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9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89)
“못 해! 안 해!”
홀시딘은 보다 강경하게 으르렁거렸다.
스무 가지 물음에 대해 ‘예.’ ‘아니오.’란 대답만 해줘도 그 영혼 깊이 숨겨진 진실까지 파헤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마법사의 격언이었다. 문제는 얼마나 ‘올바른’ 물음인가였고, 진정한 물음이라면 다섯 번만 물어도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나게 한다고까지 했다.
그러니 스무 가지 물음에 대해 동의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입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단서는 넉넉하게 제공하겠다는 마법사간의 암묵적인 합의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홀시딘이 보다 강경하게, 빠르게 거부하는 소리를 뱉은 것인데…….
“못 해, 가 먼저였지?”
“안 해, 가 나중이었어.”
“흐흠, 말해서는 안 되는 건데 말하기도 싫다 이건가?”
“흘흘흘, 기왕 말 나온 김에 좀 순순히 협조 좀 하지 그러나.”
긴 탁자에 붙어 앉은 마스터들은 반발하는 홀시딘의 말투, 튀어나온 두 마디 대답의 순서까지 더듬으면서 상황을 간파해내려 하지 않는가!
흠칫한 홀시딘의 눈동자가 마스터들을 훑었고, 마스터들 또한 홀시딘과 눈을 마주하면서 히죽이 웃는 표정을 뿜어내줬다. 이대로 묻는 말이 쏟아지고 홀시딘이 거기에 대해서 반응한다면, 굳이 입으로 그렇다 아니다를 떠들지 않아도 스무 가지 물음에 답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훤히 보였다.
그래서 홀시딘은 이 모든 상황을 뒤집어엎을 말을 격하고 세게 토해낸다!
“돈― 내놔아아―!”
이는 몸과 마음을 집중시켜 모든 일에 앞서 금전에만 몰두하겠다는 자세를 갖추면서 지른 고함이기도 했다. 어떤 형태로든 캐묻는 소리에 한마디도 더 답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표현인 셈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동시에 여러 마스터들에게서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누군가는 ‘아, 딴소리하네!’라며 여유롭게 키득거렸고, 누군가는 ‘뭐, 알아서 하겠지.’ 하며 자기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태평한 태도를 보였고, 누군가는 움찔거리면서 약점을 찔린 표정을 떠올렸다.
그런 모든 것을 무시한 듯이 홀시딘은 다시 ‘돈!’ 하면서 금전에 집착하고 집중하려 하는데,
“마스터 홀시딘, 혹시 금기를 범하였는가?”
갑작스럽게 던져진 물음이 대회의장에 느닷없이 깊은 침묵을 불러왔다.
홀시딘은 무표정해진 듯했지만 살짝 찌푸린 눈살 또한 분명히 드러낸 채로 말을 한 이…… 이 자리에서 최연장자인 상아탑의 마스터를 바라봤다. 그런 홀시딘에게 기묘하게 동조하는 듯, 이제까지 홀시딘을 향해 바라보던 눈길을 돌려서 마찬가지로 찌푸린 눈매를 한 채로 그쪽을 바라보는 마스터들 또한 여럿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침묵이 깊어지고 분위기가 묘하게 변할 듯한 순간,
“홀시딘. 자네도 이런 물음이 한 번쯤은 나올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잖나. 굳이 이 자리가 아니더라도, 결국은 누군가 묻게 되어 있다는 거…… 마스터 잘카탄은 그저 그 역할을 일찌감치 수행한 것뿐이야. 진정하라고.”
홀시딘이 선 자리에서 가까운 곳에 앉은 한 명이 차분하고 대회의장을 울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고요한 대회의장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 말이 맞다고 인정하는 듯, 동시에 홀시딘에게도 한 번은 짚을 문제가 맞다고 긍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모습이었다.
한숨과 함께 홀시딘은 최연장자인 마스터 잘카탄에게서 눈길을 돌려, 분위기를 돌이켜 냉정을 되찾도록 돕는 말을 한 이를 바라봤다.
“마스터 발테스…… 나는 금기를 범하지 않았어.”
여전히 무표정하면서도 어딘가 노여움을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홀시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말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저편에서 다시 잘카탄의 흘흘거리는 말이 바로 튀어나온다.
“흐흘, 그렇다면…… 간접적으로 금기를 이용하였는가? 예전에 자네 친우들이 자네를 이용해서 목숨을 바쳐 저지른 때처럼 말이야.”
순간, 홀시딘의 눈꼬리가 팍 치켜세워졌다.
대회의장의 마스터들 사이에서도 조금 엇갈리는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끈질기게 묻는 잘카탄이 마땅치 않아 하는 분위기와 엇갈려서, 한 가지씩 뭔가를 제외해나가며 계속 물으려 하는 잘카탄의 의도에 은근히 동조하는 분위기가 피어났다. 이 엇갈림 속에서 홀시딘은 잘카탄이 이미 스무 가지 물음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물음을 던져서, 슬그머니 이것저것 배제해가며 단서를 뽑아내려는 것이다!
후욱, 깊은 숨결을 들이쉬며 홀시딘이 벼락처럼 외친다.
“묻지 마! 대답 안 해! 마스터 잘카탄, 귀먹은 시늉 하지 말아요! 안 한다고 했잖아, 스무 가지 물음 따위! 은근슬쩍 얼렁뚱땅 시작하지 말라고!”
“흐흘흘! 그치만, 궁금한걸! 금기를 범하지도 않았고, 상아탑의 다른 동료도 없었다면서! 어떻게 한 곳도 아니고 세 곳이나 되는 난제를 단숨에 해결했냐고! 세 곳 모두 마법에 약한 곳도 아니었고 말이지! 흐흘! 정말로 금기에 어떤 형태로든 손대지 않았나?”
“대답 안 한다니까요! 못 해, 안 해! 금기고 뭐고 아무 것도 안 알려줄 거야!”
홀시딘은 거의 막무가내로 외쳤고, 이는 곧바로 가까이 있던 발테스가 급한 목소리를 내게 했다.
“홀시딘!”
“왜?”
불끈해서 그쪽으로 노려보는 눈길과 함께 대꾸하던 홀시딘은 퍼뜩 발테스가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로 곤란해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홀시딘이 디디면 안 되는 곳에 발을 딛고 밟은 광경을 보는 듯하잖는가?
젤카탄의 목소리가 새는 웃음과 함께 다시, 이번에는 졸라대는 말투와는 전혀 다른 느긋하고 차분함을 담아 울려 퍼진다.
“그렇게까지 대화의 단절을 선언한다면…… 어쩔 수 없지. 마스터 케이라, 알드바인의 마스터로서 우리가 어쩔 수 없게 된 것을 납득하시겠는가?”
“……어, 음?”
홀시딘은 눈을 깜박였고, 등 뒤에서 케이라의 차분한 목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미리 제가 말해드린 것도 여러분 모두 명심해주셨으면 좋겠군요. 한번 더 말하지만, 여러분께서는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실 수도 있어요.”
“뭐―?”
홀시딘이 케이라를 향해 고개를 반쯤 돌렸다.
덤으로 발테스 쪽도 눈에 담도록 고개를 돌린 탓에 홀시딘은 그 곤혹스러운 표정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케이라는 매우 담담하게 스승을 향해 엄지를 딱 세워 보이지 않는가! 그 좌우에 있는 녀석들은 뭐라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호소라도 하듯이 난감하고 곤란해서 케이라와 홀시딘을 흘깃거리고 있다.
발테스가 홀시딘의 돌아가는 눈동자를 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우리가 여기 도착한 지 꽤 되었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고…… 케이라는 스승을 믿는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했고…….”
“뭘!”
주절주절 이어지려는 이야기를 끊으면서 홀시딘은 발테스에게, 모두를 향해 빙 훑어보는 눈길을 뿌리면서 딱 잘라 말하라고 압박을 넣었다. 발테스는 끄응 하면서 입을 다물고 긴 탁자를 주욱 훑어 올라가는 눈길을 던졌고, 잘카탄이 저 끝에서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다시 말문을 연다.
“쯧, 이럴 때는 꼭 늙은 나에게 양보하는 건가? 평소에도 좀 양보를 하면서 그러라고! 에휴―! 어쩔 수 없이 내 입으로 말해야 할 것 같구만. 아, 좀 기다리게나, 마스터 홀시딘. 이제 말하려고 하잖아. 그래, 자네 제자가 믿는 대로라면 자네에게는 별일 아니야. 음, 그래…… 그냥 자네가 마스터의 입회, 참관하에 서약을 하면 되는 일이라고.”
“……입회? 참관? 서약?”
홀시딘이 눈살을 팍 구기면서, 잘못 들은 것인가 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주욱 둘러봤다. 하지만 제대로 들었다고 알려주듯 다들 고요하게,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듯한 태도였다.
그 광경을 보며 홀시딘의 눈가에 핏대가 또렷하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말해주시지요? 나오지 않는 말에 대해서 멋대로 판단하고 오해하고 싶지 않으니―!”
스산하게 끓어오르는 격노를 억누르는 목소리로 홀시딘이 모두를 둘러보면서 묻고 있었다.
잘카탄이 흘흘 하는 소리를 살짝 낸 다음에 말한다.
“그려…… 그러는 게 좋겠지. 표현되지 않은 의견을 멋대로 짐작하는 것은 항상 오해를 부르기 쉽지. 이런 일을 그렇게 모호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말해야겠지. 음, 그러니까…… 간단하네.”
홀시딘의 눈가에서 가늘게 떨림이 피어났다.
거의 은퇴를 하려다가 못한 마스터가 잘카탄이란 소문이 있었다.
잔소리 하다가 은퇴를 못해서 계속 마스터로서의 의무를 수행 중인 마도사라고, 어느 한구석에 살짝 노망(老妄)이 깃든 채라고! 그 소문을 증명하고 싶기라도 한 것인가, 지금도 간단하다는 말에 앞서 뭔 소리가 저리 길단 말인가.
이런 홀시딘의 생각에 동조하듯, 몇몇의 입에서는 이미 쓴웃음과 한숨이 툭툭 매달리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잘카탄은 그딴 분위기 알 바 아니란 듯, 왠지 한층 더 느긋한 태도로 말을 이어간다!
“상아탑의 마법사라면 자신을 증명하는 데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잖은가. 우리는 서약을 했고, 율법에 따라 심판을 받기로 맹세를 했지. 그리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일에 마스터가 입회하고 참관하에 한 번 더 서약을 하고 맹세를 하기만 하면, 어떤 것도 답하지 않더라도 인정받을 수 있잖은가? 마침 입회와 참관에 필요한 마스터의 수를 이미 넘긴 상황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 얘기라네.”
은근히 긴 잔소리 같은 말에 참던 홀시딘의 한쪽 눈가가 삐딱하니 치켜 올라갔다. 이제 무슨 소리인가 오해할 필요도 없이 명확하게 말로 나온 것에 대한 소감이라는 듯!
스윽, 먼저 홀시딘의 눈길이 대회의장을 훑었다.
모두 눈동자에 반짝거리는 빛이 엿보였다.
곤혹스러워 하고는 있지만 발테스 역시 호기심을 가득 담은 눈빛을 품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홀시딘은 담백한 말투로 입을 연다.
“그런 얘기라면…… 판돈을 좀 올려야 내가 덜 억울하겠지요? 전원 입회, 참관하시는 걸로 한다면 상아탑의 마도사로서 영광으로 알고 기꺼이 서약 한 번 더 하죠. 어떻습니까?”
잠깐 새로운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가늘게 누군가의 입에서 새나온다.
“파, 판돈!”
“이, 이봐!”
한층 더 당황한 목소리를 발테스가 냈다.
곧이어 몇몇의 성난 목소리가 나직하니 대회의장을 울린다.
“판돈이라니!”
“이게 무슨 도박인가!”
“마스터 홀시딘, 무슨 비유를 해도―!”
홀시딘은 그 으르렁거림을 향해 스윽 턱을 치켜 올리면서 대꾸한다.
“싫으면 말고. 어차피 여럿이 나 하나 어떻게 해보겠다면서, 그만한 배짱도 없으신가? 내가 잘못돼서 상아탑에서 제명되면, 나의 모든 권리가 박탈되고 상금 수령 자격도 사라지니까 한번 해보자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그만한 위험도 감수하셔야지! 내 서원을 보고 듣겠다면 자기 위계를 걸어! 당연하잖아!”
도도하게, 콧대를 잔뜩 치켜 올리는 채로 오만한 말투를 가득 살려 한 말이었다.
어이없어 하는 분위기가 가득 퍼졌고, 그 사이를 가르는 듯한 케이라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울려나온다.
“저는 스승님을 믿어요. 그러니까, 굳이 입회참관은 안 해도 되죠? 해봐야 별 의미도 없으니까요.”
“……그러렴.”
홀시딘은 으쓱거리는 어깨에 힘이 빠진다는 듯한 소리로 대꾸해야 했다.
상아탑의 마법사에게 결백을 증명하는 서약이란, 그 서약을 강요한 이들에게도 의무를 부과하는 일이었다. 결백을 증명한 마법사가 참관한 이들보다 상위자로서의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더라도, 상위자의 의견이 먼저 선택되는 것…… 외부인에게는 별일 아닌 듯하지만 상아탑의 위계구조에 있어서는 상당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권리였다.
만약 스승이 제자에게 결백의 서약을 강요했다가, 제자가 결백을 증명하면 스승보다 높은 위계가 되어 발언하고 명령을 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케이라는 믿는다는 말로써, 어차피 지금이랑 달라질 것이 없다 하면서 슬쩍 한발 빼는 것이고…….
대회의장에 모인 마스터들은 슬쩍 서로를 살피며 망설이고 있었다.
홀시딘이 결백을 증명하게 되면, 앞으로 상위자로서 그 권한을 인정해야 하고 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결백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상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고, 붙잡아 가둔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실토하게 할 수도 있다!
즉, 이 상황은 홀시딘에게 강력한 압박을 주면서 동시에 자신들도 그만한 위험을 짊어지게 되는 것!
때문에 최소한의 마스터 몇이 나서서 그 위험을 감수할 작정이었는데, 홀시딘이 대뜸 판돈을 올린다는 얄팍한 말과 함께 모두에게 그 위험을 강요하는 것이다. 오직 케이라만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파놓은 셈이지만, 애초에 스승의 휘하에 있는 제자이니 사실 별 의미 없기는 했다.
“그래서…… 할까, 말까?”
스윽, 다시 어깨를 치켜 올리면서 홀시딘이 히죽 웃어 보였다.
과연 이는 허세(虛勢)인가, 아닌가.
마스터들 사이에서 미묘한 분위기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