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9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92)
“금전, 사천백오십 닢…… 한 닢당 중량도 꽤 정확하군요.”
케이라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울려 퍼졌다.
고요한 대회의장에서 이 목소리를 못 들은 이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알드바인 헌터 길드 지부장은 풀이 죽은 얼굴로 케이라의 눈치를 가장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가 파나틱 플레임이란 소리를 입에 담았던 순간, 케이라가 ‘금전 세는데 시끄럽게 굴지 마시죠!’라고 벼락같은 외침을 터뜨린 탓이었다.
그 외침에 슬쩍 묻어가는 것처럼 홀시딘도 ‘우리 진정 좀 하지요? 에, 일단 금전 좀 세고 나서 이야기하자고요’라고 케이라의 외침이 흘리는 메아리 흉내 내듯이 외쳐줬다.
덕분에 다들 일단 치솟았던 흥분을 가라앉힌 채로 기다렸다.
뎅그렁거리고 차륵거리는 금전 쌓이는 소리 속에서…… 기묘한 침묵 속에서도 다들 바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제 금전 세는 일이 끝났으니 누구라도 뭐라 해야 할 듯한데, 케이라가 구멍처럼 깊이 있게 펼쳐졌던 융단 보자기를 다시 손수건으로 만들려는 것처럼 접으며 말을 잇고 있었다.
“툴로쉬, 먼저 한 가지 여쭙도록 하겠습니다만, 괜찮으시겠지요?”
툴로쉬는 케이라가 완전히 접은 보자기가 허리에 매달고 다닐 정도 크기의 두툼한 가죽가방처럼 모양이 잡히는 것을 보고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딱히 감출 것이 없어 당당하다는 태도였다.
케이라의 물음은 누가 끼어들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바로 나온다.
“엘더 헌터이신가 아닌가 이전에…… 기가둠에서 오셨다고 했잖아요? 어째서죠? 우리가 알기로는 칠왕국…… 섀터드 세븐을 브로큰 킹덤으로 더 자주 호칭하는 그쪽 헌터 길드 본부에서 이쪽의 헌터 길드 지부는 완전히 독립하지 않았던가요? 여기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거의 관여할 수 없다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툴로쉬가 빙긋 웃으면서 먼저 알드바인의 헌터 길드 지부장을 바라봤다.
케이라의 이 물음에 누구보다도 지부장의 어깨가 축 쳐지고 있는 중이었다. 얼굴도 살짝 붉어지는 모습이 자기 입으로 헌터 길드의 사정에 대해서 말할 낌새가 전혀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툴로쉬가 대답을 한다.
“물론 그렇죠. 이쪽 칠왕국의 헌터 길드는 춤추는 산맥 전체를 아우르는 헌터 길드에서 독립했고 자치를 주장했었어요. 상금을 걸고 지급하고, 상아탑과의 연계도 독자적으로 유지하고 말이죠. 하지만 그 독립과 자치는 지급해야 할 상금을 지급하지 못해서, 독자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보물…… 옛날 헌터 선배들이 목숨과 맞바꿔 확보한 몬스터의 유물을 상아탑에 그대로 넘겨줄 처지라면 유지할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유물?”
케이라가 갸웃했다.
결국 툴로쉬의 등장, 알드바인과 인연이 있다는 저 이상한 크라쉬의 동반 또한 홀시딘이 ‘돈 내놔, 안 주면 현물로 털어간다!’라는 메시지에 대한 반응인 셈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칠왕국 헌터 길드가 간신히 쟁취했다는 그 독립과 자치에 대한 위협이라도 되었다는 것인가? 고작 유물 몇 가지의 보유를 지속하기 위해서 독립과 자치를 포기하고 손을 내민다?
아무리 깊이 생각하려고 해도 케이라로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때문에 케이라의 눈길이 흘깃 홀시딘을 향했는데, 홀시딘은 ‘음? 나도 잘 모르겠는데?’라며 제자와 함께 갸웃하는 표정이잖은가. 덤으로 그 뒤에서 서른 가까운 상아탑의 마스터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왜?’ 하는 의문을 공유하고 있으니!
툴로쉬가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띠고 홀시딘에게 묻는다.
“마스터 홀시딘, 만약 이 칠왕국의 헌터 길드에서 금전 사천 닢에 달하는 물품을 찾으려 한다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게 뭡니까?”
“응? 금전 사천 닢짜리 물품이라면…… 으흠…… 아니, 뭐 딱히 깊이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역시 유명해서 전설적으로 취급되는 걸로…… 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마도…… 붉은 드레이크의 심장이라든가 블랙 웜의 힘줄? 그 정도면 어딜 가서 환산하더라도 대강 금전 사천 닢은 되지 않으려나?”
홀시딘은 슬슬 주변 눈치를 보면서 특히나 저쪽에서 쓴웃음을 짓는 크라쉬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는 크라쉬가 한 손으로 자기 눈가와 이마를 움켜쥐면서 탄식 같은 소리를 하게 하니,
“역시 알고 있잖아. 게다가 둘을 묶어 사천 닢이라니…….”
홀시딘이 어이없어 하면서 대꾸한다.
“그건 다들 알고 있잖아요? 아, 그리고 원상태 그대로 보존 중일 테니까 사천 닢 맞지요! 가공돼서 가격 올라간 것도 아닐 테니까!”
툴로쉬가 이 말에 히힛 하는 듯한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상아탑의 마스터이시니, 그걸 보게 되면 바로 감정(鑑定)하실 수 있겠군요?”
“어? 그야 당연히! 물품감정은 상아탑의 중요한 업무니까, 특히나 여기 알드바인에서는 우리가 최종 확인자나 마찬가지이니…… 새로운 감정술이라 감정에 필요한 정보는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확인하고 있지요!”
“……매일 안 해?”
크라쉬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홀시딘이 움찔했고, 케이라는 못 들은 척했다!
다른 상아탑의 마스터들은 ‘아, 지적당했어!’라며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면서 이 알드바인의 마스터 둘을 말리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툴로쉬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로 말한다.
“어쨌든 그 오래된 유물을 감정, 판별해내는 데는 지장이 없으시군요. 그리고 그 둘을 보면 정말로 묶어서 금전 사천 닢으로 환산할 배짱도 지니셨고 말이죠. 그래서 칠왕국의 헌터 길드에서 도움을 청한 겁니다. 다른 곳도 아닌 알드바인의 마스터가 금전 사천 닢에 해당하는 물품을 털어가겠다고 말이죠.”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내가 무슨 강도도 아니고, 상금지급을 늦추지 말라고 한 것뿐인데! 내가 대신 받아가야 할 현물을 찾는다고 해봐야 멀리 가지도 않을 테고, 겨우 이 알드바인 대공방에서 꿍쳐놓은 거나 노려 볼― 엥?”
홀시딘이 뭔가 자신에 대한 변명처럼 늘어놓다가 말을 멈췄다.
놀란 눈길로 홀시딘이 툴로쉬를 보다가 지부장 쪽을 봤다.
홀시딘의 등 뒤에서 잘카탄의 느릿한 목소리가 노련하게, 분명히 놀란 낌새를 담은 채로 울려 퍼진다.
“과연 그렇게 된 거로군. 일곱 나라의 왕가에서 그렇게 열심히 길드 지부를 뒤져도 어느 나라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더니……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자치도시 알드바인에 가져다 놨었나…….”
“언제부터!”
홀시딘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물었다.
툴로쉬는 이 짧은 물음에 담긴 의미를 바로 알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초대 마스터 펠카윈 님 시절이었을 겁니다. 원래 경계도시 쪽으로 조심스럽게 옮겨가면서 숨기고 있었는데 너무 위험해서 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아다녔거든요. 마침 이 알드바인에 패기와 담력이 넘치는 마스터 한 분이 관례에는 어긋나지만 규정에는 어긋나지 않는 상아탑 건립을 시도한다는 소문에 바로 옮긴 모양입니다. 뭐, 알드바인이 불안해지면 또 다른 곳으로 옮길 작정이긴 했던 모양인데…… 알드바인은 백 년에 걸쳐 안정적인 형태를 갖췄고, 어쩌다보니 대공방까지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죠. 길드의 자치독립을 상징하는 유물을 두기에 가장 적절한 곳이 된 셈이죠. 물론 갑작스러운 알드바인 마스터의 위업에 자치독립의 상징이 영혼까지 털릴 지경이 될 줄은 몰랐겠지만!”
마법사들을 향해서, 뭐든 깊이 파서 알고 싶어하는 그 요청에 응한다는 듯이 길게 나온 이야기였다.
이에 대해 홀시딘은 아주 짧고 강렬한 외침으로 반응했다.
“맥센! 이 죽일 놈―! 화룡(火龍)의 심장혈(心腸血)이 있었으면―!”
“있었으면 뭐? 금단(禁斷)의 소환술을 진작에 써서 불타는 평원을 정리했을 거라고?”
잘카탄의 깊고 엄격한 목소리가 홀시딘의 말을 뚝 잘랐다.
홀시딘이 흠칫하면서 잘카탄 쪽을 돌아봤고, 잘카탄과 똑같이 엄격한 눈빛을 뿜어내는 서른 명의 상아탑 마법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뭐라 하기에는 꽤 곤란한 분위기여서 홀시딘도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알드바인 헌터 길드의 지부장 맥센은 죽었다 살아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툴로쉬가 흥미롭다는 듯이 묻는 소리를 낸다.
“없어서 못 쓰시긴 했는데…… 있었다면 마법사의 목숨까지 필요하다는 소환술을 쓰실 작정이셨나요?”
“아냐! 난 상아탑의 마법사야! 금기를 범하지 않아! 목숨까지 버리는 금단의 소환술이라니! 아, 목숨 아까워서 못 쓰지!”
홀시딘이 잽싸게 고개를 저으면서 외쳤다.
케이라는 스승의 그런 모습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을 쉬었고, 다른 마법사들은 ‘저런 거짓말쟁이!’라고 입모양을 만들면서 전혀 믿지 않는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툴로쉬가 히죽 웃었고, 저쪽에서 크라쉬가 대놓고 비웃는 소리를 한다.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하지그래?”
홀시딘은 왠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항의하듯이 대꾸한다.
“마법사니까!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일단 한번 생각할 수는 있는 거잖아요! 실행하지 못하는 방법이라도!”
크라쉬는 고개를 흔들면서 못 말리겠다는 듯, 다른 곳에 눈길을 둔 채로 한마디 더 중얼거린다.
“그런데 바로 화룡의 심장혈이란 소리가 나와?”
“가능성! 가능성만 검토했다니까요!”
홀시딘이 다시 변명하면서 억울해 하는 척했고, 케이라는 스승이 이렇게 징징대는 모습을 그만 보겠다는 듯이 큰 목소리를 내어 툴로쉬에게 묻는다.
“툴로쉬, 그러니까 알드바인에 숨겨둔 옛 유물이 위태로워서 금전을 들고 오시게 된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엘더 헌터시라고요? 옛날 그랜드 마스터 카티야 님과도 친분이 있다는 그 툴로쉬, 바로 그 엘더 헌터라면 혹시 우리에게 증명할 방법도 있으신가요?”
“엘더 헌터 중에서 툴로쉬란 이름은 오직 하나, 나 말고는 없어요. 뭐 이제까지 툴로쉬란 이름을 지닌 사람도 본 적은 없군요. 하지만 이런 말보다는…… 어디 보자…….”
툴로쉬는 허리에 손을 꽂듯이 수욱 집어넣었고, 배 속이라도 뒤지듯이 손을 움직였다. 입고 있는 갑주 위쪽의 봉제선 틈새로 들어간 그 손을 보면서 마법사들이 살짝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매끈하고 전혀 낌새가 없었는데 그 틈을 이용한 마법의 호주머니가 거기 있다니…….
“아, 여기 있다. 하도 오래 넣어두고 빼질 않아서.”
툴로쉬가 손을 빼서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은색 광택이 짙은 굵은 쇠반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채로 툴로쉬가 아직 끙끙거리는 표정으로 ‘난 가능성만 검토했을 뿐이라고!’ 하며 꿍얼대는 소리를 흘리는 홀시딘에게 말한다.
“그랜드 마스터 카티야께서 내게 이 반지를 주실 때 부탁한 일이 있었지요. 언젠가 다시 상아탑에 그랜드 마스터가 되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 이걸 주고 새로운 반지를 받으라고 말이죠. 마스터 홀시딘,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오늘 그랜드 마스터가 되신 거, 맞습니까?”
“어? 어으―! 아니, 그게…… 마법의 기량을 따져서 그랜드 마스터로 인정받았다거나 뭐 그런 게 아닌데…….”
홀시딘이 반지를 보다 흠칫해서 말을 더듬으며 흘깃거렸다.
잘카탄은 그런 홀시딘을 향해 혀를 차고 입술을 삐죽이며 말한다.
“그런 걸로 인정한 적도 없지. 하지만 어쨌든…… 우리와 위계서열을 놓고 벌인 내기에서 이긴 셈이기는 해도, 일단 여기 있는 우리보다 상위 서열자가 된 거는 사실이라네. 그 반지가 정말 마기우스의 링인가?”
슬쩍 덧붙여지는 물음에 툴로쉬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 툴로쉬는 손바닥 위의 반지를 집어 올려서 여러 사람 앞에 한번 스윽 들이대듯이 보여주고는 바로 주먹 쥐고 세운 엄지에 끼웠다. 반지를 낀 엄지가 까닥하는 순간,
“으어워어!”
마법사들 입에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괴성이 터져 나왔다. 폭풍처럼 대회의장을 채우는 강대한 마력, 그 질량에 놀란 감상이었다. 이렇게 마법사들을 한꺼번에 놀라게 한 마력은 툴로쉬의 엄지로부터 짙은 은색의 빛을 끌어올려 커다란 형상을 또렷하게 허공에 이뤄냈다. 그 은색의 형상은 섬세한 표정을 지닌 여인의 모습이었고, 말을 하고 있었다.
“툴로쉬, 내가 어떻게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는지 알아? 나의 이 미모, 여성으로서의 매력에 여자 구경도 못해본 채로 폭삭 늙어가가는 상아탑의 마스터, 남자들이 홀랑 반해서 무릎 꿇어준 덕분이지! 그러니까 상관없어. 지혜를 썼든, 담력으로 찍어눌렀든…… 아니면 사기도박을 했든 상관없어. 최소한 열 명, 가능하다면 스무 명 이상의 마스터에게 상위 서열로서 인정받은 마스터 랭크의 마법사라면, 그랜드 마스터인 거야. 그러면 상아탑이, 우리 상아탑이 그에게 호응해 준다고. 뭐 그걸 느끼고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고 고생할 수 있기는 해. 그래서 이걸 툴로쉬에게 맡기는 거야. 이 마기우스의 반지, 이걸 다음에 나타날 그랜드 마스터에게 전해줘. 내가 거친 시행착오를 단축시켜줄 테니까. 응, 그래. 꼭 왼손 약지에…… 넷째 손가락에 살포시 끼워줘야 해!”
툴로쉬는 강대한 마력으로 이뤄진 형상이 말을 하는 사이에 넋 놓고 바라보며 구경하는 마법사들, 그 중에서 특히나 바로 앞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에 가장 놀라고 있는 홀시딘에게 슬쩍 다가가 그 왼손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턱하니 옮겨 끼워줬다.
케이라가 퍼뜩 그 광경을 알아차린 듯, 황당해 하는 기분을 그대로 담아 소리친다.
“그거, 약혼반지? 아니, 결혼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