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2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24)
―뭐야, 헌터스 배너를 놓고도 금전 몇 닢이네 어쩌네 했던 녀석이 새삼스럽게?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살짝 핀잔했다.
‘아! 그건…… 내 몸에 새기고 쓸 수 있는 각인이 금전 두 닢이라니까, 재수 좋다는 생각이 들잖아. 금전 두 닢짜리를 완전히 거저 손에 넣었다고……. 그렇다고 내가 마법사 흉내 내면서 팔고 다닐 수는…… 있나? 흠…….’
꼼지락거리면서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돌이켜보니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가, 살짝 아리송하다는 듯!
―그래, 네가 뭔 생각을 했겠냐…….
포기했다는 듯, 하지만 울컥한 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투란이 혀를 날름하면서 소리 없이 말한다.
‘아, 한참 기분 좋으면 이것저것 막 상상해볼 수도 있는 거지! 근데, 마법 각인을 팔려면 마법사 흉내 내야 하잖아. 홀시딘도 그렇고, 그 마스터라고 와글대는 마법사들도 그렇고…… 흉내 내기 더럽게 힘들어 보이니까, 그건 관두자는 거지.’
마치 나름대로 생각한 결론이란 것처럼 우겨대는 얘기였다.
―그럼, 하클 흉내는 쉽냐? 그 정도 수준의 장인 흉내가 마법사보다 쉬워 보여?
으르렁거리면서 짚고 파는 드라고니아의 핀잔이었다.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니까, 아까부터 그 소리 하는데…… 마그마 로드로 만든 장비를 내다 판다고? 몬스터 정수가 가득 담겨 있고 내 마력으로 유지되는 걸? 그건 사기잖아? 난 사기꾼이 될 생각은 없거든.’
―뭐?
이번에는 드라고니아가 매우 의외란 듯이 짧은 한마디를 전해왔다.
그 반응에 투란이 어리둥절했다.
‘왜?’
―만들지 않는 거냐? 완전히 구성을 파악했잖아?
조금 더 의아해하는 듯한 물음이었다.
투란은 눈을 꿈벅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에게 몬스터의 형상으로 하클의 작품을 만들지 않냐고 묻는 게 분명히 아니었다. 그러니까 하클이 만든 것처럼 제대로 된 소재를 사용해서, 몬스터의 능력으로 파악한 것을 만들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다!
“어라?”
맹한 소리가 투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생각 없었구만!
질렸다는 듯, 살짝 손해 본 기분이란 듯이 드라고니아가 한탄했다.
그리고 투란은 한몫 챙긴 기분으로 바로 대꾸한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우하핫! 어쩌면 장사할 수도 있겠어! 음하핫!”
―처웃기 전에 생각부터 해보지 그래? 너, 사실은 못 만들어서 아예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 아니야?
잠깐 투란의 태도를 되새겨본 듯,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어, 그야 뭐…… 암튼! 일단 해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자고. 하클 할배의 기술을 흉내 낼 수 있는가 말이야. 아, 그러려면 쇠가 필요한가…… 쇠만 필요한가? 음, 그러니까 태엽이랑 만들려면…….”
투란은 하클의 작품을 더듬었던 기억을 되새겼다.
그 구조, 사용된 금속의 특징, 금속이 아닌 부분은 무엇이 있었나…….
더듬는 와중에 투란은 발가락 사이를 뒤척였고 검게 꾸물거리는 반점을 찾아냈다. 반점은 발가락 사이를 옮겨 다니는 잉크였다. 자연스럽게 발가락 틈새를 오가는 잉크 반점에 투란의 손끝이 닿았고, 발바닥으로 끌어 내려졌다. 잉크의 흔적이 검은 자취를 남겼고, 곧 그 자취가 갈라지면서 짐승의 입술 같은 형상이 생겨났다.
우물거리는 듯했던 입술이 열렸고, 투란의 발바닥에는 벌린 입이 나타났다.
마법 배낭이 열렸고, 발바닥의 벌린 입이 배낭 안쪽을 들여다보듯이 자리 잡았다.
한 손으로 배낭을, 한 손으로 발을 붙잡아 마주 댄 꼴이었다.
곧 입에서 뭔가 쏟아져 나왔고, 배낭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투란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며 아빈가의 여우 입에서 쏟아져 나와 무쇠뿔 오우거의 잔여물, 그 정령의 힘이 깃든 잔재를 이용해 만들어진 마법 배낭으로 휘몰아치듯 들어가는 물품들을 더듬었다.
―뭐야, 갑자기 왜 그걸 정리하나? 라비엔을 떠난 뒤로 홀랑 잊고 있었잖아?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산만함을 탓하듯이 물었다.
‘잊고 있긴! 바빠서 잠깐 미뤄둔 것뿐이잖아! 여태 이걸 꺼내서 늘어놓고 정리할 틈이 있기는 했냐고! 다 꺼내서 늘어놓을 곳도 없었잖아! 이제 정리하고…… 쓸 만한 광석이 있었는데…….’
먼저 쏟아진 것은 대부분 라비엔에서, 터프넥을 쫓아 그 이상한 도적의 금고를 털어 금괴를 대신하듯 삼켜온 물품들이었다.
아빈가의 여우 능력을 잉크의 한 점에 ‘집중시켜 묶어놓고’ 필요할 때만 크게 키워서 삼켰다 뱉는 재주…… 투란은 아직 남매에게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저 크게 한번 삼켜놓고, 허우적거리고 힘들어 하는 모습만 보였다. 원래는 그게 힘들어서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익힌 재주였기도 했으니, 이 재주를 터득한 다음에 네 남매에게는 알려주지 않기만 한 셈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역병의 수해를 넘어오며 이것저것 헬임프의 불꽃에 그슬려서 담아왔기에 비밀로 해야했던 것이 그 까닭이기는 한데…… 드라고니아가 하나씩 검증해서 안전해진 것만 담아간다고 남매에게 말하기가 거북한 탓이 컸다.
‘아, 이제 나왔네.’
거무튀튀한 색채의 돌덩이 하나를 잉크의 열린 입이 토해낼 때, 투란은 배낭에 빠지지 않게 발을 흔들었다. 발바닥의 면적에서 나와 마법 배낭으로 튈 때는 그저 주먹만 해 보이던 돌덩이는 바닥에 떨어질 때, 거의 6, 70센티의 울퉁불퉁한 돌…… 작은 바위라 할 덩치가 되어 있었다.
쿵.
“윽, 이거 문 너머로 안 들렸겠지?”
뒤늦게 무겁게 울린 소리에 투란이 흠칫하며 중얼거렸다.
슬쩍 엘리멘탈 베일에 대해 잊은 듯한 소리였다.
―쓸데없는 소리를! 그런데, 정말로 이걸 쓸 거냐?
타박하면서도 드라고니아가 아쉽다는 듯, 어딘가 미련이 가득한 물음을 던졌다.
투란의 입술이 바로 삐죽거렸다.
‘이거 보고 어떻게든 가져가지고 징징대더니! 가져왔으니 한번 써봐야 할 것 아냐! 설마 드라코눔까지 가자고?’
이 거무튀튀한 바위는 드라고니아가 적극적으로 캐오자고 했었다.
역병의 수해에서, 그 안을 흐르는 작은 강변에서 발견한 바위였는데…… 헬임프의 불꽃을 이용해서 어떻게 해서든 역병을 제거하고 가져가자고, 드라고니아가 투란을 열심히 설득했던 것이다.
드라코눔의 야장(冶匠)들이 최상급으로 꼽는 흑요강(黑曜鋼)의 원석이라면서!
투란이 전혀 흑요석(黑曜石)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거리자, 흑요석이 아닌 흑요강이라고 열심히 설득했다!
그냥은 그저 거무튀튀한 색채에 울퉁불퉁하지만, 야장의 손길을 거치게 되면 매끈하게 흑요석과 닮은 광택을 머금게 되면서도 흑요석처럼 쉽게 부서지지 않는 강철이 된다고 했다.
제대로 녹이기 위해서는 마그마가 괄괄 흐르게 할 정도의 열기가 필요한 광석 소재, 드라코눔의 야장이 아주 선호하는 철광석…….
그 흑요강을 노려보면서 투란은 발을 흔들었다.
마법 배낭 속으로, 성을 담을 수 있다는 홀시딘이 큰소리친 바를 믿고 투란은 일단 여우가 쟁여 뒀던 것을 모조리 흘려 넣었다. 덕분에 드라고니아는 또 다른 잔소리를 할 수 있었는데…….
―야! 제대로 정리 안 해! 쳐다보지도 않고 마구 퍼넣냐!
‘어? 그건 나중에 배낭 안을 들여다보면서 해도 된다잖아. 그보다 과연 하클 할배의 기술을 내가 훔쳐 쓸 수 있는가, 그것부터 확인해야지.’
투란은 뻔뻔하게 대답하면서 더욱 흑요강의 원석을 노려봤다.
정교하고 정밀한 하클의 작품들…… 그 품질을 따지기 전에 보기만 해도 일단 신기한 마법의 도구인가 생각하게 하는 물품들…….
몬스터의 능력, 그 감각이 아니고서는 뭐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전혀 알 수 없는 듯한 그 구조…….
투란은 일단 인힐트 블레이드에 집중했다.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통해 만들지 않고, 저 흑요강의 원석을 소재로 삼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녹여야 하나? 야, 저거 어떻게 철괴로 바꾸지?’
갸웃하면서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원석으로부터 철을 추출하고 정제하는 것부터 해야했으므로.
―응? 뭘 새삼스럽게 물어? 마그마 로드로 그릇을 만들고 녹여서 빙빙 돌리는 짓, 자주 했잖아?
‘어? 그야 거기 불꽃 핏줄을 섞어야 했으니까 그랬지. 아, 그렇게 해도 골라낼 수 있는 건가?’
―원래 그렇게 한다. 대장간에서 뭘 본 거냐?
‘그냥 화로 안에 돌덩이 까 넣으면 알아서 걸러지던 걸. 샤오 할배가 없을 때는 화로가 아예 꺼진 채였지. 젠장, 정말 쓸모 있는 기술은 하나도 안 가르쳐줬다니까! 못된 할배!’
―마법 화로였나?
‘아니어서 놀라더라고. 오러클 아저씨도…… 아, 그건 짜증 나니까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녹여서 돌리면 걸러진단 말이지…… 왜 그렇지?’
갸웃거리면서도 침상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은 투란의 손발이 빠르게 변화하며 움직였으니…… 먼저 시커멓게 물들고, 찰랑거리는 채로 발부터 다리까지 흐르면서 흑요강의 원석이 놓인 바닥이 검게 물들었다. 찰랑이던 잉크가 거품과 함께 두꺼워졌고 두툼하게 쌓이면서 거무튀튀한 원석의 혼탁한 색채와 비교되며 크고 넓으면서 두꺼운 그릇이 되었다.
시커먼 그릇 속에 붉은 줄기가 돋아났고, 곧 뜨거운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사이에 투란이 내민 두 손, 두 팔은 어깨까지 시커멓게 변한 채로 길게 내밀어져 원석의 위에 펼쳐졌다. 더 이상 사람의 팔이라 할 수 없는 길이였고, 손을 대신한 그물이 지붕처럼 원석을 덮는 모양이었다.
금방 그릇 안에서 흑요강의 원석이 맴돌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곧 엘리멘탈 베일이 천장 쪽에서 붉게 물들면서 치솟아 퍼져 나가려는 열기를 삼켜 지우기도 시작되었다.
문득 녹아서 벌겋게 찰랑이는 원석의 상태를 보다가 투란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 드디어 이걸 맛보는군!’
드라고니아가 귀한 원석이라면서, 가능한 한 그대로 보존해서 가지고 나가자고 했었다. 제대로 걸러내야 흑요강의 높은 수준으로 완성된다고! 때문에 다른 것을 이리저리 맛보면서도 여태 그냥 뒀던 원석이었다.
―차라리 팔아치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만…….
여전히 아쉬운 듯, 드라고니아가 웅얼거렸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투란이 원석을 사용한다고 할 줄은 몰랐다는 듯…….
이를 싹 무시한 채로 투란은 녹아내린 흑요강의 원석 안으로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이글거리는 마그마의 그물을 밀어넣었다.
‘이런 맛이군!’
황금 맛을 본 다음부터 혹시나 그만큼 맛있는 것이 있나 해서 이 돌 저 돌 맛보기를 했었다. 결국 보석의 맛이 꽤 독특하면서 좋다는 것만 배웠고, 아주 맛없이 느껴지는 암석류가 더 많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흑요강의 원석은 완전히 녹은 채로 제법 독특한 맛을 내고 있었다. 간간이 다른 것도 섞인 듯이 맛이 튀기도 했다. 투란은 그 느낌을 놓치지 않으면서 맛에 따라 용해(鎔解)된 원석을 분류하고 분리했다.
그릇 안에 뒤틀린 칸막이가 생겨나며 저마다 다른 맛이 담겼다.
위에 띄운 그물에서 흘러내린 줄기가 숟가락처럼 그 그릇에서 작은 방울들을 퍼올렸고, 마그마 로드의 결정이 달아오른 작은 방울의 열기를 순식간에 강탈했다. 작은 방울은 그 모양 그대로 굳어졌고, 투란은 그 방울 하나하나를 더듬으며 조사했다.
무른 것, 단단한 것, 구겨지는 것, 깨지는 것…….
곧 투란은 그중에서 하클이 사용한 금속의 성질과 닮은 성향을 골라냈다.
태엽장치와 톱니, 쉽게 깨지지 않는 파편(破片)이 될 수 있는 것으로.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다리 뻗고 앉은 자세를 깨닫고 투란의 입가에 풋하는 웃음이 새어 나갔다. 어쩐지 지금 자신이 앉은 꼴이 샤오 할배가 그 괴상한 화로를 다리 사이에 끼고 앉은 모습을 떠올리게 하잖나!
‘아, 결국 그 흉내를 내는 거려나?’
조금 씁쓸한 기분이기도 했다.
그래도 투란은 그 기분을 떨쳐내면서 흑요강의 원석에서 분리해낸 것, 과연 이것이 드라코눔의 야장이 선호하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만들까 잠깐 생각했다.
아무래도 하클의 검과 똑같이 만들면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조금 전에 시험 삼아 만든 거랑 똑같이 하는 것도 싫다.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것으로, 뭔가 만들고 나서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하고 싶다.
혹은 예전에 보면서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라면…….
‘좋아, 그 단검으로 해야지!’
아련한 기억 속에 불쑥 튀어나온 단검, 꽃잎 혹은 나뭇잎 모양의 가드를 지녔던…… 숲의 사제가 사용하던 나무 단검이 기억난 투란이었다.
나무였지만 돌을 깎아 부적을 그릴 수도 있어서 투란에게는 꽤 인상 깊었던 단검이었다. 원래 그 단검으로 만든 부적을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