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9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86)
Chapter 98. 알드바인 논투(論鬪)
달칵, 문이 열렸다.
“후으으…… 어? 케이라? 말로란, 자네도 와 있었나?”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서던 홀시딘은 두 사람이 책상 앞에 선 채로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흠칫하다가 어깨를 펴며 ‘나는 당당해서 감출 일이 없다!’라는 태도로 말했다.
말로란은 그런 홀시딘을 향해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반갑게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면서 슬그머니 곁에 있는 케이라를 바라봤다. 책임이라도 떠넘기는 듯한 미묘한 말로란의 태도에 케이라가 바로 스승을 향해 피식 웃음 지으면서 말한다.
“여러 곳에서 저처럼 궁금한 게 많은지 이것저것 잔뜩 문의하는 메시지를 전해온 모양이에요, 스승님. 담당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말로란 아저씨로서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스승님을 찾았는데 응답이 없으시다길래 저랑 같이 왔죠.”
“어? 그런 일이었구나…….”
홀시딘은 조금 퀭해진 눈을 깜박거리면서 잠깐 눈알을 굴렸다.
말로란은 홀시딘이 눈가에 그늘이 진 채로 꽤 지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케이라를 흘깃했다. 케이라 또한 알아차린 듯,
“지금 당장 답장을 보낼 일은 아니에요. 그보다…… 아직 피로가 꽤 남아 있으실 텐데 어딜 다녀오신 거예요?”
슬쩍 추궁하는 말투로, 조금 허술한 대답이라도 나오면 낱낱이 파헤쳐서 제대로 추궁할 거라는 낌새를 잔뜩 담아 묻는 소리였다.
둥실, 문을 열 때는 무겁게 발을 딛고 있던 홀시딘이었지만 물음에 답하려는 듯이 입을 열 때에는 허공으로 가볍게 뜨고 있었다. 케이라나 말로란에게는 늘 보이던, 알드바인 상아탑의 마스터의 모습이었다. 둥실거리면서 떠다니며 ‘나는 마법사다!’라고 오만하게 주변을 내려다보며 과시하는 듯한 모습!
말로란은 쓴웃음부터, 케이라는 한숨을 쉬었다.
알드바인의 마스터 홀시딘, 케이라의 스승이 저런 모습을 보일 때란 어디까지나 ‘공적(公的)’이었다고 우길 때이니까. 그리고 그런 습관적인 예측대로,
“남쪽 성벽의 우드 가디언을 보수하고 왔다. 형태는 아직 그대로지만, 마력은 분명히 보충할 때가 되었나 싶어서. 뭐 한두 달 그냥 둬도 괜찮을 듯싶었지만 일단 마력을 보급해놓고 흐트러진 진영을 정리해뒀다. 덕분에 난 완전수면이 좀 필요해졌지만…… 큰일이 없다면, 나 잠 깬 다음에 이야기할까?”
도도하게 이 자리를 회피해서 자야겠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 핑계 같은 소리에 말로란이 움찔해서 입을 연다.
“완전…… 수면까지요?”
마력이 바닥난 마법사가 다시 자신의 마력을 완전하게 회복하기 위해 실행하는 수면법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어지간해서는 시도하지 않는 잠들기였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탓에 완전수면에 빠진 마법사는 어떤 자극에도 깨어나지 못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잠든 채 죽을 수도 있었다. 알드바인의 환경은 마스터 메이지에게 그런 잠들 틈을 주지 않는데…….
“쉬세요.”
케이라는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찬성하잖는가!
“……어, 엥?”
“음―?”
말로란이 놀란 소리를 낼 때, 홀시딘도 흠칫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케이라가 가만히 홀시딘에게 얼굴을 들이대는 소리를 하니,
“완전히 회복되신 다음, 저랑 대회의실에서 제대로 대화를 좀 나눠주시겠지요? 마스터, 홀시딘? 정식으로 면담 신청하는 거니까, 내뺄 궁리하지 마시고요! 아시겠죠, 스승님?”
공적인 요청과 사적인 압박이 동시에 담긴 말이었다.
홀시딘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아탑의 마스터로서, 도제를 둔 스승으로서!
말로란 또한 쓴웃음과 한숨을 섞어 내쉬면서 ‘제대로 걸리셨어요.’라는 측은함이 담긴 눈빛으로 홀시딘을 바라볼 지경이었다!
“그, 그래. 그러자꾸나.”
대답은 잠시 늦게 홀시딘의 입에서 새나왔다.
케이라는 환히 웃으며 말로란에게 이어 말한다.
“그럼, 가지요. 스승님께서는 푹 쉬실 테니…… 일어나시면 바로 알려 오실 테니까 우린 이만 일하러 가요.”
말로란은 냉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케이라는 마치 스승의 잠이 매우 중요하니 방해할 작정이면 강제로 끌어내기라도 하겠다는 듯했으니까!
그렇게 둘이 집무실을 떠났고, 홀로 남은 홀시딘은 맹하니 닫힌 문을 잠시 바라봤다. 하지만 곧 생각하기를 관둔다는 듯한 한숨을 내쉬고, 곧바로 둥실 뜬 채로 책상 너머 의자 위로 몸을 옮기며 중얼거린다.
“뭐,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정말 제대로 한번 자야겠군.”
의자가 등받이를 한껏 젖혔고, 좁은 침대모양이 되었다.
홀시딘은 곧바로 그 위로 몸을 던지듯이 눕혔고, 잠시 투란 일행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우드 가디언을 보수하는 척하면서 마력의 집중과 분산을 감췄고, 그 사이에 거대한 그루터기 안쪽에 ‘집’을 지어놨다. 얄팍하고 가벼운 환영을 둘러둔 다음에 투란과 네 남매가 며칠 혹은 몇 달에 걸쳐서 그 환영을 지우면서 손으로 지은 척할 수 있는 ‘집’이었다. 그 며칠 혹은 몇 달 동안 투란과 네 남매는 제대로 알드바인의 분위기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집’은 고블린의 침투를 막아서는 ‘성’이 될 터였다.
“뭐, 내가 시킨 일도 아닌데…….”
사람이 상주(常住)하며 지킬 여건이 되지 못해서 알드바인의 남쪽 그루터기 지하의 미로가 침투로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드 가디언 정도로 대처해왔다. 하지만 이제 제대로 상주하면서 지킬 수 있는, 소수 정예의 가드가 생긴 셈이었다. 주요순위에서 밀려서 닥치는 대로 처리해온 고블린의 침투를 이제는 제대로 방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급료가 지급되기는 할 테지만…….
“사람의 기준을 잡는다고? 투란, 그 말이 헌터의 격언이랑 닮았지만 전혀 엉뚱한 사람의 입버릇이란 거, 알고는 있는 거냐?”
문득 홀시딘은 투란에게 묻고 들었던 대답을 떠올리면서 느릿하니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앞으로 어쩔 거냐?
―에? 아, 당분간 알드바인에 머물러야죠. 상금도 확인해야 하니까.
―상금은 어디서든 찾을 수 있도록 네 계정, 계좌에 바로 넣어둔다니까!
―에이, 믿는다니까요. 꼭 상금 때문도 아니고, 이제 사람 사는 곳에 좀 익숙해져야죠.
―응? 아, 그도 그렇군.
―그쵸! 몬스터만 쳐다보다 사람 보면 많이 어색할 수 있으니까, 사람의 기준을 잡아둬야 하잖아요.
―어? 사람의 기준……?
―왜요? 헌터 사이에서 자주 하는 말이잖아요?
그때 투란은 갸웃했고, 곁에서 페란드가 ‘사람의 척도를 잃지 않는다, 는 말 아니야?’라고 덩달아 갸웃했다. 결국은 그 말이 그 말인 것으로 매듭지어진 대화였다. 하지만 상아탑의 마도사 홀시딘은 그 미묘한 차이가 사실은 꽤 큰 차이란 것을 잘 알 수밖에 없었다.
헌터 사이의 격언은 페란드의 말대로 ‘사람으로서 척도를 잃지 마라! 사람답게 생각하고 싸워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에테온의 패왕, 반역의 패왕 키드릭은 그 말을 다른 방식으로, 전혀 다른 의미를 담아 말했다.
―사람의 기준을 잡는다! 뭐가 사람이고, 뭐가 짐승이며…… 뭐가 몬스터인가를 명확하게 알려주지! 그것이 내가 다스리는 나라의 첫 번째 규범이 될 거야!
그 첫 선언 이후로 패왕 키드릭은 종종 입에 담았다.
사람의 기준을 잡는다, 라는 말을.
마도사, 마법사에게는 전율을 안겨준 그 말을…….
‘……투란, 너 진짜로 키드릭이랑 뭔 관계가 있는 거 아니냐?’
잠에 완벽하게 빠져 의식을 날려버리면서 홀시딘은 이렇게 생각했다.
“케이라…… 마스터 케이라! 정말로 이대로 하실 셈인가?”
말로란은 많이 당황한 얼굴로 이렇게 묻고 있었다.
케이라는 상쾌한 웃음을 머금은 채로 대답한다.
“아저씨, 뭔 문제라도 있나요?”
공적인 입장을 저 멀리 날려보낸 듯한 말이었다.
때문에 말로란은 두 배로 더 당황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 문제라도 있냐니! 당장 오늘 저녁부터 도착할…….”
“기다리실 거예요. 다들 스승님 지친 정도는 이미 고지(告知)했잖아요? 얼굴 맞대고 대화할 때 말이에요. 그러니까 다들 온다고 한 거고…… 완전수면에 빠진 스승님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주겠죠. 당연히 기다리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그러면 마스터 홀시딘께서 깨어나시면!”
“대회의실에서 다 같이 만나는 거죠, 당연하잖아요?”
“……케이라, 진짜로 스승님한테 한 방 세게 선물할 작정이냐?”
“말로란 아저씨, 스승님은 제자인 제게 늘 말씀하셨죠. 누가 세게 한 대 때리면 곧바로 맞받아쳐서 두 대 때려주라고요. 그래야 얕보이지 않고, 그래야 나중에 누군가 날 때리려 할 때, 한번 더 생각하게 될 거라고요.”
“…….”
말로란은 입을 벙긋거릴 수밖에 없었다.
스승에게 배운 대로 스승에게 돌려주겠다니…… 그게 설마 그런 짓을 스승에게 하란 소리는 아니었잖느냐고 따질 수는 없었다.
거의 한 달간, 정말 느닷없이 자리를 비운 채로 사라졌던 마스터 홀시딘이었다.
두어 번 보내온 메시지는 난데없이 해결이 불가능하거나 지독하게 어렵다는 몬스터의 퇴치 결과 보고.
다른 곳이라면 소속 마스터가 위업을 이뤘다고 좋아라 해야겠지만, 알드바인의 상아탑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달랑 둘뿐인 마스터 중 한 명이 목숨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일에 몸을 던진 상황이니까.
제자로서, 또 한 명의 마스터로서 케이라가 울화가 쌓이고 폭발할 지경이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화풀이에 다른 상아탑의 마스터들이 엮인다면…….
“아, 그리고 스승님이 저한테도 제대로 말 안 해주시더라고요. 뭘 어떻게 해서 단숨에 세 곳을 그렇게 정리했는가 말이에요. 그러니까…… 궁금하잖아요? 그렇다고 제자로서든 알드바인의 마스터로서든 제가 추궁하기도 좀 그렇고 말이에요. 아마 다들 와서 스승님에게 열심히 캐물을 거예요. 그래서 뭘 했는지를 밝혀주신다면 그대로 좋고, 밝히지 않고 여러 마스터들을 골려주신다면…… 그것도 좋잖아요?”
이어진 케이라의 말은 말로란의 입에서 쿨럭하는 사레들린 소리가 나게 했다.
케이라는 완전히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스승을 추궁하고, 스승을 추궁하는 이들과 어떻게 한판 붙여놓을 생각이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 과정을 보고 즐길 참이었다! 어느 쪽이 당하든 케이라로서는 한껏 즐길 수 있다는 셈이 이미 끝난 것이다!
이야말로 세상 사람이 마법사랑 엮이면 어떻게 되든간에 결국 마법사 좋은 결과만 나온다고 투덜거리고 비아냥대는 까닭을 만드는 짓 아닌가.
아무리 다시 되새겨봐도 역시 제자가 스승에게 할 선물은 아닌데!
“아저씨,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알드바인의 마스터 홀시딘께서 이 정도에 끄덕할 리가 없잖아요? 다들 손님으로 와서 파나틱 플레임의 성질을 그렇게까지 심하게 건드리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도 말이죠.”
케이라는 말로란이 표정으로 하는 말을 알아들은 듯, 빙긋 웃으며 다독이는 소리를 덧붙이고 있었다. 물론 말로란에게는 전혀 다독여지는 느낌을 주는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안도하는 대꾸 대신,
“대회의장 벽을 기밀유지를 해야 한다고 핑계 대고 강화시켜둘게. 방음처리도 하고, 충격저항도 늘리고…… 속성 저항도 덧붙어야 할까?”
말로란은 격한 상황을 최대한 대비하는 의견을 내놨다.
케이라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지금 말로란은 대회의장이 마법사들간의 전쟁터가 될 경우에 대해 대비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대로 하라기에는 좀 과한 느낌이 있기는 한데,
“음, 그러면 하는 김에 장식도 바꿔 달고, 의자랑 탁자도 갈아치워두죠. 알드바인에 상아탑의 마스터가 모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돌아가서 두고두고 시설물이 좋지 않았네 어쩌네 하면서 투덜거리지 못하게, 근사한 걸로요.”
문득 실용성만을 따져 놓여있는 대회의장의 풍경을 떠올린 듯, 케이라가 덧붙이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말로란도 바로 반발하듯 대꾸할 수 있었다.
“어, 그건 예산이…….”
부서질 것에 대한 대비는 앞으로 들어갈 돈을 아끼는 의미에서 쥐어짜낼 수 있겠지만, 실내장식은 그대로 소모비일 뿐이니 쥐어짜낼 곳이 없었다.
하지만 케이라는 이런 가벼운 반발 따위는 이미 예상한 듯이 대답하고 있었다.
“돈 걱정은 당분간 하지 않아도 되실 거예요. 스승님이 챙겨온 거미 잔여물이 있잖아요. 헌터 길드에 두엇 가져다가 샘플로 팔기만 해도 대회의장 보수 비용은 나올 거예요.”
“……그렇군.”
말로란은 안도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아저씨. 전달사항이나 뒤처리는 맡겨둘 테니 알아서 좀 해주세요. 거미 두엇 샘플도 지금 맡길 테니까…… 부탁드리죠.”
“어? 어! 알겠습니다, 마스터 케이라.”
그렇게 해서 알드바인의 대회의장은 강화장벽을 갖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