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2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22)
투란은 가만히 숨을 고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시커먼 인힐트 블레이드가 녹아내리듯이 사라졌다 다시 형체를 갖췄다.
―응?
드라고니아가 이번에는 어이없어 놀란 한마디를 흘렸다.
“에, 어…….”
투란도 조금 당황한 소리를 내면서 새로 형체를 갖춘 시커먼 인힐트 블레이드를 내려다봤다. 칼날을 단검 크기로 줄이려던 시도였고, 그 의도대로 칼날이 단검 정도로 줄어들기는 했다.
한데 칼자루 역시 똑같은 비율로 줄어든 채라니!
한 손으로 여유롭게, 두 손으로도 어쨌든 쥘 수 있던 칼자루가 손바닥 안에 얌전히 놓일 정도로 작아진 꼴이 마치 단검이 아니라 어린애의 장난감인 것처럼 보이는 수준이었다.
―뭐냐?
‘아니, 칼날만 줄이려고 했는데…….’
갸웃하면서 일단 장난감 크기의 형체를 지우고 투란은 다시 집중했다.
칼날을 구성하는 톱니, 조각들을 적당히 줄이면서 칼자루는 원래의 크기를 유지하게……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마음에 그리면서 다시 검의 형체를 이룬다.
파앗, 화륵!
조각의 맞물림이 어긋나면서 불길이 치솟았다.
어긋난 부분에서 시커먼 안개와 재가 분출되며 순식간에 불길로 변한 광경이었다.
―투란?
“어…… 이런!”
투란은 치솟은 불길에 그을린 것처럼 새카매진 얼굴에 붉은 구슬 같은 눈동자를 끔벅거렸다.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반사적으로 얼굴에 덧씌우지 않았다면 일단 머리가 훌렁 익어 버릴 뻔한 순간이었다.
―왜 그러는 거야?
“아니, 이게…… 하클이 정한 모양으로만 제대로 되는데?”
―뭐?
“그니까, 조그만 조각 하나만 살짝 모양을 바꿔도 망가진다고!”
―아…… 뭔 소리인지 알겠군. 넌 이걸 똑같이 모방할 수는 있어도, 다른 형태로 변화는 못 시킨다는 거구만! 크기를 줄이려 해도, 비율을 전체에 전부 적용시켜야 하고 말이야. 하하핫, 과연…… 대단한 솜씨로군, 하클!
드라고니아가 키득대는 소리로 하클을 칭찬하는데, 투란을 놀리는 낌새가 흘러넘치는 듯했다.
“이, 이런 젠장!”
투란은 으르렁거리면서 곧바로 두 손을 높이 치켜 올렸다.
손바닥에서 불쑥불쑥 인힐트 블레이드의 칼날이 다양한 크기로 치솟았고, 삐걱거리면서 불길을 뿜어내다가 부풀다가 하며 칼날이라 할 수 없는 모양이 되다가 으스러지고 녹아내리다가를 되풀이했다.
―푸하핫!
드라고니아가 그 꼴을 보며 시원한 웃음을 투란에게 퍼부어줬다.
“크어어!”
투란의 낮게 괴성을 지르고 뒤로 벌렁 누우면서 데굴거렸다.
완전히 똑같이는 만들 수 있었다.
비율을 유지하면 크기를 변화시킬 수도 있었다.
분명히 아라크레온과 마그마 로드의 감각은 어렵지 않게 하클의 인힐트 블레이드가 어떤 구성을 지녔는가를 완벽하게 파악해냈다.
그러나 그 구성에 변화를 가하려 하면, 이도저도 아닌 망가진 꼴이 나온다!
어떻게 하는지는 보고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있지만, 왜 그렇게 되는가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인 셈이었다.
뒹구는 투란을 향해 드라고니아가 키득대는 웃음이 가득 서린 말을 한다.
―계속하다 보면 뭔가 그럴듯한 모양이 잡힐 수도 있잖겠어? 한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하다 보면 말이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해보지 그래?
‘닥쳐!’
입술을 꾹 다물면서 잔뜩 골이 난 채로 투란은 소리 없이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곧바로 몸을 튕기면서 일어나 앉은 채로 투란은 아직 남아있는 도구들을 다시 훑어봤고, 칼날의 모양이 다른 두 자루의 인힐트 블레이드를 덥석 쥐어갔다.
“얘네가 어떻게 다른 모양인지 알면……!”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칼날, 한쪽 날이 톱니 형태이며 그 끝이 유난히 길어 배틀 픽(Battle Pick)을 연상시키는 칼날이 형체를 갖췄다 지웠다를 두어 번 반복했다. 그 뒤에 바로 빈손을 내밀고 새로운 형태의 시커먼 칼날이 돋아나게 했지만…….
화륵, 키릿!
형체에 변화를 주려는 순간, 두 칼날이 삐걱거리면서 달아오르며 불길을 뿜어낸다. 어긋난 맞물림에서 가차 없이 굵직한 블랙 애시의 파편이 튀는 광경이었다.
“아, 왜 안 되냐고!”
―이해 없이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거쳐 원하는 모양을 만들겠다고? 그렇다면 수만 번이 아니라 수백만 번을 되풀이해야겠구만. 하면서 기억도 잘해야 할 거야. 같은 짓을 똑같이 다시 하지 않으려면 말이야. 와아, 이게 다 생각이 없어서 해야하는 짓이라니! 역시 고생을 안 하려면 생각은 하고 살아야지 않겠어?
진지한 척, 드라고니아가 다시 놀려댔다.
“시꺼!”
듣기 싫은 소리에 울컥한 대꾸를 했지만,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고 잠깐 끙끙대며 생각을 했다!
잠시 후, 투란의 손에서 다시 칼날이 자루와 함께 솟아났다.
어딘가 날카로운 느낌이 더해진 듯하지만, 모양은 변함이 없는 채였다.
―흠?
드라고니아가 살짝 의아했고, 투란이 작은 한숨과 함께 소리 없이 대꾸한다.
‘얇게 해봤어. 이건 원래 칼날 두께의 절반도 안 된다고. 더 얇게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군. 맞물리는 형태를 바꾸지 않고, 폭만 줄일 수는 있군. 과연 더 날카로워질만 해.
‘칼날을 두 겹으로 할 수도 있겠는데?’
갸웃하면서 투란은 다시 주먹을 쥐었다가 펼쳤다.
검의 형체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얼핏 보면 별다른 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칼자루에서 솟아난 칼날이 두 겹이었다.
똑같은 모양의 칼날이 층을 이뤄 거의 겹쳐진 모양으로 솟아난 것이다.
투란은 그 겹쳐진 칼날의 미세한 틈을 가늠했고, 다시 주먹을 쥐었다가 펼쳤다.
―삼층 칼날이냐…….
드라고니아가 곧 그 결과를 알아보고 중얼거렸다.
원래 맞물려야 할 미세한 톱니 하나를 얇은 세 개의 톱니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칼날 전체의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얇게 맞물린 것이다. 그 결과는 칼날 세 장이 겹쳐진 꼴로 칼자루 하나에서 솟아난 형체였다.
‘그러니까, 이렇게는 된다는 거지.’
투란은 뭔가 씁쓸한 듯이 중얼거렸다.
하클이 정해놓은 구조, 형체는 바꿀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쪽을 보다 얇게는 할 수 있다.
원래는 그러면 유격(裕隔)이 생겨나 맞물리는 힘이 약해지면서 검으로서 갖춰야 할 견고(堅固)함이 망가진다. 그 유격을 메우듯이 두 장의 칼날을 더하면, 세 겹으로 이뤄진 칼날이 서로 버티면서 그럭저럭 원래의 강도를 지닌 것처럼 될 뿐이었다. 얇아진 덕분에 원래 한 장이 들어갈 틈새로 다 들어갈 수도 있고…….
결국 세 장의 칼날을 겹쳐 원래 칼날의 두께와 강도를 유지하는 것이니, 이건 별 의미가 없는 변화일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었다.
―실망하지 마. 최소한 이번에는 조그맣게라도 이해했잖아. 조금씩 배운다고 생각해라. 그래, 그렇게 조금씩 이 기계검의 구성을 이해하면…… 응? 야, 뭐하는 거야?
나름대로 위로하던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곧바로 고개를 갸웃하면서 세 겹의 칼날 틈새를 노려보며 뭔가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투란의 대꾸가 바로 나오는데, 어딘가 드라고니아에게 답한다기보다는 자신에게 중얼거리는 듯했다.
‘왕…… 눈을 떠봐.’
―왕?
퍼뜩, 문장 속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드라고니아가 움찔했다.
아라크레온 여왕의 형상을 고스란히 닮았지만 그 감각과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완연히 다른 아라크녹스의 왕…… 왕의 형상 중에서 텅 빈 채로 빛의 실 가닥을 뿜어내는 듯한 눈구멍이 투란의 눈이 되었다.
키리릿, 차륵.
시커먼 칼날이 칼자루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잠시 후, 빛의 실그물에 엮인 듯한 형상이 된 칼날이 다시 튀어나오는데 이번에는 보다 부드럽고 고요했다.
드라고니아는 집중해서 칼날의 형태를 살폈고, 놀란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많이 변했는데?
‘변한 게 아냐. 덧씌운 거지.’
조금 침착하게, 그리고 살짝 우울하고 씁쓸하게 투란이 대꾸했다.
세 장의 칼날, 그 안팎으로 채워진 톱니를 실감개로 삼아 왕의 거미줄을 엮었다. 중앙에 자리 잡은 칼날은 표면을 이루는 조각을 지우고, 안쪽의 톱니가 드러나게 한 채였고 겉의 두 장 칼날도 안쪽에 자리 잡은 표면을 지워 거미줄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하클이 만든 구조, 구성에는 전혀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위에 왕의 거미줄, 그물을 걸어서 검의 수납과정에서 함께 그물이 펼쳐졌다가 감겼다가 하도록 했을 뿐이었다. 더불어 검의 가드 모양도 거미다리 모양을 덧씌워놓고, 그물이 감기고 펼쳐지는 반응에 따라서 펼쳤다 오므렸다 하게 해놔 겉보기에는 많이 달라진 듯하지만…… 역시 그 내부 구성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잠깐, 칼날을 따라서 왕의 그물을 걸어놓은 건 뭐냐?
‘응? 아, 세 장 칼날을 딱 달라붙어 겹쳐지게 하느라 한 건데…….’
―그게 아니라! 왕의 거미줄이 칼날 따라 주욱 펼쳐져 있잖아! 절삭력이 장난 아닌 꼴이잖아!
‘아, 그거야…… 날이 잘 드는 검처럼 보이지?’
―잘 들어? 이걸로 베어지지 않는 경우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을 것 같은데! 마력차단 효과까지 더해지면 마법 방벽도 싹둑 잘라낼 지경이잖아! 대체 뭘 궁리한 거냐!
‘어? 아니, 딱히 궁리는…….’
투란은 조금 당황해서 눈을 깜박였다.
왕의 눈구멍 대신에 뿔수리의 눈알이 자리 잡았다.
정상적인 시각으로 투란은 자신이 형성한 하클의 기계검을 다시 살펴봤고, 드라고니아가 놀란 까닭을 느낄 수 있었다.
왕의 감각을 통해 검이 작동하는 궤도에 겹쳐서 거미줄을 걸었는데, 그 거미줄은 아주 복잡한 형태의 그물이 되어 세 장의 칼날을 한 장처럼 꽉 당겨 조일 수가 있었다. 더불어 칼날을 따라 나노미터 영역에서 촘촘하고 길게 간격을 둔 채로 덧붙여진 실감개, 거기에 걸린 거미줄은 칼날과 나란히 뭔가를 베도록 되어 있다.
마치 왕의 손톱처럼……!
게다가 칼자루에 덧붙인 장식은 거미 다리를 펼친 검은 사자의 머리!
“어라?”
―생각하는 척하더니, 아무 생각 없었냐! 저질러 놓고 생각은 나중이냐!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고! 뭔가 새롭게 상황파악하려고 해본 건데…… 역시 왕이 특별하기는 특별하네.’
투란은 입술을 삐죽대면서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여왕과 왕의 성격이 다른 점을 이용해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확인하려 했다.
왕의 본능이 그 사이에 검의 구성 안에 그물을 덧씌우고, 거미줄을 걸어버린 것이다. 투란으로서는 딱히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끝나고 보니 뭔가 검이 굉장한 것이 돼버렸다!
드라고니아가 바로 어이없다는 듯이 짚는다.
―너,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 본능에 휘둘렸다고 고백하냐?
‘어? 그 정도는 아니라고! 그냥 어찌되나 손 가는 대로 둔 것뿐이지, 뭐…….
흠칫하면서도 투란은 투덜거렸다.
가벼운 장난처럼, 진흙을 주물럭대는 기분으로 왕의 본능이 움직이는 대로 뒀을 뿐이기는 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검이 너무 굉장하게 날카로울 뿐이지!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아냈다고! 하클의 인힐트…… 이 네 자루에 박힌 태엽통은 모두 똑같아!’
뭔가 스스로에게 변명하듯 투란이 다시 소리 없이 떠들면서 스윽 왼쪽 손목을 들어 올리면서 지긋이 바라봤다. 손목에서 새알 같은 모양이 볼록 튀어나왔고, 그 한쪽이 깨진 것처럼 우둘투둘한 톱니바퀴 귀퉁이를 드러냈다. 살짝 손목이 흔들리면서 감긴 듯, 곧 톱니바퀴가 돌기 시작했는데…….
키리릭, 화앗!
마그마 로드의 결정으로 이뤄진 톱니바퀴가 마그마 로드의 결정으로 덮인 살갗과 맞닥뜨려 노골적으로 긁어대며 도는 순간, 불길이 맺히고는 힘차게 뿜어져 나오잖는가!
투란은 재빠르게 왼손을 내뻗었고, 방사(放射)되는 불줄기를 보며 한마디 한다.
“오, 드래곤 브레스!”
―얀마!
“진짜 드래곤 브레스잖아…….”
화르르, 멈추지 않고 톱니바퀴의 회전에 따라 맺히는 불줄기가 죽죽 뻗어 나오는 광경에 투란이 어이없다는 듯이 덧붙이는 소리를 냈다. 작게 긁혀서 맺힌 블랙 애시의 불길이 터지는 대신에 죽죽 뻗어 나오는 모양이 딱 그러니까.
―마그마 로드니까 그렇지! 보통 태엽장치가 그럴 리가 있냐!
‘에, 그건 그렇지만…… 새로운 능력을 터득했다고, 마그마 로드가 말이야.’
투란은 혀를 날름하면서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물론 이러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태엽장치의 구조, 완전히 닫힌 채로 한쪽으로 톱니바퀴 일부만 내밀고 있는 복잡한 구성만을 따로 형성시킬 수 있기에 한번 해본 것뿐이다. 칼자루 속에 있는 대로 형성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대체 이 괴상한 짓을 언제까지 하려고?
조금 맥이 풀린 듯, 한심해서 보고 있기 힘들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투란은 혀로 입술을 긁으면서 힘차게, 하지만 소리 내지 않고 답한다.
‘이제 겨우 인힐트 블레이드만 만져봤거든? 아직 장화도, 유틸리티 밴드도 남았다고! 활은 내일 받기로 했고! 여러 가지 만지다 보면 이해할 수 있잖겠어?’
전혀 포기한 낌새가, 포기할 생각이 없는 강한 의지였다.
수백만 번을 해봐야 한다면, 정말 해볼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