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3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33)
아침 햇살이 하얀 안개 위로 반짝이며 거대한 호수 위를 누볐다.
알드바인의 동쪽을 차지한 화이트 레이크의 풍경은 서쪽 성벽의 길고 웅장한 모습과 마주하면서 훤히 트인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서쪽 성벽이 지닌 든든함, 압도적인 느낌의 보호자라는 그런 느낌과 전혀 다른 자유로움이 높은 하늘에서 내려와 쉬는 구름처럼 보이는 하얀 안개 속에서 풀풀 새어 나오는 듯했다.
완연히 상반된 두 풍경 사이로 놓인 길을 따라 거닐면서 투란은 신기한 듯이 동과 서, 하얀 안개의 호수와 불굴(不屈)의 의지가 느껴지는 성벽…… 알드바인의 성채를 둘러보았다.
‘저긴 트여서 좋고, 여긴 막혀서 좋고…… 이상하게 둘 다 좋아.’
―자유롭고 안전한 분위기를 일부러 꾸며놓았으니까. 그렇게 느끼라고 말이다.
‘응? 이런 느낌을 주려고 알드바인을 이렇게 꾸며놨다고?’
―그래. 인간의 수명을 생각하면 꽤 거창하게 꾸미고 오랫동안 애쓸 수밖에 없는 일이다만…… 상아탑의 마스터가 세대(世代)를 이어가면서 성취한 업적이니 이 정도는 해야지 싶기도 하다.
‘흐흠, 며칠 동안 그런 말 안 했잖아?’
―며칠 동안 관찰했으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잖아!
투덜거리는 드라고니아의 대답에 투란은 웃음을 흘렸다.
아침 바람, 햇살 사이로 북쪽 성벽을 향해 가는 길은…… 매번 다른 길을 이용하며 알드바인을 구경하고자 했기 때문에 여전히 낯설었다. 돌아오는 길은 공방이 즐비한 길을 따라왔지만, 사냥터를 향해 나갈 때는 길을 바꾸고 있었던 투란이었다.
그동안 드라고니아는 그저 물끄러미 인간의 도시, 알드바인을 가만히 지켜보는 듯했다. 그리고 열흘 정도 지나니 저런 얘기를 꺼낸다.
투란은 자신처럼 이른 아침에 거리를 걷는 이들을 봤고, 집에서 뛰어나와 계속 뛰는 애들도 봤다. 누구도 투란처럼 이제부터 거칠고 사나운 짐승을 만나러 간다라는 분위기는 없었다. 샤오콴 마을에 사는 이들처럼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몬스터에 대한 염려도 없었다. 라비엔처럼 험악하게 무장하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경계하는 모습도 없었다!
화이트 레이크와 성벽으로 둘러싸인 알드바인, 이 도시에 사는 이들은 투란에게 아죽 익숙한 그런 위협으로부터 아주 안전하다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역시 상아탑의 마스터는 대단하네.’
투란은 간단하게 생각을 마무리 지었다.
어느새 북쪽 성벽에 닿기 전, 들러야 할 곳으로 새는 길에 걸음을 딛는 중이었다.
두터운 목재를 통으로 썰어 붙여놓은 문짝을 밀고 들어가니, 하품을 하면서 빗자루를 휘두르는 가게 주인이 반사적으로 외친다.
“어서 옵……?”
“아직 아침 식사도 안 한 모양이네요?”
투란이 눈을 꾸벅거리면서 빗자루를 멈추면서 말도 멈춘 주인에게 가볍게 말했다.
“어, 그런데 이렇게 일찍…… 나가는 건가?”
“네, 살 게 있어서요.”
“오! 아침 일찍 일어난 새가 좋은 사냥을 하지! 그래, 뭐가 필요한데?”
“독부엉이 담을 수 있는, 그 독을 막아주는 거 있다면서요?”
“아, 있지! 그래, 그러고 보니 나가자마자 한 마리 쐈다고 했었지? 손대지 않고 물러선 거는 아주 잘한 일이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직접 담아오려고?”
“몇 마리 잡을 거예요. 그러니까…….”
“몇 마리? 아니, 둥지라도…… 봤군!”
가게 주인은 빗자루를 옆으로 휙 날리면서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수 사냥에 필요한 장비를 주로 다루는 이 상점, ‘스펫의 마수전문’이라는 간판을 내걸어서 전적으로 갈기 산맥의 마수를 대상으로 한 장비, 도구만을 취급한다고 대놓고 장사하는 곳이었다.
투란이 첫날 독부엉이의 일로 라펜과 마켈을 졸졸 따라다니다가 알게 된 상점이었다. 몬스터가 아닌 마수 전문도구라든가 장비는 투란에게 꽤나 색다른 느낌이었고, 어쩌다 보니 며칠 자주 들락거리고 있었다.
―여기가 그렇게 마음에 드냐?
드라고니아는 주변의 다른 상점을 거의 그냥 지나쳐서 스펫의 상점에 들어선 투란의 행동에 대해 궁금한 모양이었다.
‘캐묻지 않잖아.’
―응?
짧은 투란의 대답에 드라고니아가 한층 더 의아한 듯했다.
하지만 당장 더 자세히 설명하는 대신, 투란은 진열된 도구와 장비를 둘러보면서 스펫이 계산대 위에 늘어놓는 것을 힐끔힐끔 지켜봤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빗자루를 던지고 나서 날렵해진 스펫은 독부엉이라고 몇 마디 중얼거리면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것들을 금방 찾아냈고…….
“아, 깜박했다! 몇 마리나 예상하고 있지?”
투란은 스펫이 듬성듬성한 잔털이 삐죽대는, 아직 면도도 하지 않은 얼굴로 방긋거리며 묻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손가락 넷을 펼쳐보였다.
“이 정도?”
“꽤 무거울 텐데? 뭐, 죽지 않고 잡아올 수만 있다면야. 좋아, 그러면 짐 보자기는 이 정도 크기로 해서…… 한 마리씩 담아야 하니까, 보자기는 네 장으로 하지. 하나에 한꺼번에 쑤셔 담으려고 하면 안 돼. 이 보자기가 중화시켜줄 수 있는 독성 용량이 독부엉이 한 마리 정도니까. 응, 그리고…… 방독 마스크도 있어야 하고…… 아, 바퀴 달린 그물도 줄게. 산길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지만 돌아와서 움직일 때는 편할 거야. 경비 망루에 맡겼다가 찾아도 될 테니까. 아, 활은 어떻게 할 거지? 오갈 때야 지금 가진 조립식이 편하겠지만, 제대로 독부엉이를 노린다면 강궁(强弓)을 따로 챙기는 게 좋을 텐데…….”
“강궁?”
“음, 열 발 정도 장전상태로 쏠 수 있는 쇠뇌가 적당할 것 같기는 한데…… 독부엉이 처분을 우리 가게에 맡기겠다면, 그냥 대여해줄게. 그래, 공짜! 빌려주는 거야! 독부엉이를 사냥 못 했다고 해서 따로 돈 받거나 하지 않아. 믿고 빌려주는 거라고!”
“아하!”
투란은 방긋 웃었다.
강궁이니 쇠뇌니 하는 말이 나올 때, 슬그머니 추임새로 ‘살 돈이…….’ ‘공짜라면 몰라도……’ ‘빌리는 것도 돈이…….’라고 투란이 웅얼거렸고 스펫은 독부엉이를 사냥하기 편하게 해주는 장비를 조건을 붙여 빌려주겠다 하는 것이다.
사냥에 실패할 경우라도 장비 대여비를 받지 않겠다고, 투란을 신뢰한다는 말까지 보태서!
그래도 투란은 한 가지를 더 짚어봐야 했다.
“독부엉이 값은?”
스펫이 방긋 웃었다.
“물론 제값 다 줄 거야! 이 스펫은 매우 도덕적이고 아주 착한 상인이거든!”
“그럼, 그렇게 하죠.”
그렇게 해서…….
사박, 북쪽 성벽에서 벗어나 거친 갈기 산맥의 산속 샛길로 발을 디딜 때,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말한다.
―너, 엄청 바보로 보이는데 자각은 하고 있는 거냐?
‘응? 뭔 소리야?’
어리둥절하니, 드라고니아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생각해보듯이 투란은 자신의 차림새를 다시 둘러봤다.
삐죽이 어깨를 빠져나온 검고 붉은 두 자루의 장검, 등뼈를 따라 목덜미에 살짝 칼자루 꼭지가 닿은 반으로 접힌 검…… 그렇게 검을 맨 등짝을 가로지름 두른 두툼한 배낭, 허벅지 양 옆으로 채워 넣은 투척용 단검, 주머니 속에 담긴 장난감 같은 접이칼…… 모두 두 손을 자유롭게 하는 방식으로 두른 채였다. 그리고 자유로운 두 손으로 품 앞에 늘어뜨린 특별한 쇠뇌가 있었다.
쇠뇌에는 열 발의 볼트가 호(弧)의 궤적을 겨냥하듯이 위에서 아래로, 조각난 바퀴의 바퀴살처럼 촘촘하게 얹혀 있었다. 볼트를 묶고 차례대로 아래로 떨구는 틀, 그 틀을 얹은 채로도 자연스럽게 앞을 겨냥하며 몸에 걸리적거리지 않게 쇠뇌의 활대 역시 수직으로, 아주 작은 호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겉보기로는 쉽게 알 수 없는 하클의 유틸리티 밴드, 검게 칠해서 그냥 단단한 무쇠인 척하며 팔뚝을 덮는 토시가 조금 특별해 보일 뿐이었다. 미늘갑을 한 겹 덧입고 널널한 가죽상의 속에 숨겨둔 폴딩 벨트는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였다.
그야말로 하급 헌터, 마수 사냥의 초보가 온갖 준비를 다 갖췄다고 할 수 있는 모습 아닌가? 대체 이 모습을 어떻게 보면 바보라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뭔 소리인지…….’
투란은 어깨를 으쓱하고 제대로 걸음을 재촉했다.
첫날 만났던 독부엉이, 투란이 그 녀석을 쏴 떨궜을 때 조용히 떨어져 죽지 않았다. 갑자기 꽂힌 화살에 놀라 파닥대면서 꽤 큰 울음, 비명을 질러댔다. 그 비명에 호응하듯 멀리서 다른 부엉이 소리가 크게 울렸었다.
그때는 그냥 부엉이라고 생각했지만, 쏴 떨어뜨린 것도 역시 그냥 부엉이라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지만…… 가까이 갔다가 독에 고꾸라진 다음에는 그 생각을 싹 고쳐먹었다.
투란에게는 처음 겪는 희한한 마수였고, 다른 사냥꾼이 어떻게 잡고 어떻게 챙겨오는가도 라펜과 마켈 덕분에 알게 되고나니…… 꽤 괜찮은 돈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독부엉이를 노리고 사냥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독부엉이는 둥지를 은밀한 곳에 짓기 때문, 그 둥지를 찾기 힘든 것이 첫 번째 난관이었고 두 번째는 둥지 근처에 짙게 뿌려진 독이 문제였다. 모르고 그 주변에 얼쩡거리다가 죽으면 바로 독부엉이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미리 둥지의 위치를 알고 독에 대한 대비를 한다면 놓칠 수 없는 돈벌이, 그게 독부엉이라 했다.
“이 근처부터 둘러봐야겠네…….”
어느새 첫날 독부엉이를 만난 곳에 도달해서 둘러보며 투란이 중얼거렸다.
―어디 있나 알잖아? 찾는 시늉부터 할 거야?
첫날 투란은 독부엉이의 능력, 습성을 잘 몰랐기 때문에 떼로 몰려올 경우에 대비해서 주변을 넓게 관측했었다. 그 덕분에 둥지의 위치를 꽤 정확하게 알게 것인데…….
‘가는 길을 찾는 흔적을 제대로 남겨둬야지. 헤매지도 않고 꾸불꾸불 산길을 바로 가면 나중에 누가 와서 보고 의심한다고!’
혀를 날름하면서 투란이 장대한 음모를 품은 것처럼 소리 없이 떠들었다.
―그러셔? 그럼 그 전에 마스크부터 쓰지 그래? 하클의 마스크도 아니고 마법도 새겨진 게 없으니, 뒷주머니에서 저절로 튀어나와 코랑 입을 막아주지는 않잖아.
‘어? 앗차!’
투란은 엉덩이에 들러붙은 뒷주머니에서 코와 입을 가리는 마스크를 꺼냈다.
독부엉이의 둥지 주변의 위험을 예상한 스펫이 챙겨준 방독 마스크였다.
마스크를 코와 입에 붙이면서 투란이 갸웃했다.
‘이전에 여기 뿌려진 독은 이제 없는 건가?’
―즉효성이고 단시간 내에 사라진다고 했잖아. 하지만 독부엉이가 다시 주변을 경계삼아 돌고 있다면 새로 독이 뿌려져 있을 수도 있지. 어쨌든 여기는 독부엉이가 맴돌던 곳이니까…… 한 마리 사라졌다고 나머지가 자기네 영역을 포기할 리는 없다고 본다만…….
후우, 후욱!
마스크를 통해 약간 답답해진 숨쉬기를 느끼며 투란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질식 중이냐?
그런 꼴을 역시 참을 수 없다는 듯, 드라고니아가 툴툴거렸다.
‘익숙해지면 살살 쉴 수 있겠지.’
거북한 것은 어쩔 수 없기에 투란은 투덜거리면서 바쁘게 주변을 돌며 어중간하게 뛰고 걸었다. 한 방향으로 가는 길을 발로 더듬어 찾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갈라진 길을 몇 곳 더듬고, 빙빙 돌면서 투란은 울창한 갈기 산맥 숲의 샛길을 뒤졌다. 작은 비탈, 낮은 언덕을 밟으며 좁은 나무 틈새를 비집기도 하며 투란은 아련하게 들었던 독부엉이의 흔적을 쫓았다.
그러길 몇 시간, 마침내 드라고니아가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으르렁거린다.
―그만 좀 빙빙 돌아! 저쪽 너머잖아! 저 나무 몇 그루에 가려졌다고 다 와서 빙빙 돌기만 하냐! 바보냐고! 가다가 이상하면 방향을 바꿔야지, 왜 자꾸 빙빙 돌고 있냐고!
‘어? 역시 빙빙 돌고 있는 거였나! 젠장, 이래서 산속에서 길 잃으면 위험하다니까.’
투란은 뻔뻔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헤맨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드라고니아가 알려준 나무 몇 그루의 틈새를 비집고 지나가지는 않았다. 대신 그쪽에 등을 돌리고 기대앉아서 잠시 쉬었다. 마스크에 익숙해진 숨결이 조금 부드럽게, 입과 코의 열기를 눈가로 밀어 올려주는 것을 느끼면서 잠시 손발을 쉬게 하며 투란은 귀를 기울였다.
그저 산길을 헤맨 것뿐이었지만, 몸을 지치게 하기에는 넘치고 남는 몇 시간이었다.
‘마스크 쓰고 나서 멀리 왔나? 금방 와서 계속 헤맨 건가?’
문득 투란은 궁금했다.
과연 처음 독부엉이를 만난 곳과 이곳까지는 멀까, 가까울까.
―빙빙 돌기 시작한 거는 한 시간 조금 넘었다. 날아 움직이는 새를 찾아 구불거리는 숲속, 산길을 꽤 빨리 지나쳤어. 막판에 빙빙 돌지만 않았어도…….
드라고니아가 대답하듯 중얼거렸다.
투란은 마스크 안의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흐흠? 그럼, 나름대로 능력 있어 보였겠네?’
―하? 누가 봤다면 바보라고 비웃었겠지! 누가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판이란 말이다!
뇌리에 드라고니아의 잔소리가 울릴 때, 투란은 귓가에 부엉이 울음소리가 닿는 것을 느꼈다. 낮게, 길게…… 몇 마리가 제멋대로 떠들며 노는 소리였다. 등 뒤에서, 몇 그루의 나무를 지나쳐오며 꽤나 희미해진 부엉이 울음에 투란이 혼잣말을 나지막하니 뱉는다.
“자, 복수해주마! 한번 죽었던 복수다!”
―뭐? 복수는 쟤네가 해야지! 죽은 건 네가 아니고 그날 운수 나빴던 그 독부엉이잖아!
드라고니아가 바로 핀잔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