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0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04)
적어도 욕조라든가, 식탁보는 금빛매의 쉼터, 투란이 황금매의 쉼터라고 부르자고 했던 여관 겸 주점, 퍼브를 위한 것이라고 나름대로 납득할 범위 안이었다. 그 효과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시알라의 말 몇 마디로 대강 짐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마도서는 뭔가?
“기본?”
“편집……?”
페란드와 제란드도 주먹과 손날로 맞은 이마빡을 문지르면서 어리둥절해 했다.
하지만 멜란드는…….
“큰 물통 있잖아! 벌써 한 달씩 쓰고 있는 욕조도 있고! 대체 무슨 욕조를……!”
박치기에 정신이 혼미하다는 고갯짓과, 코피가 나는가 나지 않는가를 확인하는 손짓 사이로 따져 묻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멱살이 잡힌 채, 시알라의 우렁찬 으르렁거림을 들어야 했다.
“제대로 씻지도 않는 녀석이 바로 너잖아! 은근슬쩍 마법으로 때우고 물을 코끝에 바른 시늉만 하면서 나오는 녀석! 앞으로는 욕조가 알아서 씻겨줄 테니까, 참 다행이지? 그렇지? 그래, 그런 거야! 옷 입은 채로 들어갔다 나와도 깨끗해질 테니 얼마나 좋아! 멜란드, 누나의 깊은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지? 그치? 감동했지이!”
덜렁덜렁, 머리를 심하게 흔들리면서 멜란드는 박치기에 혼미했던 정신이 이제 완전히 어딘가로 멀리 가버렸다는 듯이 멱살 잡은 시알라의 손에 그냥 매달린 것처럼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놓으면 바로 바닥에 구르면서 깊은 잠에 바로 빠져들겠다는 듯한 자세였다.
투란은 그 광경에 새삼 기억해낼 수 있었다.
‘아, 저거…….’
―역병의 수해에서 자주 보던 광경이로군.
드라고니아도 새삼스럽다는 듯이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멜란드가 엉뚱한 것을 건드려서 한바탕 난리를 겪은 다음이면 쉽게 봤던 광경이었다. 물론 그때랑 지금이랑은 뭔가 그 원인이 대단히 다른 듯하기는 한데…….
“어흠, 누나!”
페란드가 크게 헛기침을 하면서 시알라의 주의를 끌겠다는 듯이 불렀다.
찌릿 하는 시알라의 눈빛이 바로 페란드에게 꽂히자마자 제란드가 그 눈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한걸음 슬쩍 옮기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식탁보는 또 뭐야? 욕조는 대강 사정을 알겠는데…… 먹을 게 나오는 식탁보야? 그런 거는…….”
“요리를 돕는 식탁보야. 급할 때는 식재료만 올려놔도 요리가 되고 보통 때는 기본적인 레시피랑 요리법을 알려줘. 퍼브에서 일손을 줄이기 딱 좋고, 요리 배우고 익히는 데도 딱 좋지. 식탁보 위에서 새로운 요리를 만들면 레시피와 요리방식이 저절로 기억돼서 다음에 같은 요리는 식재료만 올려놓으면 알아서 만들어줄 수도 있고! 좋잖아!”
“응, 좋아. 아주 좋아.”
제란드는 단숨에 쏟아져 나오는 시알라의 식탁보 이야기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페란드도 ‘어? 그런 거면.’ 하면서 자신이 구해온 모루나 모형을 떠올린 것처럼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멜란드는 반항했다.
“무슨 요리? 열매도 통구이로 해치우는 누나가 새삼 뭔 요리…… 크억!”
목줄기를 잡힌 탓에 나오는 소리는 중간에 비명이 되고 말았다.
시알라가 멜란드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낮게 포효하듯이 소리를 꽂아넣는다.
“퍼브! 여관! 주점! 요리! 세탁! 퍼브! 주점! 요리! 여과아안!”
남매가 툭탁거리는 소리가 신목의 거대한 그루터기 안, 그럭저럭 사람 사는 곳의 풍경을 갖춰가는 곳을 쩌렁쩌렁 울렸다.
―말리지 않을 셈이냐?
‘음, 말려야 해? 오랜만인데…… 괜찮아. 페란드랑 제란드가 재고 있잖아. 정말 위험하면 알아서 말릴 거야. 난 그 다음에 조금 더 안전할 때 끼어들래.’
투란은 일단 구경하기로 했다.
페란드와 제란드는 반쯤 흘려들으면서 분위기를 가늠하는 중이고…….
* * *
“푸하아…… 아, 힘들다.”
홀시딘은 집무실 의자로 덜렁 떨어져 내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거의 탈진한 것처럼 힘없이 축 늘어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친 표정 속에서도 깊은 즐거움, 어딘가 넘쳐나려는 듯한 오만한 눈빛도 슬그머니 피어나고 있었다. 마치 세계를 주물럭거리고 돌아온 듯한 음흉한 마법사라도 된 것처럼!
“스승님?”
그러나 불쑥 울려 나온 케이라의 목소리가 홀시딘을 의자에서 주륵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지게 했고, 잠깐 피어나려던 오만한 눈빛은 놀란 새처럼 파르르 떨리며 반짝거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케, 케이라? 어, 언제 와 있었냐!”
케이라가 가늘게 녹색의 눈동자를 빛내면서 찬찬히 스승인 홀시딘을 중심으로 주변을 스윽 둘러보기 시작했다. 곧바로 홀시딘이 말을 덧붙이면서 묻지도 않은 말에 변명을 한다!
“아, 아무 일도 없었다! 왜? 그냥 오랜만에 우리 창고를 둘러보고 온 것뿐이야!”
“그러셨어요? 저는…… 기다리고 있었는걸요.”
“그, 그래?”
홀시딘이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둥실거리며 집무실에 들어왔지만 분명히 케이라는 없었는데!
케이라가 스승의 의문에 답하듯이 느릿하게 말한다.
“마력으로 주변 감지만 하시고 이 소파 쪽으로는 눈길을 돌리지 않으셨잖아요. 아마 제가 새로 로브에 덧댄 옷감 때문인 모양이네요.”
“응? 옷감……? 그거!”
“예, 거미줄로 짠 천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일단 제 로브에 한 겹 덧대 씌워놨어요. 확실히 마력감지로는 느끼기 힘드시죠?”
“거기에 은신(隱身)도 제대로 했잖냐! 왜?”
홀시딘은 케이라 주변에서 차단되었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면서 바로 볼멘소리를 했다. 케이라가 옷깃을 살짝 어루만지는 순간, 로브 위의 무늬가 색상을 미묘하게 바꿨고 다시 케이라 주변에 마력감지가 가능해졌다. 그 덕분에 케이라가 시각과 청각을 교란하는 은신 마법을 썼다는 것을 홀시딘은 뒤늦게 알게 되었으니, 어째서 스승을 농락하느냐고 억울한 표정을 지을만하잖은가?
그런 스승을 보며 케이라는 살짝 웃었다.
“그야…… 스승님에게 직접 뭘 묻기 곤란하니까, 현재 스승님의 유일한 제자이자 뭘 물어도 괜찮아 보이는 동급의 마스터라고 절 따라다니는 분들 때문이죠. 잠깐이라도 조용히 혼자 있고 싶었거든요. 마침 스승님 방도 비어있었고요.”
“끄응…….”
조리있는 제자의 말에 홀시딘은 입술을 삐죽이면서 볼멘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엘더 헌터의 출현, 그랜드 마스터의 탄생에다가 상금을 위한 출격 준비까지…… 그 뒤에 닥쳐올 여파가 어쩔 것인가까지 이리저리 가정을 세우면서 예측하는 데는 홀시딘을 가장 잘 아는 이의 조언이 절실하게 필요할 수밖에 없잖은가.
그래서 알드바인에 방문한 상아탑의 마스터들, 그들은 지금 갑작스러운 상황을 열심히 정리하고 케이라에게 온갖 물음을 던져놓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물음을 케이라가 그냥 ‘몰라요.’라고 모르는 척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잠시나마 생각할 여유가 필요하다고 둘러댈 만했다. 그 여유를 위해서 아예 잠시 동안 자취를 감추는 것도 당연히 받아들여질 테고!
복잡한 그런 사정 속에서 케이라는 쟈카라의 거미줄을 이용해 은신하는 방법을 실험한 셈이었다.
스승을 대상으로!
“게다가 스승님께 해야 할 얘기도 잔뜩 있으니까요.”
느닷없이 실험대상이 된 것에 홀시딘이 불만 섞인 표정을 짓는 광경을 잠깐 즐기는 듯하다가 케이라는 단정하게 정색하며 말하고 있었다. 단순히 스승을 깜짝 놀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니까, 너무 불만 갖지 말라고 강요하는 태도였다.
“끄응! 그래, 그러고 보니 알아보라 한 일도 있었지.”
체념한 듯이 홀시딘이 바로 앉으면서 책상 너머로 케이라를 향해 투덜거렸다.
“그것부터 들으시겠어요. 흠…….”
“응? 왜? 뭐 다른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거냐?”
“중요하지만, 역시 엘더 헌터가 가져온 문제부터 다루는 게 좋겠군요. 말씀하신대로 일단 섀터드 세븐의 정황을 확인해봤어요. 일단 마스터들에게 대강의 상황을 묻고, 다음에는 교신을 통해 교역을 하려는 척하면서 몇 곳의 정황을 확인했죠. 스승님이 의아한 대로, 엘더 헌터 툴로쉬가 찾아온 목적은 그랜드 마스터 카티야의 유품을 전하기 전에 정해진 거였어요. 와보니 그랜드 마스터가 있으니까 바로 전한 셈이고…… 뭐 상당히 우연의 일치인 거죠. 하지만 툴로쉬는 정확하게 스승님, 파나틱 플레임을 찾아오기는 했어요. 지금 불안한 각국의 상황을 타개할 열쇠로 스승님을 고른 거죠. 파나틱 플레임, 이십오 년 전…… 상아탑의 동료 마법사 수백을 모조리 불태워 죽였다는 악명을 휘날리는 불꽃의 마도사를 말이에요.”
케이라가 잠깐 말을 멈췄고, 홀시딘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툴로쉬는 동란을 멈추기 위해서 그랜드 마스터의 힘을 빌리려 한 것이 아니라, 불꽃의 마도사, 파나틱 플레임 홀시딘의 힘을 빌리러 왔다. 이십오 년 전, 홀시딘이 켈브란 일파와 분쟁해서 남긴 결과로 얻은 악명(惡名)까지 이용해서 나라간의 분쟁, 전쟁까지 치달을지 모르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툴로쉬의 말대로, 확실히 스승님이 이십오 년 전에 저지른 일은 단순히 상아탑 내부의 분쟁을 넘은 여파를 낳은 게 맞다더군요. 켈브란 일파에게 동조하고 있던 일곱 왕국의 왕족, 귀족들이 상아탑의 미친 마도사 때문에 일단 꼬리를 말아야 했으니까요. 그 뒤로 몇 년 동안은 불평불만 꺼내놓지 못하고 얌전히 있었다네요. 알베른 백작가의 일이 터지기 전에는 그냥 그대로 덮어두고 다시 몇십 년 갈 상황인 듯했다네요. 역시 툴로쉬의 말 그대로지요.”
“음? 그래, 그거. 그 알베른 백작가의 일은 정확하게 어떻게 된 거냐? 난 얼렁뚱땅 흘려들어서…….”
“그러실 수밖에 없죠. 아프론 왕국이야 갈기산맥이랑 접한 부분도 적고, 쥬레인 북부를 넘어선 곳에 있으니까요. 게다가 거의 삼십여 년에 걸쳐 일어난 일이니까…… 스승님과 관계가 있는 부분이라면 켈브란 일파가 그들을 본보기 삼아 자신들의 주장을 강조했다는 정도겠지요.”
“어? 그랬어?”
“예. 그랬어요. 하아…… 순서대로 이야기하죠. 일단 삼십여 년 전, 쟈카라의 거미군단이 갈기산맥을 타고 올라가서 이전과 다른 방식, 방향으로 공격로를 잡았다는 거는 알고 계시죠?”
“그야 알지. 그게 바로 나도 들었던 알베룬 백작가의 참화잖니. 아프론 왕국의 국경을 책임지는 알베룬 백작가가 거미 군단의 침공을 받아서 영지가 완전히 박살난 일이라고…….”
“칠십만 명에 달하던 영지민이 사만오천가량의 생존자를 남기고 사망했죠. 갈기산맥의 마수를 막기 위해 세웠던 백작의 성채, 일곱 성채가 모조리 파괴당했고 농장, 광산 할 것 없이 모두 다 망가졌어요. 백작의 영지는 완전히 미개간, 미개척의 황야나 다름없게 되었고, 아프론 왕국에서는 백작에게 살아남은 영지 공민과 함께 그곳을 떠나라고 했어요.”
“음, 하지만 백작은 거부했지. 백작뿐 아니라, 그 영지민 전체가 왕국의 명령을 거부했다고 들었어.”
“예. 영지의 공민들은 백작이 일곱 아들, 여섯 딸과 며느리, 남편…… 스물이나 되던 손자, 손녀를 모두 잃고 단 한 명 남은 손자를 품에 안고 그 명령을 거부한 채로 영지를 떠나지 않겠다고…… 아프론 왕국에 뭔가 기대느니 차라리 거기서 죽겠다고 선언한 것을 따르겠다고 했죠. 거미 군단의 침공이 이뤄진 이 년 동안, 거의 삼 년에 걸쳐 이뤄진 그 전쟁 중에 아프론 왕국에서 백작가에 거의 지원을 하지 않았거든요.”
“어, 왜 그랬다던?”
홀시딘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과거에 흘려들었던 비극과 참화에 대해 물었다. 몬스터와 마수가 그렇게 군단을 이루고 쳐들어오면 늘 비극과 참화가 가득한 일이 생겨난다. 그래서 알베룬 백작가의 일도 홀시딘에게는 그런 종류의 일이라고 어렴풋이 넘어갔었다. 그 당시 알드바인의 상급 마법사였던 홀시딘이 뭘 어찌할 일이 전혀 아니었기도 했고…….
그러나 이제 와서 지난 일이라고 다시 더듬어봐도, 아프론 왕국의 판단은 뭔가 이상했다. 마수의 침공을 막는 국경의 백작가가 괴멸할 상태까지 몰렸는데도 제대로 지원을 하지 않다니, 왜?
케이라가 차분하게 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토해낸다.
“처음에는 고작해야 마수 떼라고, 아프론 왕국의 국경인 알베룬 백작 영지에 출현한 것이 쟈카라 거미군단의 실세가 아닐 거라고 했고 나중에는 이미 알베룬 백작 영지는 지킬 수 없으니까, 지원 보내는 대신에 아프론 왕국 안쪽의 경계를 더욱 강화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고 하더군요. 흔히 말하는 대로 하자면, 알베룬 백작가를 미끼로…… 버림돌로 활용해서 왕국 전체를 지킨다, 뭐 그런 계획이었다네요. 하지만 알베룬 백작가는 괴멸해가면서도 돌파는 당하지 않았어요. 거미 군단을 꾸준히 소모시켰고, 본국으로 보낸 보고랑은 별개로 빠르게 쥬레인과 세트반, 두 왕국 쪽에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놓기도 했거든요. 거미 군단의 주세력이 어디인가 확인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쥬레인에서도 세트반에서도 만약을 대비한 병력을 남기고 최대한의 병력을 보냈어요. 그 덕분에 거미 군단이 알베룬 백작 영지에서 물러서게 되었고요. 그러기까지 거의 일 년을 넘게, 이 년 가까이 백작가는 홀로 버틴 셈이에요. 육십만 명 이상이 죽어가면서 말이죠.”
“음, 그리고 거미랑 전쟁이 끝나고 십 년 뒤에 남아있는 줄 알았던 알베룬 백작…… 생존한 영지민까지 깡그리 사라졌다고 했지?”
홀시딘은 흐릿한 기억을 되새기면서, 알베른 백작가의 괴사(怪事)에 대해 물었다.
그것이 거의 이십여 년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