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9)
첨벙, 텀벙.
무릎까지 빠지는 늪의 깊이에 멈칫하다가 투란은 슬쩍 한 걸음 뺐다.
가던 길이 위험하게 느껴지면 바로 뒷걸음질 치는 것, 늪을 건널 때의 안전한 방법이 뒷걸음질이라 하잖던가.
‘와, 한심하다.’
살그머니 뒷걸음질 치면서, 등에 짊어진 고기의 무게를 느끼며 투란은 끙끙거릴 수밖에 없었다.
뱀의 가죽을 얻는 데 실패하고, 그 전에 비비나비의 날개도 못 얻었고, 심지어 나뭇가지 하나도 제대로 못 꺾은 채로 여기까지 왔다.
초록 안개가 자욱한 늪을 겨우 벗어나, 그 망할 나무가 가득한 곳을 벗어나서 맑고 상쾌해 보이는 회색 안개가 맴도는 늪을 건너는 중이었다.
등에는 샤벨투스의 이빨로 잘라 낸 뱀의 살덩이를 싼 뱀 가죽의 보따리를 짊어졌고 허리춤에는 뱀 가죽의 스커트를 두르고, 발은 뱀 가죽으로 무릎까지 싸맨 꼴을 하고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투란은 짜증 내며 뒤로 더 물러섰다.
밟고 있던 곳도 슬슬 꺼져 가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냥 고기를 내던지거나 다 먹어 치우고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찾아왔다. 애초에 뱀의 가죽을 ‘천칭의 문장’으로 삼킬 수 없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분노의 탐식을 잠깐 했다.
‘배는 불렀지. 어후으.’
비비나비를 삼킨 녹색의 안개, 액체가 잔뜩 달라붙었음에도 거대한 뱀의 고기는 쉽게 삭아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꽤나 많이 먹었고, 그 가죽 속에 퍼질러져 있기도 했다. 가죽에 붙은 살점을 손끝으로 긁고, 샤벨투스의 이빨로 긁어대면서 아주 느긋하게.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뱀 가죽을 자르는 법이었다.
살갗 안쪽에서 살점을 잔뜩 발라내고 얇아진 뱀 가죽은 샤벨투스의 이빨로 뚫고 자를 수 있다는 것, 뒹굴다가 우연히 알아낸 꼴이었지만 투란에게는 새로운 희망이었다.
어차피 뱀 가죽을 몸에 두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한껏 부풀기도 했다.
……얼마 못 가 망상인 것을 깨달았지만.
투란은 제대로 된 옷을 만들어 본 적이 없고, 뱀 가죽을 썩썩 베고 잘라 내는 짓만으로는 옷 비슷한 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넓은 보자기 꼴이랑 가늘고 긴 끈 모양만 나왔다.
황망하고 황당한 느낌이었다.
잠깐은 대체 할 줄 아는 게 뭔가 하는 서글픔도 몰려왔다.
하지만 그래도 투란은 잘라 낸 가죽을 그 모양에 맞게 써먹을 법을 궁리해 냈다.
고기를 쌀 보자기, 발을 감을 수 있는 끈으로.
옷은 짓지 못했어도 그 정도는 그럭저럭 가능했고, 거기서 용기를 얻은 투란은 하는 김에 나무를 잘라서 발 디딜 곳을 짚어 보는 지팡이도 만들기로 했다.
……무모한 시도였다.
나무껍질은 일단 뱀 가죽보다는 못해도 엄청나게 단단하고 날카로웠다. 샤벨투스의 이빨이 슬쩍 흠집은 내는데, 썰어서 자르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나무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물론 뿌리를 뽑고 가지를 휘둘러 투란을 패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차라리 그쪽에 투란에게는 반가웠겠지만, 괴물이 아니고 그저 조금 이상한 ‘마수화’ 과정을 거친 나무였으니 하던 짓을 했다. 나뭇잎을 부풀려 터뜨리고 살짝 벗겨진 껍질에서 녹색 액체를 아주 짙게 뿜어낸 것이다.
그 정도야 무슨 문제일까 싶었지만, 이는 투란의 착각이었다.
녹색의 안개가 무슨 녹색의 덩어리처럼 짙어지고 몸을 덮기 시작하니, 슬금슬금 팔다리가 무거워지고 움직이기 힘들어져 버렸다.
아무래도 녹색의 독 안개는 투란에게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니고, 그저 투란이 용케 버텨 낸 모양이었다. 그러니 안개와 액체의 농도가 한순간에 수십, 수백 배 짙어지자 투란도 버틸 수 없는 상황을 느끼게 된 것이고!
결국 투란은 나무를 자르고 베서 지팡이를 만든다는 무모한 시도를 포기했다.
그러고 보니 남은 것은 그냥 싸 짊어지고 걸어 나오는 것뿐이었다.
출렁대는 늪의 깊은 곳을 밟지 않기를 바라면서, 뭔가 한심한 느낌으로!
초록 안개의 늪을 겨우 건너자 안개다운 회색이 맴도는 곳으로 나왔다.
나무는 더 이상 잎을 부풀려 터뜨리지 않았고, 간혹 흙이 찰지게 뭉친 곳도 보였다.
그래 봐야 길이 되지 못해 결국은 늪을 밟아야 했지만, 어쨌든 투란은 꽤 멀리 뱀과 비비나비가 쓰러진 곳에서 벗어났다.
나무와 안개를 빨리 잊고 맹목적으로 그저 멀어져야 할 곳을 등진 채로 가는 길이었다.
돌이 깔린 곳을 보니, 뭔가 반가웠다.
기억에 생생한 단단하고 거친 돌이 가득한 절벽과 산자락이 바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늪만 줄곧 하루 정도 밟고 움직이다 보면 습기 가득한 찰진 흙이라든가 소박하게 쌓인 돌밭도 반가울 수밖에 없잖은가?
반가움은 투란을 조금 부주의하게 했고, 거침없이 그 돌밭에 한 걸음 딛게 했다.
치이이익!
“끄에엑!”
발이 익는다 여긴 순간, 투란은 비명과 함께 뒤로 튀다가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악마의 심장이 부여하는 감각과 강화된 근육이 버텼기 때문에 한 발로 서는 꼴에서 멈출 수 있었다.
그렇게 반사적으로 멋진 움직임을 저질렀지만 전혀 기쁜 상황이 아니었다.
허겁지겁 투란은 화끈하게 익어 가는 발을 배꼽까지 들어 올리면서 눈으로 상태를 살폈다.
‘뭐?’
발을 싼 뱀 가죽은 멀쩡했다.
그냥 그 안에 든 투란의 발만 반쯤 익었다.
슬쩍 거뭇한 꼴이 발바닥 껍질은 벌써 타서 숯 그을음처럼 된 모양이었다.
기가 막혀 디딘 곳을 보니, 돌밭에 그의 발 모양이 딱 찍힌 듯이 파여 있었다. 발에 닿은 부분이 고열과 함께 증발이라도 한 듯이.
투란은 일단 목에 걸어 등에 늘어뜨린 보따리에서 고기 조각을 꺼내 입에 물고, 삼키고, 허벅지에 대면서 발바닥의 회복을 기다렸다.
위장 속으로 들어간 고기 조각, 허벅지에 순식간에 부풀며 나타난 작은 악마의 심장이 삼킨 고기 조각은 익어 버린 발바닥에 넝쿨을 밀어 넣고 타 버린 부위를 안쪽에서 절제하여 회복시켰다. ‘작은 늪’이 흘려 낸 수액이 심장의 두근거림을 타고 흐르며 이를 도왔다.
뜨겁다고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고 나서 거의 잠깐 사이에 투란은 상처 없는 발을 되찾은 셈이었다.
……입은 상처에 비하면 먹어 치운 고기의 양이 몇 배는 될 듯하지만.
투란은 돌밭에 찍힌 발자국을 노려봤다.
저 돌은 뭘까?
고열을 내는 돌처럼 생긴 몬스터? 혹은 그냥 이상한 돌?
투란이 슬쩍 발을 내려 늪을 걷어찼다.
늪의 물컹거리는 진흙덩이가 돌밭에 떨궈졌고, 돌밭은 투란이 발을 디뎠을 때처럼 치익거리며 격렬하게 파여 들어갔다. 진흙덩이가 마르고 티끌이 될 때까지, 그저 먼지처럼 부스러지는 꼴을 보일 때까지 돌이 파이면서 고열을 뿜어냈다.
투란은 그 고열의 아지랑이를 보며 잠시 멍한 기분이었다.
가만히 다시 보니 돌밭과 늪 사이에는 찰진 흙과 마른 흙이 묘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까 뭐든 닿으면…… 흙 말고는 일단 다 익힐 작정이냐?’
그냥 고열을 쏟아 내는 것이 아니라 돌이 파인 흔적을 남기며 사라지고 없었다.
한 번 더, 투란은 손으로 조심스럽게 덩어리 없이 퍼 올린 늪의 물방울을 한 움큼 던져 봤다.
치이익.
떨어진 곳의 돌이 물방울의 크기에 걸맞게 파이면서 사라졌다.
‘완전 소모성, 그거구나!’
이 돌밭의 돌이 몬스터라 할지라도 몬스터 로드가 삼키면 안 될 종류였다.
저런 걸 써먹을 때란 곧 자멸해서 죽을 때일 것이니.
펑펑 터져 나간다는 꽃송이가 아마 저런 돌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굉장한 폭발을 일으키며 터지는데, 터지고 난 후에는 끝이다.
얼른 죽고 싶어 환장한 몬스터 로드가 아니라면, 저런 걸 삼켜서 쓰려 할 리가…….
‘아! 삼켜서 바로 없애 버리면 되나?’
갸웃하면서 투란은 한 번 더 돌밭을 쳐다봤다.
은근히 노란 색채를 띠고, 고열을 받으며 살짝 반들거리는 느낌이 나는 형태.
잘 기억하고 난 다음, 투란의 걸음은 미련 없이 돌밭에서 멀어졌다.
손이 닿으면 바로 구운 고기 꼴이 될 낌새니 들어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투란은 또 얼마간 축축한 늪을 밟고 나아갔다.
가끔 푹 빠지고, 가끔 뭔가에 걸려 넘어지고…… 그래도 보따리에 뱀 고기가 넉넉한 동안에는 거칠 것 없이 나아갔다.
조금 상처가 생기더라도, 이제는 고기의 힘으로 재빨리 회복되니 거침없는 것이 당연했다.
우물우물.
투란은 보따리를 더듬으면서 입에 넣은 고기를 계속 씹었다.
텅 빈 보따리는 다시 한 번 텅 빈 꼴을 보여 줄 뿐이었고, 입에 넣은 고기가 마지막 한 덩이인 것이 분명해졌다.
‘이제 싱싱한 거는 없나.’
결국 입에서 우물거리던 질긴 고기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흐르는 늪, 얕게 깔린 흐릿한 안개는 더 이상 시야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우거진 채로 넝쿨을 흘리며 기울어진 나무가 시야에 방해가 될 뿐이었다.
여전히 바닥은 대부분 늪이고, 미약한 흐름 사이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썩은 덩어리들이 보였다. 가까이 흘러온 곳에 손을 대 봤고, 악마의 심장 넝쿨 가닥으로 그것이 양분이 될 만하다는 것은 느꼈다.
하지만 방금 싱싱한, 여전히 핏기가 맴도는 고기를 씹었다. 당장 저걸 집어 올려 입에 담을 생각이 날 리가 없었다. 그래도 호기심은 맹렬하게 투란의 뇌리에서 넘쳐 나고 있었다.
‘대체 뭔 시체야, 이건?’
늪의 힘으로 빠르게 부패하는 중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도 원래의 형체가 거의 남아 있지 않는 덩어리까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이 조각은 토막 나서 늪에 던져진 것이다. 원래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잘게 조각내서, 누군가 혹은 뭔가가 늪에 담가 흘려 보낸 것이다.
투란은 슬쩍 뒤를 돌아보며 여태 온 길을 살폈다.
안개랑 우거진 나무가 전혀 어디로 어떻게 왔나 알 수 없는 풍경을 보여 줬다.
확실하게 뱀의 가죽과 고기가 남아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니 중간에 고열을 내는 돌밭까지도 못갈 듯했다.
그렇다면 이 괴상한 시체 조각들이 떠내려오는 쪽으로 가는 길뿐이었다.
‘꽤나 조용했지. 고기 다 먹을 때까지 참 평화로웠어.’
한숨을 쉬고 입맛을 다시며 투란은 포기했다.
앞에 뭐가 있든 더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운이 좋다면…… 비비나비가 제대로 시체가 되어 굴러다닐지도 모르잖아?’
날개 달린 그놈의 시체를, 녹색 즙이 되어 거품 내고 흩어지는 꼴 없이 얻게 된다면, 살아 있는 놈을 만나서 뱃살이 후벼지는 꼴만 당하지 않는다면!
상상이 투란을 즐겁게 했고, 생각은 투란의 몸놀림을 좀 더 조심스럽게 했다.
촤악, 첨벙…….
‘이걸 밟아, 말아?’
투란은 늪에 선 채로, 무릎까지 찰랑이는 짙은 흙탕물을 느끼면서 앞쪽을 노려봤다. 앞에는 더 이상 늪이 아닌, 파란빛이 찰랑이는 돌과 거뭇한 흙덩이가 깔린 땅이 보이고 있었다. 주로 돌이고, 흙덩이는 돌이 파이면서 뒤집혀 튀어 오른 듯한 꼴이었다.
노릇했던 그 돌밭의 기억은 투란을 확실하게 망설이게 했고, 결국 늪을 퍼서 던지는 짓을 먼저 하게 했다.
……아무 일 없었다.
열을 내지도 않았고, 딱히 뭔가 하는 꼴은 보이지 않았다.
약간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이제는 직접 발을 디뎌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이 파란빛 돌밭을 비켜가기 위해서 이 늪가를 따라 돌아가야 했다.
‘일단, 밟아 보자고!’
투란은 살포시 발을 그 위에 디뎠다.
뱀 가죽이 먼저 닿았고, 별일 없었다.
슬쩍 발에 힘을 주고 몸무게를 싣고 걸으려 하니…….
“으크!”
따끔한 느낌이 찾아왔다.
얼른 발을 빼서 배꼽까지 당겨 살폈다.
뱀 가죽은 여전히 끄떡없었다. 하지만 그 틈새로 살짝 드러난 투란의 발바닥은 베인 흔적이 선명했다. 발을 싸기 위해 끈 모양으로 잘라 감은 뱀 가죽, 그 감은 틈새의 발바닥이 예리하게 베인 것이다.
‘이건 또 뭐야!’
뱀 가죽이 튼튼한 것이야 그렇다쳐도, 그의 발바닥은 그저 슬쩍 스치듯이 닿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저놈의 파란빛 돌은 가차 없이 그의 발을 베었다!
투란은 손톱을 키워 파란빛 돌에 슬쩍 대 봤다.
찌익, 키익.
손톱이 바로 금이 가며 갈라졌다.
오기가 생겨 이번에는 손톱을 좀 세게 쳐 봤다.
파직.
손톱이 뿌리까지 갈라지며 쪼개졌다.
악마의 심장 넝쿨이 그 틈새에서 새려는 핏방울을 재빨리 챙겨 마셨다.
멍하니 투란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파란빛 돌과 거무튀튀한 흙덩이를 쳐다보았다.
‘발자국?’
거무튀튀한 흙덩이의 흔적이 나무 아래를 지나 저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뭔가가 이 파랑 돌을 밟아 튀게 하면서 뛰기라도 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