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0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97)
“홀시딘, 왕실과 귀족 쪽에서 너무 많이 죽어나가서 나온 얘기예요. 켈브란, 마스터 켈브란이 예전에 상아탑을 혁신해야 한다면서 했던 주장이 지금 왕실과 귀족 사이에 번지고 있다고요.”
“뭐? 왜?”
“칠왕국의 공민들은…… 정해진 군역이 없잖아요. 나라에서 필요하면 바로 징집하기는 하지만 숙련된 군단병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상황이라 말이죠. 게다가 징집령이 떨어져도 일정금액의 군비를 대신 지불하면 되기까지 하니까……. 결국 싸우는 자들만 싸우고 계속 죽어가는 상황이 반복될 뿐인 거죠. 덕분에 칠왕국의 군단 내부에서도 불평과 불만, 분노가 쌓인 지도 꽤 되었고 말이죠. 결국 군단 안에서도 마스터 켈브란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된 셈인 겁니다.”
“그건 또 무슨―!”
투란은 그다음에 오간 이야기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홀시딘이 비꼬듯이 했던 이야기가 실상은 그대로 이뤄졌고, 그 결과 수많은 왕실, 귀족의 자제들이 죽어나가는 사이에 쌓인 분노가 마침내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부분까지만 알아들었다.
거기에 더해서 엄청나게 아리송하지만 납득이 갈 듯 말 듯 한 부분을 굳이 꼽아보자면…… 명예를 위해, 자신들이 태어나자마자 부여받은 의무를 다하기 위해 왕족, 귀족이 죽어나가는 사이에 부를 쌓고 풍요로워진 공민들은 다른 나라로 도망을 쳤다는 부분이 고작이었다.
일곱 나라 중에 몬스터의 위협, 마수의 위협에 직접 노출되어 있고 군단이 하루도 쉬지 않고 몬스터, 마수와 전투를 벌여야 하는 나라의 국경을 넘기만 하면 곧바로 몬스터, 마수의 위협이 옆 나라 이야기에 불과한 나라로…… 춤추는 산맥의 공민답게, 자기가 원하는 나라로 이주해 살기로 결정한 이들에 대해 남아서 싸우는 자들이 격노를 한다는 것.
투란이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의 한계는 이 정도에 불과했다.
그 뒤로 세트반이나 쥬레인처럼 몬스터, 마수를 한꺼번에 격는 나라의 인구가 페브라니 야누크니 하는 북쪽 나라의 십분의 일 수준으로 떨어져서 어쩌구저쩌구 하는 이야기는 투란에게 생각하기를 멈추게 했다.
결론은 편안하게 잘 사는 나라를 향해 힘겨운 나라들이 입장을 바꾸자고 쳐들어가는 수가 있다는 것인데…….
그 힘들고 짜증 나고 분노가 쌓인 나라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내세운 왕실귀족에게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탓에 나라 사이의 동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왕국이 어쩌고 하는 일은 그랜드 마스터인 홀시딘이 알아서 할 테고…… 이런, 나랑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룰 정도로 바쁜 거는 싫은데…….’
―야, 홀시딘이 그랜드 마스터가 된 상황은 따지고 보면 너 때문이잖아. 이 동란을 막는 게 네 책임이란 생각이 들지 않냐?
‘내 책임! 뭔 헛소리야! 나랑 전혀 상관없다고! 엘더 헌터랑 그랜드 마스터, 그런 전설적 사람들이 알아서 해야지! 그리고 여긴 알드바인이잖아. 홀시딘이 말한 소리 못 들었어? 칠왕국과는 별개인 자치도시 알드바인! 갈기 산맥으로 뚝 끊어진 지역에 외따로 있는 도시라잖아.’
슬쩍 튀어나온 말에 투란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면서 무책임을 소리 없이 외쳤다.
―야, 이―!
드라고니아가 뭔가 울컥한 듯이 외치려 할 때, 투란은 바로 손을 불쑥 치켜 올리면서 저편을 향해 소리 내 외친다.
“여어―! 돌아왔어?”
통통 튀듯이 그쪽으로 발도 디뎌 가니, 저쪽에서 멜란드가 옆구리에 끼고 오던 것을 두 손으로 높이 치켜 올리면서 응답해주고 있었다. 멜란드 곁에는 작은 수레를 한 손으로 잡아당기며 함께 돌아오는 제란드가 보였다.
“아하, 황금매다!”
투란이 멜란드가 치켜 올린 것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히히거리는 소리를 냈다.
멜란드가 조금 멀지만 이 소리를 들은 듯이 답한다.
“금전매라고 부를 거라는데!”
제란드는 그 곁에서 약간 불편한 듯이 한숨을 쉬는 듯이 보였다.
투란은 웃음과 함께 멜란드가 잡고 흔드는 간판을 봤다.
황동(黃銅) 소재였고, 잔뜩 닦은 새것이라 그런지 진짜 황금빛을 번쩍거리고 있었다. 네모난 모양 속에 옆모습을 보이는 매가 한 발로 나뭇가지를 붙잡아 딛고, 다른 한쪽의 발가락 사이에는 금전을 끼운 채로 부리로도 금전 한 닢을 떡하니 물고 있는 형상…… 금전을 물고 끼운 매니까 정말로 금전매라고 해도 좋을 듯싶었다.
“멋져! 황금매가 금전을 물고 있잖아! 금전 문 황금매야! 아, 그런데 페란드, 간판은?”
“응? 아, 그건 수레 안에.”
멜란드가 히히거리면서 대답했다.
제란드는 다시 한숨을 쉬며 중얼거린다.
“굳이 저런 몰골로 만들 필요가 있나.”
“어? 황금매가 어때서!”
“반짝반짝 금덩이 같아 좋구만!”
투란과 멜란드가 바로 제란드에게 황금빛을 번뜩거리는 황동간판을 가리키고 치켜 올리면서 떠들어댔다. 제란드는 그런 둘을 향해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린 다음에 수레 안을 눈짓하며 말한다.
“그거 말고, 이거. 은색 바른 간판…… 뭐냐고, 칼을 물고 방패 잡은 매라니…… 흉악해 보이잖아.”
투덜거리는 소리에 투란이 고개를 수레 위로 드리우며 은빛매의 모양을 살폈다. 여관을 위한 금빛매, 대장간을 위한 은빛매로 하기로 했는데 금빛매가 금전 문 꼴이라는 소리에 페란드는 무기 만드는 대장간에 어울리는 모양으로 칼과 방패를 챙긴 매의 형상을 원했다. 그 주문대로 역시 네모난 간판 속에는 은색의 매 부리에는 자루 양끝으로 칼날이 쭉쭉 뻗어나간 듀얼 팁이라는 단검을 끼우고, 앞발 한쪽에 작고 둥근 방패를 들어 올린 채로 정면을 바라보는 형상이 양각(陽刻) 되어 있었다.
“헤에, 이것도 꽤 멋지잖아? 매 눈이 무척 사나워 보이는데?”
“간판이 사납게 생겼다고 만드는 물건까지 사납기만 하냐면 하나도 못 팔 거 아니냐고! 우선 망치랑 모루라도 새겨둔 모양이라야 누가 와서 뭐 파냐고 물어나 보지!”
제란드는 투덜거리면서도 수레를 당기며 걸었고, 멜란드와 투란은 ‘푸훗!’ 하고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제란드가 생각하는 페란드의 대장간은 정말 진지하게 물품을 만들어 파는 곳인 듯하잖은가.
“정말로 페란드 형이 대장장이 노릇 잘할 것 같아?”
문득 궁금해졌다는 듯이 멜란드가 물었다.
제란드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그러니까, 칼이랑 방패를 들이대는 사나운 대장간에 누가 쉽게 와보겠냐고. 장사 안 될걸. 금세 말아먹을까 봐 걱정이야.”
이에 대해 투란과 멜란드가 킥킥거릴 때, 페란드의 목소리가 마중 나오듯이 세게 울려 퍼진다.
“누가 처음부터 명장이라도 되겠다고 했냐! 하나씩 둘씩 익힐 거라고! 은빛매 간판도 나중에 더 좋은 모양 생각나면 내가 직접 만들어서 다시 달 거라니까! 어, 근데…… 진짜로 은색 도료가 있었어?”
“응? 아, 이거…… 몰라. 그냥 반짝거리는 은색철판이 있던데? 이곳에서는 쉽게 가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소재라던데, 뭔지 잘 모르겠어. 은처럼 보이지만 은은 아니라고 하던걸.”
제란드는 갸웃하며 대답했다.
곁에서 멜란드가 황금빛 매의 간판을 치켜 올리면서 보태듯이 말한다.
“알루멘! 손잡이나 얇게 덧대는 데 쓰는 금속 소재라고 했어. 얼마 전부터 알드바인에서도 제대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데, 원래 룬디아크 공방에서만 취급하던 소재라던걸!”
“그래?”
페란드가 나무를 파내 만든 계단을 바쁘게 디디면서 내려왔다.
투란이 그 계단을 보며 조금 놀란 소리를 냈다.
“어? 다 만들었네?”
마법으로 가공해서 환영을 씌운 부분이 아니었다.
아침나절부터 망치와 끌, 대패를 가져다가 페란드가 울퉁불퉁하니 기울어진 담장 같은 나무를 쪼고 깎아내서 밀어 만든 계단이었다. 아침에 뛰어내리거나 나무벽을 기어 올라가야 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제대로 밟고 오를 수 있었다. 이렇게 하려면 일단 나무벽 쪽에도 계단 폭을 확보하기 위해 손을 댔어야 했을 텐데…….
“아침 내내 어디 가 있었어?”
시알라가 위편에 새로 뚫어놓은 창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서 투란에게 묻고 있었다.
“응? 아, 성벽 구경! 이것저것 보다보니까―.”
“투란, 잠깐 나 좀 볼까.”
갑작스러운 목소리는 허공에서 울렸고, 네 남매는 흠칫하며 금빛이 찰랑이며 튀어나오는 사람 손을 노려봤다. 투란은 그 목소리에, 그 손에 씌워진 스펠 밴드의 형상에 움찔하면서 대꾸한다.
“홀시딘? 아니, 그게 뭐…… 우엇?”
뭐라 따지기 전에 찰랑이는 금빛 속에서 나온 손이 투란의 어깨를 짚었고, 투란은 순식간에 로열 가든을 거쳐 자신이 어딘가로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 로열 가든의 열린 풍경을 통해, 각자의 위치가 다름에도 네 남매가 당겨지는 투란과 당기는 홀시딘을 바라보는 모습 또한 보게 되는데,
“아, 자네들 한가한가? 한가하면 자네들도…….”
막 튀어나오는 홀시딘의 목소리에 네 남매가 거의 동시에 대답을 쏟아낸다!
“바빠요!”
“어, 이제 공구랑 재료가 도착해서요.”
“음, 좀 있다가 제란드 형이랑 성벽 너머를 보고 지하 울타리를 점검하기로 했어요.”
“멜란드랑 주변 점검하기로 해서 말이죠.”
홀시딘은 축 처진 낯빛으로 투란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웅얼거린다.
“그래? 그럼, 자네들이랑은 좀 나중에 얘기하고…… 한가한 투란은 나 좀 보자고!”
“우어어―!”
투란이 뒤늦게 비명을 질렀지만, 로열 가든의 풍경이 휭하니 사라진 채로 주변은 어둑하고 깊은 지하창고의 풍경만이 보일 뿐이었다.
“왜에―!”
두리번거리면서 투란은 목소리를 낮추면서 짧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어딘지 몰라도 괜히 요상한 소리를 내서 마스터 홀시딘과 이곳에서 뭐하냐고 누가 물어올 상황은 투란으로서는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주변 상황보다 먼저, 투란의 눈길은 홀시딘에게 고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 거뭇한 눈가는 대체 뭐예요? 며칠 못 잔 사람 같잖아요? 아니, 그 거미 떼 가득한 숲에서도 그런 몰골이 된 적은 없잖아요?”
“응? 아…….”
홀시딘도 퍼뜩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투란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이 맞다고 인정하는 듯한데, 투란에게는 그보다 더 어이없는 상태였다. 제란드, 멜란드를 마중하기 직전까지 홀시딘의 상태를 엿보고 있었다. 정말 아주 조금 전까지 홀시딘이 징징대기는 했어도 별다른 모습이 아닌 것을 확인했는데, 그 잠깐 사이에 이게 대체 뭔 꼴인가?
“……하아, 골치 아픈 일이 터져서 낑낑대다 보니 이 꼴이로군. 어이, 투란. 전쟁에 대해서 뭐 아는 것 있나?”
“전쟁? 마스터 홀시딘, 갑자기 무슨……?”
“그냥 아무 의견이나 듣고 싶어서 그래. 투란, 너에게 전쟁이란 뭐지?”
“……마법사가 쫓아다니면서 불질러대는 놀이터?”
잠깐 생각하는 척하다가 투란이 슬쩍 한 발 빼는 말투로 중얼거려줬다.
홀시딘의 그늘진 눈가가 바로 실룩였고, 피곤함에 새록새록 패여있던 주름이 두어 배로 더 겹쳐지듯이 늘어나는 듯하더니,
“그거 혹시 전장의 방화범 이야기냐?”
투란이 떠올렸던 옛날이야기를 바로 짚고 있었다.
“에, 맞아요. 전쟁 이야기는 그거 정도만 겨우 들었거든요. 춤추는 산맥에서 화제가 된 전쟁 이야기는 그것뿐이라던데요. 산맥 밖에서는 나라끼리 자주 싸우는 일도 있다지만…… 산맥 안에서는, 그러니까 여섯 고대 왕국의 전통을 물려받은 춤추는 산맥의 나라끼리는 그런 짓 안한다고…….”
“그렇군. 맞아, 그 말이 맞아. 이 춤추는 산맥에서 전쟁은 무슨 얼어 뒈질 전쟁이야! 진짜 한다고 하면 바로 전쟁터마다 쫓아다니면서 불이라도 질러버릴까!”
돌연 눈을 반짝거리는, 축 늘어진 눈아래 그늘 덕분에 더욱 반짝거리는 듯이 보이는 홀시딘의 그 눈빛과 표정에 투란은 당황했다.
약 백여 년 동안 춤추는 산맥에서 유일하게 돌아다닌 전쟁 이야기는 방화범이라 불린 마법사가 돌아다니면서 불 지른 탓에 화제가 된 경우뿐이었다. 대부분 군단이 동원되고 대규모 전투가 일어난 이야기는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토벌전, 방어전 이야기였고 사람끼리 한다는 전쟁은 관심 밖이니까.
“근데, 여긴 어디예요?”
투란도 전쟁이니 뭐니 하는 것은 관심 밖이라고 주장하듯, 새삼 끌려온 곳에 대해서 물었다. 그런데,
“그렇지! 방화범이란 본보기가 있었어! 투덜거리더라도 큰일 터뜨렸다가는 불꽃의 분노를 받을 거라고 협박을 좀 해두면…….”
홀시딘은 뭔가 자기만의 생각에 빠진 듯이 중얼거리잖는가.
게다가 그 중얼거림과 함께 몸에서 모락모락 마법의 힘을 피워내면서, 본격적으로 뭔가 아주 깊이 생각을 거듭하는 것을 곁에서 바로 느끼게 해준다!
어처구니없어 투란이 다시 ‘홀시딘?’ 하고 살짝 부르는 순간,
“아, 투란! 너 혹시 명예나 의무에 대해서도 생각나는 이야기 없니?”
홀시딘은 정말 뜬금없는 상황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다시 이상한 소리를 투란에게 쏟아냈다.
―허, 이 마법사…… 다중사고(多重思考)의 변수(變數)를 네 헛소리에서 찾나 본데?
‘그건 대체 무슨 헛소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