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2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21)
Chapter 105. 학습하는 자
“아직도 하고 있어? 나, 피곤하니까 방에 가서 문 잠그고 쉬고 있을게!”
통통 튀는 걸음으로 투란이 스윽 멜란드를 스쳐 갔고, 시알라가 흘깃하는 눈길에 얼른 대답하면서 사라졌다.
잠깐 뭐가 지나갔나 하던 멜란드가 눈을 깜박이다가 누나에게 묻는다.
“투란이 뭘 싸짊어지고 있었지? 아니, 마법 배낭 놔두고 왜…….”
따악, 곧바로 쪼그리고 앉아 걸레질하던 멜란드 머리 위로 시알라의 주먹이 내리 꽂혔다. 더불어 시알라는 누나로서의 잔소리도 멜란드 귓속에 퍼붓는다.
“마구 열어젖히고 배낭 자랑할 생각이었냐! 평소에는 잠가놓고 물통인 척만 하라고! 물통이면서 옆구리에 동전 주머니 달린 척하라고! 아직 세상 험한 꼴을 못 봤어? 왜 세상모르는 갓난애 같은 소리를 하냐!”
“말로 하라고, 말로! 투란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얼른 배낭 안에 담을 수 있으면서 안 담은 게 궁금했단 말이야! 아무도 안 보는데 뭘 저렇게 보따리를 목에 둘러 매달고 다녔냐고!”
멜란드가 한껏 반항하면서 이치에 닿는 반박을 하려 했다.
꾸욱, 시알라의 손이 멜란드의 머리를 눌러 흔들면서 바로 대꾸를 가장한 잔소리가 한 번 더 쏟아진다.
“누가 보는지 안 보는지, 이런 도시에서 그걸 어떻게 알아! 눈 좋은 놈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고 닫힌 문틈으로 볼 수도 있지! 허튼소리 말고 조심하라고! 괜히 눈에 띄어서 도둑님들 떼로 몰려오게 하지 말란 말이야! 라비엔에서 그렇게 도둑질하다 도망쳐 온 놈들, 한둘 봤냐!”
“알았다고! 아프니까 그만 좀 해! 내 머릴 부술 작정이냐고, 누나!”
“생각 좀 하고 살란 말이다!”
누나와 막내가 툭탁거리는 사이, 걸레는 바닥에서 겨우 쉴 수 있는 듯했다.
투란은 숨을 고르고, 짧고 강한 한마디를 뱉는다.
“엘리멘탈 베일(Elemental Veil)!”
네 속성의 정령수가 바로 반응했다.
불꽃, 바람, 물결…… 자욱하게 피어난 먼지와 티끌이 제멋대로 섞이면서 방안의 구석구석으로 퍼졌고 방의 형태에 따라 벽을, 바닥과 천장을 한 겹 더 덧씌우듯이 채워지면서 뒤섞인 색채가 되어 팽팽한 장막이 되었다.
투란이 그 광경을 둘러보다가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완전히 차폐된 거지?”
―당연하지.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면서 뭘 그리 조심하냐?
“이렇게 사람 많은 도시에서는 처음이잖아. 상아탑도 같이 있는데!”
핀잔하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이 바로 투덜거렸다.
‘역병의 수해’를 돌파하면서 완성시킨 마법이었다.
사대(四大)의 속성을 지닌 정령수의 힘으로 안팎을 격리시키는 주문이었고, 정령수의 힘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완전히 이 장막의 안은 밖과 전혀 다른 세상처럼 꾸밀 수도 있었다. 역병으로부터 안전한 구역을 만들기 위해서 되풀이해서 펼친 마법이 투란의 정령수가 성장함에 따라 뭔가 엄청난 것이 만들어졌다고 드라고니아가 말했었다.
이렇게 장막 안에서 투란이 뭔 짓을 하더라도 밖에서 전혀 눈치채지 못할 방벽 노릇도 물론 가능하고!
그래도 투란은 이 마법이 펼쳐지는 순간, 가까이 있는 마법사라면 그 기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펼쳐진 다음이라면 몰라도, 펼쳐지는 순간에 일어나는 정령의 기척은 마력을 지닌 이에게 꽤 자극적인 힘이니까. 물론 드라고니아는 정령수가 그 기척을 미리 차단해서 그럴 리가 없다고 했지만…….
―또 말해줘? 완성된 정령수는 세계의 이치와 조화(調和)하는 형질을 지니고, 덕분에 마법과 다르게 그 형성과정까지 깔끔하게 감출 수가 있다! 그러니까, 눈앞에서 엘리멘탈 베일이 펼쳐지는 걸 봐도 마법사는 마력의 기척 따위는 느끼지 못한다고! 한 번 더 말해줄까?
“알았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고!”
그러나 으르렁대면서 계속 포효하겠다는 드라고니아의 엄포에 투란이 고개를 저으면서 순순히 반성하고 사과했다. 드라고니아가 엘리멘탈 베일에 이런 고집스럽고, 자부심이 넘쳐흐르는 큰소리를 치는 까닭까지 더 듣다가는 정신이 몽롱해질 테니까!
―오, 그래? 뭘 잘못했는지 알기는 하고?
드라고니아는 이 순간을 잽싸게 넘기겠다는 투란을 향해 빈정거리는 소리를 생략하지 않았다.
“알아, 안다고! 드라코눔의 아칸 마법이잖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나랑 너랑 함께 이 마법을 제대로 썼는지 걱정한 것뿐이라니까. 넌 제대로 해도, 내가 제대로 못할 수가 있잖아.”
―그래, 내가 제대로 점검했다. 지금 엘리멘탈 베일 안을 마그마로 꽉 채워도 밖에서는 몰라! 이제 안심했냐?
“그래, 아주 안심했어.”
한숨과 함께 투란은 보따리를 펼쳐놓았다.
하클에게서 사 온 장비들이 보따리 안에서 헝클어진 채로 뒹굴듯이 드러났다.
그 광경에 투란이 바로 히죽 웃었고, 드라고니아는 잔소리를 멈췄다.
천천히 투란은 숨을 고르면서 두 손을 들어 올렸고, 손바닥으로 허공을 짚으면서 도구 위편을 문지르듯이 움직였다. 직접 닿은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도구들은 투란의 손짓에 따라서 나란히 늘어서듯, 자기 자리를 따로 차지하듯이 가지런히 놓였다.
어지간한 시각에는 잡히지 않는 미세한 거미줄이 하클이 제작한 도구들을 휘감으며 움직인 광경이었다. 드라고니아가 이를 알아차리고, 궁금해 하며 묻는다.
―대체 아라크레온 여왕이 여기 뭔 충동을 느끼는 거냐?
투란은 숨을 고르면서 소리 없이 답한다.
‘궤적…… 끊기지 않고 이어지며 형체를 갖추고 변화시키는 궤적…… 실을 감고 당기고, 뭔가에 걸고…… 복잡하지 않고 아주 단순하지만, 그 조합이 너무 특이해서…… 맛있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먹지 마! 황금 삼키고서 징징댔잖아! 잊었냐?
‘안 먹어! 맛있어 보인다고 했지, 누가 먹는다고 했냐! 말이 맛있다는 거지, 여왕이 먹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고!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거지! 마그마 로드도 안 먹어! 걱정하지 마! 이 쇳조각은 그렇게 맛있는 게 아닌 줄 안다고!’
―쇠가 맛이 없어? 그래서 안 먹는 거냐?
‘아니라고! 마그마 로드도 이렇게 단순한 조합이 움직이면서 모양을 바꾸는 게 신기할 뿐이라고!’
푸훗, 숨을 토해내면서 투란은 낯을 구겼다.
황금 맛을 보고나서, ‘역병의 수해’를 지나오면서 마그마 로드는 많은 것을 맛봤다.
투란에게는 분명히 목적을 지닌 맛보기였다.
이것저것 맛을 보고, 그 감각을 기억해야 프로브의 능력이 향상되니까.
한편으로는 몬스터의 감각이 사물(事物)을 어떤 식으로 파악하는가, 투란 자신은 어떻게 느끼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투란은 마그마 로드가 지닌 충동, 용암 가득했던 호수에서 보았던 호기심이 보다 본질적인 특성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마그마 로드의 호기심을 제대로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그 까닭은 웬만한 것은 거의 다 집어삼키고 녹여버리는 마그마의 뜨거움 때문!
거기서 버티는 것만 간신히 더듬어 배운 것이 황금매의 문장 속에 담겨진 마그마 로드…… 너무 거대해서 작은 것들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도 제대로 알았던 적이 없었다. 대신 넓은 지형을 장악하고 그 속에 담겨진 것을 오랫동안 녹여서 맛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천칭’의 마그마 로드는 달랐다.
애초에 블랙 애시로부터, 투란의 문장 속에서 태어난 마그마 로드는 그 바탕을 투란의 몸에 두고 있었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것이 아주 당연했고, 애써서 압축시키다가 살갗에서 블랙 애시가 새어 나가지도 않았다. 아주 잘 맞물린 형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덕분에 그 규모, 체격이 뭔가 마그마 로드답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수준이기는 했다. 아직 한창 성장이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쪽의 마그마 로드이든, 그 기본적인 호기심은 같았다.
그런 상황을 깨달으면서 투란은 ‘천칭’의 마그마 로드를 키우기 위해 이것저것 더듬으며 ‘역병의 수해’를 건너왔다. 살아 움직이는 듯했던 것은 전부 역병 들린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암석을 비롯한 지형의 다양한 재질은 그럭저럭 마그마 로드의 감각으로 분별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거기에 드레이크의 기억이 덧칠해졌고…….
‘신기하단 말이야! 하클의 인힐트 블레이드, 마법을 걸지 않고 만들어졌다는 것만이 아니야. 내 손가락 하나에도 모자라는, 아주 적은 조각을 맞물려서 이런 걸 만들어냈다고. 손톱 한 조각 꾸미는 데 들어가는 블랙 애시만 해도 이거의 수백 배는 될 정도의 작은 알갱이가 필요한데 말이야.’
투덜거리면서 투란은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적은 숫자냐…… 그게, 그렇기는 하지만…….
드라고니아도 겨우 알았다는 듯, 납득하기 싫지만 납득한다는 듯이 웅얼거리고 있었다.
사람의 몸, 그 살점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도 아주 다양한 조각이 몇 겹으로 쌓이고 층을 만들어야 했다. 인힐트 블레이드는 오직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거기 들어간 부품의 수는 손톱 하나를 이루는 체조직보다 압도적으로 적다.
하지만 손톱이 달랑 손톱일 뿐인데, 인힐트 블레이드는 마법처럼 작동한다!
그 많은 배열, 맞물림에도 겨우 손톱 하나를 꾸밀 수 있는 마그마 로드의 입장에서는 강렬한 탐구심이 불끈불끈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힐트 블레이드의 움직임, 맞물려 돌아가는 태엽과 톱니가 만들어내는 궤적은 실재하지 않는 길고 정교한 실의 궤도를 그려낸다. 그 궤적은 마치 어긋나지 않게, 몇 가닥의 실이 완전히 정돈된 채로 펼쳐지면서 칼날을 형성하고 해체하는 듯했다. 이는 꼭 고작 몇 가닥의 실에 작은 조각을 매달아 움직이는 것만으로 형상이 이뤄졌다가 해체되었다 하는 느낌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그물을 상황에 따라 펼치고 거두는 아라크레온이 여기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 투란에게는 어딘가 묘하지만 당연했다.
‘복잡하지 않아, 아주 적어. 하지만 그런 것이 이런 희한한 도구를 만들어낸다고. 장화도 그렇고, 암밴드도 그렇고…… 마법이 아닌데도 마법 같은 느낌이라고. 프로브로 훤히 파악되는데도 움직이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예측도 안 되는 거잖아. 막상 작동하고 나서 변하는 걸 보면 더 신기하고 말이야.’
―흠…… 과연, 단순해 보이지만 대단하기는 하지.
드라고니아는 이제 투란의 설명에 어느 정도 납득한 듯했다.
투란은 다시 숨을 고르면서 자신의 두 손에 집중했다.
검은 잉크가 손바닥에 맺히면서 길고 가늘게 흘러내렸다.
보이지 않는 실 가닥을 따라서, 패러블랙 잉크가 장비를, 알드바인의 늙은 장인 하클이 제작한 도구를 아주 얇게 덮어나갔다. 잉크의 검은 색 속에서 가늘고 섬세한 붉은 줄기가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채로 불끈불끈 돋아났고, 잉크를 인도하는 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가늘게 떨었다.
아직 움직이지 않는 도구들이 어떤 구조인가, 어떻게 맞물린 부속품을 지녔는가…… 투란의 마음속에 바로 그 형체가 낱낱이 투영(透映)되었다.
‘하아, 이렇게 알아도 어떻게인가는 여전히 예상이 안 되는 건가.’
하클이 섬세하게 하나씩 다듬어낸 부속품이 어떻게 배열되어 하나의 도구를 만들었는가는 알 수 있었지만, 부속품이 어떻게 맞물려 움직이면서 작동하는가는 여전히 미지(未知)였다. 하클의 가게에서 프로브로 열심히 봤지만, 역시 이해하거나 납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투란은 그걸 모두 사 왔고, 이제 제대로 몬스터 로드의 능력을 발휘한 감각…… 몬스터의 감각으로 납득하려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역시 인힐트 블레이드였다.
칼자루 둘을 쥐고, 마그마 로드의 결정을 품은 잉크가 찰랑이며 덧칠하게 한 채로…… 왕과 여왕의 극세(極細)한 그물까지 감긴 채로 잠금을 풀고 칼날이 나오도록 휘두른다.
차륵, 키아아앙!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소리가 투란에게 들렸다.
프로브 역시 이전보다 더 섬세하고 정교한 지각을 발휘해서 투란에게 인힐트 블레이드 속의 움직임을 파악해주고 있었다. 마치 몬스터의 감각을 사용하지 않을 때와 사용할 때의 프로브는 완전히 다르다는 듯!
키이이, 차르륵, 달칵!
칼날이 다시 안으로 잠겨들었다.
차륵, 키아아앙! 찰칵.
다시 칼날이 형체를 갖추고 잠겼다.
투란은 하클의 인힐트 블레이드를 두어 번 더 작동시켰다.
“헤에, 이렇게 되는 거구나.”
잠깐 중얼거림을 토하면서 투란은 칼자루 둘을 내려놓아 손을 비웠고, 잠시 눈을 감으면서 심호흡하고 집중했다.
키이잇!
섬뜩한 소리가 투란의 손바닥에서 울렸다.
―에? 헐!
드라고니아가 노골적으로 경악한 소리를 투란의 뇌리에 울려줬다.
투란의 손바닥을 가르고, 검은 칼날이 쭈욱 뻗어 나와 있었으니까.
칼자루까지 손바닥에서 튀어나왔고, 칼자루와 투란의 손 사이에 가늘고 긴 실 가닥처럼 잉크 가닥이 이어주며 휘날렸다.
“후후훗! 후하핫!”
투란이 웃었다.
―이거, 완전히 이해한 거냐?
드라고니아는 마그마 로드의 결정으로 만들어진 인힐트 블레이드, 하클의 작품이 재현된 것을 검토하며 물었다.
“아니, 그냥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니까 된다는 걸 느꼈어.”
투란이 조금 쓴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이해고 뭐고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몬스터의 본능으로, ‘이렇게 하는 거구나.’라고 따라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