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3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29)
“흐흠? 오늘도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네?”
“허어, 이젠 제법 사냥꾼 티가 나는데?”
교대하며 스쳐가는 둘이 투란에게 웃음과 함께 말했다.
투란은 둘을 향해 한숨을 쉬며 힘든 시늉을 했고, 라펜과 마켈을 따라 작은 석실, 승강기 안으로 들어갔다. 도저히 문이라 하기 어려운 벽이 닫혔고 투란에게는 이 상황이 마치 돌로 된 상자에 갇힌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도 아닌데 그 답답함은 아주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마음 한구석을 간지럽히고 불안함을 긁어대는 듯했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이런 기분을 알고는 폐쇄공황증(閉鎖恐惶症)이냐고 어이없어 했었다. 어딘가에 갇히거나 하면 벌벌 떠는 버릇, 혹은 병이라고 할 것이라 했는데 투란에게는 ‘내가 왜?’라는 반발심과 함께 억지로 버티겠다는 옹골찬 고집만 키워준 셈이 되었다.
그 덕분인가, 이제는 슬슬 꽉 막힌 돌상자가 아래를 향해 내려가는 느낌이 제법 재미있다고 생각도 되는데…….
“이거 대체 어떻게 움직여요?”
불쑥 라펜과 마켈에게 묻는 투란이었다.
라펜은 ‘엥?’ 하는 소리부터 냈고, 마켈은 ‘음? 그야…….’ 하다가 갸웃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곧 둘은 서로를 마주 봤고, 갸웃하다가 라펜부터 말한다.
“상아탑에서 만든 거니까, 마법 아닌가? 항상 작용하는 마법 같은 거 말이야.”
마켈이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상아탑에서 만들었지만 마법은 아닐걸. 기계술을 이용했다고 얼핏 들은 것 같은데…… 가끔 망가졌나 점검하는 것도 제대로 된 마법사라기보다는 견습이 나서는 것 같던데?”
투란은 둘이 의아해 하며 갸우뚱거리는 모습에 조금 처진 낯빛으로 웅얼거린다.
“아니, 맨날 타고 다니면서 왜 몰라요…… 가끔 타는 것도 아니면서…….”
라펜과 마켈이 움찔했다.
그리고 마켈이 ‘흐음.’ 하는 소리를 내는 사이, 라펜이 세찬 목소리를 뿜어낸다.
“투란! 쓸데없는 호기심은 위험한 거야! 마법사가 만든 물건에 대해서 너무 알고 싶어하다가는…… 마법사에게 무서운 꼴 겪는다!”
“어, 그러네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투란은 고개를 홱 돌리면서 표정은 ‘웃기고 있네!’라며 무시하는 모양을 확실히 보여줬다.
마켈이 쓴웃음을 지었고 라펜은 더욱 격렬하게 마법사가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사소한 일에도 얼마나 무서운 짓을 하는가에 대해 장대하게 떠들려고 했다. 하지만 승강기가 다시 벽을…… 그 석벽 문을 여는 순간에 투란은 냉큼 내달리는 모양으로 라펜을 뒤에 남겨둔 채로 나가버렸다.
“야아! 중요한 얘기라니까!”
입을 열었으니 계속 떠들려는 라펜을 뒤로 멀리 두겠다는 듯, 투란은 재빨리 길드의 창구(窓口) 쪽으로 움직였다.
길쭉하고 널찍한 탁자, 그 중간에 칸막이를 세웠고 칸막이 중간을 뜯어낸 모양을 한 창구 앞으로 투란이 바로 멧돼지 머리를 올려놨다.
“이거, 상금 붙은 돼지 맞아요?”
창구 너머에서, 바쁘게 서류를 뒤척이던 이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어깨 너머로 서랍장이 높이 서 있었고, 온갖 것을 담은 광경이 보였다.
“상금 붙은 돼지?”
“예! 상금 붙었다고 그러던데요!”
투란이 뒤쪽을 엄지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창구 담당자가 흘깃 라펜과 마켈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창구에 놓인 멧돼지 머리를 당겨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마수는 아니고, 이빨에 칼 맞은 흔적에다가…… 어, 이거 그놈이구나! 열 받는다고 이놈 저놈 심심풀이로 상금 걸며 내기했던 멧돼지! 아니, 이제야 잡힌 거야?”
조금 어이없다는 듯한 말끝의 물음은 투란의 귀를 쫑긋하게 했다.
“열심히 잡으러 다닌 사람이 없었어요?”
“응? 그야…… 없었지? 괜히 골탕먹었다고 짜증 내던 녀석들이 장난삼아 내기를 걸고 잡는 놈한테 몰아준다고 상금을 걸었거든. 뭐…… 그렇다고는 해도 멋모르고 나선 애송이들이 크게 다치고 죽는 일도 있었으니까. 잠깐 기다려봐.”
뭔가 관련된 것을 찾는 듯이 서류를 뒤척이는 창구 담당자를 향해 다가온 라펜이 말을 건넨다.
“은전 열 닢이잖아요, 모클. 그 뒤로는 장난하지 말라고 상금 수납을 안 해서…….”
“시꺼. 내기든 뭐든 공식적으로 위탁된 상금이라고.”
창구 담당자 모클이 냉정하게 라펜에게 대꾸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모클은 찾던 서류 한 장 을 찾아냈다.
“여기 있군. 어디 보자…… 못생긴 뻐드렁니, 짜증 나는 멧돼지. 잡는 사람이 은전 갖기. 위탁된 상금은 은전 열 닢…… 위탁자는…… 스무 명이 연서(連書)했구만. 그러면 전표로 줄까, 은전으로 줄까?”
멧돼지 머리를 당겨 치우면서 모클이 확인한 것을 말하며 물었다.
“일단 씻어야 하니까, 은전이요. 전표 젖는 거 싫어요.”
투란이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대답했다.
북쪽 성벽을 떠났다 돌아오는 사냥꾼에게는 간단한 세탁과 목욕이 필수적인 귀환 절차로 강요되었다. 위험한 독초의 포자(胞子)라도 묻은 채로 귀환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투란은 갈기 산맥에는 오래 잠복하는 포자를 뿌리는 독초가 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산속을 거닐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풀잎 만졌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뒤늦게 알게 된 셈이라 조금 짜증이 났었다.
전표를 받고 세탁하려다가 물에 홀랑 젖어 하마터면 찢어질 뻔도 했고.
그런 투란을 보고 라펜은 여지없이 놀려댔는데, 나중에 모클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원래 처음 북쪽 성벽을 나가는 사냥꾼에게는 그 시간에 경비를 선 이가 미리 경고삼아 말해준다고 했다. 그러니까 라펜은 놀려먹겠다고 말을 해주지 않았고, 마켈은 구경한 셈이다!
다시 생각해도 묘하게 성질나는 일이잖나?
그래서 창구에 놓인 은전을 손으로 쓸어 당기다가 투란이 불쑥 모클에게 물었다.
“상금 위탁이라는 거, 현상금 위탁인 거잖아요? 혹시 누구 한 대 때려주면 은전 한 닢, 이런 상금 위탁도 받아요?”
모클이 눈을 끔벅이다가 되묻는다.
“누가 맞는 꼴을 보고 싶은 건데?”
투란이 미묘하게 눈짓했다.
“어머나? 어이, 왜 이러시나, 꼬맹이가! 어이, 날 때리고 싶어? 그럼, 내게 그냥 은전 한 닢 줘. 맞아줄게!”
곁에서 라펜이 눈치챘다는 듯 히죽거리다가 볼을 내미는 시늉을 하며 나불거리는 모습이 왠지 더 얄밉잖은가! 바로 모클이 짜증 났다는 듯이 한마디 한다.
“위탁받는다. 한 놈만 한 대가 아니라, 같이 있으면서 말리지 않는 놈까지 덤으로 한 대 패라고 위탁할 수 있어.”
“우아, 진짜요?”
투란이 활짝 웃으며 확인하려 했다.
라펜과 마켈이 동시에 당황해서 모클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외친다.
“아저씨?”
“받는다고!”
투란의 손은 이 외침만큼 빨랐다.
은전 한 닢이 스윽 모클 앞으로 밀려졌고…….
“둘 다 한 대씩만 때려줘요!”
마치 모클에게 직접 의뢰하는 듯한 말이 툭 튀어나왔다.
라펜과 마켈이 ‘잠깐!’ ‘그런 걸 왜 받아!’라며 뭐라 더 말하려는 찰나, 모클이 냉큼 은전 한 닢을 손으로 쓸어가나 싶더니 탁자를 밟고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 동작이 뭘 의미하는가 누군가 따지기도 전에 세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빠악!
“꽥!”
“컥!”
라펜과 마켈이 서로의 머리를 충돌시키며 짧은 비명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졌다.
모클은 그런 둘을 내려다보면서 손을 탈탈 털고 흐뭇하게 웃었다.
투란은 창구 너머에 앉아 있다가 튀어나와 우뚝 선 모클을 보며 감탄했다.
나이가 제법 있는 은퇴한 분위기가 풀풀 휘날리는 헌터, 그게 창구 너머에서 서류를 만지작거리는 모클의 인상이었다. 그런데 막상 나와서 떡하니 서있는 꼴을 보니, 키만 1미터 90센티는 될 듯하고 체격은 날렵하면서도 알찬 근육이 툭툭 옷감 위로 튀어나올 듯하잖나!
―이 인간, 현역 몬스터 헌터잖아?
드라고니아도 살짝 놀란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도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 시원하다! 이 두 녀석 그냥 보내나 했는데…….”
“음? 보내요?”
투란이 갸웃하며 그 말꼬리를 붙잡았다.
신음하며 낑낑거리고 겨우 몸을 일으키는 라펜과 마켈을 보며 모클이 시원해서 기분 좋다는 듯이 대답한다.
“경비역이 끝났거든. 야, 얼른 일어나서 인수인계하고 꺼져. 소원대로 팀으로 돌아가든 새로 파티를 짜든 꺼져. 인수인계는…… 몰린, 카엘! 어디 있나? 이리 나와!”
모클이 주변을 둘러보며 외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투란도 재빨리 둘러봤다.
성벽의 승강기와 이어진 거대한 실내였고 곳곳에 긴 탁자와 긴 의자가 놓인 채로 다양한 이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지금도 여기저기 흩어진 채로 나름 와글거리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중에서 몇몇이 모클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면서 대꾸를 하는데…….
“어디 카엘?”
“나야, 쟤야?”
“모클, 어떤 카엘이냐고!”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모클이 으르렁대는 소리를 지른다.
“몰린! 너랑 같이 온 카엘 데리고 나와! 아, 기다리라니까 어디 갔어!”
몰린이랑 함께 오지 않은 여러 카엘이 꿍얼대면서 모클에게서 눈길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몰린이랑 같이 왔을 카엘은, 몰린과 함께 반응이 없었다.
모클이 인상을 구기면서 더 큰 소리를 지르려 하는데, 창구 가까운 탁자 곁의 긴 의자에서 누군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고 음울한 목소리를 울린다.
“여기 있다고, 여기.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라길래 가까운 곳에서 자고 있었구만…… 머리 울리니까 소리 좀 그만 질러요.”
“뭐야, 카엘 너 혼자야? 몰린은…….”
모클이 구긴 낯빛으로 언짢다는 듯이 말하는데, 카엘의 곁에서 누군가 손만 들어 탁자 위로 내밀며 흔들며 소리 낸다.
“옆에 있다고, 옆에.”
모클이 한숨을 쉬면서 라펜과 마켈에게 눈길을 주며 말한다.
“야, 쟤네한테 인수인계하고 꺼져. 다음에는 여기 말고 딴 데 가서 의무일 채워!”
“에이! 왜 사람 차별하고 구박을……!”
라펜이 투덜거렸다.
마켈은 그런 라펜과 자신은 다르다는 듯, 팔을 탁자에 대고 깊은 숨을 몰아내쉬는 카엘을 향해 묻는다.
“카엘……?”
그 말투에 바로 카엘이 조금 짜증 난다는 듯이 대꾸한다.
“본명이다, 본명!”
이는 투란을 웃게 했다.
“아하핫, 나도 본명인데…….”
카엘이 살짝 고개를 들고 투란을 보며 ‘넌 누구?’ 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너도 카엘?”
“아니, 난 투란이에요. 본명!”
“그러냐.”
한숨을 쉬면서 카엘은 탁자에 머리를 떨구며 더 자겠다는 듯한 자세가 되었다.
모클이 그 꼴을 보고 눈가에 살짝 핏대를 세웠다.
“마켈, 인수인계 제대로 하고 확인하고 가라. 저거 졸다가 못 들었다고 하면, 너네 책임으로 물릴 거야! 투란, 넌 가서 얼른 씻어! 피 냄새 배겠다!”
투덜투덜.
라펜과 마켈이 떠들었고, 카엘은 그냥 자는 시늉을 했다.
한 팔만 들어올렸던 몰린은 다시 팔을 떨군 채 탁자에 가려져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투란은 모클이 다시 창구 자리로 넘어가는 광경을 보며 히히거리면서 세척실로 향했다. 드라고니아가 그런 투란의 뇌리에 조금 음울하고 언잖은 듯한 중얼거림을 토해낸다.
―카엘이라…… 알면서 굳이 흔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될 텐데…….
‘어? 하아— 야, 부모 없으면…… 부모가 있어도 성격 괴상하면 그냥 대충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이름 막 붙인다고. 그나마 투란이나 카엘은 사람 이름이라 다행이지. 몬스터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경우도 있다니까.’
세척실을 향해 가면서 투란은 인간사회의 괴팍한 성향에 대해 짧은 열변을 토해 내줬다. 그리고 이는 드라고니아가 의아하게 했다.
―애한테 몬스터 이름을 붙인다고?
‘응, 드레이크란 이름도 나름 흔하다니까. 아, 드레이크도 조금 신경 써준 거라 하겠네. 진짜 막된 작자들은 오우거니 트롤이니 하는 이름도 막 붙여.’
―미친 거 아니냐?
드라고니아는 인간의 성향이 괴팍하다기보다는, 그냥 미쳐서 그런게 아니냐고 진심으로 묻고 있었다.
세척실로 들어서면서 투란은 쓴웃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뭐, 따져볼 수도 없는 갓난애니까…… 남 눈치 안 봐도 된다 싶으면 막나가는 작자들이 꽤 있지.’
―허어…… 그럼, 너한테 투란이란 이름을 붙여준 거는 나름대로 성격이 좋은 거라고?
‘어? 나? 나는…… 그렇게 막나갔다가는 샤오 할배한테 뒈질까 봐 못한 경우일걸.’
콰아!
도수관(導水管)의 꼭지를 틀어 소나기처럼 물이 쏟아지게 하면서 투란이 살짝 이를 가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투란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흉터가 왠지 짙고 또렷해지는 분위기에 드라고니아가 침묵에 빠져들었다.
쏴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