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0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00)
―야, 그게 아니잖아!
‘뭐가 아냐!’
―성을 담는다는 게 아니고 성이 들어갈 정도로 큰 용량을 지닌 마법 주머니라고!
‘나 지금 방도 그냥 비워둔 채거든?’
투란이 으르렁거렸다.
이 말대로 금빛매, 은빛매의 간판을 이제 겨우 만들어온 쉼터, 노골적으로 황금매의 쉼터라고 이름 짓자고 했던 곳에 마련된 투란의 방에는 덩그러니 나무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아직 알드바인의 가게에서 담요 따위를 전혀 사오지 않아서 일부러 비워놓은 채였다. 마법으로 생성한 물품을 놔두기보다는 제대로 사온 것을 늘어놓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방이 다 채워진다고 해봐야…….
―응? 어― 음―. 뭐든 마음 내키는 대로 담을 수 있으니 좋은 거 아니냐? 이제는 금괴를 삼키고 버티느라 웩웩 거리고 다니지 않아도 되잖아?
잠깐 움찔하는 낌새였던 드라고니아가 재빠르게 둘러대는 소리를 늘어놨다.
투란은 발끈하려다가 퍼뜩 생각난 바가 있었다. 입이 저절로 열려서 한창 완성품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홀시딘에게 묻는 소리를 꺼낸다.
“여기 뭐 담으면…… 제대로 꺼낼 수 있는 건가요?”
“응? 당연히 꺼낼 수 있지! 물건을 담아서 못 빼내면 그게 뭔 배낭이야!”
홀시딘이 이리 당당하게 대답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렇게 많이 담아놓으면 뭔가 필요할 때 전부 꺼내서 늘어놓고 찾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방 하나에도 물건 쌓다보면…….”
투란은 스윽 주변을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마법 공방의 주변에 잔뜩 쌓여서 미로를 만들고 있는 물품들…… 적당한 선반에 진열된 것도 있지만 그냥 바닥에서 쌓아올린 것이 더 많이 눈에 띄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강 던져놓고 오락가락 하는 길만 뚫어놓은 듯한 창고, 음침하고 어두운 그늘 사이로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마법의 빛이 그 분위기를 더욱 암울하게 꾸미는 듯한 풍경이었다.
홀시딘은 그 눈빛과 말에 ‘어?’ 하다가 바로 ‘아!’ 하는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곧이어 꺼내는 말은 흐흣 하는 으스대는 기분이 잔뜩 담긴 채였다.
“설마 내가 어디의 어떤 마법사처럼 이 배낭에 소팅, 카운팅을 빼놨을까 봐? 상아탑에서 이런 마법 배낭을 얼마나 오랫동안 연구하고 만들어왔는데! 당연히 여기 뭐가 담겼든, 너는 이 사자 머리에 손을 대면 마음속으로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고 원하는 것만 골라서 바로 빼낼 수 있어! 즉, 성을 하나 통째로 담갔다 해도 거기 있는 접시나 단도 한 자루를 너 원할 때 언제라도 골라 뺄 수 있다, 이거야!”
“헤에…….”
투란은 감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에 홀시딘이 한층 더 우쭐해지려 하는 순간, 투란이 불쑥 묻는다.
“있긴 있었군요? 어딘가에 사는 어떤 마법사…… 물건을 담아두고 꺼내려면 다 꺼내봐야 하는 마법 주머니 만든 마법사, 진짜로 있었군요?”
“어? 에, 그야…… 마법사라고 해도 덜렁대는 성격인 녀석이 없을 리는 없잖아? 가끔 큰 사고 치는 녀석도 있고……. 아, 그게 지금 중요한 얘기가 아니잖아! 여기, 블랙레온을 보라고!”
흠칫하다가 얼렁뚱땅 둘러대는 홀시딘이었다.
투란은 다시 지긋한 눈빛을 띄운 다음에 묻는다.
“몬스터 로드가 쓸 수 있는 배낭인 거는 맞죠? 몬스터 로드의 힘이 강해지면 마법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데…….”
“응? 그야 당연하지! 너 쓰라고 만든 거잖아. 로열 가든의 징표가 열쇠 노릇도 하는 마법 배낭이라고. 산맥 깊은 곳에서도 망가지지 않고 쓸 수 있는 마도구야! 괜히 오우거를 소재로 삼은 게 아니라고.”
홀시딘은 당당하게 외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이 소리에 바로 반응하니,
―아, 그렇군. 과연…… 로열 가든을 연계해 놓았다면, 시크릿 키퍼의 마법이니까 몬스터 로드에게 망가지지 않겠어! 그런 수가 있었어!
뭔가 난해한 문제를 해결했다는 듯한 말이었지만 투란이 납득할 얘기가 아니었다. 그저 뭔지 모르지만 몬스터 로드의 힘으로부터 버텨내는 마법이란 정도만 얼핏 느껴질 뿐이다.
투란은 일단 홀시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게 홀시딘을 향해 정말 믿는다는 척하면서 배낭을 더듬는 채로 투란이 슬쩍 중얼거린다.
“음, 뭐…… 그렇기는 하겠지만…… 뭐 담아둔 게 없어서 그런지, 아직 잘 모르겠네요. 금전이라도 있으면 좀 담아보겠는데…… 아, 그러고 보니 상금! 언제쯤 만져볼 수 있어요?”
왠지 ‘믿어도 되나요?’라고 의심하는 듯한 말투가 홀시딘의 눈꼬리를 살짝 치켜 올리게 했지만, 상금 이야기가 바로 홀시딘의 눈을 부릅뜨게 하며 눈동자를 저쪽으로 굴러가게 했다.
“아, 상금! 이런, 그 얘기를 해준다고 하고서 깜박 잊고 있었네! 아, 잠깐 이쪽으로 앉아봐.”
가벼운 손짓으로 의자 하나를 당겨 옆에 놓으면서, 홀시딘은 빛이 사라진 마법 공방인 탁자 곁에 둥실 뜬 채로 앉는 자세만 취한 채로 말하고 있었다. 진지한 그 태도에 투란은 뭐라 적당히 응해야 하는가 잠깐 머리를 굴리면서 의자에 앉았고, 앉자마자 바로 묻는다.
“역시 삼천 닢은 못 내놓는다던가요?”
“뭐? 못 내놓기는…… 헌터 길드에서 이미 사천 닢을 가져왔다고.”
고액(高額)의 금전이 걸린 일에 대해 노련한 사냥꾼처럼 의심하는, 새삼스러운 투란의 모습에 홀시딘은 쓴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그래서 투란은 다시 적당히 눈을 깜박거리면서 뜻밖의 상황에 놀라는 척하며 말한다.
“……사천 닢? 잠깐, 그럼 이미 상금을 다 받은 거예요?”
한데 홀시딘은 눈을 조금 가늘게 하며 뭔가 미심쩍은 눈길로 투란을 훑어보기부터 하잖나! 그 눈길이 수상해서 투란은 얼른 한마디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왜요?”
“금괴를 그렇게 쌓아 쟁인 녀석이 금전 사천 닢에 뭘 놀라? 이상한데?”
“……그건 그거! 이건 이거! 나야 희한한 곳에서 이상하게 금광을 보고 냅다 캐온 거지만, 상금으로 나오는 금전은 몇 십닢만 되도 중간에 틀어져서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잖아요! 근데 사천 닢이…… 왜 사천 닢인 거예요? 삼천몇백 닢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근데 그걸 한꺼번에 단번에 갖다 주다니, 전에 말할 때는 받기 힘들다고 하지 않았어요?”
배낭을 쥔 손까지 허우적거리면서 투란은 열심히 놀라야 할 일이라고 강조하듯이 떠들었다. 그리고 액수에 대해, 벌써 지불이 된 것에 놀라는 게 당연하잖냐고 짚었다. 이런 투란의 자세가 통한 듯, 하지만 여전히 좀 수상해하는 눈빛인 채로 홀시딘이 말한다.
“뭐 그렇기는 하니까 그렇다 치고…… 투란,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상금 액수인데…… 실은 전에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말했거든.”
“사천 닢 다 갖고 왔다면서요?”
“음, 그래. 헌터 길드 몫만 일단 가져왔지. 기억하지? 그 상금, 상아탑이랑 헌터 길드랑 나라에서 분담해서 적립하기로 했다고 말이야. 일 년에 이십 닢, 삼십 닢씩…… 사실 그 상황에 비하면 그렇게 큰 상금은 아니라서, 적립해서 건드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였는데…… 아니, 이 얘기가 아니고! 암튼, 그 이십 닢, 삼십 닢이 백오십 년 가량 쌓여서…… 곱셈 할 줄 알지?”
“그래서 대강 사천 닢이군요? 음, 그러니까 다 받았다는 거잖아요?”
“헌터 길드 몫만 말이지. 다른 곳에서 적립한 것은 아직 못 받았고.”
“……흐음?”
투란은 눈을 깜박이면서 무슨 말인가 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홀시딘이 눈을 부릅뜨면서 투란에게 얼굴을 들이대면서 또박또박 말한다.
“시침 떼는 거, 느껴진다? 너, 뭔 소리인지 알아들었지?”
“……쳇, 어디다가 궁전 짓느라 날려먹은 이만 닢 대강 복구된 거 아닌가 싶은데요?”
투덜거리듯이 대답하는 투란에게 바로 홀시딘이 목소리를 높인다.
“복구 정도가 아니지! 그 두 배가 훨씬 넘잖아!”
“아, 네…… 하아…… 암튼 사천 닢은 냉큼 가져왔고, 나머지는…… 얼렁뚱땅 넘어간대요?”
셈이 어려워서 잘 모르겠다는 시늉을 하며 투란이 말했다.
홀시딘은 단호하게 이에 대꾸한다.
“넘어가게 두지는 않아. 단지 시간이 좀 걸릴 뿐이야. 그러니까 얼마간 기다려 달라고. 어쨌든 일단 사천 닢이면…… 아, 이거 그레이우드 보상금까지 포함된 거다. 거미 처리분은 나중에 따로 계산하기로 했어.”
“……뭔가 점점 받기 힘들어진다는 말 같은데요?”
한숨처럼 투란이 중얼거렸다.
홀시딘이 피식 새는 웃음과 함께 투란의 어깨를 꽉 잡으면서 말한다.
“아니, 반드시 받아낼 거야. 어떻게든 받아낼 거야. 왕궁이든 상아탑이든 발칵 뒤집어서라도 받아낼 거야. 단지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고…… 걱정하지 마! 백 년 걸리니 어쩌니 할 일은 아니니까! 늦어도 일이 년 내에 반드시 내가 받아낸다! 자, 그러니까 말인데…… 뭐 좀 사라!”
“……그 마지막 한마디는 대체 뭔 소리예요!”
각오를 다진 마도사의 말에, 몰래 마법사들의 회의를 엿본 탓에 그 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 투란은 살짝 감동하다가 울컥해서 따져 물을 수밖에 없었다.
홀시딘은 방긋 웃음과 함께 턱짓했고, 투란은 의자와 함께 공중에 떠오르면서 한쪽으로 스윽 옮겨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잔뜩 쌓인 물건 틈새를 빙빙 돌고, 벽 한쪽의 열린 곳을 지나 새로운 방으로 옮겨가는 와중에 홀시딘의 말이 투란의 귓가로 흘러든다.
“앞으로 받을 금전 따지지 않아도 너 지금 당장 엄청난 부자라고! 그러니까, 알드바인 상아탑의 마도구를 좀 사란 말이다! 좋은 거 많거든! 초대부터 이대 마스터까지 열심히 만들어서 남겨둔 좋은 마도구를 보여줄게!”
의자를 한 손으로 꽉 붙든 채로 투란은 반발하려 했다.
“상아탑의 마스터가 만든 마도구면…… 금전이 줄줄 새게 만든다는 비싼 거잖아요! 그런 거 필요 없―!”
“가격도 저렴해! 여기 알드바인에서 헌터를 대상으로 팔려고 만들었다니까! 비싸지 않아! 은전으로도 살 수 있다고! 자, 봐라!”
반발 따위는 무시한다는 듯이 홀시딘은 건너온 방의 어둠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고, 곧바로 벽 곳곳에서 마법의 등불이 빛을 뿜어냈다.
투란은 곧바로 벽에 걸린 것, 선반에 놓인 것들이 마법의 힘을 짙게 뿌리면서 눈에 확 들어오는 광경을 보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
칼날 없이 자루뿐인 칼, 좁은 폭의 가죽 팔찌, 특징 없어 보이는 긴 막대, 장식 없는 두터운 허리띠, 갑옷…… 온갖 잡다한 것들이 옆방과 다르게 깔끔하게 정리되어서 진열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죠…… 나는 몬스터 로…….”
“조정해줄 수 있어. 여기 마도구들은 너나 시알라네랑 마음 놓고 쓸 수 있게 조정이 가능해. 뭐, 황금매의 특성을 이용한다면 굳이 조정하지 않아도 충분히 쓸 수 있기도 하겠지만 말이야.”
냉큼 말을 자르면서 단호하게 말하는 홀시딘을 투란은 잠깐 질린 눈빛으로 바라봐야 했다. 이건 정말로 팔아치울 생각이잖은가!
“근데요…… 이런 마도구가 왜 필요하냐고요, 우리가 왜―!”
“위장용이지! 너, 오러 마크를 이용하는 하급 헌터 흉내 낼 거라며? 오러 마크를 새겼다면 어느 정도 마도구는 갖추고 있어야 당연하잖아? 금전을 잔뜩 처바른 마도구를 사란 게 아니야.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헌터에게는 기본적인 장비를 기반으로 한 마도구이고, 은전으로 넉넉히 살 수 있다니까!”
투란은 귀를 쫑긋했다.
듣고 보니, 홀시딘은 마냥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기는 했다.
분명히 어느 정도 장비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특히나 오러 마크를 이용해 위장할 생각이라면…… 정말로 어느 정도 마도구, 마법 물품은 지니고 있는 편이 당연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걸 꼭 홀시딘에게서, 이 상아탑의 마스터에게서 사야 하는가?
“야, 그 고목에 자리 잡고 있는 동안 은전 지급된다고 했잖아. 이건 산다고 해도 결국 사는 게 아니라 거저 얻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리고 은전 지급받는다는 것이 알려지면, 너네 어차피 상아탑의 마법사랑 꽤 친하다는 소리 나올 테니까, 그런 소문을 이용하려면 진짜 상아탑의 값싸고 질 좋은 마도구 몇 개는 갖고 있어야지! 그게 앞으로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어…… 그게 그런가요?”
왠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아, 그렇군요!’ 하려 하기 싫은 마법사의 말에 투란이 어정쩡하니 대꾸했다. 이런 노골적인 반항심에 대해 홀시딘은 방긋 웃음을 흘리면서 더욱 차분하게 말한다.
“거기 위장은 오늘부터 천천히 풀어낼 거지? 아, 간판은? 설마 정말로 황금매―?”
“금전 문 매라서 금전매라고 불릴지도 모른대요. 암튼 금빛매의 쉼터라고 해놨으니까…… 홀시딘?”
투란이 말을 하는 사이에 홀시딘이 슬쩍 옆을 돌아봤고, 미묘한 마법의 파문 속에서 멀리 보는 눈길을 했다. 그리고 곧 홀시딘은 휘청하며 옆으로 기울어지듯이 바닥에 내려서는데, 마치 놀라서 뚝 떨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야, 너네―! 대체 저게 뭐야, 돈에 환장한 미친 매 같잖아! 뭔 저런 간판을! 제정신이냐!”
“흠…… 몰라요, 난 그냥 황금빛 반짝거리는 매가 새겨졌으면 좋겠다고 했을 뿐이고…… 금전 물리자고 한 건, 내가 아니니까.”
고개를 휙 돌리면서, 투란은 간판의 모양새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
홀시딘은 어이없어 꽤 놀란 듯했지만…… 열심히 의논해 정한 금빛매의 형상이었다. 황금매란 말에 홀시딘이 으르렁거려서 살짝 몇 가지를 더한 모양이었고, 이미 주문해서 소문내며 만들어 왔는데 바꿀 수는 없잖은가?
투란과 네 남매에게는 매우 소중한 쉼터가 될 예정이었고, 이런 압박에 굴복할 수는 없다! 황금매를 품은 네 남매와 투란에게는 실로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터전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