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3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28)
컹, 커엉!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흐릿하니 들려왔다.
“가야겠네…….”
투란은 아직 반쯤 고기가 남은 멧돼지 다리를 구멍 깊이 던졌다.
야삽으로 흙을 몇 번 퍼서 그 위로 뿌렸다.
적당히 흙에 고기가 가려진 것을 확인하고 야삽을 접어 배낭 옆에 다시 끼워 넣었다. 그리고 야삽을 끼운 주머니를 덮으며 반대편에 붙은 빳빳하고 긴 주머니 쪽을 열어봤다. 적당한 크기의 화살이 빼꼼하게 그 안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촉을 내밀었다. 험하게 굴렀지만 배낭 옆구리 화살 주머니는 거든히 버텨내면서 화살을 보호한 셈이었다.
다음에 배낭을 열고, 한쪽으로 세 토막으로 나눠지고 활줄도 떼어낸 활을 확인하고 그 작은 안주머니에 담긴 활줄도 손가락으로 살짝 만져본 다음, 투란은 배낭 바닥에서 뭉쳐놓은 그물뭉치를 꺼냈다.
그물뭉치를 펼쳐 멧돼지 머리를 감싸 보따리에 담듯 한 다음, 그물의 한쪽에 늘어진 여분을 단도로 잘라냈다. 잘라낸 그물은 끊어진 배낭 끈에 구멍을 뚫고 꿰어 넣었고, 단단히 묶어서 배낭끈이 다시 그 역할을 하도록 고쳤다. 다시 배낭 안을 더듬어 정리하고, 단도까지 넣고 꽉 조여 닫는 것도 금방이었다.
그다음에 투란의 손은 어깨너머를 더듬었다.
다시 반 토막으로 접힌 검은 목 뒤에 슬쩍 칼자루 끝이 닿을 듯했고, 오른쪽 어깨 너머로 툭 튀어나온 두 자루 장검의 자루는 바로 손에 잡히는 자리였다. 검의 위치를 확인하고 나서 배낭의 끈이 왼쪽 어깨 위를 가로지르고 등짝을 볼록하게 하듯이 배낭을 멨다.
그물가닥을 손잡이 삼아 멧돼지 머리를 들어올린 뒤, 투란은 잠시 귀를 기울였다.
산개 떼가 짖는 소리가 느릿하니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냥 가려고? 저 녀석들한테도 한번 죽을 뻔했잖아?
드라고니아가 슬쩍 놀리는 듯이 말했다.
‘응? 야, 그때 그 녀석들은 몽땅 찍어죽였잖아.’
투란이 저 산개 떼가 그때 그 산개 떼가 아닌 것을 짚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개에게 한번 물리면 모든 개가 자신을 물었다고 착각하고 그러는 거 아니냐?
이번에는 조금 진지한 척하는 말이었다.
투란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바보도 있기는 하지. 옆집 꼬마에게 맞았다고 그 집 사람 전부 다 자기 원수니 뭐니 하는…… 근데 난 아니거든!’
―흐흠? 그래서 저 산개 떼가 남긴 고기를 찾아 뜯어먹거나 말거나 여기서 도망치는 거냐?
‘어이, 일부러 놔둔 미끼라고, 미끼! 이건 똑똑한 짓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의 발은 슬슬 잰걸음으로 샛길을 밟으며 반쯤 달리기 시작했다. 갈기 산맥의 산개 떼랑 다시 엮이고 싶지 않다는 듯! 이미 한번 겪어봤으니 다시 보기 싫다는 듯!
그렇게 달려 나간 산속의 어두운 샛길은 구불거렸고, 거칠었다.
울창한 나무가 높이 솟아 활짝 잎을 펼친 어둠이 나무 틈새를 가득 채운 듯했고, 바람은 오직 나무 꼭대기 위에서만 노래하며 스쳐가는 듯했다.
길을 잘못 들면 바로 헤매며 엉뚱한 곳을 향해 죽을 때까지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숲의 미로, 그 샛길을 타고 반쯤 달리는 모습으로 투란은 걸었고 알드바인의 높디높은 상아탑이 보이는 곳까지 왔다.
숲의 울창함을 조금 덜어낸 듯한 절벽 위, 투란은 그런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비탈진 샛길에 섰고 잠시 숨을 골랐다.
‘몇 시간 걸렸지?’
―대강 여섯 시간? 멧돼지를 만나기 전까지 두 시간 정도, 만나고 나서 소란피우는 일에 또 두 시간 정도……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이 또 두 시간…….
‘그래? 그렇다면…….’
멧돼지를 만나서 예정보다 빨리 돌아왔다.
그런 중상을 겪고도 거뜬히 살아남을 수 있는 투란 같은 경우가 아니었다면, 아예 돌아오지 못할 만남이었다. 간신히 멧돼지를 잡고 살아남았다고 얘기한다면 예정과 다른 빠른 귀환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북쪽 성벽의 망루, 절벽 위에 세워진 석조건물을 보면서 투란은 해야 할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러는 사이 드라고니아는 다시 어제와 같은 감상을 토해낸다.
―정말 희한한 도시로군.
뭐가 그리 희한하고 신기하냐고 투란은 묻지 않았다.
투란에게도 알드바인의 풍경은 가는 곳마다 신기했으니까.
‘익숙해지면 그러려니 하게 되겠지, 뭐…….’
남쪽 성벽과 다른 이 북쪽 성벽, 마치 알드바인을 내려다보는 절벽처럼 꾸며진 성벽은 남쪽 성벽처럼 뭔가 넘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담장이라기보다는 이 갈기 산맥의 한 자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갈기 산맥에서 찾아드는 어지간한 짐승이 뛰어내릴 궁리를 못 하게 막을 작정인 양 성벽은 높았다. 때문에 성벽 위에 세워진 망루는 산에서 내려다보면 돌로 지어진 삼 층짜리 오두막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 석조 오두막을 향해 투란은 미끄러져 내려갔다.
슬슬 걷는 것보다 미끄러지는 쪽 편안한 길이었으니…….
“여어! 오늘은 뭐야? 사나흘 나간다더니? 독부엉이처럼 뭔가 보기만 해도 무서운 걸 또 봤어?”
이층의 창턱에서 고개를 내밀며 투란에게 외치는 이가 있었다.
투란은 그에게 말로 대답하지 않고 멧돼지 머리를 쳐들어 보였다.
“엥? 뭐야, 멧돼지 한 마리 잡고 돌아온 거야?”
대답 없이 투란은 망루의 아래층 문을 향해 걸었고, 위를 보며 손짓했다.
그 손짓에 위에서 말을 걸던 이가 갸웃하면서 아래를 향해 외친다.
“마켈! 꼬맹이 투란 왔다! 문 열어! 오늘은 멧돼지랑 사귀다가 머리만 떼서 돌아온 모양이야!”
끼익, 키이잉.
문은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렸고, 빼꼼히 고개를 내민 털복숭이 마켈이 투란을 훑어봤다.
“그거……? 호오?”
마켈의 표정을 보고 투란이 오히려 갸웃하면서 묻는다.
“이 멧돼지, 아는 사이예요?”
뭔가 이전에 사귀던 친구냐고 따지는 듯한 물음이었다.
마켈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투란에게 어서 문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하며 대답한다.
“험한 꼴 겪었나 보네. 하지만 살았으니 운이 나름 괜찮은 거야. 뭐, 투란 네 운은 계속 좋은 듯하지만…… 그 멧돼지랑 만나서 죽은 녀석도 있어. 멋모르고 얕보다가 죽을 뻔한 녀석도 꽤 있고…… 죽을 뻔했지만 안 죽은 녀석들이 현상금을 위탁했어. 덕분에 마수도 아닌 녀석이 나름 비싼 몸이라, 이거지.”
끼익, 쿵.
석문이 닫혔고, 빗장이 내려졌다.
“비싼 몸? 진짜요?”
투란이 조금 들뜬 목소리로 되물었다.
마켈이 한층 더 짙은 쓴웃음을 지을 때, 위층에서 타닥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내려다보던 이가 내려오며 소리친다.
“어이, 어이! 진짜 그게 그 멧돼지 머리야? 멧돼지 주제에 은전 열 닢이나 하는 그놈 맞아?”
“맞아, 라펜. 이빨 박힌 꼴을 보라고.”
마켈이 대답했다.
투란은 ‘이빨?’ 하면서 그물에 감긴 멧돼지 머리를 들어올려 훑어봤다.
라펜이 함께 훑어보다가 말한다.
“허? 진짜네? 야, 이거 어떻게 잡았냐? 칼날도 튕겨내면서 칼잡이처럼 이빨 휘둘러댄다는데…… 나무에 숨어있다 뛰어내려 등에 올라타고 찍은 거야?”
멧돼지 이마빡의 흔적을 손끝으로 쿡쿡 찌르면서 라펠은 신기해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투란이 멧돼지랑 마주 돌격해서 푹 찔렀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처럼…….
“음, 뭐…… 숨어있지는 않았지만 비슷하게 되긴 했네요.”
투란이 슬쩍 말을 흐리면서 대답했다.
마켈과 라펜이 눈을 가늘게 하면서 투란을 이리저리 훑어봤다.
잔뜩 긁힌 흔적을 둘러보다가 마켈이 갸웃하면서 말한다.
“꽤 뒹굴었구만…… 멧돼지에게 쫓기다 나무 타고 올라가 숨으려 한 거냐?”
“에, 뭐…….”
별로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싫다는 듯이 투란이 어물쩍하는 소리로 대답했다.
순간 라펜이 풋 하는 웃음부터 흘리면서 키득대는 소리로 떠든다.
“뭐야, 열심히 나무 끌어안고 올라가는데 얘가 쾅 하고 들이박아서 떨어지는 김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칼로 콱 쑤셨는데 정수리에 꽂힌 거야? 그런 거야? 응, 그런 거구나! 푸하핫!”
“웃지 말아요! 재미없거든요!”
투란이 으르렁대는 소리를 볼멘 표정으로 뱉어냈다.
그러나 라펜은 웃음을 그치지 않았고, 그 곁에서 마켈이 헛기침을 하며 조금 큰 목소리로 그 웃음을 덮겠다는 듯이 말한다.
“운이 좋았구나, 투란. 이건 진짜로 운이 좋은 거야. 떨어졌다가 그대로 밟혔으면 이놈 위장 속에서 마지막 숨을 쉬었을걸. 이 멧돼지는 무리에서 떨어진 늑대도 죽이고 뜯어먹는 놈이라고. 혼자 다니는 인간 하나는 간식거리로 여겼을걸.”
“하하하핫, 결국은 이놈이 간식거리로구만! 아, 근데 왜 머리통만 떼어온 거야? 아니, 발목도 매달고 있기는 하네. 몸통은? 무겁기는 하겠지만 가죽 정도는 조금이라도 벗겨올 만하지 않았어?”
히히거리면서 웃는 와중에도 라펜은 투란을 빙빙 돌며 살피는 채로 떠들며 묻고 있었다.
그 꼴을 조금 얄밉게 바라보면서 투란이 쀼루퉁하니 대답한다.
“독수리 떼가 맴돌고 개소리가 들리길래 바로 빨리 잘라내서 왔죠. 이놈 송곳니랑 발굽이면 헛걸음한 하루는 아니겠다 싶어서 말이에요. 근데 진짜로 은전으로 상금 걸린 놈이에요?”
“길드에 가보면 바로 알 텐데 그걸로 공갈치겠냐?”
마켈이 조금 무뚝뚝한 말투로 대꾸했다.
바로 투란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고…….
“음, 독부엉이 때를 생각하니…… 역시 바로 가서 확인하는 게 좋겠군요!”
조금 거칠게 마켈과 라펜을 째려보는 눈빛과 함께 으르렁대는 말이 나왔다.
마켈은 조금 민망한 듯한 헛기침과 함께 옆으로 눈길을 싹 돌렸다.
하지만 히히거리던 라펜은 투란에게 혀를 날름했다.
“야, 그건 우리가 잘 처리해준 거잖아. 네 몫도 분명히 계산해줬는데 섭섭해 하면 우리가 서운하지! 하핫, 어차피 뭔지 몰라 손도 못 댔는데 은전 두 닢이나 챙겼잖아!”
그리고 오히려 으쓱대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 거짓말이 꽤 잘 통하고 있군.
드라고니아가 새삼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입술을 삐죽이면서 라펜과 마켈을 흘겨보는 시늉을 했다.
이 성벽을 처음 나섰던 그날…….
투란은 독부엉이를 만났고 활로 쏴 잡았다.
하지만 그 주변에서 괜히 함께 떨어지는 새랑 다람쥐에 놀라서 가까이 갈 생각을 못하고 뒤돌아 도망쳤고, 망루로 돌아와 라펜과 마켈에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라펜과 마켈은 바로 투란을 망루에 남겨둔 채로 독부엉이가 떨어졌다는 곳으로 갔고, 깔끔하게 독부엉이를 챙겨왔다. 그 독부엉이를 길드 쪽에 넘기고 팔아 받은 은전이 열 닢, 투란의 몫으로 두 닢을 떼어줬다……는 것이 그날의 정리된 이야기였다.
‘독부엉이 근처 흔적도 깨끗이 지웠으니 통한 이야기지. 암, 고생한 거짓말이었다고. 그러니까 은전 네 닢은 내가 받아야 했는데! 체엣!’
진짜로 벌어졌던 일은…… 독부엉이를 쏴죽이고 멋모르는 채로 가까이 붙어서 깃털 쓰다듬었다가 영문도 모르는 채 한번 죽는 꼴이 되었던 투란이 자신이 독부엉이 가까이 다가간 흔적을 깔끔하게 지운 채로 주변의 다람쥐, 새 한 마리를 산 채로 잡아 독부엉이 곁에 던져 죽게 한 다음에 망루로 돌아와 이러쿵저러쿵 어리숙하게 떠든 것이 그날의 진실이었다.
투란으로서는 과연 북쪽 성벽의 망루를 맡고 있는 경비가 이 일을 어떻게 다루는가 궁금했던 것인데…… 둘은 헌터로서 순차적으로 돌아가는 경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독부엉이를 처리하는 법을 모르는 어리숙한 투란을 대신해서 독부엉이를 처리하고 당당하게 그 몫까지 나눠줬던 일로 여기고 있었다.
라펜과 마켈에게는 다른 의심을 할 부분이 없이, 그냥 그렇게 된 일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날 투란을 향해 잘했다는 칭찬도 잊지 않기는 했다.
수상한 상황인데도 별일 있겠냐고 설레발치며 나대다가 죽은 녀석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날의 덤이기도 했다.
“아, 얼른 승강기 문이나 열어줘요! 오늘은 내가 들고 갈 테니까, 안 따라와도 되거든요?”
“야, 우리도 교대시간이야. 기다려봐, 아래에서 올라올 거야.”
라펜이 투덜대는 투란에게 히죽대며 말했다.
그렇게 떠들면서 투란과 라펜, 마켈은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밟았고, 널찍한 아래층 석실에 이르렀다.
석실은 사방 석벽이 모두 똑같아 보였고, 중앙에는 의자와 탁자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짐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지금 움직이는 거 맞아요?”
투란이 한편 벽을 보면서 역시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마켈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한다.
“아까 내려갔어. 곧 올라올 거야.”
“응, 왔네.”
라펜이 갈라지는 벽을 보며 히힛 하는 소리로 말했다.
벽 안은 작은 석실이었고, 라펜과 마켈을 교대해 망루 경비를 맡은 이들이 서 있었다.
“여어, 수고하라고!”
스쳐가면서 가볍게 손을 내밀어 서로의 손뼉이 마주치게 하며 라펜이 말했다.
투란은 교대하는 둘에게 고개만 까닥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