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2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23)
털썩.
투란은 침상 한쪽으로 몸을 던지며 뒹굴었다.
“전부 마찬가지라니!”
징징거리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대단하군, 하클…….
드라고니아는 새삼스럽게 놀랍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유틸리티 밴드와 장화, 모두 독자적인 형태의 태엽장치를 내재한 채로 겉보기에는 비슷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전혀 다른 설계에 따라 구동(驅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 조각, 한 조각이 정교하게 전체와 맞물린 구성을 유지했고, 부품 한 가지도 멋대로 바꿀 수가 없는 고유의 규격을 지닌 상태였다.
때문에 드라고니아는 하클의 솜씨에 꽤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투란에게도 놀라 어이없어 하는 중이었다.
―아라크레온도 굉장해. 그 미세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덧씌울 수 있다니.
유틸리티 밴드에도, 장화에도 투란은 왕의 거미줄을 걸어 강화시킬 수가 있었다. 그 부품의 형태를 유지하는 선에서 조금 얇게 만들고, 거기에 그물을 채워 넣는 식으로…… 하클의 작품을 보다 섬뜩하고 엄청난 도구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하클의 제작품에 직접 손대지 않고 마그마 로드의 결정으로 형성한 것이기는 했지만…….
“어흐!”
투란이 데굴거리면서 투덜대는 소리를 낸다.
“어째서! 뭘 이리 빡빡하게 만들었냐고! 그냥 적당히 해도 되잖아! 뭐 하나 내 맘대로 건드릴 수가 없다니!”
―그냥 날로 처먹을 궁리 하지 말고, 하나하나 검토하면서 이해하란 말이다!
갑자기 울컥한 소리로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투란의 대꾸가 곧바로, 아주 볼멘소리로 나온다.
“뭘 검토하냐고…… 이미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알았다니까. 그대로 다시 꾸밀 수도 있다고…… 근데 전혀 다른 모양으로 바꿀 수도 없고, 어디다 붙일 수도 없잖아! 딱 이 모양, 딱 저 꼴이어야 하잖아!”
드라고니아가 잠깐 침묵했다.
아주 짧은 틈새였지만 투란은 그 침묵의 의미를 바로 짚는 소리를 뱉는다.
“거봐, 너도 저걸 고쳐서 다른 모양으로 못 만든다는 거, 아주 잘 알면서…….”
헛기침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와 함께 드라고니아의 대꾸가 나온다.
―대체 뭣 때문에 저것들 흉내를 내려는지는 모르겠다만, 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저 구조, 형태를 완벽하게 파악해냈잖아. 그걸 바탕으로 너 나름대로 설계를 하고, 그 설계에 그걸 응용해서…….
‘설계?’
투란이 갸웃하면서 이번에는 소리 없이 짧게 되묻듯이 생각만 했다.
문장 속에서 이를 바로 느낀 드라고니아는 한숨과 함께 하던 얘기를 멈추고 투란이 애매하게 여기는 부분부터 설명한다.
―뭘 만들고 싶은가를 정하고, 그 모양을 생각하고, 그 내부구조를 미리 마음속으로라도 그려보라고. 어떤 목적, 어떤 용도의 물품, 도구를 제작할 것인가…… 설계해보란 말이다. 남의 것 갖다가 대충 뒤틀어서 뭘 만들려 하지 말고.
‘설계, 그 그림 같은 거 말이지? 아, 도면이라고 하던가? 샤오 할배도 모래판에 대강 그렸다 지웠다 했었어. 미리 그려본다고…… 그래, 그걸 설계하는 거라고 하긴 했었어. 미리 그려놓고 안을 채워…… 음?’
투란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하클의 작품들은 펼쳐진 보따리 위에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만지작거리다가 놔둔 그대로였다.
그걸 내려다보면서 투란은 잠시 발가락을 꼼지락,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고개를 갸웃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 들었다.
드라고니아는 그런 투란을 고요하게 기다렸다.
얼마 후, 투란은 두 손바닥을 모으는 자세를 취했다.
손바닥 위에서 시커멓게 잉크가 모여들었고, 치솟으면서 두 손바닥 위에 올라선 작은 기둥이 되었다. 잠깐 그 기둥의 크기를 가늠하듯 보던 투란이 숨을 고르면서 작은 기둥은 어느새 크고 굵어지며 투박하고 길쭉한 원뿔의 형태가 되었다. 어림잡아도 검 한 자루의 길에 맞먹을 높이로…….
찰랑거리던 원뿔 표면의 잉크가 곧 매끈하게 굳어졌고, 붉은 줄기가 간간히 드러나면서 마그마 로드의 결정으로 변했다.
투란은 그 결정을 받치는 두 손을 모으며 쥐는 시늉을 했고, 원뿔의 아래쪽이 이에 호응하며 손잡이를…… 칼자루 모양의 손잡이를 이뤘다. 원뿔의 전체적인 형태도 슬쩍 변했다. 투박하고 넓고 굵은, 날이 붙지 않은 몬스터 헌터가 즐겨 쓰는 브로드 소드와 닮은 모양이었다. 칼자루 쪽으로는 칼날 폭이 거의 20센티가 되고, 칼끝으로 가면서 좁아지며 5센티의 폭이 된 다음에 곧장 꺾이며 뾰족한 끝을 만드는…….
잠깐 시커멓게 만들어진 검의 형체를 바라보던 투란의 눈매가 변했다.
검은 가죽, 훤히 뚫린 듯한 눈구멍…… 실 가닥 같은 빛이 맺힌 듯한 형상.
그 눈길을 받은 검의 형체가 조각나기 시작했다.
가늘고 길게 그 위로 펼쳐진 그물, 상하좌우로 적절한 규격과 크기를 지닌 채로 검의 형체를 섬세하게 감싼 그물 구멍에 맞춰진 조각이었다.
조각난 검의 형체는 그물에 걸려 고정된 듯했고, 곧이어 그물가닥을 따라 시커먼 잉크가 흘렀다. 안에 꽉 채워진 잉크의 일부가 새어 나오는 모양이었고, 검의 형체 안쪽이 비워지는 듯했다. 그러고 나서 조각들이 검의 형체 안으로 가라앉으며 쏟아져 내리니…….
사르륵, 차륵.
투란이 꽉 쥐고 있는 시커먼 칼자루 속으로 무너져 내린 검의 조각들이 나란히, 아주 가지런하게 쏟아져 들어가는 광경이었다. 넓은 칼날 아랫부분이 그 마지막을 메우듯이 중앙으로 접혀지며 엇갈려 칼자루를 감싸 안았다.
키릭, 키리릭.
투란이 살짝 낯을 찌푸리자, 시커먼 칼자루 속에서 조각들이 솟아나왔다.
정연(整然)한 움직임이 드러났고, 조각들이 다시 검의 형체를 이뤘다.
그물이 펼쳐지며 그 속을 채우는 듯한 광경이었다.
투란은 그 광경을 주의 깊게 바라봤고, 드라고니아는 끈기 있게 고요함을 유지했다.
곧 투란의 낯을 조금 더 구기면서 잔뜩 집중한 표정을 지었고, 검의 조각이 무너져 내리면서 칼자루 안으로 다시 몰려 들어갔다. 마찰하는 부드러운 소리, 그리고 작게 잠기는 소리와 함께 칼자루가 칼날 대신에 덮개를 갖춘 모양이 되었다.
이것이 두어 번 더 반복되었고, 마지막에 투란은 한 손으로 검을 쥔 채 휘두르는 동작까지 했다. 칼자루 안에서 은은히 울리는 태엽장치의 떨림을 감상하듯!
그러고 나서 투란은 검을 이룬 마그마 로드의 결정을 완전히 뭉개 다시 길쭉한 장검 길이의 막대 형태로 바꾸었다. 막대는 곧이어 칼끝 쪽이 살짝 넓어지고, 칼자루 쪽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좁아지는 형태의 검이 되었다. 칼자루를 쥔 손이 미끄러지지 않게 막아주는 보호구, 가드에는 칼날 쪽으로 송곳니 모양의 장식이 나란히 서넛 돋아 있기도 해서 조금 괴상한 느낌의 검이었다.
이 검 위로 그물이 펼쳐졌고…… 처음 원뿔 모양에서 시작했던 브로드 소드의 닮은꼴이 드러낸 변화과정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그렇게 해서 투란은 시커먼 인힐트 블레이드, 하클의 제작품과는 완연히 다른 모양을 지닌 자신이 그려낸 형태를 지닌 인힐트 블레이드를 쥐었다!
낮은 중얼거림은 잉크의 흔적을 완전히 덜어낸 채로, 마그마 로드의 붉은 줄기조차 깨끗하고 매끈하게 없앤 채로 인힐트 블레이드, 기계검의 순수한 작동을 두어 번 되풀이한 다음에 나왔다.
“나 정말 엄청난…… 멍청이 바보인가?”
―어, 뭐?
드라고니아가 조금 당황한 대꾸를 했다.
그 미묘한 말투 속에서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얘가 왜 이래?’라든가 ‘이게 갑자기 미쳤나?’ 하는 기분이라는 것! 투란이 갑작스럽게 자책하는 의미를 전혀 예상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아라크레온도, 마그마 로드도…… 이렇게 바로 할 수 있었다고. 그런데 내가 멍청해서 능력이 있으면서 안 된다고 드러눕기나 했잖아. 이건 순전히 내가 멍청하고 바보라서 못한 거지…… 몬스터 능력이 모자란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나 대체 얼마나 엄청난 바보이고 멍청이인 거지?”
―어…… 뭐 그래도 어쨌든 한참 뒤도 아니고 금방 깨닫고 해냈잖아? 바보스럽기는 해도 그렇게까지 엄청나지는 않을걸?
어정쩡하니, 뭔가 ‘그래, 바로 맞아!’ ‘넌 진짜 멍청한데 이제 알았냐!’라는 소리를 대신하느라 힘든 듯한 말투인 드라고니아였다.
입술을 삐죽이면서 투란은 소리 없이 투덜거린다.
‘체엣! 속이 다 보인다! 그게 위로냐! 하지 마! 앞으로 똑똑해질 거야! 위로하지 마!’
―흠, 그렇지? 노력해라. 징징대기 전에 먼저 생각하고, 궁리하는 버릇을 들여.
슬쩍 부담을 던져서 시원해졌다는 듯한 말을 뱉는 드라고니아였다.
‘힝! 생각하거나 궁리하기 전에 바로 알아차릴 거야! 두고 봐!’
지기 싫다는 듯이 대꾸하며 투란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방안을 둘러봤다.
여전히 엘리멘탈 베일에 의해 격리된 구역이었다.
엘리멘탈 베일은 투란이 이 짓 저 짓 다 하며 휘날린 불꽃, 쏘아낸 화살, 휘두른 칼날의 흔적을 깔끔하게 삼켜 없애준 방벽 노릇을 거뜬히 해냈고, 계속 하고 싶다면 더 해보라는 듯이 당당하게 버텨주고 있었다.
그 한복판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보따리…….
투란은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지우고 보따리 위에 놓인 물품을 마법 배낭 속으로 밀어 넣었다. 부츠와 암밴드, 칼자루를 모두 담고서는 바로 투란의 입가에서 한숨이 새어 나온다.
‘물건이 다르면 안쪽도 다 다르단 말이지…… 그러니까, 그 활의 태엽장치도 전혀 다르겠지? 하아, 하클 영감…… 할배 중의 할배라더니, 진짜 대단한 기술이야.’
내일 받기로 한 활에 대한 기대가 잔뜩 서린 말이었다.
곧바로 드라고니아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묻는다.
―그런데 왜 탐내는 거냐? 대장장이가 될 생각은 없잖아? 이것도 무슨 위장신분을 위해 준비하는 거야? 몬스터 로드에게는 별 의미 없는 기술 아닌가? 몬스터 헌터라고 해도, 장비를 사용하는 입장이지 만드는 쪽으로는 별 관심 없을 텐데?
‘어? 흐흠, 뭐든 알아두면 좋다고 한 거는 너잖아? 온갖 것을 다 알아야 한다더니, 뭐가 이상해?’
―그래!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몰라라 하던 녀석이 왜 이런 기술을 구현해내는데 그렇게 몰입했냐고? 심심풀이도, 장난도 아니었잖아. 몬스터의 본능이었다는 핑계는 대지마라. 처음 검의 형상을 그대로 만들어냈을 때, 이미 충족된 걸 아니까.
‘어, 흐흠! 분명히 속에서 간질거리던 기분은 그렇게 지워졌지…… 흐흠…… 그러고 보니 내가 꽤 몰입했지?’
―그렇다니까! 대체 왜 그랬냐고!
살살 말을 돌리려는 투란에게 불평하듯이 드라고니아가 으르렁대고 있었다.
투란은 잠시 침상에 걸터앉아 보따리가 치워진 채로 엘리멘탈 베일로 격리된 방안을 둘러보다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느릿하니 대답을 꺼낸다.
‘글쎄다, 왜 그랬을까? 음…… 샤오 할배…… 샤오덴 할배한테 당했던 짜증이었을려나?’
―샤오……?
‘어, 하클 할배랑 직접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뭔가 만드는 할배라는 점이 닮아서려나? 비슷한 분위기가 좀 있다고 해야 하나? 하클 할배 쪽이 조금 더 착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말이야, 샤오 할배가 뭘 만들 때 항상 틀을 잡고 뭔가 보여주는 척하면서도 진짜 중요한 부분은 전혀 뭐가 뭔지 모를 일이 많았거든. 이제 생각하면 그게 다 무슨 그림스미스니 뭐니 하는 것 때문인 모양이지만…… 어쨌든 그게 무척 짜증 났었어. 바로 앞에서 보는데 대체 어떻게 만드는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모를 물건들…… 알고 싶었거든.’
―그래서, 하클의 작품을 보고 네 맘대로 이리저리 만들고 싶어져서 그랬다고?
‘그렇지 않을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막 저질러놓고 보니, 이렇게 된 거잖아.’
―그래, 원래 넌 생각없는 놈이긴 하지.
‘야! 솔직히 이야기해주는데 욕을 하냐?’
드라고니아의 핀잔에 투란이 살짝 울컥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들은 척도 않고 냉정하게 다시 묻는다.
―하클의 기술을 모두 훔쳐낼 생각이냐?
‘응? 훔쳐? 모두?’
잠깐 투란이 맹한 대꾸를 했다.
마법 없이 만들어진 인힐트 블레이드, 기계검을 계기로 해서 잔뜩 호기심이 부풀어 올랐고 몬스터의 충동 또한 함께 했다. 그래서 일단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해서 뒹굴다가 겨우 알아낸 것이다. 내일은 활을 받아올 테고, 그러면 오늘보다 훨씬 쉽게 그 구성을 파악해서 재현할 거라고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하클이 장인으로서 지닌 기술을 모두 훔쳐낸다?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투란이었다.
게다가 그 말투도 왠지 사악한 느낌이잖나!
‘훔치는 거는 아니잖아? 그냥 보고 배우는 것뿐이잖아! 그저 궁금해서 자세히 들여다본 것뿐인데 그걸 꼭 훔쳐낸다고 해야겠냐! 돈 주고 산 거라고! 산 물건 안이 조금 궁금해서 본 것뿐이잖아!’
투덜투덜!
―그야 네가 그 기술로 뭘 만들어 팔지 않을 때 얘기지.
‘어? 만들어? 팔어?’
이는 투란에게 굉장히 의외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