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3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32)
끼익, 쾅쾅.
제란드는 펌프 손잡이를 돌려보다가 다시 망치질을 했다.
가늘지만 튼튼한 네 개의 기둥…… 긴 몽둥이에 가까운 기둥에 받쳐진 지붕 아래에는 사방을 막아주는 벽이 없었다. 대신 밑으로 깊이 파인 채로 돌로 쌓인 구멍이 있을 뿐이었다. 구멍 깊은 곳에서 작게 물결이 찰랑이는 소리가 울려나오니, 금방 우물이라고 알 수 있었다.
제란드가 박아넣는 파이프, 펌프랑 조금 전에 붙어있다 떨어진 파이프는 그 우물 구멍과 나란히 지하로 파고들어 물줄기와 닿으려 하고 있었다. 아직 조금 지하 수면에 모자란지 펌프 손잡이를 돌려도 물을 뽑아 올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쾅쾅, 조금 더 험한 망치질 이후 제란드는 다시 파이프에 펌프를 붙였다.
바퀴처럼 생긴 손잡이를 돌리니, 이번에는 빈 소리 대신에 파이프 안을 채우며 치솟는 물소리가 제대로 들렸다.
촤악!
펌프에서 아래를 향해 코끼리 코처럼 늘어진 꼭지가 물을 뿜어냈다.
제란드는 한 손으로 물을 받으며 혼잣말을 한다.
“좋았어!”
“와아, 우물 옆에 진짜로 펌프 달았네!”
갑작스럽게 옆에서 울린 소리에 제란드는 돌아봤고, 투란이 멀뚱거리며 거기 서 있는 것을 봤다.
“어, 왔어? 조금 이른데? 내일 온다고 하지 않았어?”
“응! 오늘은 운 좋게 현상금 걸린 멧돼지를 잡아서…….”
투란이 펌프를 보며 눈을 깜박대는 채로 대충 대답하고 있었다.
제란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더 묻기를 포기했다.
하급 헌터 노릇을 하네 어쩌네 했고, 제법 그럴듯하게 시작하나 싶었던 투란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갑자기 하클 영감의 공방에 들락거리는가 싶더니, 보통 내기가 아니라고 슬그머니 공방 장인들 사이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하클 영감이 꽤 대단한 사람이라 관심을 끌었나 했는데, 어째서인가 북쪽 성벽 쪽의 상인들 사이에서도 갑작스럽게 ‘외상을 줘도 되는’ 이라든가 ‘장래가 촉망받는’ 이라든가 하는 소리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홀시딘이 솜씨가 괜찮다고 추천한 하클 영감이 그냥 괜찮은 솜씨가 아닌 듯도 했고, 열흘 전에 투란이 뭔가 감정을 맡긴 것 때문인 듯도 했다. 혹은 죽을 듯 살 듯 한 아슬아슬한 몰골이 되어 북쪽 성벽 너머에서 돌아온 것 때문인 듯도 하고…….
뭔가 투란이 그럴듯하게 어울리려 하는데 거기 넘어가주는 작자들은 모두 자기 앞가림 제대로 못하는 얼치기들인 듯해서 옆에서 보기에 기분이 참 괴상했다.
물론 이런 일에 대해서 네 남매는 입을 다물었다.
무엇보다 투란이 대체 왜 갈기 산맥에 관심을 갖는지, 꽤 험하게 굴러다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네 남매도 바빴다.
네 남매는 홀시딘이 펼쳐둔 환영이 하나씩 치워지며 드러나는 광경에 맞춰서 여관을 꾸미고 대장간을 꾸며야 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그래서 제란드는 한 사나흘 동안 우물 주변에 뭘 쌓는 시늉을 했고, 그러다 심심해서 아예 펌프와 파이프를 사다가 옆에 꽂는 중이었다. 한데 이틀째 여기저기 바닥을 뚫었지만 땅 아래 물줄기에 닿지 않아 오늘은 아예 우물 곁에 뚫어버렸다!
투란은 펌프에서 펑펑 쏟아지는 물을 보다가, 옆에 모습을 드러낸 우물을 흘깃하다가 제란드에게 묻는다.
“근데, 오늘이 도수관 뚫는…… 잇는 날 아니었어?”
“어, 오늘이야.”
조금 민망한 웃음과 함께 제란드가 대답했다.
그루터기 앞의 우물은 알드바인이 시작할 무렵부터 뚫려 있었다.
이 우물은 성벽이 완성된 지금에 와서는 거의 쓸 일이 없어진 상황이었다.
성벽 안에 설치된 도수관에 관을 잇기만 하면, 그다음에 물꼭지를 달기만 하면 아무 때나 얼마든지 물을 받아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루터기 쪽에 우드 가디언을 세우고, 그루터기 아래 뿌리를 타고 올라오는 고블린의 침입에 대비하면서부터는 도수관의 연결이 해체되었고 이 근처에서 오가는 이들은 뻥 뚫린 구멍인 채인 우물을 이용하거나 아예 가까운 건물을 찾아가게 되었다.
이제 다시 그루터기에 네 남매가…… 사람이 살게 되었으니 도수관을 잇고 물꼭지를 달고, 우물도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뭔가 좀 지나치게 이것저것 다 준비한 꼴이 되어 있었다.
제란드는 거기에 펌프까지 추가해서, 한층 더 꾸민 셈이었다.
“나도 돌려봐도 돼? 돌려볼게!”
물론 그렇게 너무 지나치게 이것저것 꾸미고 있냐고 따진 투란이 아니었다.
필요한 물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되었어도, 펌프를 써서 물푸는 일을 재미삼아 해보고 싶어하는 투란이었다!
“어, 해봐. 꽤 재밌거든.”
제란드도 눈을 반짝거리는 투란에게 동감하듯, 자리를 비켜줬다.
끼익, 촤아악!
“우하핫, 좋다! 멋있어!”
물이 필요한가 아닌가는 상관없었다.
땅 밑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물줄기가 시원하고 재미있을 뿐이었다.
제란드 역시 그 기분을 예감하고 한번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서 굳이 필요가 모자라는 펌프와 파이프를 사 왔다. 그러니 지금 즐거워하는 투란에게 아이처럼 보인다고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제란드는 다른 것을 물었다.
“하클 영감 공방에 들렀다 왔어?”
“어? 응…….”
“꽤 눈에 띄는 할배 같던데?”
“음, 아무래도 홀시딘 마법 할배에게 당한 것 같아.”
“응?”
마법 할배란 말에 잠깐 당황하면서도 제란드는 ‘뭘?’이라고 갸웃해 보였다.
투란이 투덜거리는 말을 잇는다.
“솜씨는 괜찮지만 장사를 못한다고 했거든. 그래서 주변에 사람도 적고…… 눈에 안 띌 줄 알았는데, 꽤 귀찮은 사람들이랑 잘 통하는 할배…… 영감이셨다는 거지. 덕분에 하클 할배, 그 영감님이랑 주변 사람들에게 이래저래 눈에 뜨이는 꼴이 된 것 같거든.”
“흐흠, 그 주변 사람들은 이래저래 마스터 홀시딘과 닿겠군. 과연…… 나중에 마스터 홀시딘이랑 다시 어울려도 그럭저럭 말이 되겠는걸?”
“쳇, 역시 할배답게 음흉하다니까.”
투란이 징징대는 말에 제란드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보통은 마법사답게 음흉하다 할 텐데…….
어느 틈엔가 남 몰래 쓰는 마법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법을 다루는 입장이다 보니, 슬그머니 말을 바꾼 낌새가 있잖은가. 마법을 쓸 수 없는 입장에서는 사정 따위 따질 것 없이 마법 쓰는 이들은 모두 마법사이고, 그런 마법사가 바로 음흉하다는 것이니!
“아, 도수관이었으면…… 시알라가 물 아끼지 않고 요리하는 거야? 물동이 바닥나도 계속 물 받아서 요리하는 거야?”
갑자기 생각났다는 모양으로 투란이 제란드에게 물었다.
제란드는 흠칫했다.
“어? 어…… 그렇겠지?”
미처 생각 못했지만, 듣고 보니 그렇다는 듯……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대답이었다.
투란이 스윽 그루터기에 매달린 황금빛 간판을 향해 눈길을 돌리며 중얼거린다.
“페란드는 그렇다 치고…… 멜란드, 도망 쳤으려나?”
“그런 무모한 짓은 무리일걸. 아침부터 붙들려서 관 잇는 시늉을 하고 있었으니까.”
제란드가 한숨 쉬듯 대답했다.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관 잇는 거는 안쪽이니까 그렇게 시늉 안 해도 되잖아? 어차피 안에 이어진 관에 뭐 붙이는 시늉인데…….”
“응, 그래서 열심히 걸레질을 하고 있지. 드러난 관이 반짝반짝하게 말이야.”
“붙들렸구나.”
투란은 제란드의 대답에 알아차렸다.
멜란드는 도망치려다 잡혔다, 시알라에게.
잠시 투란은 간판을 지긋이 바라봤고, 살짝 묻는 말을 흘린다.
“제란드, 사냥 나갈까? 남쪽 성벽 밖에는 뭐가 있나, 나한테 보여준다고 하고 말이야.”
“그거 좋은 생…….”
제란드가 혹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투란, 왔구나! 자, 들어와! 제란드, 너도 들어와! 마침 잘 왔어! 좀 이르지만, 저녁 식사다! 어서 들어와! 페란드, 너도 이제 올라와!”
그루터기 중간, 나무벽을 타고 이어진 계단에 매달린 듯한 문짝이 활짝 열리면서 시알라가 외치고 있었다.
한없이 가볍고, 한없이 즐거운 듯!
그러나 그런 시알라가 스윽 둘러보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재촉하는 손짓을 할 때, 투란은 확신하고 중얼거렸다.
“제란드, 감시당하고 있었구나.”
제란드도 황당하다는 듯, 그러나 부정할 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그랬나 보네…….”
대장간 안에서 어슬렁거리면서 페란드가 나오며 둘에게 말한다.
“점점 나아지고 있잖아. 올라가자고.”
투란과 제란드가 동시에 고개를 팍팍 저었다.
“완전히 나아진 다음에 맛봐도 되잖아!”
“왜 고집 부리냐고! 좋은 도구 갖춰놓고는!”
낮은 소리로 투덜거리는 둘을 보면서 페란드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변명이라는 듯, 설명이라는 듯이 중얼거린다.
“그래도 해보고 싶잖아. 한번 봤으면, 손으로 눈으로 겪었으니까 그냥 해보고 싶어진다고…….”
“그러니까! 그게 완전히 익숙해진 다음에 제대로 해주면 되잖아!”
제란드는 그래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페란드를 따라 계단을 밟으며 말한다.
“페란드, 오늘도 많이 망쳤어?”
“나아지고 있어.”
움찔하면서도 뒤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서두르는 채로 페란드가 웅얼대듯이 대답하고 있었다. 투란의 뒤를 따라 계단을 밟던 제란드가 더욱 못마땅하다는 듯이 낮게 투덜거린다.
“형도 누나도, 대체 왜 마법도구로 숙련된 다음에 요리를 하든 쇠를 두들기든 하면 될 텐데…….”
투란은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그냥 안으로 들어가는 페란드를 보며 웃었다.
홀시딘에게 홀린 듯이 사온 도구들…… 그 중에서 요리와 대장간 기술을 익히게 해주는 도구를 이용해서 시알라와 페란드는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꽤 험난했다. 마법을 통해 보이는 시범을 자기 손으로, 눈으로 직접 겪으면서도 마법이 사라지면 뭔가 미숙한 짓이 되어 요리를, 다루던 쇠를 망가뜨리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페란드는 망가진 쇠를 다시 화로에 넣어 녹이면서, 결코 대장간 밖으로 갖고 나오지는 않는데…….
“누나!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아?”
멜란드가 형들과 투란이 나타남과 동시에 편들어 달라는 듯이 외치고 있었다.
앉아 있는 멜란드 앞, 탁자 위에는 시커멓게 모락모락 연기의 자취를 흘리고 있는 덩어리…… 도저히 원래 모양이 뭐였는지, 뭘 구웠는지 모를 것들이 접시 위에 놓인 채였다.
그 광경은 페란드가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리게 했고, 제란드가 ‘숯을 잘라놨어?’라고 노골적으로 누나를 향해 핀잔주는 소리를 꺼내게 했다.
시알라는 그런 형제들을 향해 냉정하게 말한다.
“먹을 만하거든? 루비 요리를 생각하고, 안에 화살촉이나 쇳덩이 없으니까 감사히 일단 먹어봐!”
세 형제가 ‘지금 우리 누나가 진담을 하는 거야, 공갈을 치는 거야?’라는 표정을 동시에 지어보였다.
그사이에 투란은 뭐라 하지 않고 잰걸음으로 탁자 곁에 가서 접시 위의 것을 손끝으로 살짝 뜯어내서는 날름 입에 담고 있었다.
“어, 아삭아삭 바삭바삭…… 달다?”
투란이 이렇게 뭔가 요상한 감상을 토해내니…….
“아삭?”
“빠싹?”
“달아?”
제란드와 멜란드는 ‘숯이잖아!’ 하는 표정으로 한마디씩 했고, 페란드는 ‘왜? 어째서?’라며 그 맛에 대한 의문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다시 설명을 더했다.
“응, 살짝 껍질이 쓰기는 한데 속이 달아. 바싹 구워진 것 같기는 한데…… 시알라, 이게 뭐야?”
“꿀이랑 잼 바른 돼지고기.”
시알라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바로 대답했다.
세 형제가 다시 접시를 내려다보면서 말한다.
“돼지……?”
“돼지 구우면 이런 냄새였어?”
“꿀이랑 잼을 발라 구웠다고?”
투란이 히힛 하며 앉았고, 제란드와 페란드도 마지못해 멜란드 곁으로 자리 잡고 앉았다. 탁자를 중심으로 투란과 세 형제가 앉는 것을 보고 시알라는 접시를 밀어주면서 말한다.
“오늘도 북쪽 성벽까지 다녀왔어, 투란? 가까운 성벽 놔두고 거기까지 다닌 보람은 있는 거야?”
“응. 남쪽 성벽 너머로는 갈기 산맥이 아니라잖아. 일단 마수 사냥부터 하려고.”
투란이 숯같은 고기를 손으로 찢으면서 대답했다.
제란드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기에 손을 대며 말하는데…….
“마수 사냥부터라면…… 역시 남쪽 성벽 너머로는 이래저래 고블린 세력이니까 북쪽으로 가는 게 맞네.”
어쩐지 접시 위의 괴상한 숯 닮은 것에서 정신을 떼고 싶다는 말투였다.
멜란드가 뚱하니 손끝으로 접시 위의 시커멓게 탄 고기를 찌르면서 말한다.
“내일부터는 나도 같이 다녀볼까? 고블린은 이제 좀 지겨운데…….”
시알라가 낮게 코웃음 치며 멜란드에게 대꾸한다.
“저녁은 반드시 돌아와서 먹어라.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들어오고.”
“아, 누나아!”
멜란드가 꽥 소리를 질렀고, 투란은 거뭇한 입술 사이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어찌 되었든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수를 사냥하면서 알드바인에 보다 깊이 적응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