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2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17)
“아하핫, 그렇지 않아, 투란. 세상은 넓고 해괴한 놈은 많다. 인힐트 블레이드를 마법을 섞지 않은 채로 만들어내는 놈은 알드바인에도 한 놈 있어.”
투란에게 홀시딘은 그렇게 말했었다.
칼자루 안에 칼날이 그대로 숨어 들어가는 마법, 그런 마법 없이는 만들 수 없는 것이 인힐트 블레이드라는 마법검이라고 느끼고 뭔가 검을 만드는 장인들이 불공평한 상황에서 불평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투란이 중얼거린 소리를 듣고서 홀시딘은 히죽 웃으면서 말해줬다.
시간 되면 찾아가보라고, 가진 물건을 아낌없이 보여줄 소개편지도 짧게 써주겠다고 하면서 투란에게 홀시딘은 하클에 대해서 알려줬었다.
당연히 투란은 믿지 않았다.
마법을 쓰지 않고 칼자루에 칼날을 욱여넣을 방법이 대체 뭔가?
아무리 이모저모로 생각해봐도 샤벨투스의 이빨처럼 아주 특별한 소재를 이용하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몬스터의 잔여물을 사용하는 것은 마법을 쓰는 거나 별 차이가 없잖은가.
그래도 홀시딘은 키득거리면서 장담했었다.
“특별한 소재도, 마법도 아니야. 순수한 기술이라고. 가서 보라고, 봐서 내 말이 맞으면 사줘. 어때?”
그러면서 바로 눈앞에서 써주는 소개편지의 내용에 투란이 어처구니없어 하자 홀시딘은 보다 뻔뻔하게 말했다.
“이 정도는 돼야 하클이 마음을 열 거야. 마음을 열어야 제대로 된 걸 보여준다고!”
투란이 그딴 괴상한 말이 적힌 종이를 내미는 자신을 보고 바보라 여기지 않겠냐고 의아해 하자 홀시딘은 접은 종이에 밀랍봉인을 찍어놨다. 이 소개편지는 하클만이 볼 수 있게 해놨으니, 투란이 편지 내용을 알고 갖다 줬을 거란 의심은 하지 않을 거라면서.
물론 투란에게 아는 척하지 말라는 소리도 하긴 했다.
홀시딘이 저럴 때에는 뭔가 눈앞에서 놀림당하는 기분이었지만, 허우적대면서 당황스러운 상황에 빠진 투란에게는 구경꺼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온 것인데…….
차륵, 키리리릭!
“우앗, 진짜잖아!”
하클은 조금 당황했다.
눈빛이 반짝거리면서 얼굴도 살짝 불그스름하게 핏기가 맴도는 표정을 잔뜩 띄운 채로 자신이 만든 도구에 이렇게 감탄하는 녀석을 본 것이 대체 언제였던가? 철없이 뛰는 건지 구르는 건지 모를 상태로 나돌아 다니는 꼬맹이 정도가 아니라면 이렇게 놀란 녀석을 본 적 있기는 했나?
물론 마법과 무관하게, 오직 순수한 정밀세공(精密細工)을 통해 만들어진 태엽장치(胎葉裝置)를 이용한 하클의 인힐트 블레이드를 보고 그 기술에 감탄할 수는 있었다. 보통 장인은 상상도 못할 일이기는 하니까.
“마법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러나 하클의 검을 놓고 한껏 신기해하는 투란의 몰골은 그냥 어린애의 호기심만 철철 넘쳐나고 있었다. 그저 본 적이 없는 물품에 신기해하는 소년의 모습이 또렷할 뿐이다.
‘뭐야, 이놈…… 검을 볼 줄 알잖아?’
하지만 하클은 투란이 칼날이 형성된 검의 성능을 가늠하는 모습에 헷갈리고 말았다.
칼자루와 칼날의 중량배분, 칼날의 날카로움, 칼날의 폭과 길이를 하나씩 점검하는 것이 꽤 빠르면서도 익숙하잖은가.
이건 결코 애가 보일 모습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하클의 공예기술을 가늠하고, 물품을 평가하는…… 얼핏 느껴지기에는 어느 공방에서 몇 년 굴러먹은 듯한 태도였다.
그래서 하클은 다시 넌지시 한마디 던져보기로 했다.
“봤잖아. 어떻게 칼날이 형성되는지…….”
“예! 봤는데, 엄청나잖아요! 자루 안에서 축이 나오고 조각이 밀려나오면서 맞춰지더니 칼날이 되다니! 게다가 제대로 길기도 하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짜맞춰서 저절로 움직이게 한 거예요?”
투란의 대답은 경쾌하고 날렵하게 하클에게 돌아왔다.
덕분에 하클로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칼날이 자루 안에서 튀어나온 조각으로 형성…… 조립(組立)되어가는 과정을 이 녀석이 제대로 보고 있다! 그저 칼자루 안에서 나온 것이 칼날이 되었다고, 완전한 검의 형태를 갖췄다고 신기해하는 것이 아니다!
‘검을 제대로 판별할 줄 알고 세공기술의 수준을 보고 놀란다는 건데…… 얘, 대체 뭐야?’
하클에게는 이 투란이 매우 신기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거 다시 칼자루 안으로 어떻게 넣어요?”
“응? 날과 자루 사이 이음매, 장식을 밀어봐. 한쪽으로 움직일 거야. 그러면…….”
사륵, 키리릭.
하클의 대답이 나오기가 무섭게 투란이 칼자루를 쥔 손의 엄지를 움직였고 칼날이 다시 해체되듯이 칼자루 안으로 밀려들어가는 광경이 펼쳐졌다. 다시 처음의 형태가 된 것을 보며 투란은 자연스럽게 감탄한다.
“와! 이거 저절로 걸렸잖아요? 꺼낼 때도 뺄 때도 잠금을 풀기만 하면 되고…… 저절로 잠겨버리다니!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아니, 그런데 어떻게 저절로 칼날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죠? 쇠뇌도 시위 당기려면 힘 좀 써야 하는데!”
“작아도 들리지 않았나? 안에서 태엽이 감기고 풀리는 거 말이야. 그 태엽장치는 검을…… 칼자루를 휘두르거나 움직이면 저절로 감겨. 잠금을 풀면 바로 태엽이 움직이면서 작동하는 거지.”
“태엽…… 저절로 감기는 태엽도 있어요?”
“산맥 바깥 세상에서 배워온 거야. 그걸 응용하면 이것저것 많이 만들 수가 있지. 태엽의 소재를 좀 더 좋은 걸로 써서 만들면, 마법만큼이나 신기하고 대단한 것도 만들 수 있어. 뭐, 몬스터의 잔재를 이용하려고 한다면 웬만한 마법보다 더 대단한 것도 안 될 것도 없지만…… 난 몬스터 스미스는 아니니까.”
투란이 하도 목소리를 높여 자연스럽게 감탄했기에 하클은 자신도 모르게 그 반짝거리는 눈빛에 중얼거리듯이 길게 대답을 했고, 곧바로 자기답지 않다고 느끼면서 살짝 민망하게 눈길을 돌리고 말았다.
“아하핫, 몬스터 스미스야 원래 몬스터가 지닌 이상한 능력을 이용해서 뭘 만드는 거잖아요. 이건…… 완전히 소재부터 기술로 가공한 거니까 비교하면 안 되죠! 아, 근데 몬스터를 소재로 만드는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어서 손을 안 대는 거예요?”
“아니. 비싸서 손을 못 댔지. 그러다보니 아는 게 없게 되고…… 저절로 손이 안 가게 되잖아.”
투덜거리듯이 하클이 대답했다.
그리고나서 곧바로 조금 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하클은 의자에서 몸을 돌려 탁자 아래 서랍을 뒤졌고 연초를 꺼내 곰방대에 담으면서 불을 붙이려는 시늉을 했다. 한데…….
“응? 그게 뭐예요? 성냥 안 써요?”
투란이 하클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고 불쑥 묻는 소리를 내잖는가.
“뭐? 너…… 토치라이터 처음 봐?”
“처음 봐요!”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대답이었다.
“대체 어디서 살다 온 거야.”
하클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 하클의 입에서는 간단한 설명이 나온다.
“이건 룬디아크 공방에서 만들기 시작한 점화(點火), 발화장치야. 꽃 기름을 먹인 심지를 안에 두고 여기 이 겹쳐진 톱니로 부싯돌을 긁어서 불씨를 얻는 게 기본이고…… 옆쪽에 검은 줄막대 보이지? 그건 아래로 빼서 딱딱한 곳에 긁으면 불이 붙는…… 발화봉이야. 아래 가죽끈 안에 끼워진 주머니는 밀폐된 성냥 주머니고……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불씨를 얻는 도구이고, 간단하게 횃불 대용도 돼. 예전에는 룬디아크 공방에서만 만들었는데 이제는 규모가 좀 되는 공방이라면 대충 다 흉내 내서 만들 수 있어. 간단한 장치인데다가 룬디아크 공방에서 딱히 비밀로 하는 물건도 아니라…….”
투란은 집중해서 들으며 하클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굴리는 금속 막대를 바라봤다. 폭은 2, 3센티 사이이고 손바닥 길이 정도 되어 한 손으로 잡기 딱 맞는 형태이고 전체적으로 네모진 길쭉한 막대 모양이었다. 아랫부분에는 가죽으로 감아 손바닥에 찰싹 달라붙게 해놨는데, 가죽 안쪽에 약간 도톰하고 가지런하니 막대에 찰싹 붙여놓은 주머니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 이삼십 년 되었나? 섀터드 세븐, 여기 칠왕국 쪽에서 그즈음 해서 유행처럼 번진 물건이지. 아마 이제는 춤추는 산맥 어딜 가도 그럭저럭 쉽게 볼 수 있을걸?”
“그래도 구석진 외딴 곳까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죠, 뭐…….”
투란이 이런 걸 진작 몰라서 아쉽다든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클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구석진 외딴 곳…… 이삼십 년 전의 알드바인이 쉽게 듣던 소리였다.
알드바인처럼 구석지고 외딴 곳에서 왔다면 뭘 알겠느냐고, 어디 갔다가 놀림받고 온 녀석들이 한참 으르렁거릴 때가 그 무렵이었다. 그래서 이 토치라이터의 제작법이 알려지자마자 알드바인 공방에서는 너도 나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만들어서 여기저기 보내 팔았다. 알드바인에서는 이미 토치라이터가 잔뜩 있다고 과시라도 하듯이, 여기 헌터 대공방이 있고 수준 있다고 뽐내듯이!
알드바인의 상아탑에서도 은근히 그 상황에 동참했고, 춤추는 산맥 곳곳으로 룬디아크식 토치라이터의 알드바인 제작품을 마구 뿌리듯이 보내 팔아치웠다. 다른 곳에서는 아직 이게 쓸모가 있나 없나 애매하다고 할 무렵이었던 덕분에 제법 수익이 났다고 했는데…….
“그렇기는 하지. 이것저것 손봐서 모양도 여러 가지이고, 기능도 조금씩 다르니까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사면 될 거야.”
치익, 연초에 불을 붙이면서 하클은 덤덤하게 말했다.
“흠? 여기서는 안 팔아요? 그거 만들어서 쓰는 게 아니고 사서 쓰는 거예요?”
투란이 갸웃하며 묻는 말이 하클의 얼굴에 잔주름이 패는 쓴웃음을 짓게 했다.
“그걸로 용돈벌이 하는 녀석들이 꽤 되거든. 나까지 끼지 말아달라고, 애들 좀 봐달라고 투덜대는 놈들이 있어서…… 난 내가 쓸 것만 만들게 됐지.”
“헤에?”
키릭, 사르르, 키릭!
칼날이 쑤욱 나왔고, 투란은 재미있다는 듯이 토치라이터와 검을 오가는 눈길을 흘렸다. 그리고 불쑥 벽에 걸린 다른 칼자루 형태를 눈짓하면서 묻는다.
“이거 두세 자루 사면 토치라이터 하나 정도는 덤으로 줘도 되겠네요? 응! 맞아! 많이 산 손님을 위한 덤! 파는 거 아닌 선물!”
“뭐?”
잠깐 하클은 당황해서 연초를 한모금 빨던 입을 벌린 채로, 연기와 향이 그대로 새어 나오게 하는 몰골로 투란을 바라봐야 했다.
인힐트 블레이드, 마법이 아닌 태엽장치의 정교한 움직임에 의해 작동하는…… 기계검(機械劍)을 신기해하는 거야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사실 눈앞에서 작은 조각들이 저절로 궤도(軌道)따라 칼날의 형태를 갖추는 광경을 몇 번 본다고 해서 그 신기함이 덜해지는 것도 아니잖은가?
하지만 그걸 두세 자루 사겠다니!
왜?
―봉이야, 잡아!
‘젠장, 닥쳐요!’
돌연 뇌리에 헤벌레 하는 표정인 듯한 홀시딘의 목소리가 울린 듯한 상황에 일단 하클은 냉정하게 떨쳐내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한데 이런 하클을 향해…….
“아, 쩨쩨하게 굴지 말고 덤 줘요, 덤!”
뭔가 요점이 완전히 어긋난 채로 투란이 징징거리잖는가.
보다 냉정하게 자신을 가다듬으면서 하클이 대꾸한다.
“싼 물건 아냐. 내가 만들기는 했지만…… 칼자루 안에 칼날이 담긴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고, 여기 도검 공방 어딜 가도 저 정도 성능의 도검은 은전 다섯 닢이면 좋은 걸로 구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한 자루에 오십 닢짜리를 사는 것보다 그쪽에서 양질의 도검을 산 다음에 적당한 암밴드를 상아탑에서 사면…….”
“두 자루면 금전 한 닢? 으음! 에잇! 저기 걸린 것도 모양만 다르지, 어쨌든 인힐트 블레이드죠? 세 자루 다 사요! 아, 세 자루만 만들었나요?”
하클의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대다가 결심했다는 듯이 투란이 목소리를 높여 말하고 있었다. 덕분에 중간에 말을 멈춘 하클은 한층 더 황당한 표정을 짓고서 투란을 바라봤다.
하클에게는 이놈이 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온 봉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 자루 만들었나 알아서 뭐 하려고 그러는가?
설마 만들어둔 거 전부 다 사겠다고?
겨우 네 자루 만들고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더 만들지 않기는 했지만…….
“덤 주는 거죠?”
초롱초롱하고 반짝반짝하는 눈빛으로 투란이 또 묻고 있었다.
문득 하클은 요즘 자신이 매우 궁핍한 상황이란 것을 생각해냈다.
끼니야 때우고 있지만, 재료를 구하지 못해서 뭔가 만들고 싶은 것도 만들지 못하고 계속해서 도면만 그려대는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상상 속에서 이것저것 만들면서 실제로는 손 놓고 연초만 재배해 태우는 몰골이 바로 현재 하클이잖은가.
‘홀시딘, 봉이 아니라 그냥 나 도우려고 보낸 겁니까?’
불쑥 이어진 생각에 하클은 결심했다.
굳이 도움을 거절할 까닭이 없잖은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