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9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94)
―주먹 쥐었다가 가운뎃손가락만 세우는 동작에 무슨 의미가 있나?
‘응? 아마 욕하는 손짓일걸?’
―아마?
‘브로큰 킹덤 쪽에서 욕질이라고 하던데…… 잘 몰라. 샤오 마을에 왔던 헌터 중에 브로큰 킹덤 출신 얘기를 할 때 얼핏 나온 말인데, 손짓이 달라서 욕을 하는 건지 아닌지 애매한 짓을 자주 하더라고 들은 적이 있을 뿐이라.’
―거참, 입으로 하는 욕이 아니라 손짓으로도 욕을 하는 건가.
‘엥? 너넨 손짓으로 욕하는 거 없어? 당장 널 죽이겠다느니 하는 손짓 정도는 있을 텐데?’
―위협하는 손짓은 있다만, 딱히 공들여서 욕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 흐음…….’
갸웃하면서 투란은 손바닥 위에 맺힌 거미줄의 무늬에 집중했다.
이 무늬와 똑같은 무늬가 나노미터 단위의 미세한 거미줄로 홀시딘의 옷자락, 목덜미, 어깨 등의 곳곳에 맺혀 있었다. 아라크녹스의 왕을 쓰러뜨린 다음에 갑작스럽게 도달한 케이라 때문에 홀시딘이 짧은 동안에 소란을 피웠을 그 때, 투란은 막 삼킨 왕의 성향에 엉겁결에 반응해서 그런 거미줄 무늬를 남겨놓고 말았다. 하지만 거의 살갗에 옷자락에 스며든 그 거미줄 무늬가 무슨 짓인가, 투란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홀시딘이 잠에서 깨면 바로 이것저것 알려달라고 졸라볼 작정으로 벼르면서 반복적으로 연락을 하다가 투란은 깨어난 홀시딘 주변에 심상치 않은 마력의 소유자들이 잔뜩 있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거미줄 무늬를 느꼈다.
투란이 홀시딘 주변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순간, 이 호기심에 왕의 능력이 바로 반응한 것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은밀하게 스며있는 거미줄 무늬를 자기 손에 맺히게 했고 저쪽과 공명시켰다. 그 울림을 통해 저쪽의 상황을 엿보고 엿들을 수 있다는 것을 겨우 알아차린 셈이었다.
거기에 드라고니아도 슬쩍 가담해서 윌 라이트를 덧씌웠고, 마력을 거의 노출시키지 않는 의지력의 단계를 유지하며 보다 세세하게 저쪽의 상황을 엿보는 일에 동참했는데…… 보고 듣더라도 그 의미가 애매모호한 일이 가득 벌어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이게 무슨 일인가를 보고 들어 나중을 위해 기억이나 해두는 꼴이 되었는데…….
“응?”
―엇?
돌연 거미줄 무늬 하나가 오그라들며 꺼졌다.
그것은―.
* * *
“이야, 쟈카라 거미 떼랑 아주 격렬하게 다투셨나보군요! 여기 자카라 먼지가 남은 것 같군요!”
뭔가 깊이 아부하는 듯한 태도와 자세로 툴로쉬가 홀시딘의 어깨, 팔뚝을 톡톡 터는 시늉을 하며…… 살짝살짝 스쳐서 정말로 털어주고 있었다.
홀시딘이 하필이면 왜 손가락 세우는 광경 따위에 그리 깊은 인상을 받았냐고, 입술을 깨물면서 노려보는 표정에 대한 대답이었다. 은근하게 손짓 사이로 전해오는 힘은 홀시딘의 마력에도 미묘한 자극을 주고 있었다. 가벼운 동작 속에서도 엘더 헌터가 지닌 순수한 강인함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의도인가 싶었고, 덕분에 홀시딘은 문득 이런 엘더 헌터가 나섰다면 투란이 갑작스럽게 나타나주지 않았더도 불타는 평야라든가 그레이우드의 오우거를 정리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의문까지 품을 수 있었다.
“……굳이 여기까지 엘더 헌터가 올 까닭이 따로 있지 않소?”
불쑥 튀어나온 홀시딘의 물음은 잠시 대회의장에 색다른 침묵을 불러왔다.
마법사들은 다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럴듯한데?’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홀시딘의 의문에 동감하는 듯했다. 하지만 알드바인 헌터 길드 지부장인 맥센은 매우 난감하게 표정을 구기면서 고개를 젓고 싶은 듯이 보였고, 이를 케이라가 짚어내듯이 묻는 소리를 잇는다.
“맥센 지부장, 엘더 헌터와 친분이 깊으신가요? 이럴 때 바로 도움을 청할 수 있다니…… 대단하신데요?”
“헛? 마스터 케이라,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화들짝 놀라면서 맥센이 바로 부정했다.
툴로쉬가 대놓고 나오는 자신에 대한 의문에 웃음을 더 짙게 품은 채로 느긋하게 대답을 한다.
“도움을 청하기는 했지요. 칠왕국 헌터 원로단이 대표로 말이지요. 상금을 지급할 능력이 안 되니까, 이쪽 독립과 자치의 상징이…… 몬스터 헌터의 긍지가 털릴 지경이라고 도와달라고 말이죠. 춤추는 산맥 헌터 본부에 그렇게 지원을 요청했어요. 대신…… 다시 본부 휘하의 브로큰 킹덤 지부로서의 역할을 하겠다고 말입니다.”
“에, 예…… 그렇게 된 거라고…… 찾아오는 분들 잘 모시라고 연락이 들어왔었거든요. 그래서…….”
맥센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면서 툴로쉬의 말이 맞다고 강조했다.
케이라가 갸웃하며 홀시딘을 바라봤고, 홀시딘 또한 갸웃하면서 툴로쉬를 미심쩍은 눈길로 바라봤다. 이에 툴로쉬는 ‘진짜거든요?’라고 어쩌겠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는데,
“이번 일을 핑계 삼았다는 말이군요. 알겠어요. 확실히 왕궁에까지 압박이 들어간 일이니까, 꽤 괜찮군요.”
발테스가 목소리를 조금 높여서 말하고 있었다.
홀시딘과 케이라가 발테스를 바라봤다.
그런데 발테스뿐 아니라 다들 ‘아, 그런가?’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잖은가.
마치 상아탑의 마스터들에게 뭔가 납득할만한 일이라는 듯.
단지 알드바인의 두 마스터에게만은 어리둥절할 일인 듯했다.
발테스는 그런 홀시딘과 케이라를 향해 쓴웃음과 함께 곧바로 씁쓸한 표정을 띤 채로 말해준다.
“경계도시랑 거의 마찬가지인 알드바인에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이지. 하지만 그래도 가끔 느끼고 있잖아. 왕국에서 상아탑을 향해 이런저런 일을 억지로 떠넘기려 한다는 것…… 헌터 길드 쪽에서 겪는 일은 우리보다 좀 더 심하다고 해야겠지. 독자적으로 상금을 적립할 여유조차 없으니까 말이야. 덕분에 상아탑에 상당한 빚을 진 상태야. 그러나 이번 일은 상아탑에 뭘 돕고 어쩌고 할 여지가 없으니까.”
뭔가 에둘러 말하는 분위기에 홀시딘은 고개를 갸웃했고, 케이라는 그래도 어느 정도 알아들었다는 듯이 스승에게 설명을 보충한다.
“세금이요. 헌터를 상대로 왕국에서 세금을 계속 올리고 있어요. 일곱 나라 전부가…… 게다가 몬스터의 잔여물이 나오면 이전처럼 길드 내에서 처분하게 그냥 두지도 않는다네요. 왕궁 쪽에서 먼저 검열을 해서 선별해 간 다음에 남는 걸 길드에 넘겨준다는군요. 상금의 적립도 아예 왕국 금고를 이용하라고 강요하고…… 필요할 때 내준다고 하고서는 내주지 않아 줘야 할 상금까지 지연시키는 일이 잦다고 했어요.”
“……그게 뭐 하자는 짓이야?”
홀시딘이 낯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툴로쉬가 이에 바로 웃음을 거둔 채로 진지하게 말한다.
“귀속하길 바라는 겁니다. 헌터 길드가 왕국에 소속되어서 왕궁의 명령에 따르도록 말입니다.”
“에? 왜 그런 멍청한 짓을?”
어이없어서 뭐라 할 말이 없다는 듯이 홀시딘의 낯이 한층 더 구겨졌다.
툴로쉬는 그런 홀시딘을 보면서 다시 빙그레 웃는 낯이 되었다.
“몬스터 헌터를 단순히 강력한 힘을 지닌 사람으로 착각해서 그렇지요. 강력한 힘을 지닌 누군가 나라의 힘이 되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 겁니다. 강력한 힘에 풍요로운 재물, 나라를 다스리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손에 넣어둬야 안심이 되는 거죠. 단지 왕궁에 속한 자뿐 아니라,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까지 그걸 당연히 여긴다면……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겁니다. 단지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 몰두하는 작자들로서는 말이죠.”
“그래서 섀터드 세븐의 헌터 길드 원로단이 모였고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내린 결정이…… 다시 브로큰 킹덤의 헌터 지부가 되는 것이라, 그렇게 된 겁니까?”
발테스가 확인하겠다는 듯이 물었다.
툴로쉬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뭘 어찌할까 한참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마침 알드바인으로부터 현상금을 내놓으라는 호쾌한 연락이 온 거지요. 길드뿐 아니라 왕국에서도 각자 내놓아야 할 상금인 데다가 요청한 쪽이 상아탑이라 다른데 손 벌리기도 애매해졌다는 핑계로 말입니다.”
낯을 찌푸린 채로 홀시딘은 눈을 조금 더 가늘게 해서 툴로쉬에게 묻는다.
“뭐 대강 어떤 사정이 얽혔나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런 일이라고 해도 전설로 거론되는 엘더 헌터가 직접 알드바인까지 온 거는…… 다른 일이 정말 없어요? 이건 온 김에 걸려서 그냥 처리한 일 같은데…….”
손등부터 손목으로 이어지는 암밴드, 스펠 밴드를 슬쩍 들어보이며 묻는 소리이기도 했고, 툴로쉬는 머리를 벅벅 긁적이면서 잠깐 상아탑의 마스터들을 둘러보고 슬쩍 맥센도 보고, 크라쉬도 본 다음에 느릿하니 입을 연다.
“카티야님의 부탁까지 해결한 거는 정말 덤이기는 하고요…… 사실은 개인적으로 많이 감사하고 싶어서 왔다고 해야겠죠.”
“응? 개인적……?”
홀시딘이 눈을 조금 크게 뜨며 갸웃했다.
케이라도 ‘설마 스승님이랑 이전부터 아는 사이?’ 하는 눈빛으로 갸웃했다.
상아탑의 마스터들도 ‘개인적?’ ‘과연 그랜드 마스터!’라고 제각각 온갖 추측을 하는 분위기였다.
거기에 대고 한편에서 가만히 보던 크라쉬가 헛기침을 조금 세게 하면서 벽을 향해 말하듯이 중얼거린다.
“거참, 말 돌리기는…… 그 평야에다가 거인을 쑤셔 박은 장본인이라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털어놓으면 되는 일을…….”
잠시 홀시딘은 눈을 깜박였다.
케이라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들 사이에서 묘한 침묵이 맴돌았고, 조금 뒤에야 입술이 달싹거리며 마스터 블랙스미스의 말에 대한 반응이 뒤늦게 나온다.
“……응?”
“음?”
“책임?”
“거기 거인……?”
툴로쉬가 그런 반응에 머리를 조금 더 세게, 사납게 긁적거리면서 재빨리 말한다.
“아니, 그게 완전히 책임질 일은 아닌데 말이죠…… 대거인을 쓰러뜨린 자리에 몰튼노트가 깃든 것도 수십 년 뒤의 일이었고…… 나름대로 큰일 없도록 아주 깔끔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설마 땅에 스며있던 대거인의 피를 몰튼노트가 그렇게까지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거죠. 아, 게다가 카티야 님도 할 수 있는 처리는 완벽하게 했다고 인정해주셨던 일이라…….”
“거기 파묻혀 있던 대거인이……! 그게 당신 짓이었어!”
홀시딘이 버럭 소리쳤다.
툴로쉬의 고개가 재빨리 저어졌다.
“나 혼자 한 짓은 아니에요! 혼자 신장 백 미터에 달하는 대거인을 잡았을 리가 없잖아요! 내가 속해 있던 헌터 파티, 바로크 왕국에서 파견 나와준 몬스터 로드랑 솔로얀의 원정기사까지 함께 해서 간신히 잡았다고요! 물론 그랜드 마스터 카티야 님도 함께 했고 말이죠! 아, 카티야 님은 아직 그랜드 마스터가 되기 전이었던가?”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고요해졌다.
홀시딘도 버럭 소리친 다음에 들은 이야기에 몸과 마음이 굳어지기라도 했다는 듯이 멍하니 다음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툴로쉬가 엘더 헌터이며, 삼백 년 전의 상아탑을 주름잡았던 그랜드 마스터 카티야의 선물을 가져왔다는 것도 분명히 확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거인 사냥에 나섰던 몬스터 헌터라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였던 것이다.
툴로쉬는 이 분위기에 뭐라 해야 하나 잠시 곤란해 했는데, 케이라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울려 퍼진다.
“대거인의 난동에 대해서는 기록에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러졌는가에 대해서는 기록에 없어요. 몰튼노트가 깃들기 전에 거기 대거인이 파묻힌 것도 몰랐을 정도니까요.”
“어, 거기 대거인이 파묻힌 일이 없으니까 기록할 일이 없었던 거죠. 그 땅속 깊이 대거인의 피가 스며있던 것뿐이에요. 뼈와 살, 대거인의 유체는 카티야 님이 주도해서…… 바로크의 몬스터 로드가 그 정수를 삼켜 없애고 남은 부분을 깨끗하게 정리했거든요. 그 스며있던 피만으로도 몰튼노트가 거인의 형상을 다시 구성해낼 줄은 몰랐던 거고…… 몰튼노트가 거기 스며들 일이 생길 거란 예상도 못 해서 말이죠.”
“그렇군요. 그랬겠지요.”
어쩐지 툴툴거리면서 변명하는 듯한 툴로쉬의 이야기에 케이라가 잠시 귀를 기울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스승을 바라봤다. 홀시딘도 이제 기분을 정리하고 추스른 듯이 말한다.
“그런 일이라면…… 굳이 책임감을 느낄 일은 아닌 것 같소만…… 꽤 신경 쓰고 있었던 모양이시오?”
툴로쉬는 이에 어색한 웃음을 떠올렸고, 크라쉬가 저쪽에서 다시 피식 하는 소리로 대꾸를 한다.
“헌터의 불쌍한 습성이지. 자신이 쓰러뜨린 몬스터가 어떤 몰골이 되든 돌아오는 꼴은 참기 힘들어하거든. 게다가…… 그 사냥 파티 중에 살아있는 이는 이제 자기 혼자니까. 파티 멤버들의 염원을 혼자 짊어진 입장이라는 거지.”
“아, 크라쉬 그만 좀 해요!”
민망해 하는 툴로쉬를 향해 크라쉬는 혀를 낼름거렸다.
홀시딘은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왠지 툴로쉬를 놀리는 듯한 모습이지만 홀시딘이 보기에는 크라쉬도 어쩐지 비슷한 생각으로 온 듯하잖나. 슬쩍 떠보는 말이 바로 홀시딘의 입에서 나온다.
“크라쉬, 이렇게 돌아온 것은…… 엘더 헌터라는 사실을 밝히려고 온 거는 아닐 테지요? 알드바인에 뭔 일입니까?”
“응? 나? 나야…… 알드바인이 재밌을 것 같아서 왔지. 무쇠뿔 오우거의 유체, 챙겨 왔겠지? 그리고…… 거미 떼를 들쑤셨다니, 그 망할 아라크녹스 일당의 껍질이나 거미줄도 좀 챙겼을 것 아닌가? 뭐, 예전에야 툴로쉬의 부탁 때문에 왔던 거지만 이번에는 순수하게 내 호기심이야.”
“……부탁?”
홀시딘이 크라쉬의 말에 툴로쉬를 바라봤다.
크라쉬는 이곳에 대공방의 기틀을 마련해줬다.
그것이 툴로쉬의 부탁 때문이었던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