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9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90)
“어, 홀시딘…… 꼭 모두가 참관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발테스가 슬쩍 한발 빼고 싶다는 듯한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홀시딘은 냉정하게 눈을 번뜩이면서 얼른 자르듯이 말한다.
“안 돼. 다 함께 하든가, 하질 말든가!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면…… 금전 이야기로 바로 넘어가도록 할까요?”
스윽 둘러보다가 활짝 펼쳐진 두루마리로 눈짓하기도 하는 홀시딘의 모습은 확실한 도발(挑發)이었다.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뭔가 발끈하게 하면서도 그 도발에 넘어가야 하는가, 이것이 허세인가 아닌가를 보다 더 생각하게 강요하는 태도였다.
잘카탄이 한숨인가 웃음인가 알 수 없는 흘흘 하는 소리를 내고 자신의 뒤편으로 돌아보며 묻는 소리를 낸다.
“어떤가, 바르탈 자네는 예전에 파나틱 플레임의 현장에 있었지? 지금 마스터 홀시딘은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당당한 것인가? 백분율로 가능성을 말해주게나.”
벽에 기댄 채로 마스터 잘카탄의 보조로서 두건을 깊이 눌러쓰고 있던 마법사가 스윽 앞으로 한 걸음 나섰고, 두건을 벗으며 얼굴을 보이는데…… 홀시딘은 그 모습에 ‘어?’ 하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바르탈, 그는 긴 탁자를 끼고 앉은 마스터들과 거의 비슷한 세대였다.
굳이 보조로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설 위계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잘카탄이 워낙 고령(高齡)이라서 바르탈이 보조역을 맡은 듯이 보이는데…… 위계상으로는 잘카탄과 동급이나 마찬가지인 그가 왜 저러고 있는가?
문득 홀시딘은 다시 벽에 물러선 상아탑의 마법사들, 보조로서 한 걸음 물러서 있지만 분명히 마스터 랭크인 이들을 다시 한번 둘러봤다. 익숙한 낯을 그대로 드러낸 이들도 있었고, 보조라는 입장을 중시하겠다는 듯이 두건을 꾸욱 눌러쓴 채 아래턱만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뭐지, 이거? 왜 이렇게 심각해?’
결과를 만들기 위한 출정준비라면 심각할 만도 하지만, 지금은 결과가 나온 다음에 아옹다옹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홀시딘이 새삼 갸웃할 때, 바르탈이 잘카탄의 물음에 답을 한다.
“마스터 홀시딘이 허세를 부리고 있을 가능성은 칠십 퍼센트 정도입니다. 하지만 정말 당당하게 거리낄 바가 없을 가능성 또한 삼십 퍼센트까지 잡을 수 있습니다.”
“……삼십 퍼센트나?”
잘카탄이 좀 심하게 높지 않냐는 듯이 중얼거렸다.
바르탈은 담담하게, 대회의장의 구석까지 울릴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예전에…… 마스터 홀시딘이 마스터 발테스보다 겨우 두어 달 간격으로 마스터 반열에 올랐을 때, 마스터 켈브란과 그가 주도했던 혁신파의 일에 반대하며 나섰을 때에는 혼자서 그들을 이겨낼 가능성은 오 퍼센트 이하로 잡았었습니다. 홀로 켈브란 일파의 마력연계를 찍어누를 수 있다고 주장했으니까요. 그리고 단 한 명도 빼놓지 말고 전부 연계하라고,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다들 구십 퍼센트 이상 허세일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 허세를 증명하지 못하면 켈브란 일파에서 주도하는 일은 마스터로서 마도사 홀시딘이 반대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을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켈브란 일파는 그 허세를 증명하겠다고 했었지만…… 이 자리의 모든 분이 알고 계시듯, 그 일은 파나틱 플레임의 흉악한 명성을 휘날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마스터 홀시딘은 꽤 진지하게 예의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허세로 도발하는 듯한 모습은 비슷합니다. 켈브란과 그 일파가 논파하지 못한 의견을 힘으로 찍어 누른다는 악명을 각오하게 한 것처럼, 잘못하면 서른 명 이상의 마스터를 하위 서열로 두는…… 이제까지 유례없는 상아탑의 마스터가 탄생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강조하고 계시지요. 문제는 지금 금전보상을 주장하고 있는 결과에 대해, 그 과정을 그냥 넘겨도 되는가입니다. 단순히 상아탑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니까요. 칠왕국으로부터, 새터드 세븐에 자리 잡은 헌터 길드로부터도 금전 수천 닢을 받아내야 하는 문제입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전혀 상상도 안 갈 방법으로 일을 해결했잖습니까? 그냥 그렇고 그런 마법이 있었다고 하기에는…… 해결한 일들이 너무 오래 답을 찾지 못한 거라서 그것도 어렵습니다. 이 상황에서 적절한 답을 구해가지 못한다면…… 상아탑이 뿌리를 두고 있는 칠왕국 경계 안에서 고립된 세력이 될 가능성이 너무 큽니다. 그러므로…… 저는 삼십 퍼센트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마스터 홀시딘의 서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길게 흘러나온 이야기에 홀시딘은 조금 맹한 표정을 짓다가 슬쩍 발테스를 바라봤다. 그렇게 복잡한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듯한 그 눈빛에 발테스가 눈꼬리를 살짝 치켜 올리면서 ‘생각 좀 해라!’라고 쏘아붙이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지켜보는 마스터들의 눈빛 또한 ‘저 생각 없는 작자가!’ ‘아으, 이 망할 파나틱!’ 이라는 험악한 분위기를 가득 싣고 날아들지 않는가!
때문에 홀시딘은 잠깐 반성했다.
오랫동안 풀지 못하고 있던 난제에 고뇌할 때, 느닷없이 ‘캘러미티 로드’라는 답이 나와서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충동적으로 돌격해나갔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판단이었고,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홀시딘 자신의 판단, 그로 인해 얻어낸 결과에 대해서는…… 그 결과가 끼칠 영향력에 대해서는 그리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음, 뭐…… 알드바인이 워낙 외진 곳이라…….”
계속 쏟아져 오는 눈빛에 홀시딘은 슬그머니 더듬는 척하는 말투로 핑계를 대봤다.
초대 펠카윈 시절부터 입에 담는 핑계였던 탓인가, 싹 무시당했다.
홀시딘의 이 중얼거림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잘카탄이 자신의 보조역인지, 제대로 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역인지 애매해진 바르탈에게 다시 묻는다.
“필요하다라…… 마스터 바르탈, 그 말은 마스터 홀시딘이 서약을 수행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상아탑이 마주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된다는 것인가?”
“됩니다.”
지체 없이 바르탈이 대답하고 있었다.
모두의 눈길이 가볍게 바르탈을 향했고, 바르탈은 바로 이어 설명한다.
“마스터 홀시딘이 허세를 부린 경우라면, 서약을 어긴 것이 분명하니 일단 누구라도 납득시킬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파나틱 플레임이 더 이상 못 참고 모든 악명을 뒤집어쓸 각오로 금단의 영역에 손을 대서 일을 해결했다고 하면, 그래서 상아탑이 마스터 홀시딘을 유폐시켰다고 한다면 아무도 더 따질 수가 없게 되겠지요. 누가 뭐라 하면 계속해서 마스터 홀시딘의 죄악을 강조하고, 더 흉악한 소문을 퍼뜨리면서 대꾸하지 않으면 됩니다.”
“어이―!”
홀시딘이 어처구니없어 한마디 던졌지만, 바르탈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허세가 아닐 경우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마스터 홀시딘은 자연스럽게 그랜드 마스터로서의 위계를 확보하게 됩니다.”
순간,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에? 그랜드―?”
“마스터!”
“헐?”
“으엇!”
바르텔의 말과 달리 다들 ‘아는’ 모습이 아니었다.
심지어 홀시딘조차 ‘뭐라는 거야, 저거!’라는 입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너무 느닷없이 생각지 못한 말이 나와서 당황하는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바르탈은 꿋꿋하게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간다.
“다들 아시다시피! 상아탑의 마스터는 모두 동등한 위계와 권한을 갖습니다. 그런 마스터 간에 분명한 상하관계가 생겨나게 된다면…… 한 명의 마스터가 서른 이상의 마스터를 하위 관계로 엮는다면 그랜드 마스터로서 부족하지 않잖습니까? 수백 년간 없었던 새로운 그랜드 마스터가 나타나 그런 결과를 이뤄냈다고 한다면, 칠왕국이든 헌터 길드든 뭐라 못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연이어 강조하는 ‘다들 아시다시피’라는 표현은 잠깐 듣는 이들의 말문을 막고 있었다. 다들 전혀 생각하지 못한 탓에 할 말을 잠깐 잃은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음, 그게 그렇기는 하네.”
“그렇군…….”
바르텔의 말에 납득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홀시딘은 그 분위기에 전혀 납득하지 못하고 중얼거리는데,
“그랜드 마스터라니…… 아크메이지나 그리 불릴 텐데…… 아직 나는 대마도사의 경지까지 멀었는데…….”
바로 발테스가 가까운 곳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이에 대꾸한다.
“이봐! 자넬 유폐하는 게 일리가 있다고!”
곧이어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으르렁거림이 토해져 나온다.
“허세가 아주 자연스럽구만!”
“감금해도 괜찮다는 거지!”
“미친 소리가 아주 자연스럽구만!”
“과연 파나틱이야!”
반쯤 욕설에 가까운 소리였고, 욕설로 들리는 말투가 역력했다.
홀시딘이 입술을 삐죽하면서 스윽 다시 한번 모두를 둘러보며 말한다.
“그럼, 해보든가! 할까, 말까?”
이번에는 아까처럼 멈칫하거나 주저하는 낌새 대신에 살짝 흉흉한 눈빛들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발테스가 끄응 하면서 소매 안에서 끈 하나를 꺼내 내밀며 말하니,
“묶어.”
“응? 이건?”
홀시딘이 의아해 하니, 발테스가 바로 답한다.
“진실의 매듭. 다들 하나씩 가져왔을걸? 그렇지요?”
이에 스윽, 정말로 다들 끈 하나씩을 꺼내 보이는 듯했다.
홀시딘은 어처구니없어 하며, 혹시 안 꺼낸 사람이 있는가 주욱 둘러봐야 했다.
트루세이어의 권능을 관찰하고 연구해서 만들어낸 마법도구, 진실을 말하는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끈이었다. 손목에 감고 말하면 진실과 거짓의 분별을 희고 검은 색으로 표시해주는 마도구이면서 쥐고 있는 사람끼리, 서로의 마음을 어느 정도 교감까지 시켜준다고 했다. 이모저모로 만드는 게 꽤 까다로울 텐데 이 자리에 찾아온 작자들이 다들 하나씩 들고 왔다!
“금기를 범했다면, 당연히 온갖 수단으로 거짓말할 준비가 되어 있을 거라 예상할 수밖에 없으니까. 흘흘, 어쩔 수 없잖나?”
잘카탄이 미묘하게, 변명처럼 말하고 있었다.
이 몇 마디가 나오는 사이, 긴 탁자에 끈이 늘어지면서 마스터들의 손과 손이 이를 붙잡고 이어지고 있었다. 바로 마력의 파동이 짙게 끈을 타고 흘렀고, 홀시딘을 향해 발테스가 내민 끈이 무슨 독사처럼 부르르 떨었다.
낯을 찌푸린 채로 그 끈을 세게 쥐면서 홀시딘을 흘깃 뒤를 돌아봤다.
케이라는 팔짱을 끼고 닫힌 칸막이에 기댄 채로 물끄러미 지켜보는 모습 그대로였고, 그 좌우로 서 있는 둘은 홀시딘의 눈길에 흠칫했다. 곧바로 홀시딘은 둘에게 턱짓하며 말한다.
“자네들, 마스터잖아? 이 자리에 괜히 와 있지는 않잖아? 얼른 와서 잡으라고! 확실하게 해야지!”
이렇게 해서 대회의장에서 ‘진실의 매듭’과 이어진 채로 홀시딘의 서약에 참관하지 않은 이는 케이라 한 명만 남은 셈이 되었다.
그리고―.
―똑똑.
케이라는 칸막이를 두드리는 소리를 느꼈다.
원래는 완전히 차단되어 몰라야 했지만 등을 바싹 붙이고 있었고, 외부로부터 대회의장에 뭔가 간섭하려 하거나 급한 연락이 있을 경우에는 바로 알기 위해 대비하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두드림은 쉽게 멈출 듯하지 않았다.
대회의장 안에서 반응이 나올 때까지 입구에 도달한 이가 반복할 낌새였다.
잠깐 앞의 상황을 한번 더 확인한 후, 케이라는 칸막이를 열었다.
다시 칸막이를 두드리려고 손등을 내밀던 이가 화들짝 놀란 표정부터 보였다.
“어, 마스터 케이라.”
“……지부장?”
알드바인 헌터 길드의 지부장이었다.
옆구리에 그냥 봐도 무거워 보이는, 중량감소 마법까지 걸려 있는데도 무거워 보이는 큰 상자인 듯한 가죽가방 둘을 매단 채로 노크하려는 모습이었다. 그 등 뒤로 뭔가 한가해 보이는 일행, 함께 온 듯한 사람이 둘이나 더 있는데도!
“에, 이분들께서 꼭 직접 뵙고 소개받고 싶다고 하셔서 말이죠.”
지부장의 말은 케이라를 한층 더 의아하게 했다.
알드바인 지부장의 관록, 경력으로 봐서 칠왕국 내에서 그가 이렇게 공경하는 태도로 짐을 든 채로 모시고 다닐 헌터가 거의 없을 텐데? 게다가 그 일행 둘은 어딘가 지부장보다 훨씬 더 젊어 보이잖는가.
한쪽은 가벼운 갑주차림이었고, 한쪽은 넓은 망토를 걸쳐 몸을 가린 모습이었다.
지부장이 뭐라 해야 할지 눈치를 살피며 말을 고르는 사이, 가벼운 갑주차림 쪽이 스윽 옆으로 나서면서 케이라에게 인사한다.
“툴로쉬, 기가둠 왕국의 헌터 본부에서 왔습니다. 현상금을 가지고 왔지요. 이곳에서…… 상아탑의 마스터들께서 뭔가 아주 재미있는 놀이라도 하고 계셨나요? 다들 재미있어 보이시는군요?”
“현상금……?”
케이라는 툴로쉬의 말에 갸웃하면서 슬쩍 뒤돌아봤다.
홀시딘 혼자 반짝거리는 듯하고 나머지 모두가 하얗게…… 무슨 약이라도 써서 표백된 듯한 광경이 조금 전부터 그림처럼 펼쳐진 채였다. 저게 어디가 어떻게 재미있어 보이는가? 그리고,
“……현상금을 기가둠 본부에서 가져왔다고요?”
케이라는 툴로쉬란 사내가 뭔 소리를 하는가 한번 더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툴로쉬가 빙긋 웃었고, 알드바인 지부장은 왠지 축 쳐진 표정을 지었다. 또 한 명은 상아탑 마스터들이 꾸미는 괴상한 풍경에 고개를 갸웃하는데,
“금전 사천 닢은 그냥 무겁기만 한 게 아니니까요.”
툴로쉬가 정말 재미있고 즐겁다는 듯이 말하잖는가!
“……사천 닢?”
살짝 질린 눈빛으로 케이라는 다시 한번 이 툴로쉬라는 헌터를 바라봐야 했다.
절대로 보통 심부름꾼은 아닌 이자는 대체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