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9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87)
“하아아아.”
긴 숨을 내뱉으면서 홀시딘은 천천히 눈을 떴다.
팔다리의 맥동(脈動)보다 먼저 마력(魔力)이 온몸을 휘젓고 요동(搖動)치는 감각이 홀시딘의 심장(心腸)을 고동(鼓動)치게 했다. 자신이 마도사(魔道師)라는 증표(證票)를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홀시딘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머릿속에 서서히 사고(思考)가 맴돌기 시작하면서 홀시딘은 잠들기 전의 기억을 차분하게 더듬어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투란에게 알드바인의 대공방에 대해서, 알드바인에서 취급하는 헌터의 도구에 대해서 소개해주기로 한 일이었다. 그 다음에는 투란에게 만들어주기로 했던 마도구…… 여러 가지 장비!
“공짜는 아니지!”
최소한의 비용은 제대로 주고받기로 했다.
홀시딘의 입장에서는 최대로, 투란의 입장에서는 최소로!
몬스터 로드에게는 별 필요가 없어 보이는 것일지라도, 이제부터 투란이 위장을 하려는 상황에서는 필요한 모든 것들을 홀시딘은 팔아치울 작정을 하고 있었다. 실컷 시련이란 이름하에 투란의 힘을 잔뜩 빌렸지만, 홀시딘의 마음에는 추호의 거리낌도 없었다!
이미 투란은 금괴를 쌓아둔 부자였고, 수천 닢의 금전을 받을 예정인…… 돈이 모자랄 리가 없는 대부호!
가능한 그 금전을, 금덩이를 알드바인에 풀게 유도하는 것이 알드바인의 마스터로서 홀시딘이 해야 할 일 아니던가.
“후후훗.”
입가가 저절로 실룩이며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흘러나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면서 홀시딘은 두 팔을 크게 올리고 일단 상쾌한 기지개를 펼쳐봤다. 그 동작에 반응한 듯, 곧바로 책상 위에서 통통거리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홀시딘이 흘깃 보니 메시지가 책상에 맺혀 있었다.
케이라가 보낸 메시지가 홀시딘이 깨어날 때를 맞춰 소리를 낸 것이다.
완전히 잠에서 깨어날 때를 기다린 듯, 홀시딘이 큰 동작을 보일 경우에 맞춰 작동한 듯했다.
“……흠?”
홀시딘은 갸웃했다.
완전수면 상태이니까 계속 울리고 있어도 아무 상관없었다.
깨어나자마자 바로 들을 수 있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케이라는 매우 섬세하게 조절을 해놓았다.
마치 스승에게 성장한 제자의 실력이라도 보여주겠다는 듯.
뭔가 기특하게 느껴지면서도 괜한 낭비가 아닌가 싶은 느낌이 홀시딘의 가슴을 간지럽혔다. 좋기는 하지만 역시 실용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예의를 꾸미는 쪽에 치중한 메시지처럼 보이니까.
“뭐, 버릇만 안 들면 되겠지.”
급박한 상황에서 이런 버릇이 나오면 곤란하겠지만, 완전수면에서 깨어나는 홀시딘에게 이 정도 갖춰 보이는 예의까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런 것까지 지적하면 정말로 괜한 잔소리가 될 듯하다는 것을 느끼며 홀시딘은 통통거리는 메시지에 손끝을 살짝 얹었다.
티잉하는 경쾌한 울림과 함께 메시지가 열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홀시딘은 다른 사람에게는 반응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조절된 보안조치를 간파할 수 있었다. 케이라는 스승만이 이 메시지를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마법을 구성해 놓은 것이다.
“호오? 이건 쓸 만한데?”
칭찬하는 소리가 저절로 홀시딘의 입에서 나왔다.
메시지에 담긴 보안형식은 잠금과 열림을 제어하는 기술을 담고 있었고, 다른 마법의 구성에 아주 쉽게 응용할 수 있어 보였다. 이렇게 보니 마치 케이라는 스승에게 제자로서 자신이 새로 구성해낸 마법을 보고하고 자랑하는 듯도 하잖는가.
―스승님, 깨어나셨으면 대회의실로 오세요. 저도 대회의실로 가겠습니다.
예의 바른 간결한 메시지는 홀시딘에게 한 가지를 더 알려줬다.
이 메시지의 수신 여부를 케이라도 알 수 있다는 것.
마법이 풀릴 때, 그 상황을 알 수 있는가 없는가는 마법사에게 여러 가지로 쓸모 있는 조건을 부여해준다! 케이라의 마법이 보다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스승으로서 제자의 성장을 기뻐하면서도 홀시딘은 일단 경계심을 가득 품었다.
이전이라면 그냥 케이라가 마법사로서 역량이 늘었다고 환하게 웃고 넘길 일이지만, 지금 홀시딘에게는 시크릿 키퍼로서 지켜야 할 비밀이 잔뜩 생겨나 있었다. 특히나 그 비밀과 연관된 여러 가지 일은 지금부터 조심스럽게 가공(架空)하고 세공(細工)해서 진실을 위장해야 했다.
성장한 제자에게 들통 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문득 홀시딘의 입가에는 웃음부터 맺히고 있었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홀시딘은 자신만이 머무는 텅 빈 집무실에 제자의 모습을 상상해 넣으면서 마음속으로 말할 수 있으니까.
‘케이라, 지금은 잔뜩 의심스럽고 궁금하겠지만 결국은 네가 물려받을 짐이란다. 나의 세대보다는 너의 세대가 더 길게 이어질 테니까. 투란도 시알라도…… 모두 너의 세대니까, 결국 너에게 이 짐이 넘겨지겠지. 그때는…… 내가 없다고 투덜대지 말았으면 좋겠군.’
느긋한 마음으로 홀시딘은 둥실 떠올랐다.
어찌 되었든 지금 당장은 케이라에게 이리저리 둘러대어야 하니까.
그 거짓의 시나리오를 짜면서 홀시딘은 대회의장을 향해 옮겨 갔다.
대회의장 입구에서 말로란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광경이 보였다.
막 문을 열고 대회의장으로 들어서려는 케이라도 함께 보였다.
둥실, 조금 더 빠르게 홀시딘이 다가가니 케이라를 보며 웅얼대는 듯하던 말로란이 움찔하면서 돌아섰다.
“아, 마스터 홀시딘…… 일어나셨군요?”
조금 애매한 느낌을 주는 듯한 말로란의 말투와 표정에 대해 홀시딘이 갸웃할 때, 케이라가 톡톡 대회의장의 살짝 열린 문을 두드리며 이어 말한다.
“스승님, 일단 들어가시죠. 말로란 아저씨,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찾아가서 끝낼 테니 지금은 자리로 돌아가세요.”
살짝 재촉하는 그 태도에 홀시딘은 쓴웃음을 지었고, 말로란은 재빨리 인사를 하면서 알드바인의 두 마스터에게서 멀어져갔다. 그냥 봐도 두 마스터가 툭탁거리는 틈새에 끼어 있다가 날벼락 맞는 꼴이 되기 싫다는 태도였다.
케이라는 먼저 문턱을 넘었고, 홀시딘은 대회의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안의 풍경이 보이지 않도록 막아둔 칸막이를 보며 옛날 기억을 떠올렸다. 대회의장이라고 해도 결국은 늘 마스터 엘투란과 홀시딘, 몇몇 마법사들이 오락가락하면서 온갖 잡무를 함께 의논하던 곳에 불과했다. 다른 곳의 상아탑이라면 늘 근엄한 태도를 지닌 마스터들이 한둘 상주하면서 중대한 일을 놓고 여러 마스터에게 회의를 중계하는 곳일 테지만…… 마스터의 수가 둘, 셋 정도만 유지되는 알드바인인 탓에 그저 상아탑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시설로서 갖춰진 채로 제 기능을 한 적은 없었다.
덕분에 유지하기 위한 보수도 몇 년에 한번 포장하듯이 할 뿐이었는데…….
“대회의실을 요즘 보수했었나?”
어쩐지 아주 가까운 며칠 사이에 닦고 두드려 놓은 흔적이 보이는 듯하잖는가? 조금 눈을 크게 뜨고 보니 거의 어제 오늘 손본 듯한 느낌이 또렷했다.
홀시딘의 갸웃하는 중얼거림에 케이라가 칸막이 한편에 멈춰 서며 바로 대답한다.
“벌써 한 이 년 정도 지났으니까요. 주무시고 계신 동안에 거미 두엇 팔아서 그 돈으로 냉큼 보수했지요. 모처럼 여유롭게 쓸 돈이 생겼으니까요.”
“여유가 생겼어도…… 별로 쓸 일도 없으니 한 일 년 더 있다가 청소나 해두면 될 텐데…….”
투덜대는 스승을 향해 케이라는 입술을 살짝 삐죽여 보였다.
홀시딘이 그 모습에 슬쩍 한발 빼는 듯한 소리를 얼른 덧붙인다.
“뭐, 여유 생길 때가 아니면 손보기 힘들기도 하니까.”
말과 함께 홀시딘은 둥실 뜬 채로 대회의장의 문턱을 넘었다.
케이라가 바로 문에 손을 대고 미는 시늉을 하니, 빗장이 차릉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밀리면서 문에 걸렸다.
이 광경에 홀시딘이 조금 긴장했다.
쟈카라 산림에서는 외부인인 투란이 있었고, 대강 스승의 설명에 넘어가주는 시늉을 했던 제자 케이라가 제대로 따지고 들 작정인 것이 훤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빗장까지 걸었다면 다음은…….
텅!
케이라는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듯이 칸막이를 쳤다.
마력을 담은 손바닥이 세게 부딪히는 순간, 칸막이가 좌우로 갈라지면서 대회의장이 비밀을 지키는 실내를 열어젖혔고―.
콰아앗!
잠깐 홀시딘은 귀가 멍해지는 느낌에 맹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압도적인 마력의 파동이 노도(怒濤)가 되어 밀려들어오다니!
경이로운 어떤 마법의 보물이 놓여진 것도 아니고, 순전히 사람들…… 인간 마법사들이 긴 탁자에 주욱 늘어앉은 채로 이런 마력파동을 일으키는 광경은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 에―? 헐?”
따끔거리며 살갗을 쿡쿡 쑤시는 마력의 자극 속에서 홀시딘은 눈을 끔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번 감았다 떠도 눈앞의 인간들, 상아탑의 마법사―그 중에서도 마스터인 작자들의 낯짝은 물거품처럼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잖은가!
이 광경의 현실감은 대회의실의 마법을 통해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모습을 중계해서 환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홀시딘에게 폭력을 휘둘러대는 듯이 또렷하고 생생했다.
다른 곳도 아닌 알드바인에서, 이 대회의장에서 수십 명의 상아탑 마스터가 저리 눈을 부릅뜬 채로 버티고 있는 광경을 홀시딘은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상상을 하도록 강요받은 적은 있지만!
―언젠가 말이다, 이곳에 열여섯 상아탑의 마스터들이 와르르 몰려와 앉는 거야. 실물로 말이지. 그때를 대비해서 좀 크게 지어놓자고. 그래도 명색이 상아탑인데, 사람 수십 명이 들어올 정도의 대회의장 하나는 있어야잖아. 당장은 돈이 아깝겠지만, 알드바인의 품위를 위해서 일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좀 참으렴!
마스터 엘투란이 그렇게 다독이면서 이 대회의장을 만들었다.
그 선대, 초대 마스터인 펠카윈이 평생 돈 없다고 짓지 않은 대회의장이었고 다음 세대인 엘투란에게 떠넘긴 일이었다. 물론 엘투란도 웬만하면 짓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래저래 품위 따질 일이 많아진 탓에 알드바인 마법사들이 주눅 들고 소심한 경향이 짙어지자 다음 세대로 미루지 못하고 지었다!
물론 최소한 대회의장이라도 제법 규모를 갖춘 채 갖고 있다면, 멀리서 참석해야 할 회의에 원거리 중계로 참석하는 뻔뻔하지만 편리한 짓을 해도 된다는 실용적인 부분도 고려하기는 했다.
그리고 엘투란은 홀시딘에게 우겼었다.
―내가 미래를 예지해봤는데 말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수십 명의 마스터가 이 대회의장을 꽉 채울 것 같거든. 근데 그게 딱 네 일이 아닌가 싶더라고, 그러니까 홀시딘! 여기 관리 잘 해야 한다. 괜히 보수를 미뤘다가 새로 다시 짓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야.
홀시딘은 그 소리를 그냥 흘려들었다.
그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그딴 일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른 상아탑이 어찌 굴러가든, 알드바인의 상아탑은 알드바인답게 굴러가면 되는 일이라 여겼고 여태 그렇게 잘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설마 오늘 그 예지가 실현되다니!
마스터 엘투란에게 예지능력 따위는 절대로 없었는데?
도대체 누가 꾸민 음모인가!
퍼뜩 홀시딘은 제자를 떠올렸고, 냉큼 돌아봤다.
빗장을 걸었던 케이라가 칸막이를 닫고 있었고, 그 좌우에 알드바인의 마법사가 아닌 두 녀석이 나란히 서 있었다. 칸막이를 닫아걸고 세 마법사가 마력을 보급하면 칸막이 좌우로 미로가 생성되어 이제 허락 없이 대회의장에 들어서는 이들은 이 실내를 구경도 못할 상황이 된다! 동시에 대회의장의 안팎은 완전히 격리되어 이 안에서 뭔 일이 나도 밖에서는 알 수가 없다!
“케, 케이라?”
홀시딘은 뭔가 완벽한 함정에 빠진 기분 속에서 뒤늦게 제자를 불러봤다.
칸막이를 토닥이며 완전히 마법의 빗장까지 내지른 케이라는 느릿하니 돌아서서 스승을 향해 방긋 웃음부터 흘렸다.
“아, 스승님. 이 둘은 아시죠? 한 십 년 만에 보시겠지만, 이제는 마스터가 되어서 이렇게 알드바인까지 방문하게 되었다네요.”
케이라의 말에 홀시딘은 그 좌우에 선, 덩치 큰 놈과 덩치 작은 놈을 다시 봤다.
둘 다 케이라보다 서너살은 더 먹은 녀석들이었고, 케이라보다 삼사 년 늦게 마스터가 된 녀석들이었다. 한 십여 년 전에 케이라를 데리고 멀리 다녀와야 했던 그때, 잠깐 봤던 다른 상아탑의 유망주였다. 평균보다 빠르게 마스터가 될 거라던 녀석들이었고, 정말로 평균보다 빠르게 되었다고 몇 년 전에 들었던 그 놈들이다!
천재 소리 나오게 한 케이라가 아니었다면 차세대 마스터 중에서 가장 먼저 손꼽힐 녀석들!
“오랜만입니다, 마스터 홀시딘.”
“어…… 마스터 홀시딘?”
덩치 큰 놈의 넉살좋은 인사, 작은 녀석의 ‘뒤돌아보세요!’라는 미묘한 눈짓.
입꼬리를 실룩이던 홀시딘은 나직하게 한마디 토해내면서 다시 돌아섰다.
“젠장.”
상아탑 마스터들의 생생한 낯짝은 어디 안 가고 거기 그대로 있었다.
노골적인 마력의 파동을 뿜어내면서, 홀시딘을 향해 ‘우린 불만이 아주 많다!’라고 소리없이 외치는 자세 그대로!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