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3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27)
‘쟤들 내려오기 전에 정리해야겠네!’
투란은 조금 조급한 기분으로 숨을 고르면서 마음을 정했다.
우거진 숲에 가려진 먹잇감을, 금방 죽어서 싱싱한 먹잇감을 바로 알아차리고 모여드는 저 독수리 떼는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녀석들이었다. 그런 녀석들이 투란이 힘겹게 멧돼지와 결판을 내자마자 바로 머리 위, 까마득하니 높은 곳에 나타나서 맴돌고 있다!
조금 여유를 챙기려 하다가는 사냥감에 대한 권리를 바로 포기했다 여기고 내려앉을 텐데…… 며칠 전에 이미 한 번 본 바로는 ‘사나워도 새잖아.’라고 얕볼 수가 없는 녀석들이었다.
전에 만난 뿔수리처럼 가볍게 몸통 길이만 2미터를 넘기는 수준은 아니지만, 이 멧돼지처럼 1미터 80센티까지는 될 놈들이다! 발톱이 웬만한 단도를 갖다 붙여놨다 싶을 정도로 험상궂고 날카로워 내려앉았다가는 바로 멧돼지가 산산조각 나서 흩어진 채로 하늘을 나는 고깃조각이 될 것이다!
이미 큰곰을 그렇게 토막질 쳐서 냅다 날아오르는 꼴을 봤기 때문에 투란에게는 아주 당연한 예상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비춰주는 표식 몇을 바로 확인했다.
‘지금 여기, 나 말고는 없는 거지? 엿보거나 멀리서 구경하거나…….’
―저 독수리 떼 말고는 없다. 저 녀석들도 누군가에게 어떤 방법으로 길들여진 적은 없는 모양이고.
드라고니아가 대답했다.
‘좋아!’
바로 투란은 두 손에 윌 라이트의 마력을 집중했고, 표식에 따라 두 자루 장검, 구르다 걸려서 빼버린 검갑, 끈이 끊어진 배낭을 향해 내밀었다. 곧바로 표식된 장검, 검갑, 배낭이 땅 위를 기는 것처럼 투란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들어 올려서 가져오지, 왜 걸리적거리게 바닥에 붙여서 움직이나?
아무도 없으니 그저 공중으로 들어 올려 바로 당겨도 될 텐데 굳이 지면 가까이 붙여 당기는 광경에 드라고니아가 의아해했다. 이러면 애써 주변에 누가 있나 없나 확인할 필요도 없잖은가?
‘아무도 없지만 조심해야지!’
이리저리 주변을 껑충거리면서, 당긴 것들을 하나씩 집어 오리는 채로 투란이 대답해줬다. 이에 드라고니아가 잠깐 어이없어 했고, 그사이에 투란은 재빨리 두 자루 장검을 검갑에 밀어넣고 등에 걸며, 배낭을 옆구리에 끼고 멧돼지를 향해 돌아서 달렸다.
비탈과 돌, 거친 바닥에 발목이 이리저리 삐끗대는 기분이었지만 투란은 독수리 떼가 슬슬 가라앉는 광경을 보며 서둘렀고, 금방 멧돼지를 밟고 설 수 있었다.
‘우와, 하클의 장화랑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잖아!’
털썩 멧돼지 위에 주저앉으면서 시큰한 발목, 가죽장화 위를 손으로 꾹꾹 누르면서 투란은 소리 없이 투덜거렸다.
어제까지 신고 다녔던 하클의 스파이킹 부츠, 그 장화와 알드바인의 보통 갖바치가 정성껏 만든 장화 사이에는 확실히 격차가 있었다. ‘기계태엽을 내장하고 몇 가지 형태로 용수철이 붙은 골격보조대가 붙어 있다.’라는 설명에 무슨 뜻인가, 신고 다니면서 갸웃거렸는데 그걸 벗고 보통 장화를 신고 나니 걸으면서 은근히 발목과 발바닥의 화끈거리는 느낌이 심해졌고, 지금 제대로 그 뜻을 알려주는 상황이었다.
―동전으로도 살 수 있는 장화랑 은전 이십 닢짜리랑 차이냐?
‘야, 동전 아니고 은전 주고 산 장화거든?’
투덜거림이 장화를 살 때의 기억과 함께 불쑥 튀어나갔다.
갖바치가 모여있는 곳에서 한쪽을 보며 은전 한 닢에 살까 말까 하는데, 다른 쪽의 갖바치가 재빨리 나서서 한 말이 ‘동전으로도 살 수 있는 질 좋은 가죽장화가 이쪽입니다!’였다. 은전 한 닢을 불렀던 갖바치가 어이없어 했지만 투란은 ‘동전? 몇 닢?’이라고 얼른 물었다. 그런데 나온 말이 ‘동전 아흔아홉닢! 하지만 특별히 할인해드리죠, 소년! 아흔다섯 닢만 내면 됩니다!’였다. 금전과 은전처럼, 은전과 동전 역시 일당백의 비율이었으니 결국 동전 다섯 닢을 깎아준다는 소리였다. 적어도 동전 이삼십 닢은 깎아주는가 기대했던 투란은 은전 한 닢짜리로 샀다. 핑계로는 동전이 없어서라고 주절댔고 거스름돈 내준다는 소리도 싹 무시했었다.
두 갖바치가 만든 장화의 품질은 그냥 엇비슷했지만, 깎아준다면서 놀리는 듯했던 쪽이 좀 미웠던 투란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하클의 장화, 스파이킹 부츠까지 일단 떼어놓고 보다 초보적인 사냥꾼의 모습을 갖추려고 갈아신은 것인데, 어째 이대로 이 험한 산속 숲을 계속 뛰어다니다가는 발목과 발바닥이 꽤 상처 날 듯하잖나.
―독수리 녀석들이 아예 너까지 덮칠까 고민하는 모양이다만?
갑자기 드라고니아가 말머리를 돌렸다.
‘에? 아, 저 못된 놈들!’
위를 흘깃 보면서 투란은 투덜거렸지만, 재빨리 구겨진 배낭을 열었다.
외형의 구겨진 것과 다르게 배낭 안의 물품들은 차분하게 정리된 그대로였다.
대부분 안쪽 주머니와 칸막이, 고리로 묶인 채였기에…… 그렇지 않고 그냥 배낭안에 대충 던져놓은 것, 보자기로 꽉 싸서 단단히 뭉쳐놓은 밀포와 육포의 보자기는 배낭 안에서 굴러다니는 중이었다.
투란은 배낭 위편에 가로질러 걸린 단도를 칼집에서 뽑았다.
한쪽은 매끈한 칼날, 한쪽은 톱니인 단도는 자루의 고리 하나를 푸는 순간에 두 배로 길어졌다. 그래 봐야 30센티에는 전혀 닿지 않는 길이였지만, 그럭저럭 사납고 흉악해 보였다.
그 단도를 들고 투란은 재빨리 멧돼지의 몸을 오갔고, 일단 네 다리를 발목 쪽에서 잘라냈다. 잘라낸 발목을 얼른 배낭 아래 붙은 그물끈 속으로 엮어 넣고, 그다음에는 멧돼지의 목덜미를 썰어냈다.
피가 튀면서 상당히 보기 섬뜩한 꼴이 되었지만 투란은 눈을 살짝 찌푸린 채로 과감하게 손을 움직였고, 멧돼지의 머리를 잘라냈다. 송곳니가 여럿 삐죽거리는 머리를 배낭의 끊어진 끈으로 감아 배낭과 함께 대강 묶고 나서 투란의 눈길이 위를 향했다.
어느새 독수리 떼는 굵은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있었다.
마치 투란이 사냥한 먹잇감이니까 일단 투란에게 한몫 떼어갈 기회를 준다는 듯한 눈길이었다.
“벌처(Vulture), 나중에 제대로 혼내주마!”
살짝 이를 가는 소리를 내면서도 투란은 멧돼지의 네 다리, 발목이 끊어진 네 다리를 둘러봤고 살이 두툼하게 오른 엉덩이랑 이어진 뒷다리 하나를 골랐다. 투란이 머뭇거림 없이 고른 다리를 단도로 마저 썰어내니, 위에서 독수리 떼가 살짝 언짢은 것처럼 꿔어꿔어 대는 소리를 냈다. 마치 너무 많이 가져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잔소리처럼 들린다!
그래도 투란은 다시 한 짝을 완전히 썰어냈고, 배낭과 머리와 함께 양쪽 옆구리에 낀 채로 냅다 뛰었다. 급한 대로 핏방울이 잔뜩 발린 단도 자루를 입에 문 채로!
곧바로 투란의 등 뒤에서 푸드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대강 20여 미터를 뛴 다음, 투란이 옆구리에 낀 것을 내려놓고 단도도 손에 뱉어내며 돌아보니 독수리 몇 마리는 적당히 썰어낸 멧돼지 살덩이를 발톱에 움켜쥔 채로 이미 날아오르고 있었고, 서너 마리가 남은 것을 놓고 서로 꽥꽥대며 다투고 있었다. 그 다툼도 금세 끝났는데, 마지막 날아오른 독수리 발톱에 멧돼지의 척추와 가죽이 길게 늘어지는 꼴로 봐서는 남은 것이 핏자국뿐이 아닐까 싶었다.
그 광경을 보다가 투란이 눈매를 찌푸리면서 두리번거렸다.
‘혹시 개떼 몰려오는 거 아냐?’
―가까운 곳에는 없다만…… 피 냄새가 풍기면 금방 쫓아올 것 같은 녀석들이 몇 킬로 간격을 두고 있기는 하군.
‘아, 그래?’
아예 없다는 소리가 아니라서 실망한 투란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갈기 산맥에서는 아직 몬스터나 마수, 혹은 아직 짐승인 히엔나도 본 적이 없었다. 대신 산을 뛰어다니는 개떼…… 들이 아니라 산에서 뛰며 사니까 들개가 아닌 산개라고 불러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개떼가 있었다. 저 독수리 떼처럼 누군가 사냥하고 먹다 남긴 고기를 탐하거나, 산중에서 그냥 널브러진 짐승의 시체를 뜯어먹는 녀석들이었다. 어딘가 히엔나랑 닮은 듯하지만, 히엔나는 아닌 산개…….
스쳐가는 사람이 어딘가 약해 보인다 싶으면 바로 덮치는 개떼였다.
‘저 아래로 해야겠다.’
투란은 굵은 나무뿌리가 툭 튀어나오고 그 아래로 꽤 가파르게 비탈이 이어진 자리를 찾아낸 다음, 내려놨던 짐을 들어 옮겼다. 배낭의 바깥쪽이 한 겹 얇게 열렸고, 작은 삽과 곡괭이를 겸할 수 있는 사냥꾼을 위한 야삽(野揷)이 접힌 모양으로 나왔다.
쿡, 콱, 쿡, 콱.
삽과 괭이의 양쪽이 번갈아가며 나무뿌리 아래를 긁어냈고, 손발이 함께 흙덩이를 쳐내고 차냈다. 나무뿌리 아래가 움푹 패면서 나무뿌리가 대들보 노릇을 하는 듯한 구멍이 생겼다. 덤으로 가까운 곳에 흩어진 마른 나뭇가지와 잎도 틈나는 대로 모았고…….
‘금방 끝났지?’
이마에 땀을 훔쳐내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금방? 이십 분 정도 지났다만?
‘어? 에…… 그 정도면 초보치고는 빠른 거 아닐까?’
겨우 1미터가량의 깊이와 너비였지만 투란은 자신에게 관대한 기분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디그 한 번이면 이보다 세 배는 더 넓게 뚫었겠다만…… 대체 기준이 뭐냐? 칼이랑 배낭 챙길 때는 마법을 쓰고, 이런 구멍 하나 판다고 이십 분을 마법없이 삽질하고…… 뭘 척도로 삼아 정하는 거야?
‘어? 음…… 일단 몸 쓰는 거는 마법없이, 하지만 뭐 찾는 거는 시간 절약을 위해 마법으로? 그런 느낌? 모르겠어?’
―느낌? 알 리가 없잖아!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선택이 종잡을 수 없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애초에 투란이 뭐 하러 이러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히죽, 투란은 웃었다.
“살다 보면 이런 걸 겪었다고 이야기할 필요가 생기는 거라고.”
―이야기?
갑작스런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가 조금 당혹스럽게 한마디를 짚었다.
후욱, 숨을 몰아 내쉬면서 투란은 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파냈던 흙 중에서 축축한 쪽을 골라 멧돼지의 뒷다리 한 짝에 발랐고, 삽질하며 주변에서 긁어 모아둔 마른 나뭇가지와 잎과 함께 뭉쳤다. 그다음, 수평으로 뚫린 구멍 안 깊숙이 밀어넣고 입구 쪽에 앉았다.
대강 밖을 둘러보는 위치를 잡은 다음, 투란은 토치 라이터를 배낭 안에서 꺼내 나뭇가지와 잎더미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 나서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이야기라니, 대체 뭔 말이야?’ 하며 의아해 하는 바에 대해 소리 없이 말해준다.
‘쉽게 말해서, 내가 초보 시절에는 말이지 하는 그런 이야기. 남한테 들은 이야기가 아니고, 자기가 직접 겪은 이야기. 남의 이야기를 듣고 떠드는 거랑,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떠드는 거랑 꽤 다르거든.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쿨럭.
매캐하게 뿜어지는 연기가 투란이 코와 목을 덮으면서 기침을 토해내게 했다.
“이런 거, 겪지 못하면 모른다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약간 예상 밖의 상황을 겪는다는 것을 실토하면서 투란이 엉금거리며 엉덩이를 뒤로 뺐다. 구멍 밖으로 나오니, 구멍 안에서 시커멓게 자욱해진 연기가 팍팍 치솟아 퍼지는 광경이 눈물과 함께 보이잖나!
―구멍이 그냥 화덕이 된 모양이군.
드라고니아가 이모저모로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툴툴거리는 소리를 낸다.
“젠장, 역시 굴뚝도 뚫어놔야 하나…… 아니, 좀 깊이 팠어야 했나?”
―야, 불이 꽤 거세게 번진다. 배낭이랑 멧돼지 머리통도 불붙게 생겼어.
“으흑!”
짧은 소리를 내고 투란은 재빨리 멧돼지의 머리, 잘린 발목이 묶인 배낭을 끌어냈다. 여전히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지만, 축축한 흙으로 가득한 구멍 속에서 숲으로 번져 나오는 불씨는 없었다.
오래가지 않아 불은 연기와 흔적만을 남긴 채로 꺼졌다.
안에 밀어넣었던 나뭇가지와 잎사귀 더미는 모조리 타서 재가 되었고, 흙구이를 하려 했던 멧돼지 뒷다리는 잔뜩 그을린 채로 그 속에 묻혀 있었다.
투란은 바로 단도로 불에 그을려 말라버린 흙조각을 털어내고, 뒷다리의 속살을 썰어냈다. 속살 깊은 곳은 아직 피가 맺힌 꼴이었지만 껍질 언저리는 제법 익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것도 잘하려면 여러 번 해봐야겠네.’
샤오콴 마을에서 화덕을 쓸 수 없을 때, 사용하던 것이 이 흙구이였다.
흙을 얼마나 찰지고 축축하게 바르는가, 얼마나 오래 불구멍 속에서 그을리고 구워내는가가 요령인 조리방법이었다. 그때는 중요한 식량을 애들이 멋대로 손대서 망가뜨릴까 봐 어른들이 끝날 때까지 가까이 하지 못하게 막았다. 덕분에 투란은 흙구이 방법을 알아도 여전히 초보!
익은 부분을 베어먹다가 투란은 다시 마른 나무를 모으고, 돌도 몇 주워 쌓았다.
쌓인 돌 위에 덜 익은 멧돼지 다리를 올리고, 돌 틈새에 깔아둔 나무에 불을 붙였다.
―이번에는 흙 안 바르냐?
‘생각해보니까…… 여기서는 한 번에 딱 맞춰서 구울 필요가 없잖아. 불 모자라면 나뭇가지 더 모으면 되고 말이야. 샤오 마을에서 화덕을 못 쓸 때는 땔감이 부족한 경우라서…… 모아놓고 한 번에 구워내야 했었지.’
익어가는 고기를 구우면서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갈기 산맥은 뭔가 샤오콴 마을보다 풍요롭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