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2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20)
“이게 대체 뭔 실수야! 잘 그려놓고 왜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응, 생각해내라고, 하클! 잘 생각을 해! 그래, 마무리 지을 때였지? 그래, 그때 딱 방향 잡아 붙여놓기만 하면 되는데 왜 설계해놓은 대로 안 했지? 그래, 왜 그랬어? 아, 기억해내봐! 기억…… 아앗, 으앗! 앗차!”
남의 머리가 아닌 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마구 흔들어대면서, 하클은 포효했고 조금 있다가 눈을 부릅뜨면서 자기 머리를 두들기며 겨우 뭔가 회상하는 데 성공한 듯이 표정이 변했다. 그다음에 너무 한심해서 용서가 안 된다는 듯, 그리고 체념했다는 듯이 하클이 긴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털썩 앉고 나서야 투란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멈출 수 있었다.
“음, 무슨 일이 있었어요?”
“장력을 백 킬로까지 높일 방법이 보였지. 장력 조정을 시위를 당긴 채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지. 적은 힘으로 당겨서, 센 힘으로 쏘아낼 방법도 어렴풋이 엿보였어. 그래서 거기 몰두하면서 이것저것 해본다고 만지작거리다가, 화살 통은 일단 대충 붙여놓고서는 잊었어. 그걸 고쳐 다는 걸 까맣게 잊고 그냥 둔 거야. 어휴…… 이게 무슨 망신이냐고! 이렇게 엉터리도 둔 채 대체 몇 년을 모르고 있었냐고! 그냥 도면 정리만 했어도 알 수 있었던 건데!”
슬쩍 던진 말에 대해 하클의 대답은 이상하게 길다?
투란은 친한 척하는 웃음을 흘리면서 살짝 다시 물음을 던져본다.
“하하, 아하핫. 뭐,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얘는 고쳐야 하는 거네요?”
“응? 아, 그렇지. 고쳐야지. 다 뜯어서…….”
한숨을 쉬는 하클의 대답이 투란을 움찔하게 했다.
“전부 뜯으면 망가지는 거 아니에요?”
“어? 뭘 망가져!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것뿐이라고. 방향을 틀어서, 실수한 것을 바로잡는 것뿐이지. 젠장, 몇 년 동안 벽에 걸어놓고 눈치채지 못하다니! 으아아, 대체 이게 뭔 꼴사나운 짓이냐고!”
하클이 다시 자책을 하려는 듯한 낌새를 보였다.
하지만 어째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은 꼬박꼬박 잘도 툭툭 튀어나오잖는가?
투란은 재빠르게 한 가지 더 묻는다.
“고쳤다 치고, 얼마예요?”
“어? 그건…… 여섯 개 화살이 담긴 화살통 열을 포함해서 묶음으로 은전 육십 닢이야. 따로는 안 팔아. 화살통도 화살도, 화살 조임쇠까지 다 묶어서 팔아. 물론 지금은 다시 분해했다가 모양 바로잡아야 하니까, 못 팔지.”
어느새 자책하는 기분이 좀 가라앉은 듯, 하클은 초롱초롱하면서도 번뜩거리는 투란의 눈빛에 한숨을 섞어서 팔 수 없는 상황을 짚고 있었다.
“바로잡는 데 오래 걸려요? 바로 잡으면 팔 거잖아요? 영원히 안 팔 거는 아니잖아요? 고쳤다고 더 비싸게 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오래 고쳐야 하는데요?”
그러나 투란이 ‘팔아, 팔라고!’라는 한마디를 되풀이하듯이 읊고 있잖나!
이쯤 되니 뭔가 괜한 심술과 오기가 불쑥 하클의 입을 움직였다.
“야, 폴딩 벨트 찬 걸 보니까 마법도구도 꽤 본 것 같은데…… 거기서 마법 활 보지 않았어? 시위 당기면 저절로 장전되는 활 말이야. 화살도 아무거나 대강 백 발가량 마법으로 수납 보관 된 활 봤지? 폴딩 벨트에 담을 수 있는 그런 마법 활, 봤지?”
“에, 볼트 슈팅 마법이 걸린 반지 때문에 더럽게 안 팔리는 활 봤죠.”
잠깐 눈알을 굴리면서 대답을 회피하려던 투란이었지만, 부릅뜨고 노려보면서 자신이 만든 결함이 있는 활을 흘깃대는 하클의 표정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하고 말았다. 여기서 딴소리하면 활 고쳐도 안 판다고……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라도 부릴 듯한 할배의 낌새를 느낀 것이다.
자신의 태도를 조금 늦게 깨닫고 하클도 살짝 민망한 듯, 어딘가 변명하는 태도로 자신의 궁금증을 털어놓는다.
“크흠! 그러니까 말이야, 굳이 내가 만든 활이 필요하지 않잖아? 마법 활이 아니더라도 그 볼트 슈팅 밴드라든가, 단검이라든가…… 이렇게 만들다 실수한 걸 고칠 때까지 기다려서 사려는 이유가 뭐야? 어? 아니, 오래 걸리지는 않아. 하루…… 아니, 반나절이면 분해했다 깨끗하게 다시 고쳐 조립할 수 있어. 그니까, 내 말은…….”
“신기하잖아요!”
“어?”
툭 튀어나온 대답이 하클의 말을 잘랐고, 하클을 당황시켰다.
이 활, 검이 신기하다는 거야…… 어느 정도 당연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금전 단위의 돈을 써가면서 산다?
그건 완전히 미친 짓 같잖나!
“첫째로는 그래요, 신기한 거! 그리고 둘째로는…… 이게 쓸 수 있는 도구라는 거죠! 아하핫, 설마 내가 쓸 수 없는 장난감에 은전을 퍼부을 정도로 멍청하게 보였어요? 이 검도, 이 활도…… 화살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대로 도구답게 쓸 수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셋째 이유는…… 돈 있거든요!”
“셋째가 뭐라고?”
하클은 첫째와 둘째 이유를 그러려니 하다가 세 번째 이유에 낯을 실룩이면서 확인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어딘가 살짝 눈매가 사나워진 채였다.
하지만 투란은 느긋하게, 그 사나운 노장(老匠)의 눈길에 전혀 눌리지 않는 채로 대꾸를 한다.
“지금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는 돈이 있어요. 그러니까 가지려고 하는 거죠. 갖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내가 갖고 싶은 것을 팔지 않아서 못 갖고 끙끙대며 아쉬워할 이유가 없다고요. 훔치지 않고 살 수 있는 돈이 있으니까, 행복하게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
“행복……? 너, 혹시 갖고 싶은 것을 못가져서 불행한 적이라도 있냐?”
하클은 주의 깊게 투란의 말을 듣다가 묻고 있었다.
이 물음이 뭔가를 짚어낸 듯이 잠깐 투란의 눈이 깜박이다가 대답이 나온다.
“그렇군요. 갖지 못해서 계속 불행했던 적이 있네요. 아하핫, 하지만 이젠 아니니까! 암튼, 고쳐서 은전 육십 닢이라고 했죠? 고쳐서 딴 사람한테 팔기 없기! 아, 미리 돈을 주면 되는 건가?”
“기어코 살 거냐?”
“그럼요! 아, 저 장화도! 근데 저건 어떻게 쓰는 장화예요?”
싱글거리는 투란을 향해 하클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고, 이젠 모르겠다는 듯이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 설명이 이어졌다.
휭하니 사람이 빈자리에 뭔가 깊이 하클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대체, 오늘 뭔 날이지?”
중얼거림은 저절로 하클의 입술 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결국 투란은 이것저것 잔뜩 건드리고, 하루에 서너 마디 할까 말까 하는 하클에게서 몇 년 동안 할 말을 다 뽑아내듯이 듣고 갔다. 활의 결함을 깨닫게 해준 다음, 또 뭔가 없나 하면서 이것저것 꼬치꼬치 따져 묻기도 해서 하클이 살짝 귀찮다고 느낄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자신이 제작한 것을 순수하게 즐기는 투란의 모습을 하클도 어느 정도 즐겁게 바라볼 수 있었다. 혹시나 또 뭔가 하클이 잘못한 것이 없는가 전부 파헤쳐보겠다는 낌새가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 또한 불쾌하고 짜증 나는 쪽은 아니었다. 어이없어서 어디까지 까부나 한번 볼까 하는, 하클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분을 살짝 깨운 정도였다.
덕분에 하클은 수십 년 전에 이런저런 기술을 놓고 끙끙거리던 자신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말로 듣거나 혹은 스쳐 가며 본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한참 호기심을 불태울 그 무렵, 딱 크라쉬가 현역일 때가 아닌가.
“정말 아들인가?”
흘러가는 생각 속에서 하클은 다시 한 번 상식적인 생각을 시도하며 입에 담았다. 그러나 상식은 몇 초 못 갔다. 만약 크라쉬가 자신의 상식적이지 못한 모습을 감추려 한다면 아버지와 아들, 과거와 현재의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둘러대는 것이 당연하잖나?
“굳이 따질 필요가 없나?”
문득 하클은 크라쉬의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더듬어봤다.
본인이든 아들이든, 결국은 그저 호기심에 얽힌 궁금증일 뿐이었다.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옛날 아버지가 여기 살았다네요,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다. 딱히 크라쉬의 일에 하클이 끼어들 필요도, 까닭도 없다. 뭔가 과거와 연관해서 크라쉬가 하클에게 볼일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놈 이름이 진짜 투란일까?”
크라쉬에 대해 더 파고들지 않으려 마음을 정하자, 하클의 입술 사이로는 새삼 투란에 대한 중얼거림이 토해져 나왔다.
늙은 공방 장인인 하클의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가 미묘했다.
어떻게 보면 헌터, 어떻게 보면 공방 일을 거드는 보조…… 그런 투란과 닮은꼴을 꼽아보자면 공방에서 허드렛일을 도우면서 자란 녀석이 헌터가 된 경우였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돈 생겼다고 신기한 거 사 모은다는 태도는 보일 리가 없었다. 그렇게 돈 생겼다고 돈을 펑펑 휘날리는 경우라면…… 하클이 꽤 어린 시절에 봤던 몬스터 로드가 섞인 헌터 파티, 한몫 단단히 챙겼다고 흥청망청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이미 가족을 모두 잃어버렸고, 앞으로도 가족이 생길 리가 없는 몬스터 로드가 섞인 파티는 내일 따위를 모르는 녀석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요즘에는 좀 보기 힘든 모습이 돼버려 다행인…….
하클은 그런 여러 가지 모습을 엿봤지만, 어느 것도 투란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헌터스 배너를 가슴에 새긴 애송이처럼 보이지만, 제법 돈이 많은 경우…… 그리고 물품을 감정하는 솜씨도 제법인 녀석의 정체는 대체 뭔가? 투란이란 이름을 대는 시점에서 어디에서 온 뭐 하는 놈이냐고 물을 생각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막상 가고나니 빈자리를 보면서 그 정체가 궁금해지는 하클이었다.
특히나 덤을 챙기려 하는 작태는…….
“완전 쪼잔했잖아? 아니, 그 돈을 그렇게 펑펑 쓰면서 뭔 덤이야, 덤은!”
은전까지도 필요 없고 동전만으로도 괜찮은 토치라이터를 구할 수 있었다.
그걸 굳이 덤으로 몇 개씩 뜯어가겠다는 까닭이 뭔가?
말로는 자기 거랑 아는 사람들 거랑 다 받아 가겠다는데…….
그냥 사다주는 게 더 쉽잖나!
“에이, 몰라!”
하클은 고개를 젓고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연초를 태우면서 이것저것 상상하며 보내려 했던 계획은 완전히 엎어졌다.
활을 분해하고, 덤으로 줄 토치라이터를 만들고…… 깊어가는 오후부터 할 일이 아주 많았다. 아예 선금을 치러서 활을 찜해놓고 가서는 내일 아침에 바로 쳐들어오겠다고 싱글벙글한 투란 덕분에!
“이거 정말 쓰려고 그러나?”
물론 일하기 전에 스쳐 가는 이 생각을 참을 수는 없었다.
그건 하클이 꽤 오랫동안 갈망하던 일이기는 했다.
누군가 만들지 않았기에 하클이 만들었고, 쓰이기를 바라왔다.
그 갈망은 지금도 여린 불씨처럼 하클의 가슴에 머물고 있었다.
하클의 솜씨에 감탄하고 만들어진 물품이 대단하다 하면서도 막상 사다 쓰기는 꺼리는 헌터들이 스쳐 가던 세월…… 활활 타오르던 갈망은 사그러들기는 했지만 꺼진 적은 없었다.
비싸서, 기능이 너무 많아 헷갈려서…….
비싸도 상관없고, 기능이 많아 신기하다며 덜렁 전표 들이밀면서 들고 가버린 투란이 이상하게 여기게 만드는 지난날이었다.
덕분에 새삼 투란에게 왜 사냐고 묻기까지 해야 했는데…….
보통 냉정하게 생각하면 돈 낸 놈이 사다가 방에 진열해놓고 히히거리며 구경만 한다고 해도 상관할 바가 아니라 하잖나?
그래도 투란의 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봐서는 어딘가에 반드시 굴려먹으려는 느낌이 또렷하기는 했다. 그게 대체 뭔가? 더 싸고 들고 다니기 조금 불편하더라도 쓸 때는 거의 같은 수준인 검, 활 대신에 하클의 독특한 정밀세공의 태엽장치가 잔뜩 박힌 것을 어디다 쓰려는가?
“에잇, 일단 오늘 할 일부터 하자!”
하클은 투란과 다시 볼 일이 있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듣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잘 구슬리면 들을 수 있을 듯하니 괜히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살아온 세월이 속삭여주는 잔꾀를 품으면서!
―대체 무슨 생각이냐?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넌지시 물었다.
보따리 하나까지 덤으로 얻어서 하클의 가게에서 산 것을 돌돌 말아 어깨에 얹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응? 뭐가?’
―너, 그 공방에 발 딛자마자 눈 돌아갔잖아. 거기까지 가는 동안에는 온갖 쓸데없는 걱정을 다 짊어지고 있더니만…… 막상 그 가게 안에 들어가서 벽에 걸린 물건들을 보고는 아예 정신줄 놓은 것처럼, 사람의 기준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감각을 집중해서 공방 안의 물건들을 샅샅이 살폈잖아. 왜 그랬냐고.
‘어, 그래도 몬스터 힘까지 쓰지는 않았잖아. 프로브에 많이 기댔지만…….’
약간 민망한 듯이 투란이 대꾸했다.
―그러니까, 왜 그랬냐고.
드라고니아는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괴상하다는 듯이 다시 묻고 있었다.
‘어? 그야…… 너, 못 느꼈어?’
―문장 속에서 일어난 격동 말이냐? 그 공방에 들어서자마자…… 마그마 로드가 조금 격하게 반응하기는 했다만, 문장의 마력은 완전히 눌러놔서 한 조각도 형성되지는 않았잖아? 그다음에 아라크레온 여왕이랑 왕이 조금 으르렁대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게 관계있는 거야?
‘야, 당연히 관계있지! 몬스터 로드니까, 언제 그렇게 충동이 치솟을지 모른다고.’
―그 격동이 몬스터의 충동이었다고?
‘응. 뭐, 몸이 변하는 거야 내가 잘 버텼으니까 없었지만…… 그거 확실히 그랬어. 음흐흣.’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의혹에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슬쩍 돌아보면서 하클의 공방 쪽으로 그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