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0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01)
Chapter 101. 어느 날 알드바인에서
“음, 이건 며칠 뒤에 열어두기로 하고…….”
시알라는 갸웃하면서 굵고 넓은 통나무 테이블, 앞으로 손님 접대를 할 바(Bar)를 두드렸다. 흐릿한 환영에 감춰진 통나무였지만 두드림에는 바로 통통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럼 대장간 모루랑 화덕은 일단 사온 부품을 끼워넣어 설치한 걸로 꾸미고, 불 붙여놓는 거는 숯을 사온 다음에 해야겠네.”
페란드도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란드와 멜란드는 금빛매와 은빛매, 퍼브와 대장간의 환영을 거두고 그럴듯하게 모양을 드러낼 시기를 의논하는 누나와 형을 보면서 눈을 깜박거렸다. 아무래도 둘이 끼어들 일은 아니란 듯한 태도였다. 뭔가 정말로 갖다 붙이고 설치하거나 하는 일이라면 거들 일이겠지만 이미 기본적인 형태는 몽땅 마법으로 세공된 채였고, 덧씌워진 환영을 거두고 며칠 걸렸다는 시늉만 하면 되는 탓이었다.
그래서 조금 지루하다는 듯, 멜란드가 불쑥 제란드에게 묻는다.
“아래층은…… 그대로 쓸 거야?”
“그대로 써야지. 모처럼 상아탑의 마스터가 설치해준 방벽이잖아.”
제란드가 당연하잖냐는 듯이 대답했다.
멜란드는 갸웃하면서, 홀시딘이 고목 아래쪽 지하에 둘러쳐준 두꺼운 벽을 떠올리면서 다시 묻는 소리를 낸다.
“흠…… 그거 무슨 성벽 같은데, 답답하지 않겠어?”
“나중에 고블린 사냥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열어줘야잖아. 아마 그 정도가 알맞을걸.”
어깨를 으쓱하면서 제란드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홀시딘이 이 고목의 방어를 맡길 때, 단순히 네 남매의 역량에만 기대지 않았고 고묵 주변에 우드 가디언을 설치한 것처럼 지하의 뿌리로 이어진 통로 쪽에 방벽도 세워줬다. 방벽은 굵고 큰 나무 뿌리와 나란히 얽히면서 제법 던전의 미로 같은 지하구조를 갖췄지만, 제란드나 멜란드에게는 뭔가 쳐들어온 고블린을 단숨에 잡기가 애매한 방해물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멜란드의 말처럼 조금 답답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건 지하의 고블린 부루탈을 간단히 대적할 수 있는 경우의 이야기였고, 사실은 그 미로를 이용해 고블린 떼를 분단하고 가로막으면서 각개격파하기 적합한 작은 성채라는 것이 맞는 말이었다.
그런 지하 방벽을 만들어주면서 홀시딘은 그 관리를, 이 고목 주변의 지하를 통한 방어역할을 네 남매에게 고스란히 맡긴 것이다. 적당히 때를 봐서 시알라에게 아예 마법 건축술을 알려주겠다고까지 했으니…….
“아, 제란드. 넌 나랑 퍼브 운영도 해야지?”
갑작스럽게 시알라가 불쑥 던져온 말에 제란드가 흠칫했다.
“응? 나? 나까지 퍼브 일을 거들라고?”
“당연하지! 너 사냥해오거나 하면 혼자 구워먹을 거야? 사냥꾼이 하루도 쉬지 않고 사냥 다니는 거는 아니잖아?”
“아니, 그야 그렇지만…….”
제란드는 사냥꾼이 사냥 나가지 않는 날은 힘을 비축하며 쉬는 날이지, 퍼브를 들락이면서 힘을 낭비하는 날이 아니라고 주장하려 했다. 퍼브, 여관 일도 나름대로 굉장한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하지만 그렇게 제란드가 따지기 전에, 시알라가 거기에 대해 준비된 대꾸를 하기 전에 돌연 허공이 출렁하듯이 나무 벽 한편이 부풀었고 구멍이 뚫리면서 투란이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응? 투란?”
“어라? 뭐야?”
무슨 일인가 페란드와 멜란드가 따지기 전에 구멍 속에서 스윽 홀시딘이 머리만 내밀더니, 네 남매를 주욱 훑어보잖는가. 뭔가 재면서 고르는 듯하는 그 눈길에 시알라가 바로 반응하며 동생들 앞에 나서려 하며 묻는다.
“마스터 홀시딘, 무슨…….”
“응, 그래! 자네부터 하면 되겠군!”
홀시딘이 불쑥 입을 열었고, 시알라는 그 말이 자신이 아닌 멜란드를 향한 것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구멍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탓에!
“예? 그게 무슨!”
멜란드가 어리둥절하고 시알라가 좀 더 빨리 나서면서 물으려 하는데, 투란의 외침과 홀시딘의 손짓이 동시에 이뤄졌다.
“메, 멜란드! 사면 안 돼애애!”
멜란드가 ‘어?’ 하다가 구멍 속으로 담겨졌고, 구멍과 함께 사라졌다.
시알라는 홀시딘의 가벼운 손짓에 바닥에 눌러앉아 꼼지락거리던 멜란드가 순식간에 구멍 속으로 옮겨지면서 사라지는 광경에 놀라 손을 내밀려다가 투란의 말에 멈칫했다.
제란드가 투란에게 묻는 소리를 낸다.
“사면…… 안 돼?”
페란드는 그사이에 투란이 외침과 함께 한 손을 내밀었지만 다른 한 손으로는 뭔가 품 안에 꼭 끌어안듯이 쥐고 있는 것을 봤다. 전에 갖고 있던 것이 아닌, 검은 짐승 머리의 장식이 눈에 확 띄는 조그마한 물통 같은 모양…….
“투란, 그게 뭐야? 그걸 샀어?”
“아냐! 이건 산 게 아니야! 이건 그냥 만들어준 거고! 으아아!”
투란이 발랑 뒤로 누우면서 발을 허우적거리고 억울해 하는 몸짓을 보였다.
페란드와 제란드가 눈을 깜박이면서 ‘뭐야?’ ‘왜?’라는 표정으로 투란을 멀뚱히 바라봤고, 시알라는 한숨과 함께 세차게 손뼉을 치고 투란에게 묻는다.
“투란, 무슨 일이야? 홀시딘이랑 뭘 하다 온 거야? 쥐고 있는 그건 뭐고, 사면 안 된다는 거는 또 무슨 이야기야? 홀시딘이 우리를 차례대로 데려갈 것 같은데, 차분하게 이야기해줘. 투란! 얼른 얘기해달라고! 우리도 똑같이 당하게 둘 거야?”
뒹굴면서 ‘흑흑, 당했어!’ ‘이렇게 사게 하다니!’ ‘금전! 아으, 만져보지도 못한 금전을!’ 하면서 징징대는 투란에게 시알라는 버럭 외침으로 말을 맺었다. 저 와중에도 자기가 한 말을 다 들었을 거란 확신에 찬 외침이었다.
과연 투란은 발딱 일어나 앉아 세게 고개를 저으면서 대꾸하니…….
“안 돼! 다 같이 당하면 내가 좀 덜 억울하겠지만…….”
“투란?”
“어이!”
곧바로 페란드와 제란드가 ‘그건 아니잖아!’라는 의미를 가득 담아 낮게 소리질러줬다. 시알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눈길과 함께 다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툴툴거리는 말투로 투란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그건 홀시딘만 신나고 좋은 일이니까, 안 돼! 잘 들어봐! 홀시딘이 한 명씩 불러가서 이런 걸 만들어줄 거야. 그럼, 받고 바로 돌아서! 돌아온다고 해야 해! 절대로 뭘 보여준다고 보겠다고 하면 안 되고!”
“그게 뭔데 만들어주는 거야?”
페란드가 징징대는 투란을 달래듯이 차분하게 물었다.
“응? 아, 마법 배낭.”
“어? 아니, 그런 걸 왜……?”
바로 대답하는 투란에게 이번에는 제란드가 한층 더 의아하다는 듯이 묻는 소리를 냈다. 페란드와 시알라 역시도 ‘왜?’라며 갸웃하는 표정을 지었다.
투란이 계속 툴툴대는 소리로 대꾸한다.
“시련의 전리품. 정령이랑 아주 친했던 오우거가 남긴 잔해, 그 조각을 이용해서 마도구를 만들면 질이 아주 좋다고 하길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마법 배낭도 몇 개나 만들 수 있다고 하길래 만들어 달랬거든. 우리 모두에게 하나씩 만들어주고도 다른 마도구를 만들 정도로 넉넉하다고 했어. 그런데! 크엉! 설마 그 뒤에 그런 함정을 파놓다니! 내가 그 덫에 걸리다니! 어흐흐!”
두서없이 징징대는 듯한 말이었지만, 시알라와 두 형제는 잠시 당황해서 따질 수가 없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듯한 시알라가 조금 있다가 묻는 소리를 낸다.
“그러니까…… 지금 홀시딘이 우리 몫의 배낭을…… 마법 배낭을 주려고 우릴 한 명씩 데려간다, 이 이야기야?”
준다면 몰라라 하고 그냥 덥석 받을 수는 있었다.
좋은 것 준다는데, 그것도 이미 처리한 일의 결과로서 주는 보상이라는데 마다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을 투란 홀로 해치운 것을 잘 아는 홀시딘이 굳이 네 남매에게 준다고 하니, 이건 뭔가 가슴 한구석이 살살 꼬이는 느낌이었다.
상아탑의 마법사가 그리 친절한 사람들이었던가?
굳이 상아탑인가 아닌가를 따지지 않더라도 마법사랑 엮여서 마음먹은 대로 일이 술술 잘 풀리는 이야기가 있던가?
혹시 투란이 뭔가 곤란한 일에 깊이 빠져드는 것은 아닌가?
“어. 그러기로 했어. 대신 남는 오우거의 잔여물은 홀시딘이…… 상아탑 쪽으로 전부 처분을 맡기기로 했거든. 음, 꽤 온전한 형태의 잔여물이라서…… 쉽게 말하면 오우거가 얌전히 온몸을 남기고 간 셈이라고, 굉장히 귀한 거라서 마법 배낭 몇 개는 오히려 싸게 먹히는 경우라던걸. 아, 물론 오우거를 가공하고 처분해서 얻는 돈은 따로 나눠준다고 했어. 대단한 마도구를 만들 거니까, 기대하라고 큰소리치던걸. 아니, 잠깐! 이 얘기가 아니고! 다들 홀시딘이 배낭을 만들고 나서 창고를 보여준다고 해도 안 본다고 하고 그냥 나와야 해!”
걱정스러운 시알라와 두 형제의 눈길을 깨달았다는 듯이 대답하다가 투란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 듯이 외치고 있었다.
“창고?”
“무슨 창고인데?”
“사면 안 되는 뭔가를 둔 창고?”
시알라부터, 페란드를 거쳐 제란드까지 다시 원래의 의문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한마디씩 내놓으면서 좀 더 설명하기를 재촉했다.
투란이 다시 구멍 안에서 굴러 나올 때의 그 기분을 되새겼다는 듯, 씩씩거리면서 말한다.
“마도구 창고! 마도구를 잔뜩 만들어놓고서 쌓아둔 창고야! 상아탑의 마도사가, 마스터 랭크 마도사가 직접 제작한 마도구를 잔뜩 쌓아놨어! 거기 혹해서 뭘 사면 안 된다고!”
분해하는 투란을 향해 시알라가 잠시 가늘어진 눈길을 살짝 흘려냈다.
페란드도 누나와 비슷한 눈매를 했고, 제란드가 미묘하게 떠는 입술로 묻는다.
“거기서 뭘 샀어?”
투란이 움찔했다.
제란드의 다음 물음이 바로 이어진다.
“뭘 샀는데? 엉터리? 가짜? 마도구 틈새에 섞여 있었지만 마도구 아닌 거?”
이런저런 상황을 짚겠다는 듯이 푹푹 찔러 더듬는 듯이 묻는 소리였다.
투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품에 꼭 안듯이 쥐고 있던 마법 배낭, 블랙 레온을 열면서 대답한다.
“엉터리도 아니고, 가짜도 아니고…… 마도구가 맞긴 맞아. 그러니까 이런 거…….”
주먹 둘을 맞댄 듯한 크기의 배낭 안에서 두 손으로 쥐어도 될 듯한 칼자루가 둘씩이나 튀어나왔고, 그 주변으로 이것저것 다른 물품이 깊은 어둠을 휘감고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는 광경에 두 형제와 시알라가 흠칫했다.
말로만 듣던 마법 배낭, 도저히 칼날이 담아질 듯하지 않은데 담겨 있는 듯한 것이 과연 신기하잖은가. 역시 직접 보는 기분은 이야기로 듣기만 할 때랑 다른가 싶은데…….
“엥?”
“어?”
“자루뿐?”
투란이 칼자루 둘을 쏙 뽑아내자마자 셋은 칼날 없이 자루뿐이 그 광경에 놀란 소리를 냈다. 비록 칼자루뿐이기는 해도 더 작은 배낭 속에 담겨 있기는 해서 여전히 놀랍기는 했지만, 대체 칼날은 어디 두고 칼자루만 있는가?
“인힐트in-hilt 블레이드.”
뭘 잘못 샀느냐고, 모양만 자루이고 사실은 다른 용도의 마도구를 칼로 착각하고 샀느냐고 묻는 눈길에 투란이 뾰루퉁한 표정과 함께 대답했다. 그리고 바로 두 개의 칼자루를 스윽 허공에 대고 흔드는 순간!
차링, 스릉.
칼날이 달려야 할 부분을 막고 있는 듯했던 쇠장식이 펼쳐지면서 핸드가드(handguard)의 형태로 변하고, 번듯한 칼날이 예리하게 튀어나왔다. 명백한 장검의 형상, 바스타드 소드라고 분류되는 제대로 된 검의 모양이었다.
“칼날이 재생되고 벼려지는 기능도 있고, 평소에는 자루 안에 칼날이 숨겨진 채로 안전하게 보관된다는 검이야. 가끔 철분(鐵分)을 먹여줘야 한다는데, 그냥 대장간에 가서 작은 쇳조각을 구해다가 자루 끝에 대고 갈아주는 정도로 충분하대.”
주절주절 설명하는 투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는 것처럼, 제란드는 투란이 내밀어 보여주는 칼날, 칼등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말한다.
“이거, 꽤 좋은데? 확실히 몬스터 상대로도 쓸 만한 검이야. 휴대가 편리하고 안전하기도 하고…… 뭐가 문제가 있어?”
“더럽게 안 팔려서 창고에 박혀 있었다는 문제가 있지!”
투란이 바로 그래서 속은 거야, 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페란드도 제란드처럼 그 칼날에 눈을 가까이 하다가 ‘응? 왜?’ 하다가 묻는 소리를 바로 꺼낸다.
“가격이 엄청 비싸?”
“아니, 한 자루에 은전 오십 닢.”
“뭐? 그건 좀…… 싼 거 아닌가?”
페란드가 다시 토해내는 의아함에 투란이 한숨을 쉬었다.
“칼 두 자루에 금전 한 닢, 하지만 둘을 한꺼번에 사면 은전 팔십 닢! 깎아준다면서 더럽게 안 팔리는 걸 나한테 넘겼어!”
“왜 더럽게 안 팔린다는 건데?”
제란드가 옆으로 새려는 듯한 상황을 느끼고 다시 짚어본다는 듯이 물었다.
투란이 칼날을 다시 칼자루 속으로 사라지게 하면서 열린 배낭 속에서 가죽 팔찌를 꺼내며 대답한다.
“이것 때문에! 팔목 보호대 노릇도 적당히 하면서! 열두 자루의 보통 검을 수납할 수 있는 시스 암밴드(Sheath Armband)! 헌터들이 이것만 좋아해서 안 산다는 거야! 그래서 창고에 처박아둔 것을! 이걸 안 보여주고 나한테 사게 했어! 어흐흑! 그다음에 이런 팔보호대가 있다고 알려주다니! 홀시딘, 엄청 약았어!”
잠시 세 남매는 눈을 깜박였고,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칼자루 속에 칼날을 감출 수 있는 한 자루의 검, 쓰던 거 냅다 던져버리고 새로 검을 열 번 이상 뽑아 쓸 수 있게 해주는 팔찌…… 몬스터랑 싸워야 하는 헌터라면 당연히 한쪽을 선호할 수밖에 없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