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1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08)
‘죽음의 대속자가 대체 뭐야?’
나른한 표정으로 슬슬 뜨겁게 느껴지는 햇살을 향한 얼굴 방향을 바꾸면서 투란은 느릿하고 느긋하게 물었다. 여전히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드라고니아에게는 외면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
―데스 메이지랑 연계시킨 경우는 들은 적이 없다. 원래 사물, 보통은 단단한 그릇이나 보석을 이용하지. 죽음에 이를 정도의 상처를 입게 될 때, 그 상처를 전이시켜서 죽음을 회피하는 것이 보통 그 쓰임새야. 하지만 거의 쓸모없이 어렵기만 한 마법 취급을 받지.
‘어? 쓸모가 없어?’
―수명을 늘려주는 마법이 아니라고. 게다가 죽을 위기에 처한 상황을 해결해주지도 않다. 그저 죽음을 한번 회피하게 해주는 정도거든. 쉽게 말해서 몬스터에게 한번 씹혀서 몸통이 박살 난 경우, 그 순간적인 죽음을 돌이켜서 살려는 준다. 하지만 몬스터에게 씹히고 있다는 상황을 바꿔주지는 못하지. 즉, 계속 씹혀서 그냥 죽는다는 거지. 그런 걸 어디다 쓰겠어?
‘음, 으음! 잘 생각해서?’
―너도 지금 전혀 생각 못 하고 있잖아!
‘어, 그야 난 제대로 된 마법사라고 할 수 없어서 그런 거고…… 마법사라면 뭔가 잘 생각해서 한 번이라도 제대로 쓸 것 같은데?’
―그 한 번을 위해서 감수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까다로운 조건이 많은 마법이란 말이다. 얘기를 들었으면 생각을 좀 해!
‘쳇. 암튼 썼잖아. 저 데스 메이지한테.’
―그 연계는 정말 희귀한 경우라고! 어쨌든, 좀 더 들어봐!
‘그래야지…….’
햇빛을 받아 살살 데워진 얼굴을 돌려 그늘지게 하며 투란은 다시 손아귀에 맺힌 거미줄의 감각에 집중했다. 간질거리는 바람결 속에서 흔들거리는 거미줄이 바람과 무관한 떨림을 토해내고…….
“후우…….”
깊은 숨을 내쉬면서 홀시딘은 발끈 치솟았던 짜증을 일단 가라앉혔다.
한데 홀시딘이 마음을 조금 추스르고 나서 다시 바라보니, 이제 완연히 감정이 드러나는 세비앙의 눈동자 속에서 간절한 빛이 번뜩대는 듯하잖나! 뭔가 까마득하게 묻혀 있던 듯한 울컥함이 다시 홀시딘의 가슴에서 발끈했다.
“이봐! 너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무슨 생각으로 그딴 짓을 해서 이 몰골이 된 채로 용서를 구해! 바보냐!”
“스승님…….”
케이라가 한숨을 쉬었다.
마법사가 바보일 리가 없었다.
특히나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수련 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는 상아탑의 마법사라면 절대로 바보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데스 메이지가 된 채라 해도 세비앙은 바보일 수가 없었다.
지금도 은근히 홀시딘을 향해 동정을 얻으려 하면서 용서받는 기한이라는 조건을 슬쩍 흘린 것만 해도 영리하기 때문에 하는 짓이다. 무엇보다 홀시딘이 지닌 관대한 성격이 어떻게 발휘되는가를 알기 때문에 저러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홀시딘이 쉽게 용서할 리가 없었다.
대충 지어낸 거짓말로 두 번 다시 보기 싫으니까 치워버리기 위해서 내뱉는 용서는 아예 소용이 없다. 게다가 지난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아 품어둔 홀시딘의 분노가, 그 증오가 이런 세비앙의 처지를 봤다고 해서 금세 사라질 리가 없다.
“마음가짐을 보다 넓게…… 감성에 휘둘리는 이성이 아닌, 이성을 따르는 감성을 단련하라…… 마스터 엘투란은 이 말을 전하라 했어요.”
세비앙이 불쑥 꺼낸 소리가 석관을 울리며 또렷하게 스며나오는 듯했다.
순간, 홀시딘의 표정이 한층 더 구겨졌다.
“젠장…….”
“흐흠?”
케이라는 흥미롭다는 듯한 콧소리를 냈다.
마스터 엘투란의 전언(傳言), 그 의미하는 바는 아주 분명했다.
홀시딘에게 성격을 바꾸라는 말이었다.
충동적으로 미쳐 날뛰는 것처럼 보이기 쉬운 홀시딘의 언행(言行)을 고치란 소리를 마스터 엘투란은 죽은 지 한참이 되어서도 홀시딘에게 되풀이해주는 셈이었다.
“사람 성격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군요. 역시…….”
케이라가 중얼거렸고, 홀시딘은 스승을 향해 아주 진지하게 놀리는 소리를 꺼내는 제자를 향해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맘대로 되는 일이냐.”
“흐흠…….”
차마 스승을 향해 비웃을 수 없다는 듯, 케이라가 다른 곳을 보는 채로 미묘하게 코웃음을 흘려냈다. 홀시딘이 그런 제자를 보며 시무룩한 시늉을 했고, 이런 광경을 향해 석관 속에서 세비앙이 다시 소리를 내보낸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마스터 엘투란은 홀시딘이 된 홀이라면, 그 동기(動機)를 잃지 않는 강한 감성을 지녔으니까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반드시 관대하고 넓은 마음으로…… 감성이 이성을 따르게 할 거라고.”
“정말로 마스터 엘투란이 그러셨어?”
홀시딘은 어쩐지 의심스럽다는 듯이 세비앙에게 되물었다.
어느새 지난날의 얼굴이 거의 되살아난 것처럼, 이제는 표정도 보이는 세비앙이었고 때문에 홀시딘은 보다 자연스럽게…… 아주 의심스럽다는 듯한 태도로 묻고 있었다.
석관 속에서 세비앙이 최대한 움직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말한다.
“분명히, 그러셨어요. 홀은…… 알드바인의 삼대를 잇는 마스터로서, 용서를 아는 관대한 마도사가 될 거라고.”
“그래? 그럼, 좀 더 관대해진 다음에 또 얘기하자고.”
펄럭, 로브를 휘두르면서 홀시딘을 훌쩍 뒤돌아섰다.
전혀 관대함이 느껴지지 않는 매몰찬 태도였다.
케이라는 스승이 석벽에 눈짓하는 모습에 한숨을 쉬면서도 문을 열었다.
머뭇거림 없이 홀시딘이 나갔고, 케이라는 그 뒤를 따르는 척하면서 살짝 벽에 손을 짚었다. 손에서 일어난 마력의 파문이 벽 너머와 이쪽을 차단하면서 곧바로 석관으로 전해지면서 소리 없는 물음이 세비앙에게 닿았다.
―어때요? 희망이 보여요? 스승님이 과연 당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미…… 용서는 시작되었어요. 옛날의 홀이었다면…… 마스터 켈브란이 불타 죽고, 아직 살아남은 채로 불타는 이들이 용서를 구했어도 모조리 태워 죽인 홀시딘이었다면……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정당한 징벌의 일부로서 그 무서운 불꽃을 여기 남기고 갔을 테니까요.
석관 속에서 세비앙은 희미한 미소와 함께, 케이라처럼 마력을 통해 답하고 있었다. 그 답을 듣고 케이라는 벽을 넘었고, 닫았다.
케이라가 완전히 벽이 밀폐된 상태인 것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저쪽을 보니 홀시딘은 이미 한참 멀어진 채로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천천히 그 곁으로 다가가던 케이라는 금방 스승의 주변에서 미묘한 열기가 피어나는 것을, 불꽃이 일렁이며 작게 맴도는 것을 느끼고 봤다.
“스승님?”
“생각해보니까…… 벌받는 중이잖아? 겨우 악몽을 꾸다가 깨어나서 몸이 좀 망가진 꼴에 으악 하는 게…… 좀 가벼운 벌 아니겠니? 불타는 몸을 느껴봐야 저 녀석이…….”
스윽 돌아서면서, 공중에서 스르륵 미끄러지면서 한 손에 조그마한 마법의 불꽃을 피워 올린 채로 중얼거리는 홀시딘이었다.
바로 케이라의 눈가에 불끈 핏대가 섰고, 화악 펼친 손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오며 바람을 뒤틀어 마법의 손아귀를 그려냈다. 바람결로 이뤄진 손아귀가 곧바로 저쪽에 음침한 눈길을 던지는 홀시딘의 몸통을 콱 움켜쥐었고…….
“추하거든요? 돌아섰으면 그냥 가세요! 그랜드 마스터씩이나 되어서 뒤끝 보이지 마시라고요!”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잡아당기며 휙휙 나아갔다.
끌려가는 채로 홀시딘이 노골적으로 징징대는 소리를 내는데…….
“저 녀석도 알아야 한다고! 몸을 불태우면서 제론과 하펠이 마법을 걸 때의 기분을! 저 녀석도 제대로 겪어봐야아!”
케이라는 스승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보다 빠르게 바람으로 주변을 휘감아서, 곧장 마법의 길을 열어 이동했다.
징징대는 소리의 여운은 홀시딘의 집무실 안으로 퍼졌다.
빙빙 돌면서 허공에서 놓아져 의자 위로 둥실 떠나는 채로 홀시딘은 투덜거리는데…….
“제자야! 스승은 짐짝이 아니란다! 이렇게 해봐야 어딨는가 이미 아는…… 잠깐, 그거 아직도 나는 못 여는 거냐!”
끌려왔지만 다시 가서 하고 싶은 짓을 할 수 있다고 으쓱대려다가 보니, 케이라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잠금’이란 한마디를 흘리고 있었다. 이에 어이없어 묻는 홀시딘에게 케이라가 아주 냉정하게 말한다.
“스승님, 감성에 휘둘리지 마시고 이성을 따르세요.”
“음, 그래, 생각해보니 네 말이 맞구나. 마스터 엘투란의 말까지 들었는데, 내가 이럴 수는 없지! 음, 그런데 그러려면 뭔가 이성적으로 더듬고 만져볼 것이 있으면 참 좋겠다 싶구나. 아, 그래! 케이라, 손수건 좀 빌려주겠니? 상아탑의 술식으로 짜인 너의 손수건을 더듬다보면, 내 제자의 솜씨를 감상하다보면 세비앙 따위는 금세 잊고 냉정해질 수 있을 것 같구나!”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침착해진 척하면서, 곧이어 기대감에 넘쳐나는 환한 표정으로 홀시딘이 슬쩍 손을 내밀면서 하는 말이었다.
케이라는 전혀 머뭇거림 없이 방긋 웃음부터 지었다.
“역시 쉬운 일은 아니겠죠? 사람 성격이 바로 바뀔 수는 없잖아요? 스승님처럼 저도 감성이 앞서나 보네요. 이성은 스승님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마법수건 한 장쯤이야 하는데…… 감성은 절대로 싫다고 얼른 나가자는군요! 스승님, 그럼 쉬세요.”
성큼성큼, 뒤로 크게 딛으면서 말하고는 케이라가 잽싸게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가더니, 아주 세게 닫아버렸다.
홀시딘은 허공에 손을 내민 채로 순식간에 사라진 제자의 말이 귓가에 맴도는 것을 느끼면서 쳇쳇 하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젠 정말 안 넘어오려나. 어릴 때는 잘 넘어왔는데, 쳇! 마법융단 손수건…… 정말 궁금한데.”
투덜거림은 금방 끝났고, 홀시딘은 그대로 책상 위에 엎어지듯이 뚝 떨어졌다.
한숨과 함께 잠시 책상을 침상으로 착각한 모습으로 뒹굴다가 홀시딘은 끄응 하며 혼잣말을 웅얼거린다.
“정말로 뭔가 마음 돌릴 관심거리가 필요하다고…… 내가 설마 거짓말을 했을까 봐 그러냐…… 끄응…… 힘없고 마력도 모자라니 뭘 구경하는 게 딱 좋은데…… 으으…… 아! 그렇지!”
눈가에 마법 금고가 눈에 띄는 순간, 홀시딘은 발딱 일어나 앉았다.
굳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해도 상관없는 일이 생각난 모습이었다.
“으라앗 차!”
발딱 일어서면서 투란은 높이 팔을 뻗고 기지개를 켜는 시늉을 했다.
드라고니아가 그런 투란의 뇌리에 중얼거린다.
―야, 홀시딘이 지금 만드는 저거…… 혹시?
들은 척도 안 하고 투란이 묻는다.
‘야, 죽음의 대속자라는 거. 엄청나게 어려워? 너라면 대강 비슷하게 쓸 수 있는 마법 아니야?’
그 속셈을 바로 간파했다는 듯, 때문에 아주 심드렁하니 드라고니아가 대꾸한다.
―너에게 전혀 쓸모없는 마법이잖아. 아니, 아예 필요가 없잖냐? 왜 관심을 갖는 거지?
투란은 높고 파란 하늘을 보면서 툴툴대는 입술 모양부터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드라고니아에게 자신의 표정을 들이대는 듯한 기분으로 투란의 대답이 소리 없이 흐른다.
‘쓸모가 없기는! 필요가 없기는! 내가 몬스터 엠블럼을 강제로 봉쇄당했다고 생각을 해봐! 당연히 쓸모가 있고, 필요가 있잖아! 딱 한 번 기회를 얻는다고 해도 그게 살아남는 유일한 기회가 될 수 있잖아. 안 그래?’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만…… 그렇게 위기에서 탈출할 목적뿐이라면 굳이 죽음의 대속자가 아니어도 되잖아?
‘어?’
―세란드가 넘겨준 마법 목록 중에 리플레이스(Replace)가 있잖아. 지정된 대상과 너의 위치를 바로 바꿔주는 마법 말이다. 그걸 응용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아니어도 투란 너에게는 그럭저럭 죽음의 대속자 흉내가 될걸?
‘어떻게?’
―피와 살이 뭉개지고 뼈가 깨지더라도 넌 마그마 로드와 아르고누스의 패러블랙 잉크를 통해서 살아남는다. 그러니까 미리 리플레이스 주문이 각인된 도구를 하나 가지고 있다가 옆에 던져놓고 바꿔치기하면 되는 거지. 근거리에서만 먹히는 마법이기는 하지만, 너라면 거의 완벽하게 위기에서 빠져나와 몸을 회복할 기회를 얻는 마법이 돼준다고.
‘에, 그게 그렇게 쓸 수 있었어? 겨우 몇십 미터 사이를 두고 자리바꿈하는 마법이잖아.’
―응용하기 나름이지.
‘흐흠…… 근데 몬스터 엠블럼이 봉쇄당하면 내가 쓸 수 있는 마법도 같이 막히는 거잖아?’
―그러니까 미리 각인된 도구를 준비하라는 거다. 사출(射出)할 수 있는 거면 더 좋지. 쏴 보낸 다음에 바꿔치면 되니까. 조건 까다롭고 난해한 마법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너한테는 말이야.
‘아, 그래? 흐흐흠.’
뭔가 미련이 남은 듯한 대꾸를 하면서, 투란은 높고 파란 하늘을 향해 다시 기지개를 켜며 기다렸다. 홀시딘이 지금 새로 만드는 것, 심심해서 만드는 그걸 금세 가져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