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1)
Chapter 11. 달빛 아래에서 늑대를 품고
꼬르륵.
투란은 배가 고팠다.
특히나 나무 위에서 으적으적 대고 있는 놈들을 보고 있자니, 더욱 배가 고픈 느낌이 강해지는 것 같잖은가!
하지만 저 나무 위로 올라가서 저 으적대면서 나무에 얽혀 늘어진 그랑츄의 내장과 살점을 씹어 먹고 있는 놈들이랑 엮일 마음은 전혀 없었다. 저놈들은 보통은 시체를 먹어 치우지만, 여차하면 살아 있는 것이라도 상관하지 않고 씹기 시작하면 그냥 먹어 치우는 마수였다.
도마뱀을 닮았지만 머리 양쪽으로 눈알이 한 쌍씩 붙은, ‘네 눈깔’이란 이름으로 흔히 부르던 놈. 떼로 몰려다니는 경우는 꽤 드물다고 들었고, 샤오콴 마을의 근처에서도 가끔 한 마리씩은 보여도 두 마리가 나란히 있는 경우는 없었다.
‘여기가 그렇게 이상한 곳인가?’
그래서 투란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가 바라보는 네 눈깔 도마뱀은 서로 경계를 서 주면서 번갈아 가며 나무 위에 늘어진 그랑츄의 살점을 씹고 있었다. 꽤 질긴 탓인지 한번 살점을 뜯어내면 상당히 오래 씹어야 했고, 그러는 사이에 다른 놈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는, 투란이 알기로는 먹을 것 놓고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는 것이 정상이라는 놈들답지 않은 꼴이었다.
투란은 손으로 주머니를 좀 더 잘 쥐고, 혹시나 놈들 중 하나가 한번 깨물어 보기 위해 다가오거나 덤빌 때를 대비했다.
키아앙!
바로 저렇게 소리 내며 덤비면, 느슨하게 풀어놓은 주머니 주둥이를 대고 파란빛 돌 하나를 뿌려 주기 위해서!
크이이이이!
사나운 짐승의 비명이 터졌고, 투란 가까이 내려와서 슬쩍 입을 열고 달려들던 놈이 갈기갈기 찢겨 흩어졌다. 그 속에서 파란빛 돌이 환한 빛을 뿌리더니,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꼴이 아주 잘 보였다. 피와 살을 뒤집어쓰고 뭔가 신난 듯하던 파란빛 돌은 땅에 꽂히듯이 박히면서 빛이 흐릿하고 여려졌다.
몸을 낮추고 또 다른 놈이 다가오는가를 감각으로 경계하며 투란은 빛을 잃은 파란빛 돌 가까이로 다가갔다. 잠깐 공중에서 환하게 빛나던 돌이 이제 살짝 살점과 피를 덮은 채로 파란빛만 머금은 꼴이었다.
‘이것도 웃기는 녀석이네?’
투란은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며 나무 위를 바라봤다.
한 마리 박살 나는 꼴을 보고 난 다음인지, 다시 나무 뒤로 몰래 움직이거나 뛰어내릴 낌새를 보이는 네 눈깔 도마뱀은 없었다. 대신 투란이 자기네를 쫓아 올라올까 지켜보는 듯, 눈알을 데굴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그 꼴을 보며 투란은 안도했다.
나무 위에서 우글대는 녀석들은 얼핏 봐도 대략 20마리가 넘었다.
저것들이 한꺼번에 덤벼든다면, 우선 주머니 속에 담아 온 돌이 모자랐다. 아니, 돌의 수가 넉넉하더라도 솔직히 투란은 한꺼번에 덤비는 놈을 다 맞힐 자신이 없었다. 저게 괜히 눈알이 네 개가 아니고, 생긴 그대로 도마뱀의 민첩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놈이니.
‘계속 해서 운이 좋을 수는 없지.’
화살을 쏘거나 단도를 던져 저걸 맞히는 것은 몬스터 헌터 사이에서도 상당한 운이 필요한 일이라 꼽혔다. 방금은 그야말로 보고 나서 바로 대비를 하고, 강화된 감각을 잔뜩 곤두세웠기에 운이 따라 줬을 뿐.
투란은 천천히 자리를 옮기며 발자국과 핏자국이 겹쳐진 흔적을 따라갔다.
사박, 사박.
발가락 사이에 밟히는 풀잎이 대놓고 지르는 비명은 부드러웠고, 왠지 자꾸 밟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투란은 그 풀잎이 빳빳하게 일어선 꼴을 의심하고 있었다.
보통 풀이라면 밟는다고 빳빳하게 일어설 리가 없다!
만약 그의 발이 사람의 것이었다면…….
‘앞서처럼 싹싹 베였을까?’
아니면 풀잎이 살갗에 대고 독을 뿜어낼 수도 있었다.
풀밭에 누웠다가 중독되어 해골이 된 작자들 이야기는 샤오콴 마을에서는 어린애들에게 제일 먼저 들려주는 소리였다. 실제로 풀밭에 뒹구는 해골이 마을 근처에서 종종 빌견되기도 했다.
잿빛바위 일족의 그랑츄, 그 두꺼운 살갗의 발은 이런 것을 전부 밟아 뭉개며 무시할 수 있었다. 애초에 어지간한 칼날도 잘 안 박히는 단단한 살갗이고, 파란빛 돌의 힘도 깡그리 무시했으니!
‘팔뚝 하나만 더 떨어져 있었으면…….’
배가 고프고, 슬슬 늪에 손발을 담가야 할 때인 것을 느끼지만 아직은 넉넉한 체력이므로 걷는 편이 좋았다. 그래서 한번 얻은 행운에 대한 탐욕에 불을 붙이며 투란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욕심에 대한 호응이었을까, 투란이 넓어진 늪가에 도착했을 때 앞에 나타난 것은 완벽하게 그의 욕심을 채워 줄 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이 먼저 떠올린 생각은 놀라움이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이렇게…….’
회색 바위 빛깔의 커다란 몸통, 그것이 팔다리가 몽땅 갖춰진 채로 입의 위쪽, 위턱부터 싹 잘려 나가 머리만 없는 상태로 놓여 있었다. 틀림없는 잿빛바위 일족의 그랑츄, 단단하고 질겨서 파란빛 돌조차도 살갗에 흠 하나 내지 못한다는 괴물이 위턱까지 머리가 뜯겨 나가 죽은 것이다.
“단단한 그랑츄든 질긴 그랑츄든, 사람 닮은 생김새답게 약점도 사람과 같아. 그러니까 일단 대가리를 부술 수 있는 것이라든가 심장을 관통할 수 있는 물건이 필요하지.”
그랑츄 사냥에 나선 몬스터 헌터가 한 말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런 그랑츄의 약점이 사실은 약점이라 하기 힘들다고 투덜대던 뒷말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산맥의 그랑츄가 크고, 강력한 힘과 사람을 닮은 만큼 사람처럼 대응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평원 쪽에 나타나는 그랑츄는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아서 웬만한 병사라면 그냥 맞상대가 가능하단 말이지! 그런데 왜 이 망할 놈의 산맥에서 꾸물대는 그랑츄는 다들 2미터가 넘고 덩치가 그리 크냐고! 평원 놈들이 보면 오우거인 줄 안다니까!
그런 그랑츄를 어떤 괴물이 깔끔하게 입을 위로 찢어서 머리통을 뜯어내 죽였다.
‘오우거?’
가장 먼저 투란에게 떠오른 그랑츄 살해범의 후보였다.
적어도 3미터 이상, 괴력은 땅에 깊이 박힌 굵은 나무를 그 자리에서 뽑아 몽둥이로 삼을 정도라는 산속, 숲의 폭군 오우거라면 여기 자빠져 있는 2미터 50센티가 넘는 그랑츄라도 이렇게 아가리를 뜯어내 죽이는 것이 가능하리라 짐작되었다.
하지만 투란은 곧 오우거가 아니라고 생각을 돌려야 했다.
발자국이 없었다.
찍힌 것은 그랑츄가 험악하게 디딘 흔적뿐이고, 그보다 더 크고 굵게 바닥을 찍어 누른 발자국은 없었다. 오우거라면, 뭔가 죽이고 제 성질을 못 이겨 날뛰기도 한다는데 주변이 너무 멀쩡한 면도 있었다.
‘그럼 도대체 뭐가?’
투란의 몸이 한층 더 세게 긴장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땅에 발자국도 찍지 않고 다니는 놈이 잿빛바위 그랑츄를 저리 만들어 놨다. 그렇다면 아차 하는 순간에 투란의 목이 그냥 뜯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겁을 먹은 듯이 투란은 조심스럽게 움직여 그랑츄의 어깨 쪽에 다가가 앉았다. 주변을 두어 번 더 둘러보고, 아래턱만 남은 채로 목 줄기에서 피를 잔뜩 쏟아 내 바닥을 물들인 꼴을 확인까지 하고서 그랑츄의 찢긴 목덜미로 손을 가져갔다.
그랑츄의 핏덩이가 투란의 손에 움켜쥐어졌다.
투란은 방금 손짓 사이에서 그랑츄의 목뼈와 목덜미의 두툼함에 새삼 감탄했다. 이 정도면 통나무로 머리통을 후려쳐도 버틸 듯이 튼튼하고 강해 보인다!
‘하지만 찢겼지.’
지금 다가온 횡재, 왕끗발의 행운은 이보다 더 무시무시한 놈이 남기고 간 흔적임을 되새기면서 투란은 가슴에 그랑츄의 핏덩이를 문질렀다.
검은 톱니바퀴의 고리가 꿈틀거렸고, 계속 가슴에 붙인 채로 기다리는 투란의 손바닥 위로 핏빛이 투영되었다. 투란은 손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을 기다렸다가, 손바닥 위에서 맴도는 작은 핏빛 톱니의 고리를 확인했다.
‘좋아, 제대로 된다!’
몬스터의 피를 통해 정수를 느낀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이 삼키기 위한 조각을 내밀어 줬다.
이제 투란이 할 일은 조심스럽게 손톱 크기로 손에 달라붙은 핏빛 고리를 다시 그랑츄의 찢긴 목 속으로 쑤셔 넣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랑츄의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고유 마력의 흐름이 저절로 문장을 통해 감지되는 상황이었다.
그랑츄의 가슴, 내장 속으로 움직이고 팔다리로 뻗어 나간 몬스터 엠블럼의 마력이 그 정수를 긁어모았고 투란의 손이 기다리는 목덜미 쪽으로 끌어와 뭉쳐졌다.
그랑츄의 살갗이 투명해지고, 흘러내린 핏물 위로 검은 금이 그어지며 톱니바퀴의 무늬를 그려 냈다. 그랑츄의 속살이 푹푹 으스러지고 손톱 발톱의 끝자락까지 투명한 거품처럼 속이 빈 채로 꺼져 갔다.
투란은 그랑츄의 에센스를 완전히 긁어낸 핏빛 고리를 느끼며 손을 뺐다.
시커멓게 변한 핏빛 고리의 형색이 투란을 두근거리게 했다.
악마의 심장도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을 기뻐하듯 세차게 두근거렸다.
투란의 가슴에 핏빛 고리가 닿았고 가슴의 검은 톱니바퀴는 한순간에 이를 삼켰다.
쿵!
투란의 손이 두껍고 굵게, 새끼손가락이 엄지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바로 변하네!’
삼키자마자 드러나는 변화는 조금 놀라웠지만, 악마의 심장이 한층 더 냉정하게 맥동하며 투란을 진정시켰고, 투란의 몸은 잿빛바위 일족의 그랑츄로 변해 갔다.
찌이익, 틱.
반쯤 남았던 가죽 바지가 터져 나갔다.
허리에 넓게 두른 뱀 가죽은 팽팽하게 당겨졌지만 풀리지 않았다.
눈꺼풀이 무겁고 단단해지는 것도 느껴졌다. 어쩌면 사람의 눈알 정도는 눈꺼풀의 무게와 힘만으로 짓이기려나 싶은 순간, 투명한 덩굴줄기가 투란의 눈알을 뒤덮고 휘감으며 완강하게 버텼다.
‘아…… 이런, 머리는 없구나.’
그랑츄의 살갗은 투란의 머리도 완전히 덮었다.
하지만 투란의 머리뼈와 내용은 온전한 인간의 것, 잿빛바위 살갗이 그 뼈를 억누르고 짓이길 정도의 압력을 드러냈다. 안팎이 모두 변해 있는 몸, 팔다리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이 머리 쪽의 압력을 투란은 악마의 심장으로 버텨 냈다.
정작 몸과 팔다리 쪽에서는 악마의 심장이 후퇴하는 중이었지만, 곧 새로운 줄기가 뻗어 나가 사람이 아닌 그랑츄의 혈관과 힘줄을 탐식하며 유린하고 융합해 갔다. 악마의 심장은 경험을 쌓은 만큼 노련하게 새로운 그랑츄의 심장이 여물기를 기다렸다가 재빨리 그 위로 겹쳐지기도 했다.
땅을 손으로 짚으며, 투란은 이 변화의 최적점을 찾으려 애썼다.
잠시 핑 하며 머리에 쏠린 압력으로 찾아온 어지러움,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솟구치면서 그랑츄의 만질만질한 살갗에 어울리지 않는 꼴이 되는 것, 손발이 모두 새끼 없는 엄지가 가득한 꼴이 되는 것…….
거친 숨결을 토해 내다가 겨우 안정되는 몸을 느끼며 투란은 천천히 일어섰다.
평소 보던 높이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발목만 키웠을 때보다 더 높네.’
투란은 악마의 심장과 아래턱 위쪽으로 없는 ‘그랑츄’가 조율되는 것을 느끼면서 아주 느리고 천천히 ‘작은 늪’이 심장 속에 피어나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자신의 차례는 당연히 마지막이라는 듯한 변화였고, 기특하게도 ‘작은 늪’은 새로운 투란의 몸에 아주 잘 적응했다.
‘처음이 아닌데…… 처음 같잖아.’
“첫 변신은 잊을 수가 없지! 팔다리가 변하면서 자신이 완전히 인간의 품격을 벗어던진 자, 몬스터 로드가 된 것을 아주 확실하게 느끼거든. 뭐, 아주 이상한 놈을 삼켜서 변했나 안 했나 애매한 경우는 빼고…….”
꼬르륵.
짧은 회상은 위장이 내는 허기진 소리에 끝났다.
투명하게 으스러지고, 별것 없는 잔해만 남은 그랑츄의 너덜거리는 얇은 조각들은 이제 먹을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발아래로 스르륵 떨어지는 반쯤 남은 가죽 바지는 먹을 만해 보였다.
투란의 두툼하고 굵은 손이 가죽 조각이나 다름없는 바지를 집었고, 꽉꽉 눌러서 둥글게 뭉쳤다. 그다음 망설임 없이 바로 목구멍으로 툭 떨꿨다.
사르륵, 사륵.
목구멍에서 피어난 덩굴줄기가 입속에 가죽이 닿기도 전에 가죽 뭉치를 당겨 목구멍으로 넘겼다. 꿀꺽 소리조차 없이 뭉쳐진 가죽이 사라진 까닭을 투란은 금세 깨달았다. 목구멍도 배로 넓어진 탓이다!
‘이러면 배가 두 배로 고파지나!’
약간 걱정을 하면서, 투란은 낯선 몸으로 뒤뚱거리는 발걸음을 내디뎌야 했다.
아직 허리에는 팽팽하게 당겨진 뱀 가죽이 있었고, 파란빛 돌을 닮은 뱀 가죽 보자기도 있었다. 오른쪽 손에는 여전히 샤벨투스의 이빨이 핏기 없이 감춰져 있었고, 투란은 이제 나무와 풀잎, 돌에 다칠 염려가 훨씬 줄어든 채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제는 악마의 심장도 그 껍질로 열심히 투란을 덮고 감싸며, 간혹 생기는 상처를 재빨리 메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투란은 이런 그랑츄를 단번에 죽인 놈이 있다는 것을 되새겼다.
이 행운은 그놈이 남겨 준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