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9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91)
Chapter 99. 전설이 깨어날 때
“무슨 소리냐, 케이라?”
홀시딘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여기 이분께서…… 헌터 길드에서 지급할 상금을 가져오셨다는데요…… 사천 닢, 금전 사천 닢이라고 하시는 거죠?”
케이라는 홀시딘을 향해 대답하면서 툴로쉬를 향해 다시 묻고 있었다.
제대로 들었는지 의아해 하며 상대방에게 제대로 말한 것이냐고 되묻는 소리였다.
이런 케이라의 말은 긴 탁자를 끼고 앉거니 서거니 한 상아탑의 마법사들의 눈과 귀를 바로 사로잡는 듯했다.
“뭐?”
“금전을―?”
“사천 닢을 바로!”
“그럴 리가!”
하얗게 질려 있던 조금 전의 상황을 잊으려는 듯이 각자 한마디씩 하려는 분위기였고 덕분에 조금 소란스러워지려 했다.
홀시딘이 바로 주먹을 들어 올리면서 마력의 파동을 일으키자, 그 분위기는 단숨에 꺼지는 듯했고 주먹에서 가운뎃손가락이 불쑥 튀어나오듯이 펼쳐지며 사납게 으르렁대는 목소리가 울리기가 무섭게 고요해지고 있었으니…….
“좀 닥치고들 있어—욧! 알드바인에 찾아온 손님 앞에서 추태 보이지 말라고! 자, 그러니까…… 누구시라고 하셨소? 미안하지만 이쪽 이야기에 너무 몰두해 있어서 잘 못 듣고 말았소만.”
한숨을 내쉬는 척하면서 음흉한 마음을 먹었다는 시늉을 하면서 상아탑의 마스터들을 향해 잔소리를 하고나서야 홀시딘의 눈길이 문가의 헌터 일행을 향했다. 조금 전에 케이라가 한 말을 되새기면서, 그 일행을 주욱 훑는 눈길이었다. 그런데,
“응? 당신……?”
홀시딘은 눈길을 망토로 어깨 아래를 두른 이를 향해 고정하며 의아해하다가 곧 황당해 하는 표정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표정에 툴로쉬가 그쪽을 흘깃하면서 빙긋 웃었고 알드바인 헌터 길드의 지부장은 뭔가 곤혹스러운 듯이 낯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런 홀시딘을 바라보며 망토를 두른 이는 담담하게 웃음과 함께 말한다.
“마스터 홀시딘, 우선은…… 이쪽 툴로쉬와의 일을 정리하고 우리끼리 이야기는 조용한 곳에서 따로 하지 않으시겠나?”
“……그래야겠군요, 마스터 블랙스미스! 정말 당신과는 따로 조용히 이야기해야겠어요. 음, 그러니까 툴로쉬라고 하셨소? 그래, 무슨 일로?”
홀시딘이 망토 두른 이를 향해 상당히 표정을 찌푸린 채로 대꾸하다가 불쑥 툴로쉬를 향해 묻는 말을 뱉고 있었다. 뭔가 아주 심란해서 조금 전에 들었던 소리를 전혀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라도 한 듯했다.
케이라는 이런 스승의 태도에 갸웃하면서 다시 한번 이 헌터 길드의 일행을 둘러봐야 했다.
홀시딘에게 의문을 던진 망토 두른 이, 마스터 블랙스미스라고 불렸으니 분명히 대공방의 장인 중에서도 달인(達人) 소리를 듣는 사람일 텐데 케이라에게는 낯선 얼굴이었다. 이제 겨우 서른 후반, 더 높이 잡아도 마흔에 불과한 정도로 보이는데 그 나이에 마스터 블랙스미스라 불릴 정도라면 굉장한 능력자일 터였다. 하지만 스승이 좁디좁은 인맥이 어느 범위에 있는가 잘 아는 케이라에게는 이 마스터 블랙스미스의 정체에 대해 전혀 단서가 없었다.
‘알드바인 대공방의 장인이 아닌데 아는 사람이 있다고? 헌터 길드 쪽으로는 여기 대공방과 지부 사람 말고는 거의 관심도 없고, 소문 속에서나 들으셨을 텐데? 얼굴 보고 아는 사람 중에 저런 나이에 마스터 블랙스미스라면 내게 분명히 몇 마디 하셨을 텐데?’
차분히 더듬어 봐도 역시 이 일행에 대해 케이라가 파악할 수 있는 바라고는 몸에 걸치고 있는 도구들이 하나같이 질좋은 마법을 내포하고 있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보다 지금 당장 스승에게 되새겨야 할 일은 따로 있기까지 했으니, 케이라는 일단 이 의문을 마음에 접어둔 채로 말한다.
“스승님, 금전 사천 닢이요.”
“……어? 어, 그런 비슷한 말이 나오기는 했지. 그건 기억한다만.”
홀시딘의 대꾸는 조금 삐딱하면서도 명쾌했다.
케이라는 그 태도의 의미를 알고 한숨을 쉬었고, 툴로쉬는 푸핫 하고 시원한 웃음과 함께 손짓했다. 그 손짓에 따라 알드바인 헌터 길드의 지부장이 끄응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나서니,
“금전을 직접 확인하셔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일단 세어보시고 나신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지요! 아, 그런데…… 사천 닢을 여기에 쏟아도 될까요?”
툴로쉬는 곧 바닥에 내려진 두 개의 상자 같은 가방을 열면서 유쾌한 기분을 그대로 담아 떠들고 있었다. 정작 가방을 들고 와 내려놓은 길드 지부장은 거의 울먹이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에게 신경 쓸 상황은 아예 없었다.
“싸들고 왔다고! 가방 둘에 금전 사천 닢! 당신, 정체가 뭐야! 이건 어떻게 생겨먹은 가방인데 금전이 그렇게 담겨!”
홀시딘이 기겁해서 외친 소리에 대회의장의 마스터들이 한꺼번에 탁자 위로 뛰어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바싹 일어나서 열린 가방을 기웃거리기 위해 소란을 떨며 시야를 높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째서인가 입술은 꽉 닫아 건 듯이 아무 말도 내지 않고 있기도 해서 그 소란을 보는 사람에게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할 지경이었다.
툴로쉬가 빙긋 웃었고, 케이라가 다시 한숨을 세게 내쉬면서 말한다.
“마스터 홀시딘! 진정하시고 보세요, 상아탑의 인장(印章)이 박힌 가방이잖아요.”
“어? 어, 그러네? 잠깐, 이런 생김새의 가방이라면…….”
홀시딘은 제자의 냉정한 말투가 핀잔을 주는 듯하다는 것을 느끼고 바로 볼이 살짝 붉어진 채로 진정하며 다시 금전이 차곡차곡 담긴 가방을 들여다봤다. 분명히 가방의 잠금쇠에 새겨진 고풍(古風)스럽고 확실하게 낡은 인장은 상아탑의 제조품인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문제는 요즘 이렇게 덩치 큰 마법 가방은 안 만든다는 것!
홀시딘이 기억하는 범위를 벗어난 골동품이었다!
세심한 케이라는 고전적인 물품목록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는 듯하지만…….
툴로쉬가 명랑하게 다시 말문을 연다.
“헌터 길드에서 옛날에 대량 주문했던 마법가방입니다. 음, 그러니까 아마 한참 대부호의 전 재산을 담을 금전 주머니 만든다고 소란스러웠을 무렵이라더군요. 여러 가지 시도 중에서 가장 범용성이 높고,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형태로…… 뭐, 덕분에 이렇게 크고 묵직한 녀석이 나왔다더군요. 그러니까…… 세어보셔야 할 텐데, 여기에 금전을 바로 쏟을까요? 아니면…….”
찰그랑거리면서 금전 몇 닢을 쥐었다 떨구며 툴로쉬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끌어내려고 있었다. 그런 시도와 별개로 금전의 압박은 마법사들에게 여러 가지 다양한 표정을 이끌어내고 있었지만!
홀시딘은 일단 숨을 고르고, 자신은 이보다 더한 금괴를 본 적이 있음을 되새기면서 이 정도에 끄덕할 리가 없다는 대담한 마음가짐을 갖추고서 제자에게 말한다.
“케이라, 좀 세어주겠니?”
억지로 턱을 치켜 올리면서 금전 앞에 당당하다는 시늉을 하는 스승을 보며 케이라는 눈가를 살짝 치켜세울 수밖에 없었다. 마치 만 닢도 안 되는 금전 앞에 기죽을 수 없다고 외치는 듯한 태도이기는 한데…… 엄청나게 뻔뻔한 그 속내가 훤히 보이면서도 왠지 애처롭잖은가!
“예, 가방의 금전을 여기에 쏟아 넣으세요.”
스승의 태도가 당연한 것이라는 듯, 케이라도 담담하고 당당한 자세로 작은 보자기를 꺼내서 뒤집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보자기는 톡톡 건드리는 순간에 널찍하게 펼쳐지면서 1미터짜리 모서리를 지닌 네모난 구멍처럼 변했다.
툴로쉬가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구멍의 깊이를 가늠하다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길드 지부장에게 재촉하며 가방 하나를 기울인다.
“자, 같이 쏟아보자고요!”
두 가방이 두 사람 손에 기울어지면서 차곡차곡 안에 쌓여있던 금전이 작은 산사태처럼 구멍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촤르―촤르르륵!
“이야, 과연 상아탑의 마법사시군요! 알아서 금전이 기둥을 쌓는군요!”
금전이 흐르고 부딪히면서 반짝거리는 채로, 엉망진창으로 구멍에 담기는 대신에 높이높이 치솟는 탑처럼 쌓이고 있었다. 툴로쉬가 감탄하는 사이에 케이라가 찰랑대는 금전의 쇳소리 사이로 짧게 말한다.
“백 개 단위로 쌓일 거예요. 그러니까…….”
“사십 개가 쌓이면 딱 사천 닢?”
홀시딘이 중얼거렸다.
툴로쉬가 바로 이 말을 받는다.
“이 가방의 규격 안에는 약 이천이백 닢의 금전을 담을 수 있지요. 이미 아시겠지만 가방이 꽉 채워졌을 때의 무게는 이십 킬로그램 정도 됩니다. 살짝 비운 채로 가져왔지만, 불타는 평야의 몰튼노트 기간틱과 그레이우드의 무쇠뿔 오우거까지 확인하고 총 사천백오십 닢의 금전을 둘로 나눠서 가져온 겁니다. 아, 두 곳을 확인하고 왔는데 쟈카라 산림의 거미 쪽도 정리하셨다고 하더군요? 그쪽은 이제 겨우 소식을 들은 참이라 아직 정산을 못했습니다. 그 정도는 기다려주실 수 있겠지요?”
“어…… 에, 그야 뭐…… 그런데, 누구시라고?”
홀시딘은 툴로쉬를 다시 훑어보고서는 저편에서 이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 마스터 블랙스미스라고 불렀던 이를 보며 묻고 있었다.
이 툴로쉬의 나이는 어떻게 봐도 아직 서른까지는 닿지 않은 듯했는데, 어째서인가 관록을 자랑하는 알드바인의 헌터 길드 지부장이 명령을 받으면서 모시는 듯한 상황이었다. 이름만 들어서는 대체 누군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니 그나마 홀시딘에게 설명해줄 사람을 고른 셈이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아무래도 이 독촉하는 눈빛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 같은 대답이 홀시딘을 향해 나온다.
“엘더즈. 툴로쉬는 헌터 길드의 엘더즈 중 한 명이야.”
“……음, 엘더즈면 은퇴해서 퍼브에서 노닥대며 허풍떠는 늙다리 헌터들?”
뚱하니 홀시딘이 중얼거리면서 다시 툴로쉬를 훑어내리는 눈짓을 했다.
대체 어딜 봐서 이 퍼릇한 청년이 퍼브의 늙다리 중 한 명이라는 것인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채로!
이에 툴로쉬가 뭐라 하기 전에 알드바인 헌터 길드의 지부장이 식겁한 표정과 함께 낮고 빠르게 속삭인다.
“마스터 홀시딘! 그 할배들 말고……! 그거, 그 전설―!”
홀시딘에게 이 소리는 제대로 닿지 못했다.
그 전에 뒤통수에 대고 ‘으읍! 읍! 으업! 으픗! 으흡!’이라고 요란한 소리를 당차게 질러대는 마스터 잘카탄 덕분이었다. 그야말로 나도 이 중에 제법 할배라고 주장이라도 하듯,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은 못하겠지만 이 주장만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듯한 괴성이었다. 물론 마스터 잘카탄이 그런 시답잖은 까닭 때문에 저럴 리는 없으므로, 홀시딘은 어쩔 수 없이 그쪽에 대고 묻는다.
“마스터 잘카탄, 하고 싶은 말은…… 침착하게, 진정하시고 목소리 높이지 말고 좀 해주시겠습니까?”
“푸핫! 젠장! 홀시딘, 엘더 헌터라고! 툴로쉬란 이름, 기억 못 하나! 그랜드 마스터 카티야 님의 시절에 상아탑에서 마기우스(Magius)의 반지를 부여받은 엘더 헌터! 몬스터 버스터 툴로쉬!”
“……잘카탄, 카티야 님이 돌아가신 지가 벌써 이백몇십 년이잖습니까? 마기우스의 반지가 무슨 영생(永生)의 마도구도 아니― 진짜? 잠깐, 마스터 블랙스미스 크라쉬! 당신도 그 엘더즈, 엘더 헌터라서 이십 년 전이랑 똑같이 늙지도 않은 그런 모습으로 알드바인에 돌아온 겁니까!”
한숨 쉬면서 잘카탄을 타박하던 홀시딘은 아직 잘카탄과 자신을 이어주고 있는 ‘진실의 매듭’의 마력을 느꼈고 그 요동 속에서 잘카탄이 진심으로 과거의 기록을 더듬어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저쪽에서 나중에 이야기하자던 망토 두른 이, 마스터 블랙스미스 크라쉬에게 적용시키자 저 모습이 뭔가 바로 이해가 된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헌터 길드의 전설이라는 엘더 헌터, 그들이 어떤 수단으로든 수백 년을 살아갈 수 있는 영생의 도구를 지녔다면 이십 년이 흘러서 노쇠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크라쉬가 예전보다 더 젊어진 듯한 자태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물론 크라쉬 자신도 엘더 헌터라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튀어나온 홀시딘의 말은 상아탑의 마스터들에게 분명히 충격을 줬다.
잘카탄이 자신만이 입을 열 수 있기 때문에 받는 동료 마법사들의 눈짓을 등에 업은 듯이 바로 묻는다.
“마스터 블랙스미스 크라쉬라고! 알드바인에 대공방의 기틀을 잡았다는 그 명장(明匠)! 마스터 엘투란이랑 동년배였을…… 나보다 더 늙었어야하잖아! 진짜야? 진짜 그 대공방의 위대한 장인 크라쉬요?”
저쪽에서 크라쉬는 한숨을 쉬면서 혀를 찼지만,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제 어쩔 거냐고, 이 난장판이 되어가는 분위기 어쩔 거냐고 홀시딘을 향해 약간 매서운 눈길만 보낼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마법사들의 요란스러운 반응을 무시한 채로, 툴로쉬가 스윽 얼굴을 홀시딘 가까이 붙여오면서 또박또박 우렁찬 소리로 묻는다.
“아까부터, 이 크고 좋은 상아탑의 대회의실에 들어서면서부터 계속 궁금했는데…… 여러분, 거의 전원이 마스터 랭크의 마도사이신 분들이 여기 모인 까닭이 그랜드 마스터의 인증(認證) 때문이었습니까? 마스터 홀시딘, 동급의 마스터 잘카탄을 비롯한 여러분을 확실히 위계 아래, 하위 서열로 대하시는 듯한데…… 그랜드 마스터로 인정받으신 건가요?”
홀시딘이 이에 답하기 전에 알드바인의 헌터 길드 지부장이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말도 안 돼에에―! 파나틱 플레임이―! 그 전설의 그랜드―!”
* * *
―이게 웬 난장판이냐? 인간들, 원래 이러고 노는 거냐?
‘……그럴 리가 있냐! 아, 씨―! 나도 뭔지 모르겠어. 일단 아라크녹스 왕의 거미줄이 쓸모 있는 모양이니까, 더 들어보자고.’
두 손에 작은 거미줄 무늬를 맺혀놓은 채로, 투란은 아라크녹스 왕의 능력에 집중해서 저 먼 상아탑 대회의장 안의 상황을 계속 엿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