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2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25)
칼자루 받침은 고리였고, 고리를 두른 원뿔이 돋아난 형태였다.
칼끝을 세우고, 칼자루를 아래로 향하면 땅을 향해 원뿔이 내리 꽂힐 듯한 생김새…… 하지만 원뿔보다 칼자루가 훨씬 길고 굵은 단검이었다. 자루와 칼날 사이를 꽃잎 혹은 나뭇잎으로 보이는 장식으로 메워, 칼날이 활짝 펼쳐진 꽃봉오리에서 솟아나온 듯한 형상……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다가 칼끝에 이르러 완연히 세모꼴을 이루는…… 날카롭다는 느낌보다 숲의 한 귀퉁이에 자루부터 박아놓으면 보는 방향에 따라 땅에 작은 탑의 모형을 놓아둔 것이 아닌가 착각할 듯한 모양이었다.
투란은 그 두툼한 두께, 한 손으로 쥐면 손가락 둘을 겹친 정도의 간격이 남는 힐트, 여섯 잎사귀가 펼쳐지며 가드를 보며 추억할 수 있었다.
“부적을 뭘로 만드냐고? 알아서 뭐 하게? 은전이나 가져와. 그러면 몬스터 로드가 미쳐 날뛰지 않게 하는 부적을 만들어주지. 어이, 내 제례검(祭禮劍)에 손대지 마라! 남의 손을 타면 안 된다고!”
‘아, 괜히 까탈스러운 사제였지.’
숲의 사제, 혹은 수신(獸神)의 사제라 불렸다.
정확하게 어느 쪽인지는 몰랐다.
그냥 다들 사제라고 불렀으니까.
샤오콴 마을에 뭘 하러 왔는가도 몰랐다.
사제는 자기 얘기는 하지 않았다.
오러클 워리어, 그 아저씨가 나타나면서 사라졌었다.
하지만 오러클 아저씨가 사라지니, 다시 샤오콴 마을에 돌아왔다.
대체 뭘 하던 작자였을까?
그 사제의 제례검은 나무로 만든 건지 돌로 만든 거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나무껍질의 칼집을 지녔고, 두텁고 둔해 보이는 단검이지만 베어야 할 때는 확실히 베어내는 칼이었다. 꽃잎이 칼날을 받쳐주는 모양도 좀 특이했고…….
투란뿐 아니라 그 검에 관심을 보이며 손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사제는 부정 타네 어쩌네 하면서 칼집에서 꺼내 보이는 것조차 꺼려했었다. 그러나 그런 사제도 샤오 할배 앞에서는 단검을 꺼내 보여야 했다. 처음 왔을 때도, 다시 돌아왔을 때도!
‘더럽혀졌나 확인한다고 했었던가?’
다시 떠올려봐도 샤오 할배가 그 검에서 뭘 확인하려 했는가를 투란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곁에서 숫돌을 닦고 있다가 구경하면서 궁금했었고, 지금도 궁금하다!
‘나중에 또 볼 일 있으려나?’
만약 샤오콴 마을, 이제는 전설적인 샤오 마을이라고 알게 된 곳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 사제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억지를 부려서라도 그 단검을 한번 만져볼 수 있을까?
피식, 투란은 웃었다.
지금 손에 들린 것은 그 사제의 단검과 거의 똑같은 모양이었다.
기름칠을 한 겹 덧씌워 놓은 듯이 광택이 유난스럽다는 점이 눈에 띄게 다르기는 하지만, 그 사제의 검처럼 검은 색채의 단검이 완성되었다. 그냥 단검도 아닌, 인힐트 블레이드로 만들어진!
키릭, 사르륵.
부드럽게 칼날이 해체되면서, 잎사귀의 가드가 빙그르 돌며 칼자루 안으로 갈무리 되었다. 잎사귀는 칼자루 쪽으로 기울어지며 휘감기는 궤적을 흘리면서 봉우리처럼 맺혔다.
―잠금쇠 위치가 다르군?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새로 만든 단검이 칼날 쪽의 자루 문양을 조작하는 대신, 칼끝과 정 반대쪽의 원뿔과 고리를 조작하는 방식인 것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응? 어, 뭐…… 단검이니까.’
투란은 간단히 웅얼거려 대꾸했다.
드라고니아는 뭔가 흥미롭다는 듯이 말한다.
―하클의 기본 설계를 완전히 변형시켰잖아.
‘그야…… 왕의 능력이지 뭐…….’
투란의 대꾸는 살짝 삐죽거리는 말투였다.
잠금쇠 역할의 무늬, 그것을 원뿔과 고리 쪽으로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투란은 고민하지도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라크녹스 왕의 감각, 본능은 걸어야 할 실과 그물의 위치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옮겼고 그에 따라 마그마 로드가 맞물리는 구성을 간단히 바꿔버렸을 뿐이니까.
‘근데, 이거 흑요강 맞나? 제대로 뽑은 거 맞아?’
검게 번들거리는 단검과 분리된 원석…… 이제는 원석이라 부르기 곤란하게 완전히 녹아 분별된 강괴(鋼塊) 모양의 덩어리를 놓고 투란은 갸웃하며 물었다. 그 중에서 단검에 어울리는 성분을 걸러서 사용한 것인데, 이게 드라코눔의 야장이 좋아한다는 흑요강인가 아닌가를 투란은 알 수가 없으니까.
―음? 어…… 제법 잘 정련한 흑요강과 비슷한 수준이야. 마법을 심거나 한 덩어리를 다져서 모양을 잡은 것이 아니니까…… 아마 인힐트 방식에는 지금 것이 딱 맞는 재질일 거야.
‘아니구만, 흑요강.’
투란이 작은 한숨을 쉬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맛을 따지며 알맞게 골랐다 싶었는데, 비슷하기만 한 모양이잖나. 살짝 실망스런 기분일 수밖에 없는 투란이었다.
“이거, 은전 오십 닢에는 안 팔리겠지? 재료가 특별하다고 하면 팔릴려나?”
언짢은 채로 조금 뚱하니 투란은 중얼거렸다.
별생각 없이 그냥 꺼낸 소리였다.
그런데 드라고니아가 흠칫하는 낌새와 함께 꽤 격한 말로 대꾸한다.
―뭐? 은전?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걸 왜 팔아? 팔 거면 금전으로 받아야지 왜 은전이 나와, 은전은 무슨!
‘응? 금전? 아니, 하클 할배도…… 영감 소리 듣는 하클 할배가 만든 것도 은전 오십 닢이잖아. 그것도 안 팔린다고 뭐라 했는데……? 이걸 금전 받아야 한다고?’
어리둥절하고 맹하니, 소리 없이 투란이 되물었다.
드라고니아는 금전이니 은전이니 하는 돈 문제에 대해서는 꽤 둔감했다. 뭘 아느냐고 따져봐야 금전이 은전보다 귀하다, 하는 정도가 드라고니아가 돈에 대해서 아는…… 거의 전부라고 할 수도 있을 지경이다!
그런 드라고니아가 왜 갑자기 이 단검의 가격을 은전으로 따지려 하니 금전이어야 한다고 우기는가?
―샤벨투스 이빨을 꺼내봐. 단검 날이랑 마주 대봐. 어설프게 하지 말고, 제대로 날과 날이 만나는 부분을 잘 보라고.
투란이 깊은 의혹을 느끼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듯, 뭔가 말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얘기하는 드라고니아였다. 그 기척이 투란에게는 너무 괴상하지만, 그걸 따지기 전에 투란은 샤벨투스의 이빨을 오른손에, 칼날을 형성한 단검을 왼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마주 대봤다.
정교하게 제어된 두 손의 움직임에 몬스터 블레이드와 흑요강 원석에서 멋대로 제련(製鍊)된 칼날이 만났다.
‘응?’
투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샤벨투스의 이빨 쪽에 눌린 모양이 나타났다.
유연(柔軟)하게 신축(伸縮)하는 성질이기 때문에 샤벨투스의 이빨에서 날이 나가 이 빠진 모양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투란이 얼렁뚱땅 만든 인힐트의 단검, 그 칼날이 더 예리한 광경이었다.
“뭐야, 이거?”
―너무 세게 누르지 마라. 마법각인도 없고, 순전히 유리질(琉璃質)의 특성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제대로 만들어진 샤벨투스의 이빨이 세게 내리치면, 단검 쪽이 쪼개질 거야. 물론 그건 순전히 몬스터의 잔재(殘在)가 지닌 힘 때문이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샤벨투스 이빨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유리질? 그게 대체 뭔데 이래?”
투란은 적잖게 당황해서 물었다.
씁쓸하게 드라고니아가 설명한다.
―흑요강은 흑요석이 아니다만, 흑요석과 공유하는 성질이 있지. 그게 유리질이야. 아주 미세한 영역에서 엄청나게 뒤죽박죽이라고 할까? 덕분에 아주 쉽게 깨지면서도, 아주 날카롭게 되는 것. 그게 유리질이고 보통의 흑요석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지. 그런데 흑요강은…… 아주 강인하고 질겨서 쉽게 깨뜨려지지 않아. 유리질이 자연적으로 그런 강인한 특성을 지닐 일은 거의 없어. 게다가 마법의 각인도 아주 수월하지. 전에도 말했지만, 흑요강은 아주 특별한 거라고.
‘어, 그래. 전에는 왜 특별한가를 그렇게 말하지 않았잖아. 드라코눔의 야장이 지닌 기술이 있어야 발휘된다더니!’
투란의 투덜거림이 소리 없이, 그래도 꽤 으르렁거리는 낌새로 나왔다.
―맞아. 그 기술이 아니면 그냥 조금 특별한 소재의 쇳덩이가 될 뿐이다. 그래서 말인데…… 대체 어떻게 한 거냐?
‘에? 뭘 어떻게 해?’
투란은 아까와는 다른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살짝 혀를 차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다시 묻는다.
―나는 야장의 기술에 대해서 정확하게 모른다. 역병의 수해에서 원석을 발견했지만, 그걸로 뭘 어떻게 하라고 할 수가 없었지. 어떤 식으로 제련해내고, 어떤 식으로 가공해야 하는지 전혀 몰라. 조금 전에 네가 한 짓도 내게는 그저 마그마 로드가 혀를 날름날름하면서 휘젓는다, 그 정도밖에 파악되지 않았다고. 그런데 만들어진 그 단검…… 해체되고 조립, 결합되는 그 단검은 어지간한 흑요강 소재의 도구만큼 되거든. 간단히 말하자면, 샤벨투스의 발톱이나 이빨로 만들어진 몬스터 블레이드처럼 세상에서 알아주는 흑요강의 칼날을 만들었단 말이야. 몬스터의 능력으로 날름거리면서, 바로 투란 네가! 그냥 모양만 잡은 것도 아니고 인힐트의 기능을 위해 필요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구성을 가진 걸로!
줄줄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투란은 자신이 뽑아낸 단검을 바라봤다.
옛날 샤오콴 마을에서 봤던 사제의 단검을 흉내 낸 것이지만, 그것이 지녔다는 이상한 힘과는 전혀 상관이 없기도 하지만…… 이 흑요강의 칼날은 꽤 대단하다고 드라고니아가 놀래주고 있다?
새삼 투란은 맛에 따라 분류해놓은, 나름대로 정련했다 싶은 강괴를 보면서 중얼거린다.
“그렇게 대단한 거였어? 이 흑요강이라는 거, 샤벨투스의 이빨이나 발톱이랑 비슷한 취급을 받을 정도였어? 그래서 역병의 수해에서 꼭 가져가야 한다고 그렇게 박박 우겨 댔구나.”
―상아탑이나 인간 야장 사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만, 흑요강의 원석은 드라코눔 야장에게는 아주 귀한 소재다. 드라코눔에서도 특별한 몇 곳에서만 조금씩 발굴해내거든. 설마 역병의 수해 강변에 그렇게 널려 있을 줄은 몰랐지.
“흐흠…….”
문득 투란은 그 강변에서 헬임프의 불꽃으로 원석을 벌겋게 달궜던 일을 떠올렸다. 평소와 다르게 꼭 가져가자고, 꽤나 어울리지 않게 으르렁대듯 징징거렸던 드라고니아였다. 때문에 한참 투덜대면서 가져왔는데, 가져와서 오늘 대강 맛보며 만들었더니 아주 대단한 물건이 되었다니…… 생각보다 보람을 느낄 일이 아닌가?
“하클 할배에게 물어보면 알겠지.”
―뭐?
“이거, 한주먹 정도 섞어서 잘라다 줘보면 여기서도 귀한 건지 아닌지, 하클 할배라면 말해줄 거라고. 직접 다룬 적은 없다고 해도 그 할배 정도면 뭔지 말해줄 수 있어 보이잖아?”
―그건…… 그렇기는 하군. 태엽을 만드는 기술만 놓고 봐도 확실히 하클은 춤추는 산맥 너머를 다녀온 듯하니까.
“어? 뭔 얘기야?”
갸웃하며 투란이 물었다.
알드바인은 산맥 안쪽 깊은 곳의 경계도시와 가깝지 결코 산맥 밖의 세상과 가깝지 않다. 한데 알드바인에서 영감 소리 듣는 하클이 산맥 바깥 세상과 관련이 있다? 투란에게는 뭔가 어리둥절한 이야기였다.
―하클의 태엽장치는 요정 일족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요정 일족의 섬세한 감각과는 다르지만, 하클의 제작기술은 분명히 그쪽과 관련이 있어. 어쩌면 거기서 살다 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녀온 적이 있든가 할 거야.
‘헤에?’
투란은 눈을 반짝였다.
춤추는 산맥의 경계를 벗어난 곳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라니, 원래 산맥 밖에서 살다가 들어와서 몬스터와 마수가 넘쳐나는 상황에 놀라서 도망치려 한다는 이야기랑 비교하면 꽤 대단한 경우가 아닌가! 몬스터 헌터들이 언젠가 몬스터에 대해서는 말로만 듣는 평원으로 가서 살겠다고 하는 이야기까지 떠올리면, 하클은 이모저모로 특이한 할배가 분명했다.
“좋아, 내일 이거 갖고 가서 살짝 물어봐야지!”
히힛 하면서 투란이 중얼거렸다.
그 장난스러우면서도 음험한 기분을 느낀 듯, 드라고니아가 어깃장 놓는 소리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투란의 뇌리에 꽂아준다.
―내일도 오늘처럼 하겠다고? 엉거주춤하니 뒤통수에 뭐 날아올까 무서워하면서 꼬리 늘어뜨린 도마뱀처럼 어기적대는 꼴로 하클의 공방까지 뒤뚱거리며 가보겠다고? 지나가다가 너보고 놀라는 사람들 기억 안 나냐? 다들 너 미친놈인가 아닌가 궁금해 하더라만…….
‘시꺼! 대책은 이미 세웠다! 너무 갑자기 안하던 짓 하려니까 낯설어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조금씩 익숙해지면 된다고!’
웃음을 싹 날려버리고, 울컥한 표정이었지만 아주 진지하게 투란이 소리 없이 외쳤다. 때문에 드라고니아는 아주 수상한 낌새를 느낀 듯…….
―조금씩……? 뭐야, 사람의 기준이 어쩌고 하더니 그냥 포기하는 거냐?
슬쩍 투란이 대책이라고 외친 속셈을 짚으면서 물었다.
아무래도 오늘처럼 몬스터의 형상을 완전히 지워놓은 상태로 다시 나돌아다닐 생각은 없는 듯하잖나!
‘목숨은 하나뿐이고, 소중한 거야!’
입을 꾹 다물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투란이었다.
이에 드라고니아는 어쩐지 자신의 추측이 맞을 듯하다 여길 수 있었다.
투란은 내일부터 할 일을 생각하면서 깊이 숨을 들이쉬었고………….
키릭, 차르륵!
흑요강 단검 자루가 검은 칼날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