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3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31)
Chapter 107. 갈기 산맥, 마수 사냥꾼
뻐끔뻐금.
투란은 입술을 몇 번 움직이려다가 포기하고 하클을 바라봤다.
하클은 불을 붙이지 않은, 연초도 쟁여넣지 않은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을 이렇게 당황스럽고 곤혹스럽게 한 장본인, 크라쉬는 없었다.
자기 할 말을 다 하고 나서 크라쉬는 휭하니 가버렸다!
뭔가 투란이 대답하기도 전에, 하클이 파고들어 따져 묻기도 전에 크라쉬는 말이 끝나자마자 바쁜 일이 있다고 가버렸다!
“어쩌죠?”
투란은 손에 쥐어진 검은 손수건, 참으로 곱게 접힌 마도구를 내려다보다가 하클을 흘깃하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마도구까지 남긴 채로 가버린 크라쉬의 말을 의뢰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일방적으로 떠들다갔으니 싹 무시하고 이 마도구를 돌려주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끝내야 하는지…… 투란에게는 이모저모로 난감했다.
―완전 제멋대로인데? 이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군.
드라고니아 역시 크라쉬가 조금 전에 드러냈던 바를 납득하기 어려운 듯했다.
하클은 잠시 인상을 잔뜩 구긴 채로 가만히 있다가 볼을 홀쭉하게 하며 곰방대를 빨았다. 불이 붙지 않았으니 그냥 헛짓한 꼴이었다. 한번 빨고 나서 그걸 알았다는 듯, 하클은 볼멘 표정으로 불을 붙이고서 다시 곰방대를 빨았다. 곧바로 연기가 하클의 입가와 콧구멍에서 푹푹 새어 나왔고, 곰방대를 입술 사이에서 빼내면서 투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겨우 나온다.
“그냥 무시하는 게 좋겠다 싶다만…… 그 마도구는 제멋대로 남기고 간 거니까, 사양 말고 써도 될 것 같고 말이야. 나중에 돌려달라고 하면 그때 가서 돌려주든가 하면 되겠지 뭐…… 투란, 네가 달라고 했던 것도 아니고 제 손으로 내밀었잖아?”
“몰라라 하고 배 째는 시늉 하라고요?”
슬그머니 뺨에 식은땀이 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투란이 확인하듯 되물었다.
하클이 힘차게 곰방대를 빨고, 긴 대롱 같은 연기를 푸욱 내쉬고는 대답한다.
“그거랑 다르지! 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떠들다가 일방적으로 마도구 하나 남겨둔 채로 일방적으로 휙 나가버렸잖아? 투란 너는 해준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안 했고 고개도 끄덕이지 않았잖아. 잘 생각해봐…… 조금 전에 뭔 일이 있었는가 말이야.”
투란은 슬쩍 눈길을 옆으로 돌린 하클 또한 조금 전의 일을 거슬러 더듬어본다는 것을 알고 바로 흉내 내듯이 생각에 잠긴 시늉을 했다.
크라쉬가 떠들고 보인, 휭하니 나가버리기 직전까지 했던 말과 마도구의 사용 시범을 보이며 한 말에 대해서.
“쉽게 가져올 수 없는 거니까, 이 마도구를 맡겨두려고 하네. 방금 말한 것처럼 언제 다시 한 번 가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 이 마도구 블랙핏(Blackpit)을 잊지 말고 이용해주길 바라는 거야. 가져온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내가 살 거니까, 이 블랙핏을 이용하면 최소한이라도 오늘 정도 금전은 넉넉히 넘을 테니까 파는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이 블랙핏의 사용법은…….”
크라쉬가 검게 접힌 손수건을 땅바닥에 펼치고 네 귀퉁이를 정해진 순서에 따라 눌렀고, 손수건은 바로 네모난 구멍처럼 깊이를 드러냈다. 가로세로가 모두 40센티 너비인 손수건이 깊이 1미터의 구멍 입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1미터 바닥은 사방이 다시 1미터인 크기라고 했다. 시커멓게 물든 구멍을 만드는 이 손수건, 블랙핏은 그 깊이와 넓이를 조절해 사냥용 덫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여진 시범이었다.
그렇게 하면서 크라쉬는 블랙핏을 투란의 손에 쥐어주고 나가버렸다.
마치 더 뭐라 할 필요 없다는 듯, 언젠가 투란이 반드시 이 블랙핏을 꽉 채워서 가져올 거라고 믿는다는 듯!
그에 대해 하클은 마도구 블랙핏만 날름 가로채고 모르는 척하라고 권한다!
‘케이라, 마스터 케이라의 마도구랑 비슷하잖아?’
문득 크라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척했기에 블랙핏도 듣도 보도 못한 마도구인 척, 아예 비슷한 것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았던 투란은 뒤늦게 크라쉬가 알드바인에 툴로쉬와 함께 나타났을 때를 떠올렸다. 사실은 그 전에 이미 쟈카라 산림부터 보고 있었던, 홀시딘이 탐냈던 마법의 손수건에 걸린 마법이 이거랑 꽤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전혀 다르다. 그건 복합적이고 훨씬 다양한 용도를 내재했지. 이 블랙핏은 오직 구멍이다. 입구와 바닥의 넓이를 미묘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덫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을 뿐이고 다른 용도는 전혀 없어. 갖고 다닐 수 있는 구멍, 단지 그뿐이야.
‘하지만 어딘가 특별해 보이는 걸. 뭔가 느낌이 다르기는 한데, 케이라의 손수건처럼 뭔가 특별한 느낌이 있어.’
―그건 당연하지. 이 블랙핏,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서도 새겨진 마법이 거의 방해받지 않아. 마법의 효용이 단순한 대신에 발현조건과 구성을 그만큼 확실하게 해놨거든. 상당히 튼튼한 마법인 거야.
‘몬스터 로드의 힘에 부서지지 않는 그런 마법이라고?’
―쉽게 말해서 그렇지. 아무래도 몬스터 헌터가 사용하는 다른 도구, 몬스터의 잔여물로 이뤄진 도구 사이에서 버틸 목적으로 제작된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덫으로까지 써도 된다고 자신만만했잖아.
드라고니아의 설명에 투란은 한숨을 쉬었다.
뇌리에서, 거의 한순간에 주고받은 이야기였다.
아직 하클의 목소리가 낮은 이명처럼 귓가에 여운을 드리울 때에 이야기를 하고 생각을 정리한 투란이 어리벙벙한 말투로 입을 연다.
“어, 그래도 되나요? 근데…… 대체 뭔데 금전 열 닢을 저렇게 바로 갖다 준 거래요? 하클, 모르세요?”
“응? 아, 그 얘기도 안 하고 간 거야? 저거 진짜 옛날 크라쉬 본인 같은데…….”
“예? 옛날 본인이라니요?”
“어? 음…… 아무것도 아니야.”
“앗! 비밀인가요!”
“아냐! 젠장, 알았어! 알았으니까 듣고서 그냥 마음에 담아둬. 어디 가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간단히 말해서 저 크라쉬는 자기 아버지랑 자기가 꼭 닮았고, 내가 그 아버지를 아니까 자기를 보고 아버지 생각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몇십 년 전의 크라쉬 본인이 나이를 전혀 먹지 않고 덜렁덜렁 찾아와서 나이 먹지 않은 이유를 말하기 싫어서 아들 흉내를 내는 걸로 보인다, 이거야. 야, 왜 처웃고 있어?”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 가득하게 여기서 대답을 못 들으면 주변을 다 들쑤시고 다니겠다는 낌새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투란이 ‘와, 여기 바보 할배가 있어!’ 하는 표정으로 웃었기 때문에 웅얼대면서 말해주던 하클은 짜증나는 소리로 이야기를 맺고 있었다.
투란은 으르렁거리려는 하클에게 재빨리 대답한다.
“뭔 괴물도 아니고…… 아니, 괴물이라도 나이 먹잖아요. 몬스터를 삼킨 몬스터 로드라도 나이 먹는 거는 못 피한다고요. 뭐, 나이 먹어도 체력이 안 떨어지는 경우는 있지만 얼굴이 삭으면서 주름 잡히는 거는 어떻게 못한다는데…… 저 크라쉬가 몬스터 로드도 아니고, 뭔 요정이라도 되나요?”
나름대로 이리저리 짚어가면서 하는 얘기였고, 하클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래, 그러니까 더 이상하단 말이지…… 분명히 아들이라는 말이 이치에 맞는데 말이야…… 아까 하던 짓은 완전히 옛날 크라쉬 그대로였거든.”
“흐흠…… 아버지를 그대로 따라하는 아들이라…… 흔하잖아요?”
“생김새도 완전히 똑같고, 말버릇이랑 몸가짐까지 저리 닮은 경우는 절대로 없다고!”
“흐흠!”
“내가 노망난 걸로 보이냐! 이놈이 진짜!”
눈을 가늘게 하면서 ‘이젠 할배가 의심스러운데?’라는 눈빛을 흘리는 투란에게 하클이 울컥해서 곰방대 불티를 휘날리며 한대 치려는 듯이 손짓했다. 그러나 그 손짓은 투란이 탁자 위에 놓인 금전 두 닢을 스윽 내미는 손짓 앞에 주춤했고…….
“멀쩡한 영감님이시라니, 어쩔 수 없이 똑바로 몫을 떼드려야겠군요. 한 닢은 이번 일을 중간에서 해준 품삯이고요, 한 닢은…… 창고에서 물건 내오셨죠? 그거 일단 선금! 아하핫, 오늘 돈 많이 벌었잖아요!”
남은 여덟 닢의 금전을 쓸어 담으면서 히히거리며 떠드는 소리에 하클이 혀를 차면서 다시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우물거리는 소리로 하클은 진지하게 투란에게 경고하듯 말한다.
“금전이 좋기는 하다만, 방금 일은 잊어버려. 금전 때문에 그 손수건 들고 다시 그런 원석을 찾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음? 왜요?”
눈을 깜박거리면서 투란이 전혀 모르겠다는 시늉을 하면서 되물었다.
이렇게 금전이 보장된 일을 왜 하지 말란 건가, 하고 따지듯이!
순간적으로 하클의 눈꼬리가 팍 치켜 올라갔다.
“내가 바보로 보이냐?”
낮게 깔린 목소리가 상당히 험악했다.
“그럴 리가 없잖요!”
단번에 투란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절대로 하클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 아니고, 크라쉬가 무기한으로 의뢰한 일을 굳이 외면해야 할 까닭이 뭔가 잘 모르겠다는 태도가 완강하게 드러나는 투란의 고개짓이었다.
하클은 잠깐 눈을 가늘게 하면서 투란을 바라봤다.
마치 ‘아무래도 이게 날 바보 취급하는 것 같은데?’라고 확신한다는 듯!
하지만 더 따지는 대신에 하클은 혀를 차면서 투란이 의아한 척하는 부분에 대해서 대답을 해준다.
“그 물건, 나는 별로 만져본 적이 없는 흑요강의 원석이라는데…… 다룰 수 있는 기술을 지닌 녀석도 꽤 드문 물건이야. 무엇보다 원석을 정련해내는 것부터가 이모저모로 귀찮다는 소재지. 그런데 네가 가져온 그거…… 꼭 뭔 몬스터가 삼켜서 우물거리다가 뱉어낸 몰골이었는데, 그게 섞인 척하면서 완전히 정련된 상태로 엉긴 거였다더군. 한데 그러려면 그 몬스터의 배 속이 용암으로 바글바글 끓는 상태였어야 한다는 거야. 그래, 넌 그냥 떨궈진 것을 주웠을 뿐이고 그런 것 못 봤겠지. 그게 엄청나게 운이 좋은 거란 소리지. 그 몬스터를 만났다면…… 감춘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쉽게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테니까. 앙? 감춘 재주가 없으셔? 그렇다 치고…… 암튼 흑요강은 그 매장된 광맥부터가 찾기 힘들고 애매한 소재란 건데, 웬 몬스터가 우걱대다 뱉어서 아주 괴상한 상태로 정련된 걸 원석이라고 가져온 거라, 이거지. 거기 정련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원석이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지만, 위험해서 어디냐고 묻고 가보기가 겁나. 그러니까 거길 안전하게 다녀온 이상한 놈, 너한테 맡긴 거라고.”
중간중간에 몇 마디씩 끼어들던 투란은 하클의 말끄트머리에 황당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들이대며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지나다 주울 수도 있는 거지. 거기 뭐가 있다가 없어져서 주워 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갑자기 내가 왜 이상한 놈이 되는 건데요?”
“흐흥? 갑자기는 아니지. 투란 네가 지난 열흘 동안 하고 다닌 짓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어봐라. 그거 아주 이상한 짓이었거든?”
하클이 코웃음을 치면서 던지는 말이었다.
투란은 속이 뜨끔했지만, 동시에 아주 깊이 의아해서 물어야 했다.
“뭐가 그렇게 이상했는데요? 난 그냥 북쪽 성벽 가까운 곳으로만 사냥 다녔는데? 마수도 드물고 나와봐야 거칠고 사나운 짐승 정도인 곳만 다녔다고요. 완전 초보답게 말이죠!”
하클은 한쪽 눈꼬리를 치켜 올리면서 대답한다.
“완전 초보가 나 초보예요, 하고 다닐 것 같냐? 완전 초보가 그런 장비를 몸에 잔뜩 붙이고 다닐 것 같아? 너 오기 전에 크라쉬가 그러더라, 북쪽 성벽에서 너 드나드는 꼴에 대해 알아봤는데 갈기 산맥에는 확실히 처음인 듯하지만 사냥에 있어서도 초보는 아닌 것 같다고 말이야. 짐승만 상대한다면서 딱 죽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놀다 온다고 거기 헌터 길드 녀석들이 꽤 재미있어 한다고 하더라. 너보고 진짜 초보라고 하는 녀석들은 완전히 기본도 안 잡힌 얼간이라고 자백하는 꼴이라고 말이지. 이제 얼마나 이상한 짓을 하고 다녔나 느껴지냐?”
“에…….”
투란이 입을 벙긋거리면서 ‘이럴 때는 뭐라 해야 하지?’라고 훤히 드러나는 표정으로 말을 더듬는데…….
―과연 알면서 그냥 구경만 했다는 말이군! 거봐라, 그렇게 하고 다니면 결국 꼬리 밟힐 거라고 했잖아.
드라고니아가 슬쩍 놀리는 말을 뇌리에 꽂아넣고 있었다.
‘나 꼬리 없이 다녔거든!’
전혀 상관없는 대꾸를 소리 없이 날리고, 투란은 입을 뻐끔거리면서 하클이 내뿜는 연기를 손으로 휘저어 흩어내며 말한다.
“그게 뭐가 이상해요? 처음이니까 일단 둘러보면서 구경도 해야죠! 낯선 곳에서는 먼저 분위기부터 알아보는 게 순서잖아요!”
“호오? 그렇게 열흘 동안 주변환경부터 파악하셨다? 그럼, 이젠 어쩔 건데?”
하클이 푹푹 연기를 내쉬면서 추궁했다.
입술을 삐죽하고 투란은 뻔뻔하게 대답한다.
“이제 길 잃어버리지 않을 것 같으니까, 슬슬 더 넓게 멀리 돌아봐야죠. 성벽 가까운 곳에서는 아직 마수도 별로 없고, 몬스터의 낌새도 전혀 없다니까…… 제대로 돈벌이가 되는 놈이 어디쯤 나오나 슬슬 알아볼 거예요.”
하클은 피식 웃었다.
투란이 그 웃음에 불끈한 표정을 지으려 하니…….
“헌터스 배너를 품고서 마수 사냥이라…… 뭐, 제대로 한걸음씩이기는 하구만. 낯선 알드바인에 제대로 적응하겠어. 그렇다면 나도 제대로 손님 대접할 때인가. 아, 창고에서 가져온 물건 물어봤지? 그게…….”
곰방대를 입에 물고, 탁자 아래에서 넓은 담요에 덮인 상자를 당겨 꺼내는 하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