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1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15)
―흐흠, 생각해봤는데 말이다.
드라고니아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투란이 다시 ‘악마의 심장’을 해체하고, 오직 오러 마크 ‘헌터스 배너’에 의지한 모습으로 침상에 앉아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 문을 노려보면서부터, 어느새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후으읏!”
일단 입으로 거센 숨결을 토하면서, 이마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눈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손등으로 훔쳐내면서 투란은 ‘뭘?’ 하고 짧게 소리 없이 대꾸했다.
―지금 투란 널 당황시키는 거, 아무래도 확장된 지각의 통찰력이 사라져서 그런가 싶거든.
‘응? 통찰력?’
―발을 디뎌도 안전하다는 확신, 팔을 휘둘러도 괜찮다는 자각, 걸어다니다 뭐에 맞아도 즉사할 리가 없다는 상식적인 생각…… 투란, 보통은 다들 그렇게 하지만 너는 꽤 위험한 곳을 거쳐오면서 그 모든 것을 악마의 심장과 함께 생각하고 검토하고, 대비하면서 지냈잖아. 특히나 넌 다른 몬스터 로드랑 다르게 몬스터의 힘을 장시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거의 한순간도 떼놓지 않고 있었지? 거기 익숙해진 채라서, 단숨에 여러 가지 상황을 검토하고 감각을 점검하는 힘, 굳이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던 것들을 모르게 된 거라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고.
‘그게 통찰력이라고?’
―둔해진 감각이라도 악마의 심장이 있을 때는 이렇게 떨지 않잖아? 그러니까, 문제는 몸이 약해졌다거나 감각이 둔해졌다거나가 아니고…… 그 모든 것을 통합해서 지각할 수 없게 된 상태, 즉 이제까지 당연히 알 수 있던 모든 것을 전혀 알 수 없게 된 상태라서 겁먹는 게 아니냐, 이 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이야기에서 어떤 답도 찾을 수 없다고, 그래서 답답하다고 되묻고 있었다.
―나가라. 한 걸음씩 걸으면서 익숙해지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 이렇게 방구석에 숨은 채로 망상만 해서는 공포를 떨쳐낼 수 없을 거야. 그러니까, 그냥 냅다 밖에 나가서 달려보라고.
아주 도도한 대답이었다.
듣는 투란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팔다리가 부르르 떨리면서 뱃속이 꽉 뭉친 것처럼 긴장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투란은 한 번 더 묻는다.
‘다른 방법은…….’
―없어.
단호하고 빠른 말이 곧바로 투란의 뇌리에 푹 꽂혔다.
“젠장…….”
낮은 투덜거림이 바로 투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사실은 굳이 드라고니아의 말을 듣지 않아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기억 너머의 자신을 떠올리면, 지금 자기가 얼마나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가 투란은 분명히 알 수밖에 없었다. 샤오콴 마을에서 나왔을 때, 가슴에 몬스터 엠블럼을 새겼을 때…… 그 아련한 추락을 겪을 때…… 그런 시기의 투란 자신을 생각하면 지금 오러 마크에 의해 오러로 몸을 지키는 상황은 겁에 떨 까닭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으스대고 잘난 척하는 것이 더 어울릴 터였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지금 투란이 느끼는 것은 으슬으슬한 무서움뿐이었다.
침상 아래로 발을 딛기가 꺼려지고, 꽉 닫힌 문이 언제 열릴까 두렵고!
뭔가 대책 없이는 금전이 박힌 담요 위에서 한 걸음도 내딛기 싫다!
일어설 수가 없다!
“죽음의 대속자란 거, 얼마나 까다롭고 어려워?”
―뭐?
드라고니아가 갑작스럽게 불쑥 나온 물음에 어리둥절했다.
투란이 부르르 떨리는 목을 가다듬으면서 물음을 이어간다.
‘그러니까, 그 마법…… 길가다 엎어져서 나뭇가지에 찔렸는데 심장이 뚫려서 죽는다거나 하는 경우에도 효과가 있는 거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그 마법, 얼마나 까다롭고 어렵냐고. 어떻게 살짝…….’
―얀마! 작작 좀 하라고!
가만히 듣고 있다가 겨우 투란이 뭔 소리를 하는지 알아차린 듯, 그래서 어처구니없어서 할 말을 잃은 듯하던 드라고니아가 버럭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냥 말로 하지 않겠다는 듯, 프로브까지 모두 지우고 윌 라이트의 힘 또한 거의 손톱 수준으로 축소시키면서 아주 세게 투란의 뇌리를 울리는 소리를 지른다.
―나가! 안 죽어! 어서 나가! 뛰어!
하지만 투란은 일어서는 대신에 앉은 자세 그대로 옆으로 기울어졌고, 침상에 폴싹 쓰러졌다. 갑자기 프로브의 감지까지 사라지자 앉아있을 힘도 없다는 것처럼!
때문에 투란의 머리가 담요에 좀 세게 부딪혔는데, 그 아래쪽에 제대로 금전이 달려 있는 부분에 닿은 모양이었다.
“허읏!”
재빨리 머리를 들고 투란은 손으로 부딪힌 부분을 문질러서는 눈 앞에 갖다 대면서 뭐가 묻어나왔나를 살피고 있었다.
―설마 피났나 보는 거냐?
‘다, 당연하……!’
―그 정도에 피가 왜 나! 바보냐아!
‘날 수도 있지.’
푹 들었던 머리를 떨구면서 투란이 투덜거렸다.
부르르, 윌 라이트가 작은 빛을 명멸하는 광경이 투란의 눈동자에 비쳤다.
뭔가 아주 심각하게 드라고니아의 기분을, 그 심정을 반영하는 듯하다?
―야, 이 미친놈아아아! 얼빠진 바보짓도 적당히 하란 말이다아앗! 네가 무슨 육체개조(肉體改造) 시술(施術) 받기 직전의 용전사(龍戰士)라도 되는 줄 알아! 아니, 그 녀석들도 시술대 앞에서 이렇게 겁먹는 꼴은 안보여! 성인식(成人式) 직전의 수인족(獸人族) 애들도 너처럼 얼빠진 소리는 안 해! 알 깨고 도로 막으려는 드레이크처럼 헛짓거리 하지 말란 말이야! 정신 차려어어!
폭풍처럼, 벼락처럼 뇌리에 꽂히고 마음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투란은 멍한 채로, 이 이야기 속의 많은 부분이 뭔 소리인가 못 알아듣겠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나마 마지막에 드레이크 이야기는 조금 감이 잡히는데…….
‘그게 다 뭐야? 수인족 애들? 성인식? 용전사라니? 무슨 성전사? 아니, 그 시술은 대체 뭐야? 육체개조?’
하나씩 못 알아듣는 낱말을 짚다보니 문득 마음이 진정되는 듯하잖나.
폭발하듯이 쏟아냈던 드라고니아도 이런 투란의 물음에 흠칫하며 살짝 놀라서 자기가 무슨 말을 했던가를 되짚어 보는 듯했다.
―드라코눔 이야기였군. 나도 모르게 나온 모양이다. 잊어라.
‘헐? 그렇게 떠들어놓고 잊으라고? 뭔데 그래? 뭐야, 비밀이라서 가르쳐주면 안 되는 거야?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비밀이라서가 아니라, 드라코눔의 환경이 여기와 너무 달라. 여기서는 전혀 쓸모없는 이야기일 뿐이니까…… 그냥 잊어!
스윽, 투란은 일어나 앉았고 숨을 고르면서 드라고니아의 말에 잔뜩 집중하는 자세가 되었다. 그 덕분인가, 살짝 몸을 떨게 하던 공포, 두려움에 대해서 잊는 순간이 있었고 투란에게는 이게 꽤 마음에 드는 기분이었다.
‘그러지 말고, 얘기 해줘! 육체개조 받는 용전사라는 거, 대체 뭐야? 그거 하나라도 말해줘어!’
―그거 하나라도? 흐흠…… 좋아, 산책이라도 다녀와 봐라. 그러면 저녁에 이야기해주도록 하지.
‘잉? 어이, 얘기 듣고 나간다니까! 뭘 나갔다 와서 들어! 얼른 이야기해줘 봐! 먼저 들어야 나갈 힘이 생긴다고!’
―이 망할 놈!
약간 화를 내고, 짜증 난 듯한 드라고니아의 투덜거림이 먼저 나왔다.
그러나 동시에 드라고니아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투란이 진정되고 있는 것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울화를 가득 담은 말투로, 짜증 나는 마음을 숨기지 않은 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용전사에 대한 이야기를 투란에게 들려주니…….
용전사란, 드라코눔에 거주하는 인간이 자신의 몸에 용(龍)의 일족(一族)이 지닌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완성되는 전사였다. 자신의 몸을 단련하거나 해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도달하는 전사의 어떤 경지를 일컫는 말이 아니고, 시술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인간의 몸이 지닌 한계를 뛰어넘는 효과…… 성능을 발휘하는 육체로 ‘다시 만들어’ 나온 결과물이라고 했다.
고대(古代)의 인체정형(人體整形) 기술을 기반으로, 용의 일족이라도 불리는 드라고니아의 몸…… 드라코눔의 일족이 지닌 강인한 특성을 인간의 몸에 부여하는 시술이 가능했기 때문에 생겨난 특별한 경우가 바로 용전사라 일컬어진다.
이들이 필요했던 까닭은 고대에 있었던 전쟁…… 악마종과 싸워야 했던 신생(新生)의 드라코눔에서 전장에 나가 싸울 수 있는 드라고니아 일족이 한정되었기 때문이라 했다. 아직 드라고니아, 용의 일족이 제대로 된 존재로 세계에 인정받기 전이었고 그 때문에 어떻게든 인간의 도움…… 지능을 지니고 말이 통하는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던 시기에 찾아낸 방법이 용전사 시술법이라 했다.
열두 가지 시술을 통해서 인간과 드라고니아가 하나로 결합된 듯한 전사가 태어나는 듯한 결과를 낳는 시술법이었고, 어느새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했다. 원래는 용기사(龍騎士)가 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마지막 수단 같은 것이었는데…….
‘어? 용기사? 그건 또 뭐…….’
―닥쳐! 이제 나가! 뛰어!
‘체에엣!’
손을 문에 대면서,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자세로 투란은 마음속에 소리 없는 투덜거림을 뿜어냈다. 그리고 손발이 아직 떨림을 유지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한 번 더 깊이 숨을 가다듬는 채로 마음 깊은 곳을 향해 소리 없이 말한다.
‘이야기를 들으면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아. 음, 용기사는 나중으로 넘기더라도…… 용전사의 열두 가지 시술이란 게 뭔가, 그냥 되는대로 대충이라도 말해줘! 들으면서 걸어볼 테니까.’
―아오오! 이 바보를!
우선 성난 기분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드라고니아는 정말로 투란이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망상에서 태어난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을 인정한다는 듯,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문을 열면서 문턱 너머로 걸음을 디디며 투란은 계속 이야기에 집중했고…….
“응? 투란? 어딜…….”
멜란드가 탁자 위에 걸레질을 하려다가 통통 튀는 묘한 걸음으로 나오는 투란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
“잠깐 걷다 올게에에!”
그런데 뭔가 메아리라도 남기겠다는 듯한 소리를 질러놓고 투란은 파닥거리면서 주변을 흘깃흘깃하는 괴상한 짓을 하면서 뛰쳐나가고 있잖은가.
“뭐야, 왜 저런데?”
멜란드는 갸웃하면서 누나를 보며 묻는 눈길을 보냈다.
빡빡, 탁자 위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는 걸레질을 하며 시알라는 상쾌하게 멜란드를 향해 대답해준다.
“손이 멈춰 있다? 노는 거니? 잠깐 걷다 온다잖아! 잠깐 걸으러 나가는 투란은 냅두고, 얼른 손을 움직여야지? 걸레가 슬퍼하잖아!”
“그런 억지를!”
기막힌 표정으로 항의를 입에 담기는 했지만, 멜란드는 걸레의 슬픔을 달래겠다는 듯이 빠르게 손을 움직이는 채이기도 했다. 뭘 따지더라도 일단 시키는 일부터 하지 않으면 얼굴에 걸레질 당하게 생긴 것을 알아차렸다는 듯!
하지만 멜란드는 도대체 이 청소가 언제 끝날지, 벌써 몇 시간째인 이 짓이 내일도 이어질 거란 생각에 부르르 떨면서 처량하고 불쌍한 표정도 짓고 있었다. 물론 시알라에게는 전혀 그 얼굴이 보이지 않는 듯하다!
때문에 멜란드로서는 훌쩍 나간 투란을 부러워할 상황이었다.
‘그게 그렇게 아파?’
―응? 아프냐니?
‘시술 전에 겁먹는다면서? 열두 가지니까, 열두 번 하는 건가? 무지 아프게 열두 번이라 겁먹는 거야?’
―아니다……. 실패할까 봐 겁내는 거지.
‘엥? 실패?’
―그래, 오랜 세월 속에서 지금은 거의 열에 일곱은 멀쩡한 시술이 되었지만…… 여전히 셋은 실패하거든. 실패하면 몸이 일그러지고…… 뭐, 간단히 말해 병신이 되는 거라서…… 두려워할 수밖에 없기는 하지.
‘헐? 그런 걸 왜 해? 꼭 해야 하는 거야? 악마종도 다 물리쳤다면서?’
―그건…… 그게 힘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드라코눔에서……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서, 멀쩡하게 태어났다는 것은……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힘들군. 아무튼, 평범한 자에게 상식적으로는 습득할 수 없는 새로운 존재로서의 힘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용전사의 시술이거든. 그 기회를 받아들인 자에게 시술이 행해지는 거고…… 뭐랄까, 인간의 심리적인 문제라서 나도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부분이다.
‘흐흠…….’
페란드는 모루를 놓는 자리의 각을 잡다가 투란을 봤다.
한 걸음 내딛기 위해서, 한쪽 발을 살짝 내밀어 딛을 곳을 이리저리 더듬는 기묘한 모습…… 그야말로 발아래가 훅 꺼지고 무너질까 봐 걱정하는 사람의 자세!
“투란, 뭐 하는 거야?”
이런 경우 묻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놈 취급받을 것 같아서, 페란드는 눈을 깜박이면서 은빛매의 간판 너머에서 꼼지락꼼지락 걷는 투란을 불러 묻고 말았다.
“어? 아하핫! 아, 아무 것도 아냐! 나중에 봐!”
뭔가 서두르는 대답, 뭔가 급한 걸음……인 듯한데 투란의 발끝은 땅을 조심스럽게 계속 더듬고 있었고 그 조심스러움은 어딘가 사납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페란드는 깔끔하게 더 묻기를 포기했다.
“그래, 나중에 봐.”
투란은 다시 대장간 정리에 몰두하는 페란드를 흘깃하고 다시 조심해서 발을 딛고 열심히 뛰는 기분으로 느릿느릿 걸었다.
투란의 마음속에서는 드라고니아가 열두 가지 시술에 대해서 하나씩 푸념하듯, 체념한 말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