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4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37)
“후우욱! 성벽에서 쓰려는 거야! 들고 다니면서 쓸 거 아니라고! 질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냥 한꺼번에 창을 쏟아부어야 할 때 쓰는 그런 거야! 사냥에는 전혀 걸맞지 않는 투창이야!”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면서 폭풍처럼 뿜어내는 말이었다.
투란은 자신에게 신경 쓸 물건이 아니란 소리를 길게 늘려 해주는 하클을 향해 입술을 삐죽거렸다.
“누가 들고 다니면서 쓰겠다고 했어요? 궁금하다고요, 궁금! 처음 본다니까요! 들은 적도 없다고요!”
왕성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투란을 향해 하클이 연기를 후욱 뿜어내면서 지친 표정부터 지어보였다. 쓸데없는 이야기 늘어놓느라 힘 빼기 싫다는 기분을 잔뜩 드러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으면 투란이 그냥 넘어갈까? 어쩔 수 없이 하클은 화제를 돌려보려는 시도를 한다.
“나한테 공납 요청이 올 정도면, 너한테도…… 너, 길드 등록은 되어 있지?”
“에? 그야…… 되어 있죠. 그러고 보니 나한테도 길드에 한번 가서 알아보라고…… 도구수리점 아저씨가 그러긴 했어요.”
“후욱! 그렇다면…… 어쩌면 내 설명 필요 없이 직접 만져볼 일이 생길 수도 있겠군. 성벽 경계라도 신청해봐, 거기 이미 배치해놓은 투창이 있을 테니까. 소나기 투창이라고 하면 어떻게 쓰는가 설명해줄 거야. 그보다…… 아, 젠장. 한참 달아올랐는데 뭔 공납이야, 공납은…… 알아봐야겠네. 야, 나중에 다시 와.”
중얼중얼, 혼잣말처럼 길게 늘어놓던 하클은 할배의 특권처럼 주섬주섬 일어서면서 겉옷을 챙겨 입고는 투란을 밀어내며 공방에서 아예 나왔다.
엉겁결에 등 떠밀려 나온 꼴이 된 투란이 징징거린다.
“그냥 지금 말로 해주면 되는 걸! 뭘 신청해요, 신청하긴! 일하다가 갑자기 어딜 간다고!”
“공납품 만들려면 소재가 필요하다고! 지금은 그냥 가라고! 가!”
문을 잠그면서 하클은 징징거림에 맞서는 투덜거림을 토해냈다.
그리고 멀어져가는 하클의 뒤통수를 잠시 바라보다가 투란은 돌아섰다.
―뭐야, 알아낸 게 아무것도 없잖아?
드라고니아가 이 상황에 대해서 다소 어이없는 듯이 중얼거렸다.
‘응? 뭐가 아무것도 없어? 많이 알아냈는데?’
투란은 남쪽 성벽을 향해, 거대한 신목의 그루터기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면서 대꾸하고 있었다.
―알아냈다고? 뭘? 언제? 무슨 말이지?
‘음? 뭐야, 너 뭐가 뭔지 몰랐어?’
―투창 놓고 헛소리하던 것은 분명히 알겠다만…….
‘야, 그 투창 정말 처음 듣는 거라고! 하클도 따로 만들어 둔 것 같지는 않고…… 성벽 쪽을 몰래 뒤져봐야 하나?’
―그러니까, 그것 말고 달리 오간 이야기가 없잖아! 무슨 일인가 알아내겠다고 하클에게 들른 거잖아! 왜 헌터 길드에서 소집하는가 알고 싶다고 온 거였잖아!
울컥한 드라고니아의 말투가 또렷했다.
투란은 휙휙 걸음을 크게 하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너, 정말 사람들 상황은 잘 모르는구나.’
―인간의 상황에 대해서 내가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핑계는…… 암튼 이런 일에서 인간은…… 하클처럼 할배 중의 할배란 소리를 들을 정도인 사람한테까지 공납요청이 들어왔다는 거는 꽤 중요한 정보라고. 일할 사람은 모조리 일을 시키겠다는 뜻이니까. 뭐 정신 나간 귀족이나 왕족이 설치는 곳이라면 괜한 일을 시키려 하는 거겠지만, 여기처럼 헌터 대공방까지 있는 곳에서는 진짜 급하다는 거라고.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하급 헌터까지 동원할 정도의 일이면서 아주 급하게 대비해야 할 상황이란 거지.’
―하클에게 들러보기 전에 이미 확인된 것뿐이잖아! 대체 뭘 알아냈다는 거냐!
투란의 길쭉한 말을 딱 부러뜨리듯이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투란의 입가에서 가벼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쯧쯧! 여기까지 듣고도 모른다니! 친절하고 상냥하게 설명해줘야겠군! 간단히 말해서, 어떤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났는데 알드바인의 누구도 잘 모른다는 거야. 성벽에 배치된 투창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 하클 영감에게 손을 벌린다는 거는, 대강 뭐든 준비는 해야겠는데 구체적으로 뭐가 오는가 모른다는 뜻이라고. 상급과 중급의 헌터를 대부분 동원했다는 일은 아마 스카우트일 거야. 이상한 조짐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정찰, 그리고 그사이에 평소처럼 둘러볼 수 없는 곳은 하급 헌터라도 동원해서 평소랑 어떻게 차이가 나는가 정도만을 정찰하려는 거겠지. 에헴, 알아들었어?’
―전혀 근거가 없는 소리를 근거 있는 척하는 중이냐?
‘우씨! 설명해줬더니만! 듣기 싫음 관둬!’
드라고니아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하는 말에 투란은 툴툴거리면서 냉큼 내달렸다. 어느새 귓가에는 페란드의 망치 소리가 들려오는 중이었다. 그 소리를 향해 투란은 조금 더 속도를 올렸고, 은빛매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문턱에 닿자마자 고개만 들이밀면서 페란드를 향해 묻는 소리를 지른다.
“페란드! 혹시 공납품으로 뭐 만들어달란 소리 들었어?”
카앙!
올렸던 망치를 한 번 더 내리찍은 다음, 페란드는 느긋하게 손을 멈춘 채로 고개를 돌려 투란을 바라봤다.
“사흘? 나흘 만인가? 다친 데 없이 돌아왔네?”
“어, 다녀왔어. 공납 이야기 못 들었어?”
투란은 조금 멋쩍게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페란드도 입가에 피식 웃음을 걸면서 대답한다.
“어제인가, 그제부터 듣기는 했어. 나한테 공납하란 소리는 아니었고, 광석을 좀 사러 갔다가 공방 거리에서 들었지. 길드에 등록된 공방 장인들에게 요청을 한 모양이야. 이번 공납을 하면 알드바인 자치세도 그만큼 면제해준다고……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고, 다들 반응은 다르더라고.”
“흐흠. 페란드에게는 공납하란 소리를 안 했단 말이지…….”
투란이 조금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페란드가 이번에는 조금 쓴웃음을 띤 채로 말한다.
“길드에 등록을 했지만, 공방 장인으로 등록한 거는 아니잖아. 그리고…… 우리한테는 조금 다른 전언이 오기는 했어. 그게 어제였나, 그제였나?”
페란드의 갸웃하는 끝말에 바로 다른 목소리가 이어지며 이야기한다.
“그제였지. 혹시 모르니까 그루터기 아래를 주시해달라고 말이야. 감당하기 힘들면 바로 길드나 상아탑으로 연락 넣어달라고 하는 이야기였어. 맞아, 홀시딘이 우리를 이곳의 붙박이 가드로 지정해놨잖아.”
투란은 제란드가 페란드의 대장간 안쪽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
부스스하니, 졸다가 투란과 페란드의 이야기 소리에 깨어 나온 듯한 모습의 제란드였다.
갸웃하면서 투란이 아래를 보며 중얼거린다.
“그루터기 아래면……?”
“응, 이 아래. 땅속.”
제란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발로 바닥을 툭툭 치며 대꾸했다.
페란드가 여기에 보태듯 말한다.
“덤으로 이 남쪽 성벽에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가도 봐달라고 했지. 이쪽은 어차피 북쪽에 비교하면 꽤 좁고 만약을 대비한 우드 가디언도 잔뜩 매설해놨지만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우리는 공납이라든가, 공역에는 꽤 자유롭더라고. 홀시딘이 미리 생각해둔 것 같기는 해.”
투란은 페란드의 끝말이 아주 작고 낮은 소리로 나오는 것을 깨닫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드바인의 마스터 홀시딘은 네 남매와 투란이 공연한 일에 휩쓸리기보다는 이 그루터기를 지키며 복잡한 상황에서 거리를 둔 채로 편안하게 지내도록 배려를 해둔 것이다. 길드에서 부여할 공역조차도 엮이지 않게끔, 그루터기 아래의 감시자라는 공역을 부여하는 형태로.
“으흠! 상아탑의 마스터인데도 길드의 일에 손을 쓸 수 있었구나.”
새삼스럽다는 듯, 역시 아주 낮은 소리로 투란이 중얼거렸다.
제란드가 이 소리에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알드바인이라서 그럴 거야. 여기는 상아탑의 자치도시이고, 헌터 길드를 동반자로 둔 곳이니까. 도시의 경비 같은 일로 길드 헌터들이 공역을 치르는 게 가능하다는 거지.”
“그러면…… 뭔 일인가는 길드에 가서 알아봐야겠네.”
투란이 결론을 내리듯이 중얼거렸다.
이 소리에 페란드와 제란드가 ‘응?’ 하며 눈을 껌벅거렸다.
둘의 조금 이상해진 표정에 투란이 ‘왜?’ 하며 말한다.
“알드바인에 사는 모두랑 엮인 일이잖아? 당연히 뭔 일인가 알아봐야지! 진짜로 저 성벽이 위험한 일이라면…… 미리 대비를 해야잖아.”
“그렇기는 하지…….”
페란드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란드는 조금 삐딱하니 투란을 다시 훑어보며 말한다.
“제대로 무슨 일인가는 전혀 모르는 것 같던데? 아주 막연하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미리 준비하자는 소리 같았다고. 물론 뭔가 상당히 또렷한 조짐은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게 뭐든 순전히 마법사의 통찰력으로만 알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어. 가봐도 잘 아는 사람이 없을걸.”
투란은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흐흣 하는 괴상한 웃음과 함께 투란이 말한다.
“어쨌든, 나는 일단 자유로운 하급 헌터잖아. 그러니까…… 길드 일에 참여해서 둘러보기라도 해야겠지.”
제란드와 페란드는 ‘역시…….’ 하는 눈길로 한숨을 쉬며 투란을 바라봤다.
뭔 일인가 전혀 모를 상황이 너무 궁금해서, 그냥 호기심 때문에 여기저기 찔러보고 싶어하는 투란이니까!
그래도 잠깐 말려볼까 생각하는 듯했던 페란드가 잠깐 눈매를 좁히다가 말한다.
“근데…… 지금 그 차림으로 바로 가려고? 그거, 꽤 지쳐서 좀 쉬어야 하는 몰골이잖아? 오다가 여러 사람 눈에 띄었을 것 같은데? 며칠 만에 돌아온 거니까 가도 내일 아침에나 가는 게 좋을걸. 지저분한 것도 좀 씻어내고 깔끔해야 할 것 같은데?”
투란은 바로 자기 차림새를, 현재 자신의 몰골을 둘러보고는 순순히 인정해야 했다. 사흘가량 산중에서 헤매며 힘겨웠던 꼴이 너무 역력했다. 이런 몰골인 녀석을 어디 보내는 것은 길드 쪽에서 보면 그냥 죽으라고 보내는 거라 생각해서 그냥 집에 가라고, 투란에게 뭘 시키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런가!”
살짝 투란이 당황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자연스럽게 보이려다가 발목 잡혔다는 듯!
제란드가 피식 웃고 말한다.
“서둘지 마. 당장 뭐가 쳐들어온 것도 아니잖아. 일단…… 펌프로 물 퍼줄 테니까 씻기라도 하라고. 그리고…… 음, 누나한테 저녁 요리 추가하라고 해야겠네.”
“어? 저녁 요리? 이제 먹을 만해?”
잠깐 팔뚝을 들어 킁킁대는 시늉을 하다가 투란이 목을 움추리며 묻고 있었다.
제란드는 바로 그 눈길을 외면한 채로, 혼잣말처럼 대답한다.
“요리라는 게…… 며칠 지났다고 바로 나아지는 거는 아니지.”
페란드도 이 소리를 바로 잇듯이 말한다.
“그래도 루비처럼 쇳조각은 섞지 않는다잖아.”
투란은 둘의 말에 입가를 실룩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시알라는 아직 마법도구 없이 제대로 요리를 완성시키지 못하는 모양이잖은가.
“그런데…… 멜란드는?”
잠깐 생각을 돌리기 위해서 투란은 아예 화제를 돌렸다.
제란드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한다.
“아침에 아래로 들어가서 안 나왔지. 아무래도 한밤중에 나올 궁리를 하는 모양이야. 그루터기 아래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경고까지 나왔으니 좀 더 제대로 경계를 해야 한다면서 틀어박혔어.”
투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페란드가 투란이 뭘 의심하는가 안다는 듯이 말한다.
“밀포랑 육포랑, 물 담은 큰 항아리까지 갖고 들어갔어. 며칠 숙박할 모습이었지, 분명히.”
“점심은 시알라가 요리하지 않았어?”
투란이 하핫하며 새는 웃음과 함께 물었다.
제란드가 뒷목을 긁적거리며 대답한다.
“누나도 저녁만 확실히 같이 먹으면 된다고 했으니까. 낮에는 따로 요리 연습을 하느라 바쁘다고…… 청소 말고는 딱히 붙들지도 않고 말이야. 멜란드는 아침 청소를 하고 바로 내려갔지.”
“흠…… 그럼, 난 일단 씻어야겠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투란은 씻고 어디로 내뺄까를 궁리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페란드와 제란드는 미묘한 한숨을 쉬기는 했지만 투란을 말리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콰아앗!
시원한 펌프질로 솟아오른 물줄기를 온몸에 뒤집어 쓰면서 투란이 북쪽 성벽의 세척 때와는 다른 시원함을 맛볼 때, 시알라의 목소리가 그루터기 높은 곳에서 울려나왔다.
“투란, 돌아왔네? 마침 저녁 준비도 다 되었어! 아직 저녁때는 아니지만, 며칠 만이니까 일단 먹어봐!”
―음, 못 피한 모양이군.
펌프질 해주던 제란드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을 때, 투란의 뇌리에는 드라고니아의 음흉한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