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1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12)
‘얌마! 귀한 거라니! 그 귀한 걸 네 자루나 만들었다고! 내 파이로, 내 에어로, 내 아쿠아, 내 테라트가! 그런 걸 그냥 두고 오게 냅뒀냐!’
투란은 바로 울컥했다.
드라고니아는 심드렁하니 대꾸한다.
―그게 있어야 나머지 배낭도 만들 수 있는 게 뻔하잖아? 어차피 아케인 프레임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활용할 방법도 많지 않고 말이야. 거기서 따져봐야 홀시딘에게 놀아나서 징징대는 일밖에 없었을걸?
‘크읏!’
분하다고 아랫입술을 일단 깨물었지만 투란은 딱히 반박할 수가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애초에 정령의 힘이 깃든 초가 뭐 그리 귀한 것인가,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어디가 어떻게 쓸 수 있는가도 아는 게 없다! 이제 와서 알았다고 홀시딘에게 냅다 쫓아가서 내놓으라고 하는 것도…… 굉장히 우습잖나!
이런 투란을 조금 다독이려는 듯, 드라고니아가 말을 잇는다.
―그리고 어차피 무쇠뿔 오우거의 나머지 부분을 제련하는데도 필요하다고. 그거 기대하고 있잖아? 그 정도 정령초라면 기대한 것 이상의 뭔가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어? 그 파워드 아이템?’
―그래. 오우거의 힘이 깃든 벨트, 부츠, 글로브…… 넉넉하게 제대로 만들려면 정령초가 꼭 필요하지. 원래 있던 거는 배낭 몇 개 만들고 나서 다 사라졌을 테니까. 홀시딘도 그걸 궁리해서 너의 무지막지한 정령수를 이용해 정령의 힘을 축적시켜놓은 거고. 음, 아마 떠나 있는 동안에는 케이라에게 맡기려는 것 같은데? 보아하니 아케인 프레임 없이 여태껏 스승보다 더 뛰어난 물품을 제작해낸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뭔가 불만히 슬그머니 투란의 가슴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말처럼 홀시딘이 케이라에게 사대 마스터로서 삼대에 걸쳐 내려온 아케인 프레임의 사용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아탑 창고의 한구석에서…….
“알겠지?”
“네. 그런데 스승님…….”
아케인 프레임에 자신이 인식(認識)되고 사용자로서 각인(刻印)되는 것을 느끼면서 케이라는 조금 애매한 표정으로 자랑스러워하는 스승을 바라보며 묻고 싶은 것이 있다는 눈길을 보냈다.
홀시딘은 호쾌하게 그런 제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외친다.
“왜? 뭐가 궁금하니?”
당당하고 유쾌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말투, 그리고 즐거워하는 스승의 표정에 케이라의 애매하던 표정 위로 확신을 지닌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마치 애매한 것을 묻는다는 듯이 케이라가 말을 잇는데…….
“아케인 프레임 사용권한에 각인 순서에 따라 계보(系譜) 순위가 기록되네요? 이 순위에 따라서 제작기록에 대한 접근 권한도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맞죠?”
“음? 어허헛! 그야 당연한 일 아니겠니? 아케인 프레임이 잘못 사용되면 큰일 아니겠니? 그러니까 당연히 일단은 스승에게서 제자로 대물림을 하면서 제자의 성품에 대해 스승이 보증하는 구성을 지닌 거지! 하지만 내가 세 번째이고 네가 네 번째란다. 초대와 이대, 두 분은 돌아가셨고……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별 의미 없는 거 아니겠어?”
왠지 길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홀시딘은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사이에 케이라는 아케인 프레임과 마력을 공명시키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검토했고, 바로 엄격한 눈매와 방긋 웃는 입가를 만들면서 스승을 향해 또박또박 짚어내니…….
“즉, 스승님이 일단 우선권을 지니시는 거고, 여기서 제자가 뭘 만들더라도 나중에 확인하고 검토하실 수 있는 거네요? 하지만 제자는 스승님이 여기서 뭘 만들었는가, 이전에 아케인 프레임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스승님 허락 없이는 볼 수 없고 말이죠? 어머? 그러고 보니, 아케인 프레임을 이용해서 제자가 뭔가를 해체하고 분석한 것도 그대로 기록에 남네요? 그 기록은 스승님은 자유롭게 볼 수 있고 말이죠? 우와, 여기서 제가 뭘 만들면, 스승님 전부 알 수 있게 되는 거군요?”
주르르 흘러나오는 말에 홀시딘은 슬그머니 눈길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뭔가 뒤적이고 찾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찾는 것이 바로 손에 닿지 않는다는 듯, 둥실거리는 채로 몸도 슬쩍 돌리면서 케이라가 하는 말이 잘 안 들린다는 듯한 태도가 역력했다.
너무 노골적인 그 태도에 케이라는 대놓고 한숨을 쉬는데, 홀시딘이 재빨리 화제를 돌리겠다는 듯이 뭔가 꺼내 내민다.
“아, 여기 있구나! 이거 보렴! 내가 쟈카라 산림에서 거미줄을 분석해서 뽑아낸 실이란다. 거기 거미 녀석들이 저마다 다른 특성의 거미줄을 뽑아내잖니? 이건 그 중에서 선별한 건데 말이야, 손수건 만들기 딱 좋단다! 아, 그리고 여기 이 실뭉치는 말이야…… 이걸 이용해서 짠 손수건은 마력차단이 가능해! 굉장하지 않니? 아케인 프레임이라면 외부의 마력간섭을 차단한 채로 마법을 유지하는 물품도 거뜬히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니? 이런 소재를 쓴다면 말이야!”
케이라는 스승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면서, 아예 대놓고 손수건을 만들라고 권하는 말을 들으면서 잠깐 할 말을 잃어 멍해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끈질김, 집요함은 확실히 홀시딘의 강점이 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제자의 마도구를 갖고 싶다고, 제작법을 알고 싶다고 졸라대는 것은 역시 떼쟁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귀찮아서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하나 만들어줘 버릴까 하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날 지경이기는 하지만, 지난날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케이라는 마음을 다잡고 단호하게 말한다.
“생각해봐야겠네요. 아, 굉장히 시간이 걸릴 것 같은 걸요? 일단 제가 아케인 프레임을 활용할 능력이 있나부터 차분히 검토해봐야 할 것 같고 말이죠!”
“그, 그래. 음, 그것도 좋구나. 아, 참…… 그보다 오우거의 잔여물은 잘 검토해봤니? 그걸로 만들어야 할 것이 있는데 말이다, 잠깐…… 그래, 여기 일단 내가 기본구성이란 설정도(設定圖)를 뽑아놨다. 일단 이걸 기초 삼아서…… 내 다녀올 동안 틀이라도 잡아놓겠니? 뭐, 아예 완성을 시킬 수 있으면 좋고!”
“검토해보도록 하죠.”
당장 안 쓰겠다는 선언에 슬쩍 이야기를 돌려버리는, 어쨌든 아케인 프레임을 만져보도록 권하는 스승을 향해 케이라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절대로 기대하는 대답은 하지 않는 엄격한 태도로!
홀시딘은 시무룩하니, 노골적으로 둥실거리며 떠 있는 몸을 밑으로 조금 뚝 떨구면서 입술까지 삐죽거리다가 말한다.
“손 줘봐.”
“예?”
갑작스럽게 나온 소리는 케이라를 의심스럽게 했다.
또 뭘로 이야기를 돌리는 척하려고 하는가?
하지만 홀시딘이 가볍게 손짓을 했고, 케이라는 마력에 의해 자신의 왼손이 살짝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굳이 마력까지 끌어낼 거리도 아닌데…….
케이라의 왼쪽 손등에 홀시딘의 손끝이 닿았다.
그 순간에 케이라는 홀시딘이 내민 손에 카티야의 스펠 밴드 밴드를, 마기우스의 링으로부터 형성된 마도구를 차고 있는 채이고 마력의 유동과 함께 마법이 이뤄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스승님……?”
의아해서 물으려 했지만, 그 전에 홀시딘의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나, 홀시딘이 지정한다. 내 생명의 불꽃이 사라질 때, 내 바람에 따라 나의 제자 케이라에게 그랜드 마스터 카티야의 스펠 밴드를 전한다. 더불어 나의 권한, 나의 의무 또한 케이라에게 계승될 것이다. 상아탑의 마스터로서, 이를 지정하며 여기 그 증표를 부여한다.”
선명한 말은 아주 빨랐고, 케이라는 자신의 손등을 감으며 형성되는 작은 마도구를 보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잔잔한 마력의 파동과 함께 세 개의 고리가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제외한 세 손가락에 끼워졌고, 케이라의 손등과 손바닥을 붉은빛깔의 부드러운 천이 감쌌다. 손등 쪽으로는 알드바인의 표식이 떠올라 있었고, 손바닥 쪽으로는 조금 두텁고 강인한 감촉이 찾아들었다.
“고리는…… 반지는 모두 마기우스의 링을 기본으로 삼았다. 스펠 스택이 꽤 되니까…… 상급에서 하급까지 위계에 맞춰 셋으로 나눠져 있어. 기초적인 분류니까 검토하고 나중에 바꿔놔도 될 거야. 내가 분류한 건 아니고, 카티야 님의 분류니까 마음에 들 거다. 계승권을 이용한 마이너 스펠 밴드라고 할 수 있으니까, 너 말고는 사용불가야. 연구하다 보면 마기우스 링은 너도 제작할 수 있을 듯하기도 하다만…… 스펠 밴드 없이는 아케인 프레임을 사용해야 할 거다. 자, 그럼…… 난 내일 출발을 위해서 가서 쉬도록 하마. 조금 둘러보고 즐기도록 해라.”
말을 마치자마자 홀시딘은 휭하니 돌아서면서 바람처럼 날아서 사라졌다.
끈질기게 졸라대다가 포기하고 깔끔하게 물러선 듯한 분위기를 풀풀 휘날리면서.
케이라는 잠깐 낯을 찌푸렸다.
마치 엄청나게 위험한 곳을 가기 전에 각오를 다지는 듯한 홀시딘의 태도가 저절로 마음에 걸리는데…… 흘깃 알드바인의 표식을 보다 보니 마름모 속에 원, 어딘가 길쭉하게 세로로 열린 눈동자랑 닮은 무늬 속에서 마법이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여러 가지 마법이 새겨진 반지 셋과 이어졌고, 손바닥 쪽에서도 여차하면 마력장벽을 끌어낼 수 있는 각인이 감춰진 것이 느껴지는데 묘하게 이 표식 속의 마법은 간질거리면서 무엇인가 바로 알 수가 없다.
케이라는 ‘설마?’ 하는 눈빛으로 오른손으로 왼쪽 손등의 무늬를 덮으면서 마력을 일으키고 분석했다. 곧바로 알드바인의 표식 속에 감춰진 마법 몇 가지가 주르르 케이라의 마음에 그 구성을 드러낸다.
‘보호…… 방어…… 회복…….’
노골적으로 제자의 신변을 보호하고 지켜주겠다는 몇 가지, 그리고 마지막에 담긴 것은 기록 마법이었다. 이 마지막 것이 케이라의 눈가에 바로 핏대가 돋게 했고, 낯을 확 구기게 했다.
이 기록마법은 일상을 몽땅 담아두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몇 가지 특정한 조건이 충족될 때 기록이 시작되는데…… 그중 한 가지가 아케인 프레임에 케이라가 근접한 경우도 포함된다!
“아, 진짜!”
이미 저 멀리 달아난 스승은 대꾸가 없었고, 케이라는 아주 진지하게 이뤄진 이 마법의 장신구를…… 어딘가 멋없는 마이너 스펠 밴드를 벗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성난 소리를 더할 수밖에 없었다.
“제자한테 한번 제대로 맞아 보실래요!”
물론 이 또한 달아난 홀시딘에게는 닿을 리가 없었다.
몰래 듣고 있지 않는 한…….
‘끈질기네, 마스터 홀시딘.’
투란은 감탄했다.
제자 손에 족쇄 같은 것을 걸어놓고 냅다 도망치다니!
아케인 프레임이 놓인 마법 공방에도 슬쩍 거미줄 그물을 남겨놔서 케이라가 진짜로 화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사이에 홀시딘은 정말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탐욕스럽다니!
드라고니아도 어딘가 어이없지만 감탄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이 피식 웃었다.
‘제자라서 저러는 거 아닐까? 뭔가 제자한테 투정 부리는 것 같잖아.’
―제자가 스승한테 투정을 부려야 맞는 것 같다만?
‘그건 그렇지만…… 아, 어쩌면 옛날에 투정 부렸으니까 갚아주려는 것 아닐까? 너도 한번 내 투정에 당해봐라, 하고 말이야.’
―그렇게 철딱서니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투란의 발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단번에 부정했다.
투란은 혀를 날름 하고는 그대로 손을 털면서 담요 위에 굴렀다.
단단한 감촉이 몸에 닿았지만 담요의 부드러운 느낌에 얹히면서 딱딱해 아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아, 그러면……홀시딘은 일단 알드바인을 비우고, 마스터 케이라는 우릴 모르고…… 흐흠, 이젠 정말로 여기서 살아보는 거네.’
―기대하는 거라도 있는 듯한 말이다만?
의아한 듯, 드라고니아가 캐묻는 시늉을 했다.
담요 덮인 침상을 허우적거리며 구르는 채로 투란이 작은 웃음과 함께 답한다.
‘대공방이라잖아. 몬스터 헌터의 온갖 도구들, 드디어 보는 거라고! 게다가 금전도 있고, 은전도 있어! 도시라고, 도시! 여기서라면 키린이 말한 것처럼, 제대로 된 사람의 기준을 잡을 수 있을 거 아냐? 좋잖아!’
낯선 곳, 신기한 것을 보겠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푼 말이었다.
드라고니아는 이런 투란에게 약간 삐딱하게, 슬쩍 찬물을 끼얹는 말을 한다.
―홀시딘이…… 마법이 걸린 뭔가를 보여준다고 꼬드길 때도 그런 기분이었잖아? 과연 기대되는걸?
‘크억! 시꺼! 애써 잊었구만! 젠장, 그래도 제대로 된 마도구잖아! 너도 잘 만들어졌다고 인정했잖아!’
―그렇지, 잘 만들어지기는 했지. 더 쓸모가 있는 것들도 많고, 더 그럴듯한 것도 많지만 말이야.
완전히 작정하고 놀리는 드라고니아였고, 투란은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크흐응!”
눈앞에 있으면 때리고 물어뜯겠다는 듯이 거센 콧김도 뿜어내는 채로!
―너, 무슨 짐승이냐? 뭘 짖는 흉내를 내!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크흥!”
―야!
어쨌든, 눈 앞에 없고 마음 속의 풍경에서도 일렁이고 반짝이기만 하는 드라고니아와 툭탁대는 시늉을 하다가 투란은 잠이 들었다.
내일을 기대하며…….
사람이란 기준에 대해서 생각하며…….
그 척도를 망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