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0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98)
―한 가지 방향에서만의 사고를 피하려고,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생각하는 방법이다. 마법사는 그걸 좀 극단적으로 강화시켜서 마인드 트릭으로 사용하지. 거기에 자신이라는 틀과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주변에 아무나 뭔 말이든 할 사람을 두고 이용하는 거야. 뭐…… 이 경우에는 투란, 너 정말로 적임자다. 뭔 소리를 하는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을 막하면 되거든.
‘뭐라는 거야―!’
뭔가 굉장히 놀림받은 느낌에 투란은 소리없이 일단 으르렁거려놨다.
하지만 음침한 그늘진 얼굴로 눈빛을 번쩍대는 홀시딘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니, 정말 뭐라 막 하지 말해야 할 듯싶잖나!
“음, 명예라…… 의무라…….”
투란이 일단 입술을 떼고 보니, 홀시딘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잔뜩 기대한다는 듯이 부담스럽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문득 투란은 명예와 의무에 대해서 히죽거리며 떠들던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진정한 명예(名譽)가 뭔지 알려줄까? 그건 긍지(矜持)에서 나오는 거다. 그럼, 긍지가 뭔지도 알려줘야겠지? 진정한 명예를 모르는 놈이라면 긍지가 뭔지 알 리가 없으니까 말이야!
“……전에 오러클 아저씨가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응? 오러클?”
“예. 그러니까, 꽤나 위험한 상인이랑 얘기하는 거였어요. 음…… 사제라든가 신전의 전사라면 당연히 사람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의무를 저버리는 짓은 명예롭지 못하고 부끄러운 것 아니냐고 상인이 자기를 지켜서 데려다줘야 하는 일이 신전에서 나온 성기사랑 사제의 의무라고 막 떠들었거든요. 그런데 뭘 어떻게 말했는지…… 말끝마다 신의 은총이네, 뭐네 하면서 떠드니까 사제랑 성기사? 뭐 그런 아저씨들이 꼼짝도 못 하고 상인 하자는 대로 했어야 했는데…… 에, 홀시딘 이게 뭔 이야기인가 알아듣겠어요?”
웅얼웅얼, 기억을 더듬다가 투란은 문득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가 알아듣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묻고 있었다. 그런데,
“알 만하군. 신전의 교리를 이용해서 사제나 성전사, 성기사를 공짜로 부려먹으려는 장사꾼이 있기는 하지. 평범한 녀석들은 아니야. 이용하려는 신전의 경전과 교리를 자유자재로 논쟁에 이용해먹는 놈들이니까, 사제가 그 논쟁에서 깨지거나 성전사처럼 몸으로 때우는 경우라면 그대로 이용당할걸. 그래서, 오러클이 뭐라 했는데?”
주절주절, 뭔가 딴 데 정신 놓고 있는 느낌을 물씬 풍겨내면서도 홀시딘은 투란이 하는 말의 내막을 알고 있는 듯하잖은가?
투란은 마음 편하게 되는대로 말하기로 했다.
왠지 대강 말해도 마법사가 쏙쏙 잘 알아듣는 것 같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면서!
“말장난에 속아서 이용당하는 것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신앙을 지켰다고 믿는 얼간이들은 좀 맞아야 한다고 성전사, 성기사 아저씨들을 뒈지게 팼어요. 그다음에 진심은 한조각도 없는 말장난으로 남을 이용하려드는 못된 놈이라고 그 상인을 또 뒈지게 팼죠. 샤오 할배가 마을에서 난장판 만들지 말라고 야단치니까, 오러클 아저씨는 마을 밖으로 상인이랑 신전 아저씨들을 다 데리고 나가서 낮 동안 죽지는 않게 뒈지게 팬 다음에 밤에 데리고 돌아왔죠. 그리고 또 아침에 끌고 나가서 패고…….”
―신뢰(信賴)에 목숨을 걸고 성실(誠實)을 밑천으로 삼는 것이 상인이다! 남의 피를 제물로 바쳐서 이익을 꾀하려는 것은 사기꾼이지! 자기 입으로 내뱉은 것을 한 가지도 지킬 마음이 없으면서 남에게는 그리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건 그냥 패악(悖惡)떠는 쓰레기에 불과하고!
“……그렇게 한 사흘 정도 팼더니, 상인이 신자가 되더라고요. 앞으로는 신전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을 자기 자랑으로 삼겠다면서 말이죠. 뭐, 같이 두들겨 맞은 신전 아저씨들도 뭔가 성스러운 힘을 더 깊이 갈고닦게 되었다고 오러클 아저씨한테 열심히 인사하고 말이죠.”
“결국 폭력으로 포교하고 감화시켰다는 거냐?”
잠깐 홀시딘이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어디 가 있던 정신줄을 이쪽으로 당겨왔다는 듯이 투란에게 중얼거렸다.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투란은 히힛 하는 소리로 계속 말한다.
“뭐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샤오 할배가 그걸 보고 그러더라고요. 결국 제대로 된 신앙이 없거나 모자란 놈들이니까 공포와 폭력이 통한 거라고, 그나마 다행이라던데요. 제대로 망가진 경우라면 겁주고 패는 정도로는 고쳐지질 않아서 때려죽였을 거라고 말이죠. 음, 아마 계속 패도 말이 안 통한다 싶으면 오러클 아저씨가 다 죽일 거였나봐요. 정말 그랬을까 싶기는 한데…….”
“그럴 마음이 없다 해도 그럴 마음이 있다고 믿게 했겠지. 공포와 폭력이 통하면 그나마 다행이라…… 공포…… 폭력…… 방화범…… 어라?”
음울하게 그늘졌던 홀시딘의 얼굴에 갑자기 번뜩거리는 광채가 나타났다.
그 광경은 투란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눈 아래 축 늘어졌던 그늘이 눈빛이 밝아지면서 스윽 사라졌고, 암울하게 일렁이던 마력 또한 깔끔하게 정리되면서 그 자취를 감추고 홀시딘의 몸이 가벼운 깃털처럼 살랑거리듯이 살짝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뭐, 뭐야? 왜 이래?’
―흠? 과연 마도사로군. 마음속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몸에 그대로 반영되는군. 이제 제대로 대화가 통할 거다.
‘뭐? 조금 전에 한 얘기는!’
―그냥 잉잉 앙앙 거린 거나 마찬가지지 뭐……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전 너의 그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속의 오러클에게서는 확실히 의미를 찾은 듯하군.
‘그 아저씨 진짜 그랬거든?’
―홀시딘도 정말 괜찮아진 모양이니까, 이제 왜 끌려왔나 묻지 그래?
‘에?’
투란은 번개처럼 오간 마음속의 대화 끝에 가만히 홀시딘을 바라봤고, 살그머니 불러본다.
“홀시딘? 마스터 홀―.”
덥석!
홀시딘의 한 손이 투란의 어깨에 힘차게 올려졌다.
“그거야! 그러면 되는 거야! 과연 투란! 멋진 해답을 알려줘서 고마워! 아하핫! 괜히 고민했잖아! 아하하하―!”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에헤헤.”
투란은 환한 표정과 함께 일던 대강 함께 웃어줬다.
―뭔 소리인지 알고는 웃냐?
‘알게 뭐야! 이럴 때 마법사한테 따져묻고 싶어? 난 싫어!’
뇌리에 오가는 소리 없는 핀잔을 무시하면서 투란은 열심히 홀시딘의 상태를 살폈고,
“으하하핫!”
“에헤헷!”
큰 웃음이 이어질 때 장단 맞춰서 같이 웃어줬다!
그러는 사이 홀시딘은 차츰 차분한 모습이 되었고 음침하고 암울했던 모습이 싹 사라졌다. 마치 몇 년을 어딘가 틀어박혀서 보기 힘든 몰골이었던 이가 깨끗하게 씻고 옷이라도 싹 갈아입은 것처럼!
그 웃음이 가라앉아 슬슬 홀시딘이 편안한 표정이 되는 것을 가늠하면서 투란이 슬쩍 묻는 소리를 낸다.
“아, 그런데 여기는 어디래요?”
“응? 여기?”
잠시 홀시딘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딱 봐도 여기가 어딘가 살피는 모습!
‘아, 이 마법사가 진짜―!’
뭔가 투란의 가슴에서 울컥하는 기분이 샘솟았다.
하지만 홀시딘이 바로 자기 손등으로 자기 이마를 치며 하핫 하며 외치니,
“너에게 오우거 소재로 한 마법 주머니 만들어 주기로 했었지! 아, 그것 때문에 이리로 불러왔군! 너랑 시알라, 형제들 몫까지 마법 주머니 하나씩 만들어주기로 했었잖아. 여기는 그러기 위한 마법공방이야. 자, 이쪽으로.”
둥실거리며 앞장서기도 하는 그 뒤를 쫓으면서 투란의 기분이 바로 싹 바뀔 수 있었다.
“와, 여기가 마법공방이군요!”
―그냥 싹 잊어주는 거냐? 이건 뭔 멍텅구리 새대가리도 아니고―!
드라고니아가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는 투란의 마음을 짚듯이 투덜거렸지만, 투란은 과감하게 무시했다. 받기로 한 마법 주머니를 생각하니, 저절로 콧노래가 나올 듯한 기분이므로!
하지만 드라고니아 역시 그 투덜거림을 금세 멈췄다.
홀시딘이 복잡하게 쌓인 물건의 골목을 빙빙 돌아서 데려간 곳, 거기에 펼쳐진 광경을 투란이 보는 순간이었다.
―아케인 프레임? 이거…… 상당한 수준인데!
투란에게는 뭐가 뭔지 잘 모를 것이었다.
넓게 펼쳐진 탁자, 그 중심에 원이 새겨져 있고 원 안을 채우는 많은 무늬는 무슨 뜻인가 알 수 없었다. 원을 둘러싼 네 개의 초는 거의 다 녹아내린 것처럼 탁자에 눌어붙은 채였고, 촛농이 이어진 채로 울퉁불퉁한 모서리를 지닌 사각형을 그리고 있지만, 그 분위기가 꽤 기묘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가는 역시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탁자 건너편 벽에 걸린 박제(剝製), 칼날 같은 뿔이 요란하게 가지를 친 사슴의 목을 가슴 위부터 잘라 붙여 놓은 듯한 박제가 테이블의 도형을 내려다보는 듯한 분위기가 마치 살아있는 듯하다는 것만 투란에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뭔데?’
―소재와 마력만 충분하다면 아티팩트도 거뜬히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 공방이란 말이다.
‘헤에?’
아티팩트, 마법물품 중에서도 굉장히 높은 수준의 걸작을 일컫는다고 했다.
이 마법 공방이 뭐가 어떻게 대단한가는 알 수가 없지만, 드라고니아의 설명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홀시딘은 졸래졸래 따라붙은 투란에게 신경 쓰지 않고 로브를 펼쳐 벽장처럼 두른 다음, 탁자 위의 원 안에 이것저것 늘어놓기 시작했다.
―음? 무쇠뿔 오우거의 심장, 위장…… 마수 거미의 껍질도 있군? 흐흠…… 저 시약도 사용하는 건가.
그 광경을 보며 드라고니아가 아주 깊은 호기심을 드러내니,
‘……음, 너 혹시 방금 전에 자기가 뭐라고 했었나 기억은 하냐?’
왠지 핀잔 주고 싶어지는 투란이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도 투란처럼 이런 소리를 싹 무시했다.
뭔가 투란이 한숨 쉬고 싶어지는데, 홀시딘이 스윽 돌아보면서 손짓과 함께 말한다.
“뭐 해?”
눌어붙은 네 개의 초를 가리키는 그 손짓에 투란은 눈을 껌벅일 수밖에 없었다.
뭘 어쩌라고?
“애들 불러!”
“애들……?”
“너의 정령수들! 초 하나에 하나씩 붙여줘. 자리는…… 저기부터 불, 물, 흙, 바람 순서야.”
“……에? 왜요?”
“마법 주머니 효과가 백분의 일로 떨어져도 상관없어?”
“헐? 백분의 일이라니, 왜!”
“오우거의 조각을 가공하는 데는, 정령의 나무에서 태어난 오우거 소재를 이용한 가공에는 정령의 힘이 필요하다고. 제대로 된, 굉장한 마법 주머니를 만들어 준다고 했잖아. 거기 힘을 보태라고! 남 줄 것 아니고, 네 거잖아! 자자, 얼른!”
재촉하는 홀시딘의 눈빛은 정말 찬란하게 번뜩였다.
―아주 바닥까지 뜯어먹는 마법사로구만.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 중얼거렸지만, 투란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흐으…… 알았어요.”
“흐흐흣, 투란…… 만들어진 걸 보게 되면 지금 그 불만은 싹 사라질걸!”
홀시딘은 투란의 볼맨 표정을 보며 오히려 으스대는 웃음과 함께 큰소리치고 있었다. 너무 자신만만한 그 태도가 오히려 수상할 지경이었지만, 투란은 홀시딘이 말과 함께 까닥거리는 손에 채워진 스펠 밴드까지 마력을 요동시키는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홀시딘이 뭔가 제대로 저지를 낌새 아닌가!
“파이로, 아쿠아, 테라트, 에어로!”
불꽃, 물결, 찰흙…… 작은 회오리가 네 개의 초를 감으며 스며들었다.
순간 네 개의 초가 제각각의 광채를 내기 시작했고, 촛농까지 번져간 빛은 선명한 사각형을 이루며 낮은 빛의 담장을 만들어냈다. 원은 그 안에서 둘레를 반짝이기 시작하며 차츰차츰 안의 무늬가 밝아져갔다.
홀시딘은 그 광경을 향해 스펠 밴드를 두른 손을 내밀면서, 두 눈은 똑바로 박제의 짐승을 향한 채로 말한다.
“마스터 펠카윈, 마스터 엘투란! 두 분의 뒤를 잇는 삼 대째 마스터인 저, 홀시딘이 지금 유산을 사용하려 합니다. 잠금을 열어주시길!”
박제 사슴의 눈알이 빛나기 시작했다.
원 위에 늘어놓았던 소재들이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곧 이어진 광경은…….
‘우와, 이게 마법 공방!’
투란은 감탄했다.
홀시딘은 두 손을 움직이고 있었고, 입으로 뭔가 지시하듯 중얼거렸다.
그때마다 오우거의 조각이, 마수 거미의 껍질이, 뭔지 모를 약물이 허공에서 뭉치고 흩어지며 엉기고 섞여가며 모양을 자아내고 있었다. 간간이 박제의 눈알에서 흘러나온 빛이 거기에 섞여들기도 했다.
거친 소리가 나는가 하면, 부드러운 소리도 흘렀다.
그렇게 주먹만 한 마법 배낭이 만들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