씬 더 컸나요?”
홀시딘도 재빠르게 투란에게 대답하는 이야기를 꺼낸다.
“고대(古代)의 거신목(巨神木)이니까. 원래는 나무 밑둥 둘레만 수백 미터는 되는 거대한 크기였지. 이 남은 그루터기는 부러지고 꺾이면서 뿌리가 반 이상 뽑혀 뜯겨나가고 그 귀퉁이만 조금 남은 거야. 그런데도 이렇게 크고 높은 형태가 아직 남아있고…… 속이 이렇게 파였어도 여전히 썩지 않아. 땅 속에 남겨진 뿌리도 아직 굵고 길어서 뿌리를 중심으로 미로가 형성될 지경이니까. 알드바인의 초대 마스터인 펠카윈 마도사께서 처음 이곳에 근거를 정할 때도 이 거신목의 그루터기를 중심으로 삼았었지. 뭐, 지금은 성벽 한 귀퉁이가 된 꼴이지만…… 이런 거 본 적 있어, 투란?”
“본 적 없죠. 남은 쪼가리만 수십 미터짜리인 나무는 본 적 없어요. 멀쩡하게 자라서 둘레가 수십 미터인 나무야 봤지만…… 제대로 자랐어도 그리 높이 자란 나무는 아니었어요. 어, 맞다! 이 나무 냄새는 그거랑 비슷한 느낌이 좀 있어요. 내가 본 나무가 나중에 거신목이 되는 걸까요?”
“비슷한 냄새? 흐흠, 그건…… 신목일 수도 있겠군. 품종이 이 거신목과 다른 신목이라면,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어. 아무튼, 이 나무는 알드바인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자네들에게도 새로운 시작점이 되기에는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어. 이 나무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다보면 뭐라 할 말 있는 녀석들이 많으니까. 여기서 고블린 몇 마리 잡아 돌아다니면 이러쿵저러쿵 말 섞기도 쉽잖아? 그렇지? 그래, 그래서 권한 거야. 일단 알드바인의 여럿에게 익숙한 얼굴이 되면…… 그다음에는 지난 일을 적당히 덧붙이기만 하면 되니까. 알드바인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도, 어디에서 왔느냐고 하면 알드바인이라고 둘러대기도 좋고 말이지. 아, 자네들 그동안 그럴듯하게 꾸미고 있었겠지?”
투란과 함께 장황하게 이야기를 퍼붓다가 불쑥 묻는 홀시딘이었다.
시알라가 눈매를 구긴 채로 살짝 날카롭게 대답하는데,
“일부러 여기서 머물기까지 하면서 급전이 필요해서 고블린 사냥을 하는 시늉까지 했죠. 이 부근 사람이든 그동안 우리가 만난 사람들이든 붙잡고 물어보면 확실하게 아실 거예요. 그러니까, 그 전에…… 투란이랑 뭘 하고 다녔는가 제대로 좀 말해보세요! 살아서 돌아왔다고 전부 그냥 지난 일로 덮으려 하지 말고요!”
또박또박, 눈동자로 투란과 홀시딘을 꼭꼭 짚듯이 말하고 있었다.
홀시딘은 그런 시알라에게서 많고 깊은 잔소리를 예감할 수 있었고, 재빨리 투란을 보며 ‘막아랏!’ 이란 눈빛을 흘려냈다. 어쩐지 상아탑의 마도사로서 근엄한 척, 고고한 태도를 잡아도 전혀 통하지 않을 낌새가 너무 분명하니까!
투란은 이에 슬쩍 세 형제를 둘러봤지만, 이번에는 세 형제도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뭘 했는가 궁금한 점은 똑같다는 듯.
“어, 흠…… 아, 얘기해야지! 그러니까…… 아참, 홀시딘 상금이 얼마였죠? 그 첫 번째…… 불타는 평야의 보상금, 여러 곳에서 백몇십 닢씩 내는 거라고 했었죠? 그게 다 하면 얼마예요?”
주섬주섬 입을 열면서 나무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다가 투란은 재빨리 화제를 떠올리고 홀시딘에게 떠넘겼다.
홀시딘은 이에 바로 환한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대답한다.
“삼천오백 닢! 금전이야, 금전!”
네 남매가 한순간에 목각인형처럼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