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0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03)
“웃차! 오, 이제 시알라 자네만 남았나?”
휭하니 구멍이 열렸고, 홀시딘이 유쾌하게 소리쳤다.
구멍에서 약간 균형을 잃은 듯이 페란드가 기우뚱한 채로 걸어 나오면서 숨을 몰아 내쉬었다. 뭔가 깊이 자극을 받았다는 듯이 페란드의 낯빛은 살짝 불그스름하기도 했다.
시알라가 그 모습에 뭔가 묻기도 전에 홀시딘이 손짓했다.
“잠깐!”
뭐라 입을 열려는 찰나, 시알라의 모습이 구멍 너머로 사라졌다.
홀시딘이 방긋 웃음을 보인다 싶은 순간, 그 얼굴은 구멍과 함께 사라졌다.
투란과 세 형제는 잠시 구멍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봤다.
홀시딘이 굉장히 서두르고 있는 중이고, 이쪽에서 뭔가 정리하기 전에 팍팍 해치우겠다는 태도가 참으로 대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뭔가 당황스럽다는 기분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은가.
“정말 서두르시는군…….”
페란드가 어쩌겠냐는 듯이 숨을 몰아 내쉬는 소리를 뱉어냈다.
한데 그 소리가 묘하게 시원하고 가벼운 느낌이잖은가?
투란도 제란드도…… 멜란드도 조금 이상한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페란드를 향해 물끄러미 눈길을 모았다. 갑작스럽게 모인 눈길은 페란드에게도 분명히 느껴진 모양이었다.
“음, 우리도 할 일 해야겠지? 자, 그럼…….”
두어 마디 꺼내놓고 슬쩍 돌아서면서 페란드가 자리를 뜨려는 순간…….
“형님?”
멜란드가 느닷없이 매우 공경하는 내 형이란 듯이 한마디를 툭 꺼내면서 페란드의 어깨를 콱 잡았다. 더불어 제란드 역시 다른 쪽 어깨를 턱 잡으면서, 음침한 목소리를 낸다.
“형, 뭘 샀기에 숨기고 싶어 하는데?”
투란이 슬슬 페란드 앞으로 가면서, 그 허리춤을 향해 눈가를 들이대는 자세로 중얼거린다.
“역시 버클은 또 다르네? 멜란드 거랑도, 제란드 거랑도 달라! 아예 은색이잖아? 제란드 폴딩 벨트처럼! 아, 이건 진짜 은인가?”
“도금(鍍金)이야. 속은 마법 걸린 철(鐵)이고, 겉만 은을 씌웠다고!”
페란드가 재빠르게 비싸지 않다고 강조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이 소리는 멜란드와 제란드가 눈을 가늘게 한 채로 페란드를 보게 했으니…….
“그건 그렇다 치고…….”
“뭘 샀는지, 꺼내보라고!”
재촉하는 동생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잔뜩 호기심을 불태우는 투란을 보면서 페란드는 결국 끄응 소리를 내며 가만히 마법 배낭을 열어 펼쳤다. 입구만 좁고, 안은 깊고 넓어 보이는 어두운 구멍이 열린 듯했고 그 속에 담긴 것은…….
“모루?”
“망치? 아니, 저건 화로(火爐) 같은데?”
멜란드와 제란드는 그 어렴풋한 형체에 놀란 소리를 냈다.
저건 사람이 가볍게 갖고 다닐 물건이 아니었다.
어디다 설치해놓고 쓸 것들이 얌전히 배낭 속에 깊이 박혀 있는 듯한 광경은 과연 이 마법이란 느낌이 세게 다가오게 했다.
“대장간을 들고 다닐 참이야, 페란드?”
잠깐 눈을 깜박이다가 퍼뜩 알아차렸다는 듯이 투란이 물었다.
페란드는 그 소리에 ‘헉?’ ‘헐?’ 하는 두 동생을 보면서 낯을 구긴 채로 대답한다.
“아냐! 대장간에 두고 쓸 거야. 하지만 사람이 들락이는 자리에 그냥 놔둘 것도 아니지. 이건…… 이 화로는 철광석을 넣으면 걸러내서 철괴로 뽑아주는 거고, 이것저것 섞인 철광석이라도 금속 종류에 따라 분리된 철괴를 만들어준다고. 그 과정을 눈으로 보고 확인하게도 해주고 말이지. 내가 직접 화덕을 이용하더라도 이 화로의 분리 과정을 본 경험을 활용할 수 있게 말이야. 간단히 말해서 미숙한 대장장이에게 철의 분류를 훈련시켜주는 마도구라고. 모루도 마찬가지야. 모루 위에 철괴를 올려놓으면 굳이 불에 달궈진 상태가 아니더라도 망치와 집게로 모양을 바꿀 수 있어. 음, 망치와 집게는 딴 것을 써도 되지만 이 망치와 집게는 미리 준비된 형태를 저절로 꾸며내게 해주고…… 그러는 사이에 내 손에 그 형태를 잡는 동작을 익히게 해준다고!”
하나씩 꺼내면서, 차분하게 이어 나오는 설명이었고 투란과 두 형제는 물끄러미 지켜보며 귀를 기울였다. 길게 이어진 말에 잠깐 페란드가 숨을 돌리는 틈에 제란드가 말한다.
“견습 대장장이를 도와주는 마도구라 이거지? 딱 형이 찾는 거네?”
“그렇지…… 눈으로 익히고, 손으로 익히고. 진짜 대장장이를 위한 거야. 이 화로는 채광(採鑛)을 하러 다니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철괴를 뽑아내서 뭔가 만들려고 할 때 큰 도움이 되는 거고.”
페란드의 대답에 제란드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투란과 멜란드에게 묻는다.
“이런 거 봤어?”
투란과 멜란드가 고개를 팍팍 저으며 답한다.
“아니! 전혀!”
“볼 생각도 없었지만, 보여줄 생각도 전혀 없었잖을까?”
투란이 살짝 억울한 표정을 짓고 투덜댔고, 멜란드는 갸웃하면서 홀시딘의 의도를 더듬듯이 중얼거렸다.
제란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나도 못 봤지. 그러니까 결국 마스터 홀시딘은 우리가 되겠노라고 한 모습에 걸맞은 마도구를 보여주는 거네. 어, 다른 것도 보이는데…… 저건 흙덩이?”
“응? 아, 그건…… 모형이야. 여러 가지 틀이 돼주는 거야. 농기구부터, 부엌칼까지 다양한 모형으로 변하는 거지.”
페란드는 기분 좋게, 좋은 도구를 얻은 즐거움을 드러내면서 대꾸하고 있었다.
투란이 그 모습을 향해 방긋 웃음을 날려주면서 묻는다.
“얼마 썼어?”
제란드와 멜란드는 순간적으로 페란드가 움찔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흐흠?”
“금전 열 닢 넘었어? 열 닢까지는 안 돼? 은전만 갖고 살 수 있어 보이지 않거든! 형, 얼마나 썼냐고!”
제란드는 낮은 소리와 함께 침묵의 물음을, 멜란드는 노골적으로 보채는 물음을 쏟아냈다. 두 동생과 투란이 잔뜩 드러내는 호기심에 페란드가 포기했다는 듯이 우물거리는 말투로 대답한다.
“금전 아홉 닢……이랑 은전 구십 닢…….”
잠깐 금전과 은전의 상대적인 가치에 대해서 머리를 굴리는 척하다가 투란과 멜란드가 거의 동시에 외친다.
“뭐야! 그럼, 금전 열 닢이나 마찬가지잖아!”
“금전 열 닢에서 은전 열 닢 딱 빼는 거야?”
페란드가 왠지 좋아라 하는 둘을 보면서, 어쩐지 함께 날벼락 맞아 신난다는 듯한 둘의 태도에 어이없어 하다가 슬쩍 제란드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묻는 듯한 눈길에 제란드가 바로 대답한다.
“비슷해, 나도 멜란드도. 투란은 열두 닢이라고 했지?”
“크억! 난 왜…… 잠깐, 페란드! 대장간을 위한 밑천을 구해온 셈이잖아? 보통도 아닌 대단한 마도구 같은데, 정말로 금전 열 닢을 안 넘긴 거 맞아!”
분명히 더 썼을 거라고 우기고 싶은 것처럼 투란이 묻고 있었다.
어딘가 히죽거리는 듯도 하고, 어딘가 기분 좋은 듯도 한 웃음과 함께 페란드가 대답한다.
“깎았어. 이렇게 한꺼번에 사들이는데, 은전 오십 닢 정도는 에누리 있어야잖냐고 했더니…… 마스터 홀시딘이 앞으로 여러 가지 소재를 상아탑에서 구매해줄 걸 기대한다면서 깎아줬지.”
듣고 있던 셋이 잠깐 침묵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는 듯이 허둥지둥하며 묻는 말이 쏟아진다.
“마법사 상대로 값을 깎았다고?”
“홀시딘이 에누리 해줬단 말이야!”
“그게 뭐어어야야! 나한테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하나씩 더 사게 꼬드기더니!”
막판에 투란이 으르렁대는 소리가 세 형제를 잠깐 멍하게 했다.
하지만 곧 세 형제는 자신들 역시 투란과 비슷한 꼴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듯이 한마디씩 중얼거리는데…….
“정말 하나씩 더 얹으면서 설명하는데…….”
“음, 뭔가 놓칠 수 없다는 듯한 기분이었어.”
“마도구가 아주 오래 날 기다린 듯했다고.”
투란도 멈칫하다가 ‘그건 그래.’라고 웅얼대고 말았다.
그리고 곧 세 형제와 투란은 구멍이 사라진 자리를 보면서 기다리는 자세가 되었다. 과연 시알라는 무엇을 사 올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홀시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돌아올 것인가!
기다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구멍이 열렸고, 시알라가 껑충 뛰어나왔다.
이번에는 홀시딘도 얼굴만 둥실거리며 띄우지 않고, 반쯤 구멍에 걸친 듯이 둥실거리는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 일단 당장 할 일은 다 한 것 같군!”
투란과 네 남매의 허리춤을 보면서, 연속적으로 마법 배낭을 만들어낸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단해서 기분 좋다는 듯한 묘한 웃음이 매달린 채로 나온 말이었다.
투란과 세 형제가 그 소리에 어이없어 하면서 마법사를 바라보는데, 시알라는 가볍게 몸을 돌리는 채로 시원하게 대꾸한다.
“여행이 힘들지 않기를 빌어드릴게요. 돌아오시면 바로 들러보세요. 서너 달이면, 나름대로 알드바인에 익숙해진 다음일테니…… 이야기는 그때 다시 하면 되잖아요.”
“그래, 그렇지! 하핫, 아무튼 다들 알드바인의 생활이 즐겁기를 바라면서…… 난 상아탑의 마법사로서 할 일을 하러 다녀오겠네. 뭐, 다니면서 자네들에게 필요하다 싶은 것이 있으면 챙겨 올 테니까…… 기대하고 있게나! 그럼, 투란, 멜란드, 제란드, 페란드! 다음에 보자고!”
섭섭한 구석은 전혀 없이, 즐거운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로 홀시딘이 구멍을 지우면서 함께 사라졌다.
시알라랑 주고받는 사이에 투란이나 세 형제가 뭐라 말을 걸 틈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시알라는 후욱하고 깊이 숨을 들이쉬고 홱 돌아서면서, 멀뚱대는 넷에게 말한다.
“자아! 이제 알드바인에서 우리에 대해 잘 아는 유일한 사람이 없는 생활을 해야 해! 이번에는 투란이 없을 때처럼 가능한 한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틀어박힌 채로 있으면 안 된다고. 제대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볼까 궁리를 하…….”
“잠깐!”
투란이 손을 들면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세 형제의 반복되는 눈짓에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시알라가 ‘왜?’ 하며 살짝 말을 멈춘 사이, 투란은 바로 묻는 말을 꺼낸다.
“시알라, 금전 얼마 썼어? 뭐 사왔어?”
전혀 움찔하는 낌새 없이 시알라는 방긋 웃었고, 투란에게서 바로 동생들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한다.
“나는! 꼭 필요한 것만! 아주 잘 골라서! 아주 괜찮은 값으로 사 왔다! 알았어?”
따박따박 팍팍 끊듯이 말하는 소리는 ‘더 따지면 맞는 수가 있다?’라고 선언하는 듯했다.
세 형제와 투란은 그 호통에 넘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누나?”
세 형제가 거의 합창하듯이 불렀다.
의혹이 가득한 눈초리를 번뜩이는 채로!
투란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면서 느릿하니…… 어딘가 시알라의 말투를 흉내 내듯이 말문을 여는데…….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래도 홀시딘한테 홀랑 넘어가서 금전을 몇 닢씩이나 쓰고 말았다고! 시알라, 뭘 샀어? 금전 한 닢도 안 되게 쓰고 온 거는 아니지? 보여줘!”
결국 징징거리는 듯한 소리로 조르는 말이 되고 있었다.
이에 시알라는 압박을 느낀 듯했고, 슬슬 다른 소리를 꺼내려는 듯한 낌새를 보이는데…… 멜란드가 누나를 향해 뚱한 소리를 낸다.
“뭐야, 누가 꼭 금전 수십 닢을 쓴 것 같잖아. 그냥 좀 보여줘도…… 어, 누나?”
떠들다가 놀란 멜란드 곁에서 제란드와 페란드 역시 누나의 낯이 살짝 떨리고 눈길을 다른 곳에 돌리는 광경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입을 연다.
“누, 누나! 설마……!”
“누나가 몇십 닢을 썼다고! 금전을!”
이 소리에 시알라가 바로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투란이 바로 뒷목으로 치솟는 혈압을 손으로 잡는 시늉을 하며 외친다.
“우아앗! 대체 뭘 판 거냐고, 홀시디이인! 이 무서운 마도사!”
퍽, 따악, 쾅!
세 형제가 뒤로 넘어갔다.
시알라의 주먹, 손날, 박치기에 맞고 나뒹구는 광경이었다.
투란은 바로 뒷목에서 손을 떼면서 옆으로 슬금슬금 비켜섰다.
어쩐지 시퍼런 눈빛이 살짝 투란을 스쳐 갔지만, 주먹이나 발이 날아들지는 않았다.
대신 시알라의 호통이 쩌렁쩌렁 투란과 세 형제의 귓가로 꽂혀드니…….
“장사 밑천이라 어쩔 수 없이 샀어! 나 혼자 쓸 것도 아니고, 다 같이 쓸 것으로 골라 샀다고! 그래, 상아탑에서 편집한 기본 마도서 한 권이 금전 열 닢이라는데, 냉큼 샀다! 물 담아 담가두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깨끗하게 세탁해주는 큰 욕조도 샀다! 요리하는 데 필요한 식탁보도 샀다! 왜! 사다보니 금전 스물다섯 닢 정도 되더만! 벌면 되잖아, 벌면! 내가 벌어서 채워 넣을 테니까 입 닥쳐!”
“자, 잠깐만! 시알라, 마도서라니?”
주먹을 불끈 쥐고 외치는 시알라를 향해 투란이 한마디를 짚으며 묻고 있었다.
듣다보니 뭔가 이상한 게 하나 끼어있지 않느냐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