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4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36)
Chapter 108. 헌터의 의무
“오, 돌아왔나?”
“문이 좁아요!”
“아, 창고 문 열어줄 테니까 잠깐 기다려.”
“창고?”
“뒤로 물러서 기다려봐.”
스펫이 문가의 벽을 미는, 어딘가 요상하게 보이는 짓을 하며 재촉하는 말에 투란은 일단 문턱에 끼여 있는 짐 더미를 더 당기지 않고 뒤로 물러서며 빼냈다. 곧 스펫이 미는 벽이 빙 도는 것처럼 살짝 틈을 열었고 스펫은 그 안으로 사라졌다. 그 다음에 바로 문 옆의 벽이 스륵거리면서 한쪽으로 밀려 들어가며 열렸다.
“흠?”
“여기에 내려놔.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놨지.”
열린 벽 너머로, 벽처럼 보이던 미닫이문이 훤히 열린 곳에서 스펫이 바닥에 펼쳐진 듯한 나무 평상(平床)을 손으로 쓸어내면서 말하고 있었다.
투란이 거기에 독부엉이를 싸온 짐을 내려놓는 사이, 스펫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며 길가에서 눈치 보는 꼬마 몇을 향해 외친다.
“심부름할래? 동전 두 닢이다. 해체하는 아저씨네 알지? 그 가게 가서 스펫 아저씨가 일감 도착했다고 전해 달랬다고 말하는 심부름이야. 제일 빨리 다녀온 녀석에게 두 닢 다 준다! 해체 아저씨랑 같이 오면 줄 거야!”
투란은 바로 애들 몇이 내달리는 모습을 봤다.
먼저 갔다 오려고 거의 전력질주를 하는 모양이었다.
스펫은 주머니에 동전을 다시 넣으면서 한편에서 넓고 얇은 담요 같은 보자기를 꺼내 투란이 내려놓은 짐 더미를 덮었다.
투란이 피로함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처럼 한숨을 쉬며 슬쩍 땀을 훔쳐내는 시늉을 하자, 스펫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묻는다.
“성벽 관문에서 얘기 들었나?”
“얘기요? 다들 바쁘다고 오락가락하는 것만 봤는데요. 독부엉이 사냥해온 거, 스펫 도구점에 예약된 거라니까 빨리 가보란 소리는 하던데…….”
갸웃하면서 투란이 대답했다.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다는 것을 되새기는 투란을 보며 스펫은 쓴웃음부터 흘리는 채로 말한다.
“그래? 막 사냥에서 돌아왔으니…… 못된 소리 한다고 욕먹기 싫었나보네.”
“에? 무슨 말이에요?”
투란이 더욱 갸웃하면서 물었다.
스펫이 잠깐 눈동자를 굴리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을 한다.
“어차피 들어야 할 일이기는 하니까…… 전하는 사람에게 뭐라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그것만 명심하고 들어. 길드에서 헌터 소집을 하고 있거든. 길드에 등록된 헌터라면 반드시 응해야 하는 소집이야. 아무래도 뭔가 큰일이 난 것 같다더군. 그래서 웬만한 상급, 중급 헌터는 이미 전부 소집된 모양인데…… 수가 모자란 모양이야. 그래서 하급 헌터랑…… 그래, 마수 사냥만 하겠다는 헌터라도 길드에 등록되어 있으면 응해야 하는 소집이지. 이번 소집은 의무 공역(公役)이기는 한데, 공역 일수에서 공제(控除)는 안 해준다니까 다들 입이 한 발씩 나와 있지.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하는 큰일이 조짐을 보인다니까…….”
투란은 스펫이 독부엉이를 담아온 그물과 보자기를 조금 더 세심하게 감싸두는 광경을 보면서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채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헌터 길드에 이름을 얹은 헌터라면 길드에서 주관하는 일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때가 있었다. 라펜과 마켈처럼 지정된 곳에서 정해진 날만큼 경계를 서든가 혹은 몇 건의 사냥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 의무, 공역은 일단 해제가 된다.
기본적으로 공역은 헌터 자신이 선택하게 되어 있기는 하지만, 특정한 사냥에 필요한 인재라면 때때로 강제동원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공역이 아니라 길드에서 필요하다고 선발한 경우에는 짧아도 오 년, 길게는 십 년 동안의 공역을 한꺼번에 치른 것으로 셈한다. 그만큼 위험한 일에 끌려가는 선발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공역의 해제 없이 동원되는 일이라면…….
“위험한 일은 아닌가 보네요?”
하급 헌터까지 불러 시킬 정도라면 목숨이 휙휙 날아갈 상황은 아니라고 투란은 판단했다.
스펫이 조금 더 짙은 쓴웃음을 띠며 대답한다.
“글쎄…… 그게 좀 애매하다니까…… 자세한 거는 길드에 가서, 아니면 길드 퍼브에 들러서 알아봐. 아, 이거 값은…… 해체하고 나서 제대로 매겨서 주고 싶은데, 괜찮겠어?”
“음…… 그래요. 크기도 다르고 독성도 다르다면서요. 좋게 쳐줘요. 아직 둥지에 몇 마리 더 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럼, 전 일단 가볼게요. 이거 들고 오느라 씻지도 못해서 말이죠.”
투란이 며칠간 제대로 씻지 않아 몸이 오글거린다는 시늉을 해보였다.
스펫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저쪽에서 애들이 우르르 달려와 외치고 있었다.
“내가 제일 빨랐어!”
“넌 혼자잖아! 내 아저씨가 더 빠르다고!”
“아저씨, 빨리요!”
투란은 그쪽에서 건장한 아저씨 서넛이 애들 뒤를 따라 뛰는 시늉을 하며 조금 빠르게 걸어오는 광경을 봤다. 바로 묻는 소리가 투란의 입에서 나온다.
“독부엉이 몇 마리 해체하는 데 몇 사람이나 필요한 거였어요?”
“그럴 리가 있냐! 아, 저것들 진짜! 투란, 넌 얼른 가서 씻고 좀 쉬다가 길드에 가봐. 어쨌든 참여는 해야할 테니까. 괜히 길드에 미움 사지 말고. 야, 너네! 왜 다 몰려오는 거야!”
스펫이 손짓해서 투란을 가라 하며 저쪽에 나타난 서너 명 되는 해체업자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투란은 바로 스윽 뒤로 물러서면서 슬슬 스펫의 상점에서 멀어지며 무슨 소리가 오가는가에 귀를 기울였다.
나타난 해체업자 중 두엇이 그런 투란을 흘깃하면서도 스펫에게 넉살 좋게 말문을 열고 있었으니…….
“소리 지르지 마.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그래, 우리도 할당량을 받았다니까.”
연달이 입을 여는 둘의 말에 스펫은 고개를 갸웃했다.
“할당량?”
해체업자들은 바로 스펫의 창고 안으로 들어서면서 다시 번갈아가며 설명한다.
“헌터 소집이잖아.”
“장비도 미리 맞춤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이미 나간 헌터들이 잔뜩 챙겨가는 바람에…….”
“할당된 독화살을 만들려면 소재가 부족해서…….”
스펫은 넷이 한마디씩 하는 소리에 끄응 하고 혀를 차고 말았다.
투란에게 한창 설명했던 헌터 소집, 그 일이 마수나 몬스터를 해체하고 그 잔재를 얻어내는 이들에게 확실히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알드바인에서 상점을 운영하거나 이렇게 해체를 통해 소재를 얻어내는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 공납(公納)을 요구하는 것이다. 평소 숨겨둔 채로 비장해둔 것 있으면 아끼지 말고 꺼내라고 얼러대는 정도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납품에 대해서 적정한 가격대로 지불도 하기는 했다. 물론 비장한 물품을 가능한 비싸게 팔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그리 마음에 드는 가격이 될 리가 없지만.
때문에 독부엉이를 해체해서 나온 것으로 공납을 해결 보려는 작자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다. 한 명, 서둘러도 둘이면 될 일인데…….
그래서 스펫은 굵은 목소리로 간단히 으름장 놓기로 했다.
“이걸로 공납 다 때울 생각이면…… 돈 좀 더 내놔라. 이거 중요한 첫 거래거든? 아직 둥지를 완전히 비운 거 아니라고…… 오다가 멀리서라도 듣긴 들었지?”
이 소리에 해체하러 온 이들의 눈길이 다시 슬쩍 투란을 향했다.
슬슬 멀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투란은 귀를 기울이며 몸을 반 정도만 돌린 채였다. 때문에 이 몇 쌍의 눈길과 바로 투란의 눈이 마주쳤고, 투란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면서 재빨리 돌아서서 종종걸음으로 가던 길 간다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런 투란의 뒤통수를 보며 해체업자 한 명이 중얼거린다.
“둥지를 비우지 못한 건가, 둥지에 일부러 몇 마리 남겨둔 건가.”
다른 한 명이 피식 웃으며 이에 대꾸한다.
“잡기 힘들고 가져오기 힘들어서 그냥 왔을 수도 있지. 뭐, 어쨌든…… 값이 마음에 안 들면 스펫 가게 말고 다른 곳을 알아보겠다고 제대로 말하잖나. 애송이처럼 생겨서는 제법 세상 물정 잘 아네.”
말과 함께 자신을 향해 히죽거리는 해체업자들을 향해 스펫이 바로 으르렁거린다.
“그러니까, 너네가 나한테 후한 값을 쳐줘야 해! 특히나 지금처럼 공납이 얽혀서 급히 필요한 물건이라면…… 급전도 쳐줘! 좋은 마수 사냥꾼을 놓치게 하면, 나도 딴 데 알아볼 테니까!”
“네, 네!”
“에헤, 농담이라고, 농담.”
스펫이 꽤나 진지하게 눈 흘기는 모습에 해체업자들이 재빨리 얼버무리는 소리를 흘리면서 평상을 둘러서는데…….
“아저씨!”
“동전!”
“내가 제일 빨랐다고요!”
애들이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이 도시의 헌터 전원을 동원할 정도라면…… 설마 범람인가.
드라고니아가 꽤 진지하게 말문을 열고 있었다.
투란은 끄응 하면서 소리 없이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모처럼 한발 한발 헌터 경력을 쌓고 있는데 뭔 범람이야, 범람은! 그런 일이라면 라비엔에서…… 어라?’
―고블린 일도 그리 흔한 사건은 아니라고 했었지. 아무래도 춤추는 산맥 안에서 뭔 일이 났나보군. 그 여파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흘러나오는 조짐이라고 생각되는데?
‘아니, 왜! 우리 나올 때까지 특별한 일도 없었잖아?’
투란은 알드바인의 길거리 풍경을 둘러보면서, 며칠 전과 별다른 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훑어보면서 생각했다.
‘역병의 수해’를 넘어 네 남매와 투란만 나왔다.
수해 안의 몬스터, 짐승은 함께 나오지 못했다.
그 너머에 있는 헬임프 따위도 역시 수해를 넘지 못했다.
헬임프 계열의 몬스터는 역병에는 영향을 받지 않아도 역병 들린 몬스터, 짐승을 이겨내지 못한 채로 수해에 삼켜졌다. 그저 역병 들린 패거리가 되지 못한 채로 죽고 파괴당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수해 너머로 불타는 핏줄을 지닌 몬스터가 나오지 못하는 상황…….
저 안쪽에 뭐가 있든 딱히 라비엔의 경계를 넘어선 일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라비엔을 거쳐오면서 겪은 것이라고는 늘상 있는 불규칙한 몬스터의 대이동…… 제법 약하고 귀찮은 고블린의 일 정도였다. 그나마도 제대로 충돌했다기보다는 그냥 스쳐간 정도였잖나.
한데 알드바인에서 느닷없이, 사나흘 전만해도 조용하다가 갑자기 소집이라니?
‘이거 홀시딘에게 물어봐야 하나?’
―자리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났냐고 오히려 되물어올 것 같다만?
‘그렇겠네?’
벅벅, 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리 비운 사람에게, 꽤나 멀리 간 마법사에게 물어보면 오히려 투란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알아내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 대해 투란이 좀 더 알아내는 쉬운 방법은…….
‘음, 그래! 영감이라면! 할배 중의 할배라면 좀 자세히 알 거야!’
하클의 공방을 향해 가벼운 걸음을 내디뎠다.
“왔어요!”
홱!
“우엇!”
턱!
문을 열고 경쾌하게 외치는 순간에 대뜸 날아든 물건을 놀란 소리와 함께 투란은 공중에서 낚아챘다. 한데 한 손으로 잡고 보니 작은 망치잖은가.
“하클! 뭔 짓이에요!”
“열흘 뒤에 오라고 했잖아! 투자했다고 매일 들러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
“저기요? 사냥 갔다가 며칠 만에 돌아와서 인사나 하려고 들렀거든요? 재촉하러 온 게 아니라고요!”
“젠장, 한번 사냥 나갔으면 한두 달 있다가 오란 말이야!”
하클이 허리를 펴면서 의자에 기대며 약간 충혈된 눈알을 드러낸 채로 중얼거렸다.
투란은 여태 숙이고 있던 하클의 작업대를 흘깃했고…… 입술을 꼬옥 깨물면서 일단 작업대 위에 줄지어 놓인 물품, 금전을 투자해서 완성시켜 달라 했던 것에 대해 묻는 것을 참았다. 그것 말고도 당장 물어야 할 것은 있었던 덕분에 나름대로 참기 쉽기는 했다.
“근데, 오다보니 공납이니 뭐니 하던데…… 하클 할배는 영감 소리 들으니까 그런 거 안 해도 되는 거예요?”
“응? 공납?”
잠깐 하클이 눈을 껌벅거렸다.
아무래도 며칠 동안 공방 밖의 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누가 온 적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투란은 눈을 가늘게 떴고, 그 태도에 하클도 다시 갸웃하면서 작업대 주변을 둘러봤다. 곧 하클은 작업대 아래에 떨궈진 원통 하나를 집어서는 마개를 땄다. 원통 아에서 두루마리 한 장이 말린 채로 빠져나왔다.
“공납 요청이 있기는 했나보네. 내가 바쁘다니까 던져놓고 그냥 갔나본데.”
“뭘 만들어 달래요? 인힐트?”
“아냐. 이건…… 쳇, 쇠 사러 가야겠군.”
“뭔데요!”
눈을 번쩍번쩍하는 표정으로 투란이 보채듯이 물었다.
“투창. 던지면 갈라져서 떨어지는 파편화되는 투창.”
조금 쉬려는 듯, 곰방대에 연초를 쟁이면서 하클이 투덜거리는 소리로 답했다.
투란은 바로 눈을 부릅떴고 호기심이 가득해서 묻고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데, 그게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