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0)
‘설마…… 잘못 봤나?’
투란은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낮추면서, 눈을 부릅뜨고 쳐다봤다.
기울어진 나무가 그리는, 반쯤 되다 만 무지개 형상의 틈새로 반짝거리는 파란빛이 보였고 거기에는 분명히 돌을 밟아 튀어 올린 탓에 뒤집혀 나온 검은 흙덩이가 보였다. 그 흙덩이가 파인 모양, 돌이 밟혀 튄 꼴은 분명히 뭔가가 콱 찍고 지나간 모양이 분명했다.
찰랑이는 늪에 무릎까지 잠긴 자기 다리를 보면서 투란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뱀의 가죽은 버티지만 악마의 심장 넝쿨 껍질로는 버틸 수 없는 파란빛 돌의 날카로움, 그걸 그냥 밟고 가면서 핏방울 하나 남기지 않았다?
‘갖고 싶은데.’
잠깐 그 크기를 가늠해 보니, 그게 뭐든 적어도 그의 발보다 서너 배는 되는 발을 가진 놈이었다. 발만 괴팍하게 큰 놈이 아니라면, 그 덩치를 사람으로 추정해서 어림잡는다면…….
‘한 2미터 50쯤 될까?’
투란이 확실하게 올려다봐야 하는 상당히 큰 놈이었다.
그 뒤를 쫓는다는 것은 이 돌을 밟고 쫓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지만, 쫓아가서 만난다고 해도 위험할 뿐이다. 만나자마자 녀석이 ‘어서 와, 내 한 끼 식사!’라며 그를 잡고 으적으적 깨물어 먹을 수도 있다!
‘아니, 그럴 때는…… 한 방 세게 먹여 줄 방법이 있잖아?’
위장 속에 뭉친 물 덩이를 가득 채워 줄 방법이 있었다.
……그랬다가 녀석이 설사와 함께 그를 싸 버릴지도 모르지만.
엉뚱한 생각이 이어지면서 투란은 깨달았다.
아무래도 이놈을 쫓고 싶어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운이 좋으면…….’
녀석의 시체랑 만날 수도 있잖은가?
행운과 불운의 미묘한 경계를 느끼면서 투란은 더 이상 고기를 담아 두지 못한 뱀 가죽 보자기를 풀었다. 샤벨투스의 이빨을 꺼내고 가죽의 안팎을 잘 구분한 다음에 보자기를 큰 폭으로 갈랐다.
결을 따라 찢어진 가죽 보자기에 발을 담그고 감싼 다음에 묶기, 가죽의 안팎을 잘 구분하지 않으면 헛짓이 될 수 있었다. 뱀 가죽의 바깥쪽은 여전히 샤벨투스의 이빨을 버텨 낼 정도니까.
조심스럽게, 한편으로는 과감하게 두 발을 뱀 가죽으로 돌돌 말듯이 감싸고 나니 그 꼴이 샤오덴 할배가 흙덩이랑 함께 싸 놓은 묘목 뿌리를 생각나게 했다.
제대로 된 가죽 신발 따위는 어림도 없는 모양이라, 투란은 씁쓸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써먹을 줄 알았으면…… 가죽 다루는 법도 좀 익혀 둘걸.’
입고 있는 가죽 장비를 수선해야 할 지경이라면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고 그럴 여유가 있을 때라면 얼른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낫다 들었기에, 투란은 가죽보다 단도라든가 실매듭 짓는 법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지금 그런 아쉬움을 생각해서 어쩔 것인가!
투란은 마음을 다잡고 뱀 가죽으로 꽁꽁 싼 발을 내디뎠다.
뭔가 꿈틀거리며 발바닥을 누르고 긁는 느낌이 잠깐 있었지만, 상처가 나는 느낌은 없었다.
‘버티네!’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겨우 떨치면서, 투란은 검은 흙이 튀어 남은 발자국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한껏 몸을 낮추고,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한편으로는 크고 센 놈이 널브러져 있기를 기대하면서!
핏자국을 보면서 바싹 몸을 낮췄다.
바닥에는 여전히 파란빛 돌이 깔려 있었다. 핏자국은 그 돌 위로 번져 반쯤 마른 상태였다.
투란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눈알을 굴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던 늪은 나무 두어 그루 저편에서 찰랑이는 중이었다. 여차하면 그리로 뛰어드는 편이 투란에게는 유리했다. 적어도 늪은 투란을 해치지 않으며 악마의 심장의 양분이 되어 주니까.
투란은 조심스럽게 돌 위로 발을 끌면서 핏자국을 따라갔다.
조금 더 가니, 이제 툭툭 떨궈지는 핏방울이 보였다.
핏방울을 떨구는 것이 뭔가 위를 올려다보니, 발이 있었다.
‘어?’
그런데 발만 있었다.
위로 길게 빨간 끈 같은 것이 이어진 채로, 발 하나가 덩그러니 매달려 늘어진 꼴이었다. 핏방울은 그 발이 기울어지며, 잘려 나간 핏줄을 아래로 드리운 채라 떨어지는 모양으로 보였다.
잠깐 눈을 깜박이던 투란은 빨간 끈에 뼈마디가 엉긴 것을 봤다.
‘그럼 저거 힘줄?’
가만히 주변을 좀 더 살피다가 핏방울이 떨어지는 아래로 갔다.
아주 살짝 대롱거리는 발의 모양이 보다 분명하게 보였다.
‘그랑츄!’
그가 아는 몬스터의 발이었다.
엄지발가락이 그대로 좌우에 달려 있고, 그 사이에 발가락 셋이 나란히 몰려 있는 꼴, 발목부터 찢겨 나간 채였지만 회색 바위 같은 살갗에 크고 넓은 발은 분명히 그랑츄의 것이었다.
“어쩌면 타락한 인간이 그랑츄가 되었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지. 가끔 부락을 만드는 놈들을 보면 확실히 인간 같기도 하거든. 아니면 정말 영혼이 사라진 인간의 껍질이 이상한 힘에 뒤틀려서 그리된 걸 수도 있고…….”
몬스터의 기원에 대해서 오가는 전설은 온통 앞뒤가 맞지 않고 뒤죽박죽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그중에서 사람의 모습과 닮은 놈들은 그 시작이 사람이 아닐까 의심 가득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그랑츄가 그랬다.
괴물이 된 먼 과거의 인간, 그 후예들일지도 모르는 괴물.
‘회색이면…… 뭐였지? 짙은 회색, 바윗돌 같은 살갗이면…….’
투란은 그랑츄에 대한 쓸모 있는 기억을 찾기 위해 애썼다.
오래 걸리지 않았고, 어렵지도 않은 기억이 툭 튀어나왔다.
파란빛 돌을 밟고 뛸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그 기억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잿빛 살갗의 그랑츄, 녀석들은 바위같이 단단한 몸을 지닌 몬스터였다.
투란의 눈길이 한쪽뿐인 발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움직였다.
‘저 발이 과연 파란빛 돌을 밟아도 끄떡없는 그 발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랑츄란 놈이 워낙 개체 간의 격차가 큰 몬스터이기에 베테랑 몬스터 헌터도 그랑츄 사냥에는 늘 주의했다. 사는 곳에 따라, 살아온 시간에 따라 그랑츄는 그 능력이 전부 다르다 할 정도로, 인간과 닮은 몬스터였다.
심지어 한 무리, 한 부락을 이루는 그랑츄가 비슷한 능력과 외형을 지닌 것도 인간과 닮은 점이라 했다.
‘달랑 발목 하나, 힘줄이 통째로 뽑힌 발목 하나라니!’
투란은 손을 위로 뻗으려다가 움츠렸고, 잠깐 쪼그리고 앉으면서 감각을 좀 더 키웠다. 여전히 주변은 숲과 늪이었고, 고요할 뿐이었다. 발목 뽑혀서 끙끙대는 그랑츄의 신음 소리 따위는 전혀 없었다.
좀 더 고민하려던 투란은 포기했다.
이미 결심이 단단히 굳어진 다음이었다.
더 시간을 끌다가 뭐가 튀어나오면 고민한 시간이 아까워질 뿐!
발딱 일어선 투란의 손이 위로 뻗었다.
당연히 닿지 않았다.
발돋움을 하고 손을 위로 뻗어도, 눈에 훤히 보이는 그랑츄의 크고 굵고 튼튼해 보이는 발목은 손끝에서 60센티는 더 위였다.
‘아, 뭐야. 옛날이야기에는 이런 때 이런 걸로 애먹는 경우 없더만!’
나무에 매달린 뭔가를 손쉽게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는 참 많았지만 이렇게 손이 안 닿아서 낑낑대야 했다는 경우는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이는 지금 투란에게 확실히 고민할 바가 아니었다.
무릎과 발목에 힘을 돋우고, 샤벨투스의 이빨을 길게 뻗어 손에 쥐고, 투란은 튀어 올랐다.
싹!
단숨에 1미터를 뛰어올랐고, 휘둘러진 샤벨투스의 이빨이 늘어진 빨간 힘줄을 잘랐다. 투란은 떨어지는 발을 손으로 낚아채면서, 바닥에 내려섰다.
“아얏.”
뱀 가죽 덕분에 직접 베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뎌진 채 발바닥을 쑤시는 둔중한 날카로움은 꽤나 아팠다. 이래서는 정말 엉덩이 깔고 앉을 수가 없잖은가.
숨을 고르며 투란은 무릎, 발목에 단단히 감긴 넝쿨이 살며시 풀리는 것을 느꼈다. 힘을 쓰기 위해 돋웠던 것이 이제 통증이 일어나는 곳으로 몰려가는 느낌도 선명했다.
다시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보고, 투란은 발목의 핏방울이 맺힌 부분을 그대로 가슴에 갖다 댔다.
검은 고리가 톱니를 드러낸 무늬가 투란의 가슴에 나타나 돌기 시작했고, 찢겨 잘린 괴물의 발로 은은한 검은 금이 생겨났다.
투둑, 파삭.
회색 살갗의 두툼한 껍질과 붉은 핏줄, 두껍고 굵어 보이는 발톱이 투명하게 변하면서 부서져 나가고 발목뼈의 절반, 엷은 가죽의 흔적만이 손에 남았다. 남은 잔해를 꽉 손에 쥐면서 투란은 숨을 고르고, 마음을 문장에 모아 발에 집중했다.
뿌득, 차악!
끈이 팽팽해지다가 풀려 버린 소리가 울렸다.
‘아차, 실수! ……풀어놓을걸.’
뒤늦게 생각이 들었지만, 투란은 곧 이 생각을 잊었다.
굵고 넓은 발가락, 새끼발가락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엄지 같은 발가락이 하나 더 자리 잡았고 늘 보던 발 대신에 그보다 서너 배는 더 되는 폭과 두 배 정도 되는 길이를 자랑하는 발이 보였다.
뱀 가죽 발싸개는 갑자기 그렇게 부푼 투란의 두 발에서 모두 끈이 풀려 펼쳐진 채였다.
‘발 하나에 두 발 모두 변했다!’
투란의 입가에 만족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랑츄의 발, 그 몬스터 에센스는 두 발에 모두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었고 이를 삼킨 투란은 한 발만으로 두 발을 모두 변이시키는 데 성공했다.
슬쩍 기쁨을 억누르면서, 투란은 여전히 발바닥에 깔린 뱀 가죽에서 발을 떼어 파란빛 돌을 디뎌 봤다.
간지럼이 느껴졌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발가락을 오므려 파란빛 돌을 끼운 다음, 배꼽 쪽으로 당겨 발바닥을 뒤집어 봤다. 파란빛 돌은 발가락 사이에 끼워진 채로 반짝거렸지만 회색빛 살갗의 발은 간질거리는 느낌만 있고, 베여 갈라지는 상처 따위는 없었다.
이제 투란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 진짜 잿빛바위 부족의 그랑츄로구나!’
“회색? 바위 같은 회색이라면…… 그건 깡이 온몸에 넘쳐 나는 그랑츄지. 몰래 뒷덜미에 칼침 꽂을 때도 최소한 오러 윌더의 강화 검으로 쑤셔야 들어간다고. 눈 부릅뜨고 있을 때는…… 강화 검으로도 쑤시기 힘들지.”
그랑츄 중에서도 몸통의 단단함, 가죽의 튼튼함으로 유명한 종류였다.
투란의 눈길이 발목을 향했고, 좀 더 눈알에 힘이 들어갔다.
발목의 회색빛이 서서히 종아리를 타고 올라왔고, 정강이 중간 정도에서 멈췄다. 더 눈을 부릅뜨며 염원해 봤지만, 두꺼운 잿빛의 살갗은 더 이상 영역을 넓히지 못했다.
‘역시…… 그랑츄의 정수는 몸 부위별로 전부 다르다는 게 이런 뜻이었군.’
투란은 기억 속의 이야기를 확인하며 조금 아쉬웠다.
이 발의 살갗을 온몸에 퍼뜨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발을 이루는 구성을 다른 부위로 전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고 오직 발목까지만 허용하는 것, 이 또한 그랑츄의 에센스가 지닌 기괴한 특성이라 하더니 그 말 그대로였다.
“팔뚝만 회색 그랑츄인 놈은 배를 쑤셔 주면 되는 거야!”
회색 팔의 몬스터 로드와 시비가 걸렸다면서 누군가 떠들 때, 다른 누군가가 큰소리치던 이유였다.
온전한 그랑츄의 몸을 손에 넣어야 팔다리와 몸통 전부를 그랑츄의 형상으로 바꿀 수 있는데, 지금 투란에게는 갈 수 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뭐, 이것도 그냥 얻은 거잖아?’
평화로운 고요함이 가득한 곳에서 오직 자신의 숨소리만 울리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아주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 디뎠다. 괜히 파란빛 돌이 튀어 오르면, 몸의 다른 곳은 다칠 테니.
‘아, 이것 좀 싸 가도 되잖아!’
발싸개였던 뱀 가죽을 집어 올리면서 투란은 파란빛 돌을 몇 개 챙겨 넣었다.
뱀 가죽을 집어 그대로 감싸고, 작은 주머니 모양을 만들어 주둥이를 묶고 허리에 두른 끈에 걸고 나니 왠지 기분이 든든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떤 놈이든 그를 통으로 삼키면, 이 파란빛 돌을 위장 속에다가 풀어놓을 것이다!
함부로 자신을 삼키는 놈에게, 투란이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으니!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떠올리면서, 투란은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길 너머로는 검은 흙투성이로 찍힌 발자국이 보였다.
어쩌면 그랑츄가 목숨이 끊어진 채로 얌전히 누워 있을 수도 있잖은가?
……혹은 그랑츄의 발목을 저리 찢어 놓은 놈과 바로 만날 수도 있고.
투란은 파란빛 돌을 담은 뱀 가죽 보자기에 손을 얹은 채로, 급하면 언제라도 이를 던져 뿌릴 자세를 한 채로 나아갔다.
‘던질 때는 조심해야지. 손 베이지 않게.’
자신에게 주의를 주면서.
거저 얻을 수 있는 시체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