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9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95)
“그건…….”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 같군요. 스승님, 크라쉬 님과 옛날 이야기는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스승님 개인 집무실에서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쨌든 다른 분들에게는 스승님의 사적인 이야기가 지루할 테니까요.”
크라쉬가 막 입을 떼려는 순간, 케이라가 목소리를 높여 빠르게 말했다.
크라쉬는 입을 다물었고, 툴로쉬는 하하거리는 웃음을 흘리면서 재미있어 했다.
홀시딘은 ‘응?’ 하다가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스터 잘카탄은 느닷없이 흘흘 하는 웃음을 흘리면서 잽싸게 케이라의 말에 대해 반발을 하는데,
“허헐! 흐흘흘! 지루하기는! 아무도 지루해 하지 않을 거야! 그냥 하던 이야기인데 여기서 마저 해도 괜찮소이다! 마스터 엘투란 시절에 이곳에서 맹활약을 했던 마스터 블랙스미스 크라쉬의 이야기잖소?”
여기에 발테스가 날렵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보태 말하니,
“그랜드 마스터의 사적인 이야기를 지루해할 상아탑의 마법사가 있을 리가 없지! 게다가 알드바인 대공방을 일으켜 세웠다는 전설적인 블랙스미스랑 대화를 재미없어 할 리가! 그냥 여기서 마저 이야기하면 안 되겠…… 음, 마스터 케이라?”
호기심이 거의 탐욕 수준에 이르렀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대고 있는 긴 탁자 주변의 분위기를 향해 케이라의 눈길이 얼음화살로 이뤄진 소나기처럼 뿜어지고 있었다. 넉살좋게 떠들던 발테스도, 몇 마디 더 하려던 잘카탄도 잠깐 말문이 얼어붙어 닫히는 기분을 느낄 지경이었다!
케이라는 그 분위기를 더욱 혹한(酷寒)의 상태로 몰아붙이겠다는 듯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한다.
“다들, 아주 바쁘신 마스터시잖아요? 볼일 다 보신 상황일 텐데…… 이제 그만 돌아가시는 게 어떠신가요?”
움찔거리는 마스터들 사이에서 이 차가운 권유에 대항하는 소리를 낸 이는 바르텔이었다. 몇 마디 하고 잘카탄의 뒤로 조용히 물러서 있다가 다들 입이 언 벙어리가 된다 싶은 순간에 불쑥 나선 것이다.
“여기 오신 분들은…… 각자의 상아탑에서 가장 한가한 마스터랍니다, 케이라. 알드바인과 다르게 대부분의 상아탑에는 십여 명의 마스터 랭크 마도사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마스터를 파견하고 난 빈 자리는 남은 마스터가 알아서 해줄 테니, 바쁘지 않아요.”
간단히 바쁘지 않다고 하면 될 말을, 길게 이것저것 덧붙여 강조하는 바르텔의 모습은 아주 진지했다. 여기에 케이라가 다시 대꾸하면 보다 진지하게 논쟁이라도 할 듯한 자세가 매우 풍부하게, 신중하게 드러나는 태도가 넘쳐나는!
물론 케이라는 이런 상황에서 물러설 생각 따위는 전혀 없는 듯한데, 홀시딘이 한숨을 쉬고 말한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들 하라고. 몰래 중요한 일을 의논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그런 이야기를 할 마스터 블랙스미스가 아니니까. 그렇지요, 크라쉬 님?”
“홀시딘…… 어울리지 않게 우리 사이에 뭔 예의인가? 그냥 옛날처럼 하라고. 상아탑의 마스터답게!”
크라쉬는 홀시딘의 추켜세우는 듯한 공손한 말투에 몸이 근질거려 힘들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홀시딘이 혀를 차는 시늉을 하며 대꾸한다.
“크라쉬, 운 좋아 중급 인증을 받은 애송이 마법사가 아니니까 조금 존중해달라고요! 이전보다 늙지도 않은 꼴로 그런 소리 하니까, 소름 끼쳐요!”
“소름은 무슨―! 아, 이거 역시 우리가 얘기를 늘어놓으면 사적인 대화로 흐를 수밖에 없구만? 과연…… 마스터 케이라, 그대 의견을 따라야겠군요. 하핫.”
옛날처럼 편하게 말하던 크라쉬는 문득 케이라의 서늘한 눈길을 보고는 알아차렸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툴로쉬가 히힛 하고 재미있어 하고 맥센이 멍하니 바라보는 꼴, 거기에 번뜩거리는 상아탑 마법사들의 눈빛이 겨우 부담으로 느껴진다는 듯한 표정인 채였다.
이에 대해 다시 긴 탁자 주변으로 안고 선 마법사들, 잘카탄을 비롯해서 몇 명이 적극적으로 뭐라 하려는 순간 케이라가 말한다.
“아무래도 잊고 계신 듯한데, 여러분은 지금 바쁘십니다. 열여섯 상아탑 루트에 연락을 서두르셔야 하는 일부터, 헌터 길드에서조차 기한 전에 낸 보상금에 대해서도 빨리 의논을 하셔야죠. 현물로 내놓으실 거라면, 제 스승님이 가기 전에 알아서 선별해 보내는 편이 더 좋지 않겠어요?”
곧바로 마법사들 사이에서 침묵이 맴돌았다.
계속 바쁘지 않다고 할 참이라면, 아예 바쁜 일 속에 던져주겠다는 케이라의 심술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인데…… 이게 전혀 틀린 이야기가 아니잖은가!
엘더 헌터의 등장으로 잠깐 잊고 있었는데, 현상금도 그렇지만 홀시딘이 그랜드 마스터의 위계를 갖춘 일 또한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반드시 확인할 것도 있었으니,
“음, 어…… 마스터 홀시딘, 진짜로 현물로 받아가려고?”
발테스가 그래도 그나마 홀시딘과 교류가 있다는 입장인지라 대표 격으로 묻고 있었다. 다들 귀를 쫑긋하며 이 대답에 집중하는 듯한데,
“음? 당연하지! 상아탑의 마스터가 그런 걸로 농담할 수는 없잖아? 진짜로 필요하니까 받아오려는 거라고! 이쪽도…… 이래저래 상당히 소모한 부분이 많단 말이야!”
홀시딘은 단호하게 외치고 있었다.
돈 안 주면 정말로 현물로 털어오겠다고!
짜악!
케이라가 세게 손뼉을 쳤다.
“어서 움직이실 때가 아닌가요? 알드바인에서 올 소식을 잔뜩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에요.”
바로 덧붙여진 케이라의 목소리에 마법사들은 대부분 힘이 쭉 빠진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홀시은은 홀가분하다는 듯이 외친다!
“내 방으로 가지요. 크라쉬, 툴로쉬…… 맥센, 자네도 가려나?”
“예? 저요? 저는…….”
툴로쉬와 크라쉬가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맥센은 당황했다.
툴로쉬가 빈 가방 둘을 맥센에게 넘겨주며 말한다.
“지부장님은 길드로 돌아가서 기다리는 게 좋겠지요. 물론 이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일단 입을 다물고 기다리세요. 알드바인의 그랜드 마스터와 이야기가 끝나는 대로 바로 찾아갈 테니, 우리 일은 그때 다시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때까지는 입 꼭 다물고 계셔요.”
“네…….”
맥센이 금전이 홀랑 사라진 탓에 아주 가벼워진 가방 둘을 품에 안으면서 한숨처럼 대답했다. 꽉 차 있을 때는 합쳐서 거의 40킬로그램의 무게가 팔뚝에 묵직하니 느껴졌지만, 이렇게 비어버리니 이젠 마음이 엄청나게 무거워졌다는 표정이었다.
“아핫, 정말로 쟈카라 산림에서 험하게 싸우셨나봐요?”
툴로쉬는 다시 앞에서 둥실 떠가는 홀시딘의 로브 끝자락을 톡톡 털며 방실거리는 웃음과 함께 말하고 있었다. 그 곁에서 크라쉬가 ‘아, 그만 좀 해!’라고 투덜거리는 중이었고, 홀시딘은 좀 더 빠르게 앞으로 움직여서 소름 돋게 하는 그 아부하는 손짓과 목소리를 피해내려 했다.
케이라가 앞장 선 이들의 뒤를 따라 집무실에 들어서면서 문을 닫아걸었다.
홀시딘이 손짓했고, 벽에서 의자 둘이 나와 책상 앞에 자리잡았다.
“음, 일단 앉으시고…… 케이라?”
“이 금전은 스승님이 갖고 계셔야잖아요?”
묻고 싶은 것을 먼저 물으라는 홀시딘의 부름이었지만, 케이라는 그보다 먼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둘둘 말린 가죽 보자기를 내밀고 있었다. 홀시딘은 이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면서 얼른 대답한다.
“그래, 그래야지! 아, 그런데 이거 다루는 키워드는…….”
“금고 여세요.”
“엥? 아니, 보자기를…….”
“금고 여시라고요!”
케이라는 결코 자신의 마법 보자기를 스승에게 맡길 생각이 없다는 것을 단호하게 드러냈고, 홀시딘은 몹시 실망했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홀시딘은 결국 책상 너머의 뒷벽으로 다가가 손등으로 두드려 상아탑의 마법 금고를 열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툴로쉬가 낮게 휘파람 부는 시늉을 했고, 크라쉬는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마법 금고에 대해 감상을 토해낸다.
“엘투란의 마법 금고를 그대로 쓰고 있었나? 하긴…….”
강철의 창문, 현란한 무늬가 새겨진 금고가 일렁이는 벽 속에서 창문처럼 나타났고 케이라는 그 열린 문 너머로 보자기를 넣어 탈탈 털었다. 금전이 금고 속 깊이 흘러가면서 다시 차곡차곡 쌓였다.
그 광경을 보면서 툴로쉬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세상 도적들이 한번 보기만 해도 좋겠다는 상아탑의 금고를 내 눈으로 보는 날이 올 줄이야! 역시 오래 살아 좋기도 하군요.”
“응? 상아탑의 금고를 처음 봐? 카티야가 보여준 적 없어?”
크라쉬가 의아하다는 소리를 냈다.
이 물음은 홀시딘과 케이라가 바로 눈빛을 교환하게 했고, 툴로쉬가 피식 웃음과 함께 대답을 한다.
“내가 아는 도적들이 좀 된다고…… 괜한 소리를 도적 길드 애들에게 흘러가게 하면 안 된다고 절대로 안 보여줬어요. 비슷한 이유를 대고 길드에 하나 설치해주는 것도 거절했고 말이죠.”
“그랬다고? 흐흠, 하지만 결국 길드에 마법 금고를 선물했잖아? 그랜드 마스터의 인장이라고 콱콱 새겨넣어 번쩍번쩍하는 걸로…….”
크라쉬가 갸웃하는 소리에 툴로쉬의 웃음이 조금 씁쓸해졌다.
“내가 부탁한 거랑 다른 걸로 줬지요. 은밀하고 봐도 잘 모르는 모양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내 부탁이 아닌 다른 사람 부탁을 들어준 거였고요.”
“……그 화려한 모양도 결국 네 탓이란 소리잖아?”
크라쉬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케이라는 보자기를 마저 털고 금고를 닫아걸고 확인한 다음에 묻는 소리를 낸다.
“크라쉬 님도 카티야 님과 교분이 있으셨군요?”
이름을 입에 담을 때의 분위기를 통해 엿본 바를 확인하려는 듯했다.
툴로쉬가 빙긋 웃으며 살짝 멈칫하는 크라쉬를 대신하듯 말한다.
“카티야 님의 미모에 반해서 이런저런 부탁을 잔뜩 들어주던…… 참 쓸 만한 남자친구셨죠.”
“야! 내가 무슨 봉 노릇한 것처럼 말하지 마!”
크라쉬의 발끈하는 대꾸였다.
케이라가 순간적으로 이 대꾸에 반응한다.
“……크로엘? 크라쉬 님, 설마?”
“어? 하아―. 맞아, 그게 그 시절에 내가 쓰던 이름이지. 뭐, 엘더 헌터 대부분이 세월에 맞춰 새 이름을 챙겨 쓰고 다녀. 이 툴로쉬가 좀 이상한 놈이야. 자기 이름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크라쉬는 케이라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띄우면서 말했다.
홀시딘이 풀썩 책상 위에 그대로 내려앉으면서, 과거에 크로엘이란 이름을 썼다는 크라쉬를 보면서 한껏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한다.
“그랜드 마스터 카티야 곁에서 맹활약을 했다는 마법장인 크로엘이시라고요? 이것 참…… 알드바인에 대공방을 작정하고 만드신 거였군요? 마스터 엘투란께서 굉장히 고마워하신 일인데, 그 도움은 무슨 까닭이었습니까?”
“툴로쉬의 요청이었지. 아까 말하지 않았나?”
크라쉬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툴로쉬에게 턱짓하며 답했다.
홀시딘의 눈길이 툴로쉬를 향했고, 케이라도 갸웃하면서 툴로쉬를 바라봤다.
알드바인의 제이대(第二代) 마스터인 엘투란 시절, 어떻게든 몬스터와 마수를 두려워않고 싸울 수 있는 이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애를 쓰던 그 무렵에 크라쉬가 등장했었고 그 도움으로 오늘날에는 당연하다 여겨지는 헌터를 위한 대공방이 만들어졌다.
한데 그걸 툴로쉬가 부탁했다니, 대체 엘더 헌터 툴로쉬가 왜 그런 부탁을 했을까?
툴로쉬가 잠깐 몸을 뒤로 젖히면서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말한다.
“음, 그건…… 그저 영웅들에 대해 조의(弔意)를 보내고 싶어서 한 일이었습니다. 상아탑에서는 어떻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헌터의 입장에서 몰튼노트 더 기간틱을 그 자리에 묶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두 마법사, 제론과 하펠. 두 분을 전 영웅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자기 할 일을 거의 대신해줬기도 하니까 말이지.”
크라쉬가 뭔가 꼬인 표정으로 덧붙이고 있었다.
툴로쉬는 그런 크라쉬에게 입술을 삐죽하며 말한다.
“동감이라고 얼른 움직여줘서 고마웠어요, 크라쉬 님!”
“왜 나만 여기서 수십 년을 보내게 했냐고! 너도 왔어야 했잖아!”
“……여기서 구할 수 없는 소재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거 찾아 보내줬잖아요! 덕분에 계속 다른데 돌면서 바빴구만!”
“지금도 바쁘다면서 냉큼 왔으면서!”
“그 바쁜 일을 마스터 홀시딘께서 해결해줘서 한가해진 덕분에 올 수 있었지요!”
툭탁거리는 두 명의 전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케이라가 불쑥 말한다.
“옛날 이야기는 나중에 스승님과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는 지금 듣고 싶군요. 놀러 오시지 않았다는 거는 확실히 알겠거든요. 엘더 헌터, 두 분께서 굳이 이 시기에 알드바인에 오신 까닭이 뭔가요?”
옛날 이야기에 잠깐 감상에 빠진 듯이 조용히 있던 홀시딘도 이 소리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크라쉬가 입을 다물었고, 툴로쉬는 숨을 고른 다음에 말한다.
“칠왕국의 동란(動亂)을 막기 위해서, 알드바인 마스터의 힘을 빌려야 해서 왔습니다. 상아탑의 그랜드 마스터로서, 꼭 도와주셔야 할 일이지요!”
“……에?”
“동란?”
홀시딘도, 케이라도 전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도대체 이 뜬금없는 소리는…….
* * *
‘동란이라니…… 그게 뭐야?’
―전쟁이라도 한다는 건가?
투란과 드라고니아도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