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8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83)
“몬스터 헌터가 흔히 겪는 일이지. 몬스터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사냥에서 돌아오면, 사람 사는 곳에서 제대로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살기 어려워하는 것 말이야. 때문에 대략 한 달 이상, 냉정하게 말하자면 열흘 이상을 몬스터 사냥에 몰입하다 돌아왔다면 반드시 적응기가 필요하다네. 라비엔같은 안쪽 경계도시에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그냥저냥 넘어가고 말겠지만, 이 알드바인부터는 그럭저럭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 할 수 있으니까.”
“음, 그러니까 몬스터 없는 곳인데도 불안해하면서 잠도 못 자고 그러다가 다시 몬스터가 한가득 있는 곳으로 얼레벌레 돌아가는 사냥꾼이 되면 안 된다고!”
마법사의 이야기에 조금 멍한 표정을 짓는 네 남매를 보고 투란이 보태서 말하고 있었다. 시알라가 바로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 그 이야기였어.”
세 형제도 한 박자 늦게 ‘어? 아!’ 하면서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홀시딘이 입술을 슬쩍 삐죽거렸다.
왜 같은 이야기인데 마법사의 말은 못 알아듣는 낯짝을 하고 있다가 투란의 얼렁뚱땅하는 말에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가!
투란은 ‘왜 마법사는 말을 어렵게 하지?’ 란 듯이 슬쩍 눈을 흘겨보이고는 몇 마디 더한다.
“나는…… 그런 거 싫어. 모처럼 몬스터 꼬라지 안 봐도 되는 곳에 왔잖아. 몬스터가 위협하는 곳에 있어야 잠을 잘 자고 편히 쉬는 그런 꼴이 되고 싶지 않다고!”
잠깐 네 남매의 얼굴에 어처구니없어 하는 낯빛이 스쳐갔다.
아무래도 지금 투란이 한 말은 몬스터 로드가 꺼내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잖은가. 몬스터를 품은 자가 말하기에는…….
하지만 홀시딘은 문득 알아차리고 있었다.
투란이 정말로 심각한 사냥 후유증에 시달리는 몬스터 헌터를 본 적이 있다는 것! 단지 말로만 듣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 후유증에 시달려서 피폐해져 가는 누군가를 봤기 때문에 진지하고 신중하게 적응기란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네 남매는 알기는 하지만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그저 들은 이야기일 뿐이란 것도 홀시딘은 느낄 수 있었다.
“여관을 피해 여기 머문 것은 그럴 수 있다 치고, 경계를 세우지 않고 무장을 전부 풀고 편히 잠든 적은 있는가? 밤에 보초를 두고 번갈아 가며 파수꾼 노릇을 하며, 무장을 늘 곁에 두는 것이 더 마음에 편히 느껴지고 있지 않았나?”
“그건…….”
시알라가 동생들을 둘러보며 살짝 말문을 열려다가 멈췄다.
홀시딘이 구체적으로 짚어가며 묻는 이야기, 그 속에 담긴 의미는 투란의 말과 엮이면서 남매가 모두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시알라는 부정하기가 어려웠다.
은전 몇 닢에 불과한 고블린을 핑계대면서, 이 고대의 신목에 머물고 난 다음부터 남매 넷이 모두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밤의 경계를 돌아서며 무장을 가까이 당당하게 놓아둘 수 있는 것이 정말로 편안했다.
그냥 습관이 되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투란과 홀시딘이 신중하게 말하는 바는 그게 단순한 습관 탓이 아니란 것이다.
조용히 투란이 다시 입을 연다.
“제대로 적응하지 않으면, 지나가는 사람을 쪼개놓고 몬스터에게 당하면 이렇게 돼요라고 말하는 미친놈이 될 수도 있거든. 그렇게 미친 다음에 안쪽 경계 도시나 마을로 도망치기도 하고…… 사람 사는 것처럼 살 수 없는 꼴이 되기 쉬워. 싫잖아, 그런 꼴은…….”
어딘가 섬뜩한 기억을 떠올리는 투란을 보며 홀시딘이 가볍게 헛기침을 해서 주의를 돌리는 채로 말한다.
“물론 그렇게 되도록 둘 생각은 없네. 무엇보다 내가 바로 자네들의 시크릿 키퍼잖은가. 시크릿 키퍼를 둔 로열 클래스로서 자네들이 뭘 할 수 있게 되었는가, 로열 클래스가 대체 어떤 신분인가…… 차분히 익혀나가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알드바인에 머물 필요는 있네. 그 적응 기간을 끝내고 나서 세상 어디든 갈 수 있고…… 전혀 다른 신분이 될 수도 있어.”
“음, 난 서너 가지 신분을 준비할 거니까…….”
신분 이야기에 투란이 바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보탰고, 이는 네 남매에게 조금 색다른 어리둥절함을 느끼게 했다.
“서너 가지……?”
“신분을 서너 가지?”
“그게 무슨 말이야, 투란?”
이게 대체 뭔 소리냐고 세 형제가 바로 되묻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사이에 눈을 깜박이던 시알라는 퍼뜩 알아차렸다는 듯이 홀시딘에게 묻는다.
“서너 가지 신분이라니, 그런 것도 돼요?”
“된다네. 애초에…… 왕족이 본래 신분을 감춘 채로 세상을 돌아보기 위해 준비된 것이 로열 클래스의 마법이었으니까. 뭐, 그 때문에 마법의 명칭이 로열 클래스가 돼버린 거는 좀 이상하기는 한가? 왕족이 왕족이 아닌 신분으로 위장하는데 로열 클래스라고 하니 말이야…….”
“아니, 그런 옛날 얘기 말고요! 상아탑이랑 헌터 길드에 다른 이름으로, 다른 사람인 것처럼 멋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거냐고요! 그런 거는…….”
시알라가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다시 짚으며 더 깊이 물으려 했다.
헌터 길드에서 한 사람이 여러 가지 계정을 만들 수는 있었다. 계정마다 다른 금액을 쌓고, 목적에 따라 따로 꺼내 쓸 수 있게 지원해주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해놨다고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인 척은 할 수 없었다. 한번 길드에 등록된 헌터는 얼굴이 뒤틀리거나 손발이 잘려나가거나 해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일이 없다고 했다. 피를 이용한 어떤 마법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네 남매를 끌고 갔던 겔퍼, 아겔페스는 네 남매에게 길드에 등록을 못 하게 했었다. 이제 와서는 그 목적이 황금매가 노출될까 봐 그런 거라고 알 수 있었지만, 그때에는 특별한 몬스터 로드인 것을 들켜서 복잡한 일에 휩쓸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헌터 길드에서 신분을 파악하게 되면 이래저래 자신이 지닌 여러 가지 특징이 기록되고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일 따위는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신분을 혼자서 쓸 수 있다니…….
멜란드가 황당해 하며 불쑥 묻는다.
“대체 여러 가지 신분으로 뭘 하려고?”
할 수 있다고 해도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의아해 하는 멜란드를 향해 투란이 히죽 으스대는 웃음을 띄우면서 대답한다.
“쓸모가 많지! 어떨 때는 몬스터 헌터 투란! 어떨 때는 마수 사냥꾼 투란! 어떨 때는 몬스터와 마물의 가죽을 팔러 다니는 투란! 가끔 좋은 광석을 주워 오기도 하는 나무꾼 투란! 또 어떤 때는 고블린 팔뚝을 자랑하는 몬스터 로드 투란!”
투란이 자기 이름을 늘어놓는 모습에 네 남매가 잠시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마 세상 어디에 가도 있을 듯한 투란이었다.
아니, 이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히 몬스터 헌터 투란도 있고 마수 사냥꾼 투란도 있을 것이며 장사꾼 투란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이름은 안 바꿀 거구나.”
페란드가 문득 알아차렸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이 혀를 낼름하고 대꾸한다.
“기왕 투란인데, 이용해야지! 뭐, 가끔 카엘을 써먹을 때도 있겠지. 으흐흣.”
음모(陰謀)라도 꾸미는 듯한 표정을 짓는 투란을 향해 다들 어처구니없어 하는 눈길을 보냈다.
그러다가 제란드가 고개를 갸웃하고 중얼거린다.
“그러고 보니, 자기가 사냥한 걸 팔려고 들면 가격 후려치는 녀석들이 많지. 하지만 어디서 사 온 거라고 하면 어려워하기는 하더군…… 장사꾼 흉내 내는 헌터들, 생각보다 자주 본 것 같은데?”
“에이, 그래봐야 금방 들통 나잖아. 흉내 내는 것도 뭘 좀 알아야지.”
멜란드도 문득 누군가를 기억해낸 듯이 보태 말하고 있었다.
투란이 흐흣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으스대듯 말한다.
“그러니까, 뭘 좀 알기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도 알고, 엉뚱한 짓 하지 않게 제대로 적응해서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하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알드바인은 여러 가지를 배우고 익히는 데 꽤 좋은 환경이 될 거야. 뭐 아예 여기 뿌리내리고 살아도 괜찮고. 응? 왜? 내가 여기 마스터 메이지라고 흰소리라도 하는 것 같나? 아니거든! 알드바인은 헌터 대공방에서 물건 사러 멀리서 오는 놈들까지 있는 교역도시라고! 사람 사는 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얻을 수 있고, 배울 수도 있는 곳이라니까!”
투란의 말에 보태다가 가늘어진 남매의 눈길에 홀시딘이 보다 당당하게 알드바인은 좋은 곳이라 강조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도한 듯한 표정으로 시알라가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살 곳을 찾아야겠네요. 여관은 좀 아닌 것 같고…….”
세 형제도 눈을 깜박거리다가 갸웃거렸다.
알드바인에서 일, 이 년을 넘게 머문다면…… 그러면서 이것저것 배우고 익힌다면 아무래도 여관에 장기투숙하는 것은 이상했다. 대략 한 달가량을 지켜본 바에 따르면 알드바인에서 여관에 묵는 이들은 전부 보름 안팎으로 머물다 떠나는 경우였고, 어지간하면 헌터라도 자기 집을 갖고 있는 듯했으니까. 때문에 집이 없어 거리에서 뒹굴고 다니는 경우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꽤나 험한 취급을 당하는 듯도 했고…….
“오, 살 곳이라면 내가 알아봐 줄…….”
홀시딘이 스윽 고개를 내미는 자세로 말하려 하는데,
“거신목을 집으로 꾸미고 살아도 되죠?”
투란이 재빠르게 ‘나, 신목에서 살 거야!’라는 표정으로 묻는 척하고 있었다.
홀시딘은 바로 눈을 끔벅거렸다.
“……수 있는데, 뭐라고?”
입에서 나오던 말이 이어지다가 뜬금없는 소리가 무슨 뜻이냐고 되묻는 것으로 바뀌었다. 네 남매도 ‘어?’ 하는 소리와 함께 투란을 바라봤다.
투란은 빙긋 웃으면서 모두를 둘러보며 말한다.
“일단은 거신목이 편하잖아? 적응하려는 건데, 바로 불편한 곳에 붙어서 힘겨워할 필요가 있어? 그렇잖아요, 마스터 홀시딘. 일단 익숙한 곳에서 천천히 알드바인에 적응하면서 익숙해지는 거죠. 몬스터가 없는 사람의 마을…… 도시에 말이에요.”
“그렇……기는 하지.”
홀시딘은 의아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적응기라는 것은 갑작스럽게 환경을 싹 바꾸는 것보다야 천천히 새로운 환경으로 조금씩 접근하듯 변화를 주는 편이 좋았다. 그 변화 속에서 분명하게 자신을 길들이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거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기도 했다.
그러니 투란의 말한 것이 어떻게 보면 최선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알라는 눈매를 가늘게 하면서 바로 투란에게 묻는 말을 던진다.
“투란, 전에 살던 마을에도 이런 냄새를 풍기는 크고 굵은 나무가 있었다고? 거기서 나무속을 파내고 살았어?”
“속을 파내지는 않았어. 그냥 땅에서 튀어나온 뿌리를 대들보 삼아서…… 응? 왜?”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하다가 투란은 시알라가 더욱 가늘어진 눈매로 날카롭게 바라보는 모습에 의아한 듯 갸웃했다. 시알라는 가벼운 한숨을 쉬었고, 페란드가 곁에서 미묘한 웃음과 함께 말한다.
“편안하잖아, 누나. 우리한테도 편안했고…… 솔직히 여기는 알드바인 성벽 안이기는 해도 도시 안이 아닌 듯한 게 우리에게 더 좋았고 말이야. 여기를 집으로 꾸미고 사는 편이 오히려 더 좋을 수 있다고. 차츰차츰 도시에 익숙해지기도 쉬울 테고…… 여기서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며 적응하는 데 난 찬성이야.”
제란드와 멜란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알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홀시딘을 보며 묻는다.
“그래도 되겠어요?”
“응? 아, 그래도 상관은 없어. 음……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
잠깐 남매의 묘한 분위기, 투란의 뻔뻔해 보이는 태도에 의아해하다가 홀시딘이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홀시딘은 ‘아, 앗!’ 하면서 투란을 어이없어 하며 바라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투란은 자신이 떠나온 마을, 샤오 마을과 비슷한 거신목 주변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여기 들러붙을 궁리를 한 모양 아닌가! 네 남매에게는 전혀 익숙할 리가 없는 풍경일 텐데, 이러쿵저러쿵 적응이 어쩌고 하는 핑계를 들이대면서!
객관적으로 홀시딘이 이 상황을 다시 검토해도, 투란이 뭔가 제멋대로 일을 저지르며 남매를 끌어들이는 듯했다.
아무 의논 없이 밀어붙이는 그 모습이 어딘가 경솔해 보이니 시알라는 살짝 울컥한 듯했지만, 세 형제는 상황을 되짚고 파악해서 별 문제없고 괜찮은 의견이라고 찬성하는 모습이었고…… 결국 시알라 역시 투란의 의견이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문득 홀시딘의 입가에 가늘게 미소가 어렸다.
투란은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질주한다, 시알라는 일단 멈추고 좀 더 신중하기를 주장한다, 세 형제는 각자 상황을 짚어보면서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내세우며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확실하게 한다.
‘꽤나 잘 어울린 파티로구만.’
아마 상황에 따라서는 서로 내세우는 자리가 달라지기도 할 터였다.
그러나 어떤 입장이든, 투란과 네 남매는 하나의 파티를 이룰 것이다.
이제까지 넘어온 사선(死線)과 역경(逆境)을 통해 이뤄진 교감(交感)이 있으니까.
홀시딘에게는 꽤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오오옷! 고마운 일이라면, 따로 돈 줄 거예요?”
투란이 불쑥 던지는 말은 홀시딘의 입가를 구겨지게 하잖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