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4)
두 개의 이상한 심장과 함께 얻은 팔만이 오그라들지 않았다.
투란은 눈앞이 순식간에 붉어지는 것을 느꼈고, 앞이 핑 돌면서 저절로 무릎에서 맥이 풀리며 주저앉으려는 상태를 깨닫기도 했다. 엉겁결에 왼손을 들어 보니, 살갗이 핏기를 잃은 채로 마르며 자글거리는 껍질만 남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두 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동안 가슴에 축적되는 흰 빛의 반짝임은 이제 가슴팍 살갗을 투과하며 그 번뜩임을 과시할 지경에 이르러 있기도 했다.
“저리…… 가!”
투란이 반사적으로, 본능적으로 이에 대항한 방법은 외침과 함께 오른팔을 세차게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파치이이이!
귀를 간지럽히는 이상한 울림이 들렸다.
번쩍!
눈알이 푸석거리는 느낌과 함께 붉어진 세상을 향해 시린 광채가 뻗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투란의 앞에는 흰 빛줄기가 그어졌고, 벼락이 빛의 인도에 따라 내리꽂히며 주변을 두들겨 팼다. 원래 타버린 채인 잿더미로 내리꽂힌 벼락이 시커먼 재를 한 번 더 분쇄했고, 벼락불은 더 넓게 퍼져 나갔다.
그 광경을 조금 늦게 깨달으며, 투란은 자신이 맴도는 것을 알아차렸다.
멈추기 위해 허우적대니, 바로 심장과 함께 얻은 네 손가락의 팔이 바닥에 닿으며 주먹을 꽉 누르는 동작을 했다. 하지만 투란의 몸은 서 있는 채였다.
‘팔만 이 심장 녀석의 것이고, 나머지는 내 몸!’
투란은 금세 이 상태를 자각했다.
이 두 개의 심장이 격하게 뛰면서, 투란의 가슴, 오른쪽 어깨와 팔만이 변이된 상태로 남았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사람인 채였다. 그리고 팔이 그냥 늘어뜨려도 투란의 본래 키로는 발목에 닿을 정도로 긴 탓에 잠깐 수그리고 내리찍는 동작을 하니 바로 땅을 짚은 것이다.
그리고 가슴까지 스며들었던 흰 빛의 번쩍임이 어깨 죽지를 통해 다시 가슴으로 스며들려는 것이 느껴졌다. 방금 사람인 채인 몸을 통째로 맴돌게 할 정도로 거세게 팔을 휘둘렀던 탓인지, 가슴에 맺히려 한 것이 팔을 따라 흘러간 듯했다. 그것이 다시 기어들고 스며들려 하고!
‘안 돼!’
투란은 바로 네 손가락을 꽉 움켜쥔 주먹을 당기며, 본능적으로 앞으로 내질렀다.
울창한 숲의 그늘과 어둠을 향해 빛줄기가 뻗었고, 벼락이 그 빛을 따라 그어졌다.
섬광, 폭음!
거뭇하게 흩어지는 재!
숲의 한 귀퉁이가 자신의 손에서 뻗어 나간 벼락과 그 불꽃에 깨져 나가는 광경은 투란의 붉게 물든 눈으로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손목과 손바닥으로 이어지는 대롱처럼, 흰 빛은 아직 투란에게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두 번의 강렬한 휘두름과 내지름으로 확실히 몸 밖으로 내보냈다.
투란은 한쪽 무릎을 접으며 네 손가락을 활짝 펴며 위로 치켜 올렸다.
네 손가락의 손바닥이 검은 잿더미로 물든 땅을 내리찍었다.
흰 빛이 땅속으로 뿜어졌고, 미묘하게 뭔가 긁히는 음향이 울렸다.
투란의 오른손이 다시 네 손가락을 활짝 펴며 땅을 찍어 갔다.
세 번, 네 번…….
투란은 몸속에 스며든 흰 빛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꼈고, 희미한 자취가 여전히 그 흰 빛과 어울리려 하는 듯한 낌새도 느꼈다. 그 느낌이 본능을 자극하며 알려 주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으면, 저 벼락을 부르는 흰 빛이 다시 회복해서 달려들 것이라고! 그러면 그 결과는…….
‘말라 죽어!’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몸이 마르고, 비틀린 꼴이 되어서 저 잿더미 사이에 뻗고 말 것이다!
투란은 힘겨운 걸음을 내디디며, 많이 마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길고 강인한 괴물의 형상을 한 오른팔을 지팡이 삼아서 움직였다.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러면서 뇌리 한편으로는 몸의 상태도 가늠하고 있었다.
발바닥이 찔리고 베이는 느낌이 선명했고, 살갗이 시린 느낌도 강해졌다.
사람의 몸이 이 숲의 환경 속에서 망가지고 있었다.
두 개의 심장은 여전히 세차게 뛰고 그 울림이 악마의 심장보다 강렬하게 느껴졌지만, 그 맥동에서 흘러나오는 재생력은 형편없었다. 아까의 흰 빛과 함께 모든 힘을 다 쏟아 내서 당분간은 제대로 몸을 재생시킬 수 없는 듯했다.
악마의 심장이라면 이 정도 맥동만으로 충분히 몸을 지킬 텐데!
생각은 곧 염원이 되었고, 염원은 잿더미 아래에서 발을 찌르는 단단한 자갈을 느끼면서 보다 강해졌다.
‘젠장, 심장이 두 개가 되었잖아! 하나쯤 씹어 먹어도 된다고!’
투란은 진흙 더미에 드러나 있던, 악마의 심장과 겨루고 있던 한쪽 심장을 떠올렸다. 그 반대편 가슴에 또 하나의 심장이 멀쩡할 줄 몰랐잖은가. 사람도 가끔 오른쪽에 심장이 있어도 괜찮을 듯싶었다.
투란이 지닌 악마의 심장은 애초에 심장을 파먹고 융합했다!
‘완전 재생도 된다고!’
새삼스럽게 투란은 자신이 체험을 통해 얻은 능력을 되새기며 보다 강하게 염원했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쿠쿵!
기묘하게 엇갈리는 맥동이 느껴졌다.
투란은 웃기 시작했다.
왼쪽 가슴 깊은 곳에서, 이상한 심장의 안쪽에서 악마의 심장이 생겨났다. 사람의 것보다 크고 두꺼워 악마의 심장이 두어 개는 담길 정도인 이상한 심장 속에서 악마의 심장이 덩굴줄기를 뻗으며 핏줄을 타고 번져 나왔다. 그러면서 악마의 심장 속에 다시 ‘작은 늪’이 생겨났다.
그 변화 속에서 투란은 따끔한 감촉을 느낀 왼발에 힘을 꽉 줬다.
힘이 들어간 엄지, 새끼발가락이 꿈틀거리며 굵어졌다. 왼발이 엄지가 양옆으로 둘 달린 꼴이 되며 커지고 굵어졌다. 단단한 회색의 살갗은 더 이상 따끔하거나 뭔가에 찔리고 베이는 느낌 따위를 전하지 않았다.
투란은 오른발을 세게 들어 올리며 힘을 주고 내디뎠다.
오른발 역시 그랑츄의 회색 살갗으로 물들며 커졌다.
뒤뚱거리는 두어 걸음 사이에 투란은 발끝이 튀어나온 돌에 걸리는 것을 느꼈고, 돌이 부러져 날아가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 왼쪽 어깨를 내밀며 몸을 던져 뒹굴고 있는 투란이었다. 돌부리에 걸린 순간, 사람이면 당연히 엎어질 것을 깨닫고 반사적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구른 것이다.
구르는 사이에 투란의 왼쪽 어깨, 등 쪽으로 회색의 살갗이 번지기도 했다.
다시 굴러 일어나 뛰기 시작하면서 투란은 몸의 변이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가를 가늠해 봤다.
‘팔, 두 발, 몸…… 허리에서 등뼈까지는 그랑츄고 오른팔, 가슴 오른쪽은 벼락 맞은 심장…….’
그리고 악마의 심장은 ‘작은 늪’을 품은 채로 투란의 새로운 몸에 섬세한 넝쿨을 퍼뜨리며 적응하고 있었다. 그 적응이 좀 더 세밀하게 투란의 몸을 조율했다.
곧 투란은 쿵쾅거리는 발을 내디디며 벼락으로 타 버린 늪가를 벗어나 뛸 수 있었다. 가슴에 아련하게 흰 빛의 자취가 점차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지니, 투란의 걸음은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벼락을 맞아 재가 되거나 혹은 벼락을 부르는 흰 빛을 품고 말라비틀어져 뒈지거나, 어느 쪽도 투란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므로!
“푸아아아아하악!”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투란은 겨우 발을 멈추고 주저앉았다.
잠깐 앉아 두어 번 숨을 더 거세게 몰아쉬고 나자, 몸은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두 개의 심장이 조율되면서 몸의 상태가 거칠게 치달리던 여파를 한순간에 걷어 낸 모양이었다.
‘전혀 얻은 게 없지는 않아.’
왼쪽에는 악마의 심장이, 오른쪽에는 여전히 저 ‘이상한 심장’이 자리 잡은 채였다.
그리고 둘이 실핏줄을 그물처럼 뻗어 만난 가슴속, 척추로 들러붙어 가며 만든 매듭이 선명하게 투란에게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원래 두 개인 ‘이상한 심장’은 이 매듭을 통해 좌우를 조율하고 박자를 맞춰 거세게 맥동했다. 그러면서 한쪽이 망가지면 매듭에서 피어난 심장의 알이 그 자리에 새 심장을 낳아 키우고, 이 심장의 알은 양쪽이 모두 망가지면 두 개를 낳아 키울 수도 있었다.
‘심장 한쪽만 남아도, 이 매듭은 저절로 맺히고 말이지.’
뭔가 여러모로 ‘이상한’ 심장이었다.
도대체 이 심장을 원래 지니고 있던 놈은 대체 뭘까?
투란은 네 손가락을 펼치며 연한 새싹 빛깔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악마의 심장과 조율되면서 ‘이상한 심장’이 맥동하는 속력은 원래 박자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채였다. 그 정도로도 투란의 몸, 그랑츄와 섞인 몬스터 로드의 몸을 거뜬히 유지하고 체력을 뿜어낼 수 있었으니까!
다만 그 결과 오른팔의 강인함, 탄력이 아주 심하게 약화된 것도 알 수 있었다.
재생력도 그만큼 저하되었다.
‘그런데도 악마의 심장보다 훨씬 세고 빠른 회복력을 보인단 말이지.’
투란은 어이가 없었다.
그 흰 빛이 아니었다면, 몸통이 통째로 ‘이상한 심장’의 재생력에 휘말릴 뻔했다. 원래 두 개의 심장을 지닌 괴물의 몸이 될 뻔한 것이다. 몬스터 로드로서는 이걸 아쉽다고 해야 할지 위험했다고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한 심장’이 박혀 있는 강인한 몸을 챙길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 몸을 재생하는데 체력이 마구 소모되었을까?
‘아예 팔에 삼키는 표식을 떨궜다면…… 그 흰 빛을 삼킬 수 있었을까?’
돌연 떠오른 생각이 투란의 기분을 아쉬움 쪽으로 기울게 했다.
악마의 심장과 다투는 심장을 보는 순간, 거기에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
그래서 반짝거리는 것도 심장을 거쳐 당연히 삼키겠거니 했다.
이렇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아, 땅에 박혀 약해져 있었잖아? 돌아가서 한번…….’
퍼뜩 떠오른 생각에 돌아본 투란은 곧 실망해야 했다.
앞뒤 재지 않고 마구 뛰어온 길, 돌아보니 어디서 뛰어왔나 알 수가 없다!
우거진 숲의 곳곳이 그냥 뻥뻥 뚫린 틈새를 보였고, 그늘과 어둠이 가득해서 방향을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곁에 있는 나무 너머로 보이는 늪의 풍경도 슬슬 아주 넓어지면서, 여기저기로 가지를 치는 꼴이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한데, 이미 때를 놓친 꼴이라니!
‘좋게 생각해! 살았잖아!’
투란은 속이 시큰거리는 것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쪽으로 다독여 볼 수밖에 없었다. 거기 머물 때 혹은 돌아갈 수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났다면 더 좋았겠지만.
“뭔지 모를 몬스터가 덤비는데, 멀뚱히 서서 관찰을 해? 아아, 저놈은 어디가 약점이고 어디가 잘생겼나 자세히 좀 보자…… 그러면서? 그런 게 바로 죽으려고 환장한 짓이란 거야! 뭔지 알고 잡을 방법을 알아도 죽어 나가거든!”
떠오르는 기억이 투란을 조금 더 위로했다.
이렇게 여유가 생기니 아쉬운 것이다.
거기서 말라비틀어져 뒈졌다면 얼른 도망치지 못한 것을 후회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일단 몸을 둘러봤다.
질긴 뱀 가죽은 덜렁거리며 허리춤을 두르고 팽팽하게 묶여 있었고, 거기 엮어 매단 뱀 가죽 끈과 작게 꾸려 놓은 보자기도 여전히 덜렁거리며 잘 매달려 있었다. 몬스터 헌터의 실매듭을 익혀 둔 보람이 느껴진다!
보람찬 느낌과 작은 여유는 바로 투란에게 허기를 선물했다.
‘먹을 거 없나?’
투란의 왼손이 불쑥 나무껍질을 쥐고 뜯었다.
나무속이 보이며 즙이 나오고, 껍질째로 그 속이 조금 파여 나왔다.
그랑츄의 왼손은 당연하다는 듯이 입으로 움직였고, 투란은 넝쿨 가닥이 잔가시를 내미는 혀로 좀 핥아 봤다.
먹을 수 있다는 신호가 곧장 위장 속에서 울려 나왔다.
조금씩 더 나무껍질을 벗기고 속을 파내 씹으면서 투란은 잠깐 멍해졌다.
도대체 어디로 와 버린 것일까?
기왕 달아날 것이면 그랑츄를 찢어 죽인 놈을 쫓는 방향이 좋았을 텐데.
‘아니, 안 좋았으려나? 걸리면 뒈질 것 같지?’
투란의 생각은 금세 반전했다.
한번 말라 죽을 뻔하고 나니, 왠지 안전하게 가고 싶어진 듯하다.
기분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꼴을 느끼며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키득거렸다.
누가 보면 미친놈 같겠지만, 투란에게는 자신을 비웃을 만한 이유가 너무 분명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겨우 시체 줍기나 하면서 대체 뭘 쫓으려 하는가!
벼락도 못 뿜는 오른팔을 덜렁거리면서 저기 고함지르며 몇 마리 떼로 달리는 그랑츄도 못 이길 것 같…….
‘어?’
투란의 눈이 커졌다.
멍하니 나무에 기대고 있다 보니, 이 숲의 소란조차 뒤늦게 느꼈다!
바로 앞에서 나무를 손으로 휘저어 분지르고 밀어내며, 밟히는 놈은 그냥 꺾으면서 스쳐 가는 우람한 그랑츄가 있었던 것이다!
그워어어어어어어!
환호할 때도, 미쳐 날뛸 때에도, 뭔가 애절할 때도 그랑츄가 맨날 똑같이 지른다는 그 괴성이 코앞을 스쳐 갔다! 귓전으로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인데, 그보다 먼저 짙고 탁한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
투란의 고개가 뻣뻣하게 옆으로 돌았다.
그랑츄 몇 마리, 멀리서 ‘그워어어!’ 하는 놈을 빼고 눈에 보이는 것은 겨우 세 마리, 그놈들이 들이받으려 하는 녀석도 보였다.
붉은 갈기가 달빛 아래 휘날리는, 늑대 머리가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