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1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13)
“상상한 대로, 기대한 대로 세상이 굴러가지는 않는다.”
투란에게는 익숙한 말이었다.
몬스터 헌터들이 잔뜩 계획을 세워서 몬스터 잡으러 갔다가 엉망진창인 꼴로 돌아와, 정말 간신히 살아 돌아와 계획대로 된 일이 한 가지도 없다고 서로를 향해 투덜대고 징징거릴 때마다 시끄럽다고 호통치던 샤오덴 할배의 말버릇이었다.
단지 샤오덴 할배뿐 아니라, 가끔 오러클 아저씨도 그 소리를 툴툴대면서 짜증 난다는 듯이 떠들기도 했었다. 덤으로 이 사람 저 사람…… 대부분 일이 잘 안 풀릴 때에 입에 담아보니까.
그렇게 어딘가 체념하고 실망한 기분으로 뱉는 그 말을, 투란은 공포와 경악으로 겪으면서 지금 몹시 당황하는 중이었다.
‘이게 뭐야아아!’
―왜? 왜 그러는 거야? 뭘 그리 당황하지? 투란, 무슨 일이냐? 몸은 정상이라고! 왜 그래? 대체 뭘 그리 놀라고 있는 거야?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느끼는 엄청난 기분에 놀라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물으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 될 상황이 전혀 아니었으므로…….
아침 늦게, 투란은 일어났다.
이미 홀시딘이 일행과 함께 알드바인에서 ‘바람의 길’을 이용해 떠났고, 네 남매는 자기 일을 한다고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멜란드가 시알라에게 뒷덜미를 잡힌 것 말고는 별다른 특이한 일은 없었다.
투란이 너무 깊이 잠든 분위기를 엿본 듯이 아예 푹 자라고 깨우려고도 하지 않았으니, 깨어난 투란은 멍청하니 기지개를 펴고 잠들기 전에 뭘 하려고 했는가를 한참 생각하다가 드라고니아에게 핀잔 몇 마디를 듣기까지 했다.
그리고 정신이 조금 맑아진 다음, 기운차게 투란은 헌터스 배너에 집중하면서 ‘천칭’의 힘을 회수했는데…….
―대체 왜 그러냐고!
그다음부터 꽥꽥대며 당황하는 상태였다.
그나마 입을 꽉 다물고, 밖으로 혹시나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으려 한 탓에 이 어이없는 몰골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는 있었다. 새어 나간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는 한데, 마치 뭔가에 위협을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덜덜 떠는 투란의 모습을 드라고니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방 안 곳곳에 프로브를 여럿 띄워놓기도 했지만, 어떤 위협 요소도 없었다.
투란이 무슨 엉뚱한 짓을 했냐 하면, 그런 것도 없었다.
그저 몬스터 엠블럼 위로 덧씌워진 오러 마크, 알드바인 특산의 헌터스 배너를 활성화하면서 철저하게 몬스터 로드로서의 자신을 감췄을 뿐이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러는가?
드라고니아가 재차 물었고, 겨우 정신 한 자락이 돌아온 듯한 투란의 대답이 절규처럼 울려 나온다.
‘뿌예! 뿌옇다고! 눈앞이 뿌예! 선명하지가 않아! 귀에 들리는 소리고 웅웅 윙윙 엉망진창이야! 내 심장 고동도 막 제멋대로 퉁탕거린다고! 이 손발, 이 살갗은 또 왜 이래? 칼 맞으면 좍좍 찢겨나갈 수준이잖아!’
―뭐?
드라고니아가 아주 많이 당황한 듯, 짧게 되묻는 소리를 투란에게 전했다.
이에 바로 투란의 절규가,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를 향해…… 한편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을 겪는 자신을 향하듯이 터져 나온다.
‘이게 뭔 꼴이냐고! 뼈다귀고 금세 부서질 거라고! 어디 부딪히면 바로 부러지겠구만! 조금만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거나 구르면 바로 부러질 정도로 약하잖아! 으아! 생각도 흐리멍덩해! 몸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고! 나,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분명히 오러 마크, 헌터스 배너로 오러를 끌어내고 있는 거잖아! 근데 왜 이렇게 약골이냐고!’
―얀마!
겨우 투란이 무엇에 놀라고 있는가 알아차린 드라고니아가 버럭 외쳤다.
소리는 전혀 없었지만, 투란의 등골을 쭈뼛하게 하고 뇌리를 쩌렁쩌렁 울리는 강렬한 한마디였기에 투란은 절규를 멈추고…… 맹한 표정인 채로 다시 한 번 방 안을 둘러보았다.
고대의 거신목, 그 잔해인 그루터기의 가장 두툼한 부분에 자리 잡은 작은 구멍 같은 공간을 두들기고 다듬어서 만든 방이었다. 밖에서는 두꺼운 껍질에 쌓인 약 2, 3층 사이의 높이에 자리 잡았고 시알라가 꾸민 퍼브의 부엌 옆 통로를 지나 깊숙이 들어온 곳에 두터운 문짝도 달아놓았다.
아직은 침상과 금전 꿰어놓은 담요 한 벌이 놓였을 뿐인 휑한 방이지만, 그래도 곳곳에 선반형태의 벽감도 미리 새겨놨다. 뭔가 필요하면 나중에 다시 꾸미게 좋은 둥글둥글한 형태…….
문득 홀시딘의 마법배낭을 더듬으면서 자신이 벌거숭이가 아닌 것을 확인하는 것처럼 몸을 더듬어 그럭저럭 챙겨 입은 몰골인 것도 확인하면서 투란은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헛소리 다 했냐?
조금 진정한 투란을 향해 드라고니아가 묻고 있었다.
‘헛소리? 누가 헛소리를……?’
잠깐 어리둥절한 듯, 투란이 되물으려 했다.
그러나 말이 맺어지기도 전에 드라고니아가 아까 터져 나온 절규에 대한 보답이란 듯이 폭풍처럼 으르렁거림을 투란의 뇌리에 쏟아붓는다.
―넌 지금 아주 정상이다! 아니, 보통 인간보다 확실하게 강화된 채라고 해야겠지! 헌터스 배너가 아주 제대로 작용하고 있는 중이니까! 이 알드바인에 나돌아다니는 이십만 가까운 인간 중에서…… 굳이 오러 마크가 없는 인간들과 비교한다면 네 힘은 그 몇 배를 가볍게 웃돌고, 몸의 내구력도 그만큼 강해! 감각능력도 그 정도이고, 전혀 잘못된 곳이 없단 말이다! 애초에 몬스터 엠블럼의 지속시간이 무의미해졌다고 온몸에 악마의 심장을 퍼뜨린 채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혼합해서 강화시켜놓은 짓이 비정상이었지! 기억해봐라, 악마의 심장을 품기 전에 너 자신을! 몬스터 로드가 되기 전의 모습을! 아니, 몬스터 로드가 되고 나서도 바로 강해진 건 아닐 테지? 그렇다면 그 시절을 되새기고 지금 자신이랑 비교해보란 말이야! 오러 마크에 의해 강화된 지금 네 상태가 대체 어디가 어떻게 약골이란 말이냐!
‘정상이라고? 이게?’
투란은 멍하니, 드라고니아의 잔소리 중에서 겨우 한마디만 알아들었다는 듯이 되뇌고 있었다. 그사이에 프로브로부터 감지되는 자신의 상황이 겨우 투란의 마음에 닿기도 했다. 팔다리, 몸통, 머리와 겨드랑이, 가랑이 사이에 이르는 섬세한 곳까지 프로브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파악해 알려왔다.
프로브가 들이댄 결과는 드라고니아가 퍼부은 말이 아주 당연하다는 확인이었다.
하나도 아닌 여러 개체의 프로브가 방 안 구석구석에서 투란을 샅샅이 훑어내서 검사한 결과였으니…… 더 뭐라 하기조차 힘들다!
한데 어이없다는 듯, 투란이 입술을 달싹였다.
“이런 약골이…… 정상인 거라고? 이게 인간……?”
이제는 드라고니아도 어이없다 지쳤다는 듯이 묻는다.
―너, 몬스터 엠블럼을 지금처럼 완전히 휴면(休眠) 상태로 했던 게 언제냐?
‘응? 휴면…… 황금매가 강제로 덧씌워졌을 때려나? 그때…… 쪼잔하고 이상한 마법만 잔뜩 뒤집어쓰고…….’
문득 느닷없었던 그때를 떠올리면서 투란은 다시 생각해도 짜증 난다는 듯이 툴툴거리려 했다. 그러나 이는 울컥한 드라고니아의 반발을 불렀을 뿐이니…….
―황금매라니이이! 그건 마법으로 몸을 둘둘 말고 강화시켜놓는 거잖아! 마력을 잔뜩 휘날리면서 강화되는 것 말고! 마법도, 몬스터도…… 아니, 오러도 끌어내지 않은 채로 맨몸이었던 때가 언제였냐고!
‘그러면 죽었을걸. 그러니까, 음, 에…… 계속 죽을 뻔하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다음부터는 항상 악마의 심장을 유지하고 있었던가?’
어정쩡하고 삐죽거리는 기분으로 투란은 다시 기억을 더듬으면서 갸웃하다가 대답을 했다. 뭔가 스스로도 제대로 짚을 수 없다는 듯한 이 대답에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하는 틈에 투란은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다시 한 번, 조금 진정이 된 지금이라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몸을 둘러보면서 살폈다.
하지만 역시, 시각부터 청각, 촉각과 후각, 입안의 미각조차도 잔뜩 둔감해진 채였고 살갗은 여리고 뼈대는 약하고…… 손톱은 단도 끝에 살짝 긁혀도 쩍쩍 갈라질 듯했고 두 다리, 두 팔의 연약함은 이 담요도 제대로 들어올리기 힘들 듯할 뿐이었다.
‘배 잘못 맞으면 바로 내장이 찢어지겠네…… 금전 몇 닢을 주머니에 싸서 때려도 머리뼈나 손뼈는 으스러질 것 같잖아. 대체 이런 꼴로 어떻게 나돌아다니겠냐고!’
투덜투덜, 달라진 바가 전혀 없는 연약한 몸뚱이에 투란은 잔뜩 불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는 드라고니아가 짧은 침묵을 깨게 했다.
―과연, 이 모양이니까 시킨 거였나.
‘응? 시켜?’
―너한테 이런 짓을 시켰잖아.
‘어? 아, 맞아! 키린이 해보라고 한 거였어! 아니, 키린은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약골 체험을 시킨 거야? 진짜 깜짝 놀랐잖아! 젠장, 너무 무섭다고! 이런 꼴로 어떻게 밖에 나가냐고!’
―투란, 알드바인에는…… 아니, 세상에는 오러 마크를 지닌 인간보다 없는 인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지금 너보다 훨씬 약한 채로 살고 있다.
‘응? 그야……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침착한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툴툴대다가 멈칫하며 묻고 있었다.
어딘가 당연한 말을 하는 듯한데, 그게 지금 자신이 겪는 일과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가 바로 알 수가 없어 의아해하는 투란이었다. 그저 뭔가 마음 한구석에서 걸리적거리는 기분은 있지만…….
―사람의 기준. 투란, 넌 사람으로서의 척도를 잊어버린…… 아니, 완전히 잃어버린 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잘 모르겠냐? 그럼, 너 스스로 한 말을 더듬어볼까? 금전 담은 주머니로 때리면, 보통 사람의 두개골이 버틸 수 있을까? 없다. 손뼈? 당연히 으스러지겠지. 금전이 한두 닢이라도 손에 들고 친다면, 돌멩이로 때리는 거랑 다를 것 같냐? 그걸 주머니에 가득 담으면 보통 사람에게는 충분히 흉기다. 몸통을 두들겨 맞으면 내장이 다치는 것도 당연하지. 나무에서 떨어지거나 발을 헛디뎌 굴러서 뼈가 부러지는 경우 역시 흔하다. 칼에 맞으면 살이 찢어지는 거? 안 찢어지면 이상한 거잖아! 그리고 오감! 당연히 강화되지 않은 인간의 오감이라면…… 지금 오러 마크로 강화된 것보다 훨씬 그 감도(感度)가 떨어지는 게 맞잖아. 알아들었냐?
‘그야…… 그딴 거 말로 해도 되잖아! 글자 배울 때처럼 머리에 팍팍 새겨 넣는 정도로 충분하잖아! 이렇게 놀라게 할 필요는 없잖아! 아라크레온 여왕한테 몸이 으깨졌을 때도 이렇게 안 놀랐다고!’
씩씩거리면서 투란은 두 손, 두 발을 내려다보면서 울컥한 기분을 쏟아냈다.
드라고니아가 이제는 한숨을 섞어 말한다.
―그래, 너 확실히 그때보다 더 놀라기는 하더라만…… 네가 말로 해서 들을 놈이 아니니까 그랬겠지! 말로 해서 알아들을 놈이라면 얘기 듣기 전에 이미 생각해서 먼저 깨닫고 있었을 거 아니냐? 그럴 리가 없으니까 키린이…… 그 못된 놈이 아예 제대로 겪어보라고 시킨 거겠지!
덕분에 자기도 놀랐다는 듯한, 그래서 더 억울하다는 듯한 짜증이 스며있는 으르렁거림으로 맺어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 말투 속에서, 은근히 키린에 대한 원망과 짜증을 실컷 담아내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삐뚤거리는 기분을 넉넉히 느낄 수 있었다. 어딘가 잔뜩 뒤틀린 듯한 그런 투덜거림에 동참할 수는 없잖은가?
‘에…… 못된 짓 하려고 그런 거는 아니겠지. 그래……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근데, 너도 느꼈어? 내가 여왕한테 한번 당했을 때보다 더 놀란 거…… 느꼈어?’
―그래. 그때는 그저 으악 한번 하더니, 이번에는 꽤 오래 요란하게 달달 떨었잖아. 그때보다 훨씬 오래 무서워한 거 맞아. 잘 모르는 누가 봤다면 널 상당한 겁쟁이라고 여겼을 걸.
심술궂은 드라고니아의 대꾸에 투란이 입술을 삐죽이려다가 말았다.
지금 자신의 상태, 이러쿵저러쿵 드라고니아와 떠들면서 안심해보려고 해도 여전히 덜덜 떨리는 채였고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너무 약하고, 너무 둔하고…… 모든 것이 흐리멍덩해진 듯한 세상 안에 아무 대책 없는 약골로 내동댕이쳐진 섬뜩함이 등골을 쉬지 않고 패는데 그냥 처맞는 듯하니까.
이 무서운 기분을 떨쳐내려면, 이 둔하고 약해서 어디에도 쓸모가 없는 자신을 보는 듯한 기분을 떨쳐내려면 다시 몬스터 엠블럼으로부터 몬스터의 형상, 악마의 심장을 끌어내고 아르고누스의 잉크를 맴돌게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서는 키린의 목적을 전혀 알 수가 없잖은가?
드라고니아는 이게 정상적인 인간의 상태라고, 그걸 투란에게 알리고 싶어한 것이 키린의 생각이라는데…….
‘아니, 이보다 약한 거였나? 오러도 쓰지 않는 채를 말한 거니까.’
우울한 기분 속에서 불쑥 투란이 뇌리에 찾아드는 생각이었다.
물론 투란은 헌터스 배너로부터 모락모락 흘러나오는 오러의 힘, 오러 사인에서 발생되는 힘에 비교하면 형편없이 작다지만 보통 사람보다 기본적으로 서너 배 강하다는 이 오러까지 멈출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랬다가는 그냥 정신줄 끊어져서 쓰러질 듯하니까!
대신 투란은 뭔가 마음을 안정시킬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뭔가 몬스터 엠블럼에 담겨진 몬스터의 형상을 느끼게 해줄 것…….
오래 찾을 필요가 없었다.
내려다보는 오른손, 두툼한 엄지 아래 손바닥에서 바로 꿈틀거리는 감각이 있었으니까. 이제는 몬스터의 형상이라기보다는 투란 자신의 살갗 아래 근육처럼 느껴지는 기묘한 파편…… 샤벨투스의 이빨을 담고 있는 악마의 심장, 파편이었다.
“어라?”
문득 투란은 이게 아주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