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0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96)
Chapter 100. 황금매가 쉬는 곳
케이라는 살짝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빈 의자를 바라봤다.
이야기를 끝내고 툴로쉬와 크라쉬는 나갔다.
당분간 알드바인에 머물면서 이런저런 일을 마저 처리한다고 했으니, 금방 어디론가 사라지는 전설의 헌터라고 아쉬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 전설의 헌터에게 대체 뭘 어떻게 기대를 해야 하는가는 꽤 애매하고 아리송하지만…….
“으으…… 크읏!”
케이라에게는 당장 책상에 엎어진 채로, 책상이 무슨 침대라든가 융단 깔린 바닥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그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위에 엎어진 꼴로 낑낑거리는 스승 홀시딘이 더 큰 문젯거리로 보일 뿐이다!
한숨을 쉬면서 케이라는 스승이 원하는 물음을 던져본다.
“왜 그러세요?”
“이제는…….”
“이제는요?”
“……느긋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 내 제자가 마스터고 난 할 일은 다 했으니까! 한적한 곳에 벽돌 집 쌓고 들어가 박혀서 책이나 읽고 마법을 다양하게 연구하면서 편안히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누가요?”
스승의 말에 한마디씩 추임새를 넣는 케이라의 말투가 살짝 차가워졌다.
엎어진 홀시딘이 움찔하면서 살짝 고개를 돌려 제자를 바라본다.
“……나, 그렇게 편히 살면 안 되니?”
“왜 스승님이 그렇게 편해지셔야 하는데요? 불타는 평야에 맺힌 일 핑계 대시면서 이 일 저 일 하나씩 둘씩 모두 떠넘기신 거! 이제 도로 맡아주셔야죠! 마법을 다양하게 접하면서 연구하는 거는 제 나이 때에 할 일이잖아요!”
“허억! 케, 케이라? 마스터 업무를 스승에게 떠넘길 작정이었냐!”
“그러려고 했는데 그랜드 마스터가 되셨으니…… 엘더 헌터의 청부도 있으니 어쩔 수 없지요. 열여섯 상아탑을 한 번씩 돌아보기도 하셔야 하고…… 알드바인의 일보다 바쁜 일이 잔뜩 기다리네요.”
“……왜에!”
홀시딘은 애처로운 처지인 척하면서 징징거렸고, 케이라는 고개를 홱 돌리면서 그런 거 안 보인다는 시늉을 했다.
* * *
‘음, 제대로 노렸지? 그 엘더 헌터…… 제대로 윌 라이트 털어낸 거지?’
―그렇게 볼 수밖에 없잖아. 정말 놀랐다.
투란은 살짝 일렁이는 얇은 흙벽 너머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중요한 이야기가 끝난 듯, 홀시딘과 케이라가 남은 채로 아옹다옹하는 상황을 엿보고 엿들으면서 투란에게 남은 감상은 다른 이야기보다 엘더 헌터 툴로쉬가 아라크녹스 왕의 거미줄 무늬를 털어낸 일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엉겁결에 남겼던 무늬는 대강 열서넛 정도였고, 불완전한 채로 남긴 것도 두어 곳이었다. 그 무늬의 공명(共鳴)을 이용해 엿듣는 과정에 드라고니아가 마력으로서의 특성을 드러내기 직전의 의지력만으로 구현된 윌 라이트를 끼워넣었고, 무늬 몇 개가 제대로 반응하며 저편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엿보고 엿들을 수 있었다. 상아탑의 마법사들은 그런 상황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엘더 헌터 툴로쉬는 그 마법사들이 모인 곳에 들어서면서부터 윌 라이트가 덧붙여진 거미줄 무늬를 장난처럼 털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거기 윌 라이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의심할 여지가 없이 정확하게 윌 라이트의 수를 줄였고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모두 털어내 버렸다.
홀시딘에게는 그게 무슨 아부하는 척하는 장난스런 손길로만 보인 듯했지만 드라고니아에게는 꽤 놀라운 짓이었다.
‘야, 길가다 만나면 내 손에 윌 라이트 걸린 거 보고 바로 알아차리는 거 아냐? 피해 다녀야 하나?’
투란이 갸웃하면서 소리 없이 물었다.
―그런 일은 없다. 헌터스 배너, 그 오러 마크를 몸에 새긴 채니까 오러를 통해 저절로 의지가 반영되고 그건 순수히 너 자신의 힘이니까. 홀시딘의 경우처럼 찾아낼 수는 없을 거야.
‘어떻게 알아냈나 모른다면서? 어떤 방법인지 모르면서 그렇게 자신 있어?’
―윌 라이트가 분별될 수 없으니까, 네 몸에 맺힌 거는 네 의지의 반영이라서 말이야. 물론 다른 어딘가에 새겨넣으면 바로 분별될 가능성이 아주 크기는 하지. 추측할 수 있는 방법은 저 엘더 헌터인가 뭔가 하는 놈이 사이메트릭 능력자이거나 예지능력자이거나 하다는 건데…… 예지능력자가 뭘 알아내는 거는 거의 막을 방법이 없고 사이메트릭 능력자라면…… 그런데 정말로 그런 희귀능력을 지녔을까? 그렇다고 해도 일단 한 자리에서 직접 만나는 일만 없다면 괜찮을 테고, 윌 라이트가 간섭하지 않은 거미줄은 파악 못하는 것 같고…….
투란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드라고니아는 자신만의 생각에 점점 깊이 빠져들면서 이 상황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몰두하려는 듯싶잖은가.
‘만날 일 없을 테니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그랜드 마스터라는 게 저렇게 쉽게 되는 거였어?’
―뭐? 쉽게?
‘그 끈 감고 홀시딘이 뭐라 뭐라 하니까 금방 다들 으악 하면서 허옇게 질려버렸잖아. 엄청나게 대단한 것 같던데…… 나중에 엘더 헌터가 넘긴 반지에서는 큼직하니 뭐가 나오고 그랬잖아. 그런데 그랜드 마스터가 되게 한 서약인가 뭔가는 그렇게 대단한 척하면서 끈 감고 말 몇 마디 하고 끝이야?’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뭔가 없었다고 별일 아닌 것으로 보였냐? 그런 철딱서니 없는 생각을 잘도 하는구나! 네가 지금 마법에 대해 몰라? 이젠 알만큼 알잖아! 그렇게 드러나는 뭔가가 없다고 별일 아닌 것처럼 떠들 때는 이미 지났잖아!
‘누가 별 일 아니래? 엄청 대단한 일인데 저렇게 말 몇 마디로 끝났다 하니까 이상하다는 거잖아!’
―말 몇 마디가 아니었잖아! 진실의 매듭을 감고 서로의 마력을 동조시켜서 자신에게 제약을 걸고, 서약을 재현한 거다. 그 결과 홀시딘이 약속한 진실을 말했으니까, 위계서열에서 상위자가 된 거라고.
‘……그러니까, 자세한 사정 설명 따위는 전혀 하지 않기도 했잖아? 그런데 그걸로 그냥 넘어가는 거야?’
―마법사잖아. 자신의 마력을 통해 진실을 품은 채란 걸 확인시켜줬다. 저 진실의 매듭을 통해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말해서 안 되는 일을 말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확인을 시켜준 걸로 충분해. 만약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중이었다가 들통 났으면 진실의 매듭에 의해 폐인이 될 수도 있었다고! 홀시딘은 나름대로 목숨을 걸고 대처한 거다.
‘헐? 목숨까지 건 일이었어?’
―투란, 심리적이거나 의식적인 측면에 작용하는 마법은 원래 불꽃이 팍팍 튀거나 바람이 거세게 불거나 물살이 뒤틀리거나 하는 직접적인 광경은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잖아. 하지만 위험성은 그보다 몇십 배, 몇백 배로 더하다. 얕보지 말라고!
‘얕보는 게 아니라…… 아, 잠깐. 그럼 혹시 홀시딘이 로열 클래스의 시크릿 키퍼라는 거…… 의식이니 심리니 하는 쪽으로 잠깐 통한 거라면 그거 들킬 수도 있었다는 거야?’
―들켜도 상관없는 일이다. 들키지는 않았겠지만, 들켰다고 해도 루케인의 경우처럼 상아탑의 마법사들은 스스로 기억을 봉쇄해서 아는 척하지 않을 거야. 로열 가든의 맹약은 상아탑에 그런 식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시크릿 키퍼가 더 이상 그 의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바로 그 의무가 전승되는 거고…….
‘그래? 흐흠.’
투란은 천천히 일어나서 엷은 흙벽을 손으로 밀었다.
흙벽이 흩어지고, ‘소일 헛’이 짙은 먼지처럼 사라지면서 다시 남쪽 성벽의 풍경이 부드러운 바람결과 함께 선명하게 보였다.
투란이 선 곳은 성벽에 거의 달라붙은 듯이 무성한 덤불 틈새였고, 허리춤까지 돋아난 잡초가 살랑거리고 있었다. 시알라가 여관으로 꾸미겠다는 거대한 고목의 그루터기와 대강 백여미터 거리를 둔 곳이기도 했다. 투란은 잠시 주변 구경한다면서 나와 슬쩍 드러눕는 척하며 이곳에서 엿듣기를 했다.
길게 이어진 남쪽 성벽은 안개가 내려앉은 구름처럼 맴도는 호수까지 이어졌고, 그 끝자락은 아예 호수에 담긴 것처럼 보였다. 은근히 사람의 손길이 없는 잡초와 덤불, 넝쿨이 성벽에 달라붙고 주변을 장식하는 듯한 풍경이 꽤나 오래 방치되었다는 느낌을 짙게 했다.
하지만 저쪽 고목 그루터기 너머 나무판, 통나무 토막같은 것도 섞인 우드 가디언이 즐비하게 늘어선 풍경을 넘어가게 되면 돌로 지어진 낮은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기 시작한다.
남쪽 성벽을 등지고 바라보면 동쪽은 호수가, 서쪽은 높디높은 성벽이 자리한 채로 그 사이에 크고 넓은 계단형태로 쌓인 도시의 풍경이 펼쳐지는 셈이었다.
‘어쨌든…… 이제 나름대로 거점이 확보된 거네?’
투란의 소리 없는 중얼거림 속에는 나름대로 뿌듯해하는, 자랑스러운 낌새가 있었다.
―너무 이른 판단이군! 환영을 지우고 나서 제대로 된 금빛매의 쉼터를 열어두고, 이 주변에 그 이름이 확실하게 자리 잡은 다음에나 할 소리다!
‘흠, 그건 시알라가 할 일이고!’
투란은 간단하게 대꾸했다.
―뭐? 야―!
‘시알라에게는 오랜 소원이었다잖아. 페란드에게도 그렇고…… 제란드는 천천히 느긋하게 살고 싶어했고…… 멜란드는 음…… 뭐 알아서 하겠지. 아무튼 일단 한 일이 년 동안은 알드바인에 머문다고 했으니까. 나중에 떠난다고 해도 그 시간이면 대신 여길 맡아줄 사람을 찾아낼 수 있겠지. 없으면 홀시딘에게 부탁해놓으면 되고…… 나는 거점 잡은 거라고.’
투란은 팔짱을 끼고 화이트 레이크의 거대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아주 당당하게 자신이 한 가지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랑했다. 소리 없는 자랑이었지만 드라고니아는 그 으쓱거리는 기분을 고스란히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뭔가 트집이라도 잡아보겠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겨우 한마디 다시 던지는데,
―그렇게 다 떠넘기고 나서 넌 대체 뭘 하려고?
‘응? 뭔 소리야? 나 아주 바빠!’
―그러니까 뭐가 바쁜데?
‘우선 금전 깔린 침대도 만들어야 하고…….’
―진짜로?
‘거기 누워봐야 제대로 사치스러운 인생을 즐겼다고 한다잖아.’
―대체 어떤 골빈 놈이 그딴 소리를―!
‘돈 없어서 몬스터에게 복수도 못 하는 불쌍한 헌터들의 꿈이라니까. 금전을 가득 챙겨들고 몬스터를 때려잡고 침대에 깔고 누워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는 거. 그거야말로 헌터가 간절히 바라는 꿈이지.’
―그런 헌터랑 너랑 거리가 꽤 되는 것 같다만?
‘칫. 다른 꿈은 이제부터 알아내야지. 샤오 마을에는 온통 몬스터랑 부비적대면서 사는 작자들뿐이었으니까. 이제 나도 몬스터랑 거리가 있는 멀쩡한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내고…… 금전을 깔고 자는 사람이 뭘 할 수 있는가 배워야지. 아, 그런데 홀시딘 저러다가 대도감 늦게 만들어주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그랜드 마스터니까 대도감은 오히려 쉽게 만들지도 모르지. 그런데 상금은 어쩔 거냐? 일곱 왕국인가에서 상금 지불을 어떻게든 늦추고 웬만하면 안 줄 거라고 하잖냐?
‘음, 그건…….’
투란은 머리를 긁적였다.
총상금이 삼천오백 닢 어쩌구 할 때랑, 한곳에서 그렇게 나온다고 할 때랑 상황이 너무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금이 거대해지면 주는 놈이 마음 바꿔 먹는 일이 오히려 흔하니까. 당장 금전을 챙겨온 헌터 길드 쪽이 오히려 괴상하다고 할 수 있었다.
금전 열 닢의 상금조차도 한 닢만 주고 나머지는 그냥 없던 걸로 하려 한다고 투덜거리던 헌터를 투란은 여럿 봤다. 때문에 상아탑이나 헌터 길드에서 내건 상금이 아니면 완전히 선금으로 받아두거나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왕국에서 저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어. 왕국이라면 헌터 길드보다 더 정확하게 상금을 지불하는 걸로 알았는데 말이지.
‘응? 아, 춤추는 산맥의 다른 왕국에서는 아예 헌터 길드에 상금을 맡겨둔다고 했어. 군단을 동원할 정도로 규모가 큰 일이 아니면 거의 길드 쪽에 의뢰형태로 넘겨둔다고 말이야. 브로큰 킹덤은 좀 다르다고 했는데……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네.’
스윽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투란은 엘더 헌터 둘이 그랜드 마스터가 된 홀시딘에게 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올렸다.
사실 거의 대부분 뭔 소리인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잔뜩이었다!
그중에서 겨우 알아들은 이야기는 상금에 얽힌 것.
홀시딘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뭐? 상금까지 떼먹을 작정이라고!’라며 목소리를 높인 부분이었다.
“그러니까요, 인간으로서 인간을 위협하는 몬스터를 처치하는 거는 당연한 의무니까 상금 대신이 훈장과 작위로 대신하겠다, 이런 이야기죠. 명예로운 일을 했으니 명예로 보답하고 금전은 항상 두 닢 정도로 고정해서 지급하고 말이죠.”
브로큰 킹덤, 이 섀터드 세븐의 일곱 나라는 매우 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투란에게는 꽤나 의아한 이야기였다. 저 소리에 대해 홀시딘이 바로 반발하는 말이 바로 마음에 와 닿을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러시다면, 작위와 훈장을 잔뜩 갖고 있는 임금님이 직접 나서면 되겠구만? 휘하에 작위와 훈장이 넘쳐나는 귀족분들도 함께 말이야!”
그리고 그다음에 엘더 헌터가 한숨과 함께 꺼낸 소리는 투란에게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