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2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19)
‘얘, 진짜 뭐 하는 놈이지?’
일단 하클은 다시 생각해봤다.
처음 문턱을 넘어왔을 때야, 크라쉬 덕분에 그냥 건성으로 묘한 놈 왔네 하고 넘겼다. 그다음에 하클 자신의 인힐트 블레이드를 다루는 자세를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와중에 홀시딘이 보낸 편지는 전혀 믿지 않았다!
제론과 하펠과 함께 홀시딘이 하클의 가슴에 ‘헌터스 배너’를 박은 그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수십 년 전부터, 하클은 홀시딘이 뭔가 말하면…… 정확하게는 제론, 하펠, 홀시딘 이 셋이 뭐라 하면 하나하나 전부 재검토하고 확인할 때까지는 믿지 않도록 자신을 훈련해놨으니까.
요즘에야 금전 두 닢이나 들여야 하는 귀한 오러 마크라지만…… 저 세 마법사가 작당해서 하클의 가슴에 건강하고 튼튼한 몸을 유지시켜주는 마법 각인이라고 새겨줄 때는 아직 초기의 실험 단계였고, 뭔 부작용이 뒤따를지 모를 때였다!
하클을 아는 사람이라고 불러다 뻔뻔하게 마법의 실험물로 이용한 것이다!
물론 공짜기는 했다.
하지만 막상 마스터 엘투란까지 나서서 그의 몸을 점검하고 이렇게 말했을 때 하클은 기분이 아주 너저분하고 더러워졌고,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오호, 드디어 제대로 된 건가. 중급 마법사도 거뜬히 각인할 수 있는 오러 마크, 헌터스 배너가 완성된 모양이군! 좋아, 잘했어! 아, 하클? 하클이라고 했지? 자네에게도 감사하네. 이렇게 실험에 동참해주다니, 정말 고마워!”
앞뒤 사정 자르고 ‘좋은 거야, 좋은 거!’ ‘공짜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거 내놓기 시작하면 아는 사람이고 뭐고 마스터 엘투란이 무조건 금전 받으려고 할 걸요.’라고 주절주절 나불거린 셋을 관대하게 용서할 수가 없잖은가!
결과적으로는 이 나이 될 때까지, 헌터도 아닌 하클이 오러 마크를 몸에 지닌 채로 꽤 건강하고 튼튼하게 살아온 밑천이 되기는 했다. 어지간해서는 과로라든가 몸살 따위는 없는 몸이니까.
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그 과정이 이쁘게 다시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일단 가짜 이름 들이대는 게 왠지 뻔해 보이는 녀석, 투란을 자기 눈으로 관찰하고 판단하려 했던 하클이었지만…….
‘설마 내가 끼니 끊겨서 굶고 지내는 줄 알고 대강 아무거나 사라고 보낸 건가? 아니, 아니지! 이 녀석, 나처럼 헌터스 배너를 갖고 있잖아! 분명히 그 기척이 있어…… 아니, 근데 대체 왜 내 물건을 사려 하지? 비싼 건데……. 내가 만들었고 그 가격을 붙일 수밖에 없기는 했지만, 비싸다고!’
생각할수록 알 수가 없었다.
“덤 없어요? 덤!”
투란이 팍팍 질러대는 소리가 하클을 다시 오늘로, 지금 이 순간으로 되돌려 놓으면서 혼잡해지려던 마음을 다잡게 했다.
“아니, 이건…….”
“안 팔아요? 파는 물건 아니에요?”
“파는 물건 맞아! 근데, 너 조금 전에 칼을 네 자루나 샀잖아?”
“네! 칼만 네 자루 샀죠! 이건 암밴드잖아요?”
“어…….”
문득 하클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번뜩거리는 투란이 웬만한 말에는 넘어가지 않고 이 유틸리티 밴드를 사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싸다든가, 네 가지 기능을 완벽하게 다루기 위해서 어느 정도 연습이 필요하다든가 하는…… 완벽하게 다루더라도 팔을 움직일 때 그 네 가지 동작과 겹치지 않도록 꽤 주의해야 한다든가 하는 탓에 다른 헌터 녀석들이 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투란에게는 전혀 먹힐 리가 없다는 것을 퍼뜩 알아차린 셈이었다.
‘이거,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봉?’
과연 이대로 양심에 매달린 채로, 이 횡재를 외면해야 할 것인가?
자기 발로 찾아와서 힘껏 나서서 봉 노릇하겠다는데?
불쑥 하클의 입에서 하클 스스로 망설이던 말이 튀어나온다.
“한번 사면 무르기 없기다?”
“아까 한 얘기잖아요? 그니까, 안 물러요! 팔아놓고 다시 내놓으라고 하면 열 배로, 아니 백 배로 돈 물어줘야 하는 거, 잊지 말아요! 아, 근데 이거 값이 얼마나 돼요?”
투란의 대꾸는 어딘가 질 수 없다는 듯이 고집스럽잖은가.
이미 한번 확인한 것을 한 번 더 확인함으로서 양심에 짐될 부분이 없어진 하클은 가볍고 빠르게 대답한다.
“은전 칠십 닢. 그래, 검보다 비싸!”
“둘 합해서요?”
“아냐! 하나에 칠십 닢!”
“쳇…… 아, 그럼 덤은 옆에 있는 장화?”
슬그머니 암밴드 곁에 걸린 철갑이 덧대진 장화를 눈짓하면서 투란이 물었다.
바로 하클이 발끈하는 대답을 한다.
“야, 그건 따로 파는 거야! 덤으로 줄 수 없어! 은전 이십 닢짜리라고!”
“응? 아니, 뭔 장화를 은전 이십 닢이나 해요?”
“접지력을 조절할 수 있는 부츠니까! 스파이킹 부츠라고 들어봤어?”
“그건…… 가시 박힌 쇠사슬을 감은 신발이잖아요?”
“그래, 저 장화는 그런 기능을 지녔어. 보통 때는 적당한 접지력을 유지하지만 밑창이 변하면서 잘 미끄러지기도 하고 바닥에 가시를 박고 버틸 수도 있지. 그 중간 정도로 적당히 맞출 수도 있고 말이야. 아, 뒤축에 몇 가지 장치를 해놔서 걷고 달리는 힘을 덜어주기도 하지. 저 부츠를 신으면 더 오래 걷고, 더 오래 뛸 수 있다 이거지! 마법이냐고? 아냐! 그냥 태엽장치를 응용해서 조절해서 박아놨을 뿐이지. 그러니까 마법이 차단당한 곳이라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한다고! 은전 이십 닢!”
슬슬 장화에 대해서 캐물을 낌새로, 어떻게든 덤으로 안 될까 하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들이대려는 투란을 향해 하클은 한마디도 더 꺼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이 으르렁거리면서 길게 말해줬다.
그 때문에 조금 뾰로통해진 얼굴로 투란이 벽을 둘러보다가 투덜거린다.
“그럼, 저기 저 문고리 손잡이라도…….”
“야, 그거 활이야! 인힐트 블레이드처럼 활대와 활줄이 모두 저 속에 숨겨져 있다가 튀어나온다고!”
“엥? 저게 활이라고요?”
투란은 놀란 소리를 냈다.
도검(刀劍)과 노궁(弩弓)은 그 구조의 차이가 컸다.
일단 형체를 갖추면 바로 그 형체가 무기로서의 전부인 도검과 형체를 갖췄다 해도 그 활줄, 활대의 질에 따라서 수준이 아예 쓸 수 있는가 없는가가 다른 것이 노궁이었다. 도검은 무디든 무르든, 어쨌든 그게 전부이지만 노궁은 거기에 쏘아야 할 뭔가를 더 얹어야 하는 것도 그렇고…….
“저것도 핑키 볼트 쏴요?”
문득 저 안에서 나온 활에 저절로 장전된 화살이라면 역시 그 정도 크기가 아닐까 해서 묻는 투란이었다.
“새끼살 안 써! 저건 제대로 된 화살을 걸 수 있다고. 앞에 통 달아놨잖아. 그 통이 바로 화살통이고, 그 안에 특별히 만든 화살이 담겨져 있어. 물론 보통 화살도 쓸 수 있지. 활대랑 활줄까지 제대로 조립된다고.”
뭔가 발끈한 하클의 대답이었다.
그 모습에 잠시 ‘왜 화를 내시나?’라고 갸웃하던 투란이 묻는다.
“저거 놓고 누가 뭔 욕이라도 하고 갔어요?”
“전에 어디서 왔다는 잘난 궁수란 놈이 활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만들었네 어쩌네, 기본이 되어 있네 어쩌네 하고 갔어. 아, 잠깐 생각만 해도 짜증 나는 놈이었어. 미안, 투란 자네한테 뭐라는 게 아니야.”
“기본이요? 흐흠…….”
투란은 갸웃하면서 길쭉한 문고리, 구멍이 나란히 뚫린 작은 원통이 달린 활이란 것을 바라봤다. 문득 기억 너머에서 샤오덴 할배가 피식거리며 떠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끔 있지. 뭔가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서, 혹은 만들기 편한 방법을 택해서 뭘 만들다가 기본적인 것을 홀랑 까먹는 녀석들이 말이야. 솜씨가 없는 것은 아닌데, 어쩌다 실수를 하는 경우기는 해. 물론 그 어쩌다 나와야 할 실수를 매번 저지르는 놈들도 있지. 그건 아예 실력이 없는 경우이고…….”
엉터리 장비를 샀다고 엄청나게 투덜거리면서 어떻게든 그걸 쓸모 있게 해줄 수 없냐고 하던 헌터에게 떠든 말이었다. 그 장비는 샤오덴, 샤오 할배의 손에서 완전히 분해되었다가 다시 조립되면서 제대로 고쳐졌다. 애초에 잘 만든 것인데, 중간에 뭔가 살짝 어긋난 채였을 뿐인 것이라 뜯었다 다시 붙이는 것만으로 원래 갖춰야 할 성능을 되찾았다고 했었다.
곁에서 하클은 생각에 빠진 투란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유틸리티 밴드를 완전히 잠그는 광경을 보면서 가볍게 놀라야 했다.
유틸리티 밴드, 네 가지 기능 탓에 조작이 힘들다고…… 그렇게 주의해서 다룰 물품은 불편하다고 사지 않은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평소 자신의 팔움직임을 도구에 맞춰서 고치고 싶지 않은 헌터들이었다. 한데 유틸리티 밴드를 활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녀석들은 대부분 그랬다. 오랜 세월 단련된 손발의 움직임, 팔다리의 자세를 도구에 맞춰 교정하다가 뭔 꼴을 겪을지 알 수 없다고! 그래서 팔리지 않은 채였다!
‘얘, 진짜 뭐야? 꼭 내 유틸리티 밴드를 한 몇 년 다룬 것 같잖아?’
하클에게는 실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순식간에 팔다리의 자세를 교정하고 버릇을 만들어낸 듯한 투란의 움직임,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가?
“저 활, 한번 당겨보면 안 돼요?”
“응? 아, 뭐…… 인힐트 블레이드랑 비슷해. 잠금을 풀고…… 그래, 거기 그게 잠금쇠야.”
하클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투란은 냉큼 손을 내밀어 벽에서 활고리를 떼어내고 있었다. 그다음에 이어진 몇 마디에 투란의 손이 바로 움직였고…….
차락, 달칵.
“오! 진짜 활이 되네!”
인힐트 블레이드처럼 자루에서 쑤욱 튀어나오는 궤도에 따라 그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쥐고 있는 반대 방향으로 활대가 위 아래로 튀어나오다가 손잡이를 중심으로 돌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시위를 당기는 자리로 옮겨졌다. 그 과정에서 문고리 안쪽에 달린 원통은 당연하다는 듯이 활대 앞에 매달린 꼴이 된 채였다.
하클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장력(張力)을 조절해서 쓸 수 있지. 최대가 약 백 킬로그램, 최저로는…… 한 이삼십 킬로그램 정도였나? 이십 킬로 정도 간격으로 장력 조절이 가능하니까, 뭘 향해 쏘느냐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적당히 맞춰 쓸 수 있는 활이야. 원통 구멍을 보면 알겠지만, 화살 여섯 개 정도는 활과 함께 갖고 다닐 수 있는 거지. 아, 그 구멍에 손을 대고 옆면으로…… 그래, 그렇게 바깥쪽으로 밀어봐. 그러면…….”
“어? 희한한 화살이네요?”
말 나오기가 무섭게 구멍 속에 잠겨 있던 화살을 하나 꺼내면서 투란이 놀랐다.
보통 화살과 확실히 다른 형태였다.
얇고 폭이 좁은 나선판이 길게 이어진 채로 속을 비워 막대 모양을 만들며, 한쪽은 날카롭고 뾰족하게 한쪽은 폭이 넓어지면서 세 가닥으로 갈라져 화살 깃 모양을 만들면서도 빙빙 도는 각도를 유지한 채였다. 갈라진 세 가닥이 맺히며 시위에 걸 자리를 만든 것도 특이하다면 특이한 모양…….
“일단 쏴보면 그 화살이 어떤 효과를 지녔나 금세 알 수 있어. 모양만 보고 단지 조그만 원통에 욱여넣으려 그렇게 했다는 오해는 하지 말라고.”
하클은 옛날에 들었던 소리가 여전히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살짝 키득거리는 웃음을 머금고, 일단 묘한 화살을 시위에 걸려 하는데…….
“야, 여기서 어디다 쏘려고! 그냥 그렇게 알고만 있으라고!”
하클이 핑키 볼트를 날릴 때랑 다르게 화들짝 놀라잖는가.
“에! 그냥 튼튼한 흙덩이 같은 것 없어요? 체에엣!”
“그냥 모양만 잡아보라고! 자세 잡고 당겨만 보면 알지! 뭘 쏴보려고!”
기왕 활 잡고 화살 쥐었으니 한번 쏴보고 싶다는 투란에게 하클은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입술을 삐죽거리며 투란은 시위에 걸지 않고 시늉만 하는데…….
“음?”
돌연 고개를 갸웃하는 투란의 모습에 하클이 움찔했다.
“왜?”
“아니, 이거…….”
투란이 활을 똑바로 세우면서, 작은 통을 텅 빈 나선 화살로 툭툭 쳤다.
똑바로 선 활에 옆으로 눕혀진 원통이 활대 앞에 매달린 모양…… 여섯 구멍도 옆을 향해 뚫린 채였다.
“응? 그게 뭐?”
“시위를 당기는 방향으로 화살을 뺄 수가 없잖아요? 앞으로 밀어내서 좀 돌려 당겨야 하잖아요? 이거 그냥 시위 당기는 방향으로, 시위 걸기 편하게 달 수는 없는 거예요?”
“어?”
하클이 눈을 깜박거렸다.
분명히 지금 원통 안에서 화살을 빼내면, 세워진 활대와 수직으로 교차하는 형태로 그 앞에 떨궈지듯이 튀어나오며 길쭉하게 펼쳐진다.
“어라?”
하클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우뚱하더니, 바로 몸을 돌려 탁자 아래에서 낮은 서랍장을 당겼고, 서랍을 마구 빼내면서 두루마리 뭉치 속에서 하나를 찾아 뽑아냈다. 그 두루마리가 펼쳐지니…….
“음? 이 활이네요?”
그 안에는 투란이 쥔 활이 산산이 부서진 조각처럼, 그리고 그 조각을 어떻게 붙여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듯한 완성된 형태로 함께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거기 그려진 원통의 매달린 모양은 구멍을 활시위 쪽으로 내밀면서, 활 손잡이 위편에 자리 잡고 있잖은가.
그야말로 화살을 꺼내는 순간, 시위에 걸기 딱 좋은 방향으로 놓이는 셈이다.
“제엔자앙!”
콰앙!
하클이 탁자에 머리를 박으면서 괴성을 질렀다.
투란은 움찔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