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9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88)
홀시딘은 일단 뚱한 표정으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왜 갑작스럽게 이렇게 불청객이 남의 집에 잔뜩 와 있느냐고 따지려는 주인처럼!
그런데,
―어, 홀시딘? 내 말 들려요?
난데없이 팔뚝이 찌릿하면서 뇌리에 울려오는 투란의 목소리라니!
팔짱을 꽉 끼면서, 지켜보는 상아탑 마스터들의 매서운 눈초리에는 그 서두르는 동작이 훤히 보일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홀시딘은 두 팔을 모아 팔짱을 끼고 턱을 뻣뻣하게 쳐들며 뇌리로 일단 응답해야 했다.
‘바빠! 엄청나게 위험할 정도로 바쁘니까, 나중에!’
―에? 우와, 이것저것 잔뜩 보여줄 거라고 해놓고서! 체에엣!
이쪽 사정 따위는 전혀 알 바 아니란 듯한 투란의 투덜거리는 투정은 금세 홀시딘의 뇌리에서 지워졌다. 역시 멀리서 얼굴 보이지 않도 투정부리는 녀석보다는 바로 눈앞에서 잔뜩 으르렁대는 표정과 함께 대략 서른 명가량이 뿜어내는 마력 파동 쪽이 먼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잖은가.
공연히 투란에게 깨어나면 연락하라고 징표를 통한 시크릿 키퍼의 호출법을 알려준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 미묘한 짜증이 홀시딘의 얼굴을 스쳐갔다. 이는 아주 미세한 표정의 변화를 보였을 뿐이었지만, 홀시딘 앞의 마스터들에게는 매우 다른 의미로 전해진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마스터 홀시딘은 우리가 여기 와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나 보군?”
누군가 느릿하니 입을 열자마자 다른 누군가가 냉큼 그 말을 이어 마치고 있었다.
“정말로 완전수면에서 깨자마자 스승을 바로 모셔온 건가?”
“허허,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었을 텐데…… 마스터 케이라, 뭐라 짧게라도 말해뒀으면 좋았을 텐데…….”
뒤이어 홀시딘의 상태를 나름대로 이해한다는 듯한 소리로, ‘사실은 네 제자도 우리랑 한패야!’라고 고백이라도 하는 듯한 말이 이어졌다.
이쯤에서 홀시딘은 숨을 세게 들이쉬고 잔뜩 힘을 줘서 다음에 또 누군가가 뱉어내려는 말을 막고 끊으며 나서야 했다. 어림잡아도 서른 명, 알드바인이 아닌 곳에서 둘씩만 왔다고 해도 서른둘은 채우고 남을 숫자의 마법사들이 한마디씩 하게 뒀다가는 멀쩡한 사람도 자신이 죽을죄라도 저질렀다고 착각할 수 있었다. 숨기는 것이 분명히 있는 입장에서는 그 소리 전부 들을 까닭이 전혀 없다! 그래서,
“어―흠!”
일단 크게 헛기침을 하며 재빠르게 한명씩 눈을 마주치려는 듯이 스쳐가는 눈길을 보내고서 홀시딘은 큰소리로 외치듯이 말한다.
“뭐 어쨌든―! 한 두어 분은 호기심에 와볼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소만…… 대체 어째서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오셨소?”
말과 함께 홀시딘의 뇌리에는 마법사들의 낯짝이 좌르르 늘어섰고, 재빠르게 현재의 위치와 태도, 보이는 자세에 대해 정리가 되었다. 긴 탁자의 좌우로 좌악 앉은 이들은 모두 홀시딘과 비슷한 연령과 세대의 마스터들이었고 그 앉은 이들의 뒤에 주욱 늘어선 채로 간혹 벽에 기댄 듯이 서서 지켜보는 듯한 태도를 취한 마법사들은 홀시딘 이후의 세대, 보다 젊은 연령대의 마스터들이었다.
‘어라? 전부 마스터 랭크?’
홀연히 홀시딘은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상아탑의 마스터들은 몸이 무겁다, 는 소문이 돌 정도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 뭔가 묻고 답하는 것도 시간을 들여서 한마디씩 검토도 할 겹, 중급 마법사를 보내는 것이 보통이고 조금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면 상급 마법사를 보낸다. 이런 식으로 마스터들이 한 곳에서 둘씩 다 몰려오는 일은 거의 없다!
불타는 평야, 그레이우드, 쟈카라 산림의 일을 한꺼번에 해결했다는 상황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이렇게 대뜸 자고 일어나 보니 와글와글 몰려올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을 두고 길게 검토하면서 일 년에 한두 마디씩, 아닌 척하고 스쳐가듯이 묻고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겉보기에는 마스터답게 품위를 지키려고 그러나 보다 하겠지만, 그 느긋함 속에는 마스터가 자신만의 관점에서 상황을 한 단계씩 모두 검토하는 치열한 연구 관찰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니까 홀시딘은 한두 사람의 마스터가 알드바인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한 이삼 년 뒤가 될 것이라 예상했었다. 홀시딘과 투란이 남긴 흔적을 충분히 검토하고 나름대로 가설을 세우고 이리저리 현실과 맞춰본 다음에 말이다.
결국 이렇게 자고 깨보니 와글거리는 마스터 패거리라는 것은 홀시딘이 스스로에게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재검토하게 하는데…….
“흘흘흘, 꼴 보니 마스터 홀시딘은 아직도 자기가 무슨 메시지를 날렸는가 제대로 모르고 있군.”
저쪽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나이가 제일 많은 마도사가 입술 사이로 새는 웃음과 함께 지적하고 있었다. 이는 홀시딘에게 단서를 주는 말이었고, 다른 누군가가 귀찮다는 듯이 설명하게 했다.
“마스터 홀시딘, 아직 상금 지정서 갱신해 보지 않았지요? 현재 날짜에 맞춰서 말입니다.”
“어, 응? 상금?”
끔벅끔벅, 홀시딘의 눈꺼풀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시크릿 키퍼로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얘기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부터 치고 들어오잖는가.
설마 금전 백몇십 닢이 아까워서 그거 주기 싫다고 이렇게 몰려왔단 말인가?
상아탑의 마스터가 금전 몇백 닢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경우는…… 알드바인 마스터가 그 정도 금전을 노리고 나설 때마다 품위 떨어진다고 투덜거리는 소리를 잔뜩 듣지 않았던가? 마스터라면 적어도 수천 닢은 되는 일에 나서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일감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결국, 마스터라면 상아탑을 유지하고 지키는 최후의 버팀목 같은 것이니까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핀잔인 셈이었다. 여럿 있는 것도 아닌 알드바인의 한 명뿐인 마스터 엘투란에게 위엄을 갖추라면서!
한데 그런 핀잔을 주던 작자들이…… 선대로부터 전통처럼 그런 핀잔을 물려주기까지 하는 듯했던 작자들이 이렇게 몰려왔다?
“마스터 케이라, 아무래도 그만 스승님께 말씀드려요. 이대로는 대화가 진행이 안 되겠어요.”
탁자 옆으로 늘어선 이들 중 누군가 말했다.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재촉하는 이야기였다.
홀시딘에게는 당장 궁금한 것을 바로 해결할 사람을 지목해준 일이었다.
슬그머니 홀시딘이 고개를 돌려 케이라를 보니, 빗장 확실히 걸어둔 칸막이에 등을 기대고 선 채로 구경하는 자세가 역력한 제자의 모습이 참으로 대단해 보이잖나! 스승을 이 작자들 앞에 던져놓고 뭔 여유로 저리 구경하는 자태인가!
케이라는 그 여유를 그대로 담은 듯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스승님, 상아탑마다 왕국마다 개별로 지불해야 하는 상금이라네요. 스승님께서 합산해 모아 내는 거라고 여기셨던 금액이요. 그리고 하루하고 반나절을 수면하셨으니까…… 내일이 바로 기한 마감이로군요. 아, 마감까지 금전 지불이 없으면 찾아가셔서 현물로 바로 받아오겠다고 하셨죠?”
“……개별?”
다른 소리 치워놓고 잠깐 굳어진 모습이었던 홀시딘이 조금 늦게 중얼거렸다.
케이라가 조금 인내심을 품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다시 말한다.
“네, 개별적으로 왕국과 상아탑이 그 금액을…… 금전 삼천오백이십 닢 정도를 내야 지불하기로 되어 있었다네요. 말로란 마법사도 최근에 고액 상금에 대한 정보 갱신을 해두지 않아서 몰랐다고 아까 실토하더라고요.”
슬쩍 말로란이 문가에서 얼쩡대던 부분에 대한 핑계까지 섞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런 차분한 제자의 목소리에 홀시딘이 스륵 움직여 긴 탁자의 끄트머리에 두 발을 올려놓고 내려서며 부유 마법을 해제하면서 입꼬리를 좌악 치켜 올리고 있다!
심지어 두 눈이 위로 볼록한 호를 그리면서, 아래로 볼록한 입모양이랑 함께 드러내는 표정이란―!
“이봐!”
“지금 좋아 죽으려는 거야!”
“마스터―!”
“홀시딘, 이 인간이 진짜!”
“자네 진짜로 현물로 털어갈 작정인가!”
“착오를 일으켜놓고 반성은 없는 거냐?”
“기왕 한 말이니 실행한다는 소리 하기만 해봐!”
“마스터 홀시딘, 정신 좀 차리고 얘기를 하자고!”
“흘흘흘, 과연 홀시딘이로군!”
화들짝 놀랜 소리부터 으르렁대는 불평, 재미있어 하는 소리까지 제각각 터져 나오면서 긴 탁자 위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홀시딘은 두 손을 비비적거리면서 그런 마스터들을 향해 환하게 미쳐 웃는 듯한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냈고,
“여러분은― 전통과 역사를 길게 자랑하는 상아탑의 마스터들이시니…… 귀한 것에 대해서 많이들 아실 테고, 많이도 갖고 계시겠군요? 뭐, 개인물품이 아니더라도 각 상아탑에서 뿌리 깊게 전해져오는 물품들, 꽤 되잖겠습니까? 에, 어디 보자, 그게 뭐가 있더라…… 아, 케이라! 혹시 상아탑의 귀중품에 대해 뭐 아는 것 없니?”
중얼중얼 앞뒤 없는 괴상한 소리를 내다가 슬쩍 뒤돌아보며 케이라를 향해 묻고 있었다. 이 광경에 긴 탁자 양편에 늘어앉은 마스터들이 황당한 표정과 어처구니없는 표정, 함께 웃어보자는 표정이 난무하는데…… 한 걸음 떨어져서 벽에 기댄 한세대 젊은 마스터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동요가 일어났다.
케이라는 잠깐 스승의 반쯤 고개 돌린 표정을 봤고, 곧 한숨을 쉬면서 소매 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이는 케이라 좌우에 서서 흘깃거리던 두 마법사가 동시에 고개를 완전히 돌리면서 놀란 표정부터 짓게 했으니,
“케, 케이라?”
“설마?”
곧바로 케이라가 자신을 향해 눈길을 모으는 이들을 향해 대답처럼 입을 연다.
“스승님 성향을 보면, 한번 묻지 않으실까 해서 일단 준비는 해뒀습니다. 열여섯…… 알드바인을 제외한 열여섯 상아탑 루트에 보관된 전승유물이랑, 높은 가격으로 고지된 신종 아티팩트 목록이에요.”
말과 함께 케이라가 꺼낸 두루마리가 촤륵 펼쳐지면서 나풀나풀 날아가 홀시딘 앞으로 가서 둥실둥실, 허공에 매달린 것처럼 멈췄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요란한 항의하는 소리도, 재미있어 하는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케이라를 향해 다들 ‘넌 대체 누구 편이었냐!’라는 눈길을 쏘아 보내느라 바쁜 표정이었고, ‘과연 알드바인의 마스터!’라고 뒤늦게 깨달은 듯한 낯빛이 스쳐가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그리고 홀시딘은 황홀해 하는 표정으로 자기 앞에 늘어뜨려진 두루마리를 눈동자를 굴려 훑으면서 ‘흐흐흣!’ 하는 소리를 내는데, 케이라의 높아진 목소리가 뒤이어 바로 울려 퍼진다.
“여러분께서, 금전 지불의 기한 마감 때문에 여기 오신 것은 아니잖아요? 이번 일에 대해서 따로 궁금하신 일이 많고, 멀리서 묻기 어려워 오신 것이잖아요?”
순간, 긴 탁자 위의 마스터들 사이에서 온갖 표정이 엇갈렸다.
누구는 ‘아니, 그거 맞는데?’라며 조금 머쓱한 표정을, 누구는 ‘어? 그러고 보니 금전 지불은 내가 맡은 일이 아니긴 하네?’라고 알아차린 듯한 표정을, 누구는 ‘으흠, 그건 그렇지.’라며 납득하는 표정을 제각각 자아내고 있었다.
거기에 홀시딘이 ‘어?’ 하는 조금 요란한 한마디와 함께 묻는 말을 던진다.
“금전 때문이 아니고 다른 일이 있기라도 하신가?”
이는 처음에 상금 문제에 대해서 전혀 감도 못 잡고 있던 자신의 태도를 몽땅 없는 것으로 해버리는 소리였다. 때문에 당장 격렬한 반발이 터져 나오니,
“홀시―!”
“딘! 이봐, 착오가 없는 척하지 말라고!”
“자네도 조금 전까지 금전 문제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잖아!”
“흐흘, 흘흘! 이보게, 뭘 숨기고 있기라도 한 건가?”
“금전 핑계로 말 돌릴 생각하지 마시지―!”
이 모든 소리를 홀시딘은 환하게 웃느라고 잔뜩 휘어진 입매와 눈매로 달게 받아들인다는 듯이 두 손을 맞잡고 비비적대며, 한 귀로 전부 흘려내는 표정을 뿜어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어처구니없어 다들 외침을 멈추고 소리가 잦아들 때, 홀시딘이 다시 말한다.
“궁금한 것이 있으시다면…… 기꺼이 답해드리지요. 다만 말해서는 안 될 일은 말하지 않을 것이며 말할 수 없는 일 또한 말하지 않는 것이 바로 상아탑의 마법사란 것을 잊지는 마시길!”
이는 곧바로 긴 탁자를 두고 늘어앉은 마스터들에게서 어느 정도 일관된 표정을 끌어냈다.
거의 모두가 눈가에 핏대를 세우면서 홀시딘을 노려보게 한 것이다.
말해서 안 되는 일, 말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입을 다문다…… 이는 마법사가 세상에서 욕먹는 원인의 대표 격으로 꼽히는 선언이었다. 결국 하고 싶은 말만 한다는 소리로 들리니까.
그런데 그런 소리를 다른 사람도 아닌 상아탑의 마스터들을 앞에 두고 태연하고 뻔뻔하게 상아탑의 마도사인 홀시딘이 지껄이고 있다니!
“그럼, 우리 스무 가지 물음을 해볼까? 흘흘흘, 그거 해본 지도 꽤 옛날이구만! 추억이 새록새록한데?”
가장 연장자인 마스터 입에서 너무 재미있다는 듯한 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순간, 불끈거리고 치솟았던 핏대가 일제히 가라앉는 듯했다.
물론 홀시딘은 바로 반발하고 있었으니,
“안 합니다!”
“해!”
합창하듯 마스터들이 으르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