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4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38)
“엣, 퉤퉷! 으읍!”
혀를 날름거리면서 손끝으로 긁어내다가 결국 투란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혀에 남아있는 자극적인 맛은 쉽게 사라질 법하지 않았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꽉 걸어 잠가 보이지 않는 문 너머를 상상하면서 투란이 중얼거렸다.
시알라가 억지로 꾸민 저녁 요리는 투란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아예 맛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맛이 있는 것도 아닌…… 뭔가 뒤죽박죽으로 섞인 괴상한 맛이 넘쳐나는 요리였다. 혀에 닿는 부분에 따라서 끔찍한 맛인가 하면 산뜻한 맛이기도 했고, 먹을 만한가 싶으면 먹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충동을 일으키게도 했다.
―마법으로 손에 익힌 대로 하긴 한 모양이다. 다만 뭔가 중간에 손놀림이 어긋나서 실패한 부분도 있고 말이야.
‘야, 실패했으면 다 망치든가 하는 거지! 이건 대체…….’
―전부 망치지 않고 일부를 망친 것은 굉장한 발전 아니냐? 이대로라면, 홀시딘의 환영이 완전히 걷힐 때쯤에는 제법 괜찮은 요리가 나올 듯하잖아.
‘그때까지 어디 도망가 있어야 하나?’
투란은 조금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번 저녁 요리는 꽤 이른 편이었고, 투란 혼자 먹었다.
페란드와 제란드는 점심을 핑계로 한번 당했고, 멜란드는 아침 청소 전에 간식이라는 핑계로 당했다고 했다. 때문에 이번에는 투란 혼자 당한 것이다. 뭔가 시알라로서는 굉장히 진지한 도전이기는 한 듯한데…… 이렇게 당하다보니 세 형제처럼 투란도 뭔가 불안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다!
―시알라가 대단한 점은…… 자기가 한 요리를 꽤 즐긴다는 거겠지?
드라고니아가 미묘하게 웃음을 참는 듯한 말을 했다.
‘뭐? 아니, 그건…… 그러네?’
울컥하려던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시알라는 열심히 요리를 했고, 투란과 세 형제에게 과격하게 강요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먹는 꼴을 구경만 한 것이 아니었다.
시알라도 함께 먹었다. 단지…….
‘아니, 그런데 왜 시알라는 자기 요리 맛이 이상하다는 것을 모르는 거야?’
투란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의문을 품게 하는 태도만 보였다.
투란 혼자 그 요리를 괴롭게 여기는 것이 아니었다.
세 형제도 투란의 기분이랑 똑같아 보이니, 문제는 시알라였다.
―흐흠, 어쩌면…… 자기가 한 요리라서 뭐든 맛있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겠군. 가끔 남이 보면 엉뚱하고 엉터리이지만 자기 나름대로 만족하는 경우도 있잖아.
‘에? 그런 일도 있는 거야?’
조금 황당해하면서 투란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잠이나 자야겠다. 누구 덕분에 사흘 동안 낑낑거리고 헤맸으니……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길드에 가려면 일단 푹 자야겠어.’
벌러덩 침상에 누우면서 투란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다시 깊이 내쉬는데…….
―아침이다, 왜 계속 자려고?
드라고니아가 불쑥 투란의 뇌리에 쑤셔 넣는 말이었다.
‘응? 뭐?’
어이없어서 투란은 감았던 눈을 다시 뜨며 껌벅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이게 뭔 헛소리인가?
―너, 몇 시간 동안 잤어. 뭐야, 전혀 인식이 없는 상태로 잠들었다가 깬 거냐?
투란보다 더 어이없어 하며 드라고니아가 되묻고 있었다.
‘헐? 진짜야!’
―나가보면 알잖아. 애초에 창문이라도 잘 달아놓은 방이었다면 바로 알 텐데…… 누가 엿보는 게 싫어서 창문도 없는 방에 처박혔으니…….
잔소리가 길어지려는 듯한 낌새에 투란은 바로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짧은 통로, 시알라의 부엌, 아직 준비가 될 된 퍼브의 정경 사이로 햇살이 아주 다르게 뿌려지는 것이 확실히 보였다.
닫힌 문을 열고 그루터기 밖을 내다보니, 저녁노을이 깃들던 화이트 레이크의 안개 위로 아침 햇살이 맴돌고 있었다.
“크엇!”
문가의 계단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투란은 혀를 내밀고 놀란 소리를 냈다.
“왜 그래, 투란?”
아래쪽에서 제란드의 목소리가 울렸다.
투란이 제란드를 보니 물통을 채워서 들고 어딜 가려던 참으로 보였다.
“아침이야! 잠깐 눈 감았다 떴더니……!”
제란드가 쓴웃음을 지은 채로 올려다보며 말한다.
“며칠 동안 잠을 안 자고 산속을 헤매다 왔던 거 아냐? 북쪽 성벽에서 여기까지 가깝지도 않고…… 잠든 것도 모르고 자고 깼으면 이제 꽤 개운하지 않아?”
“어? 어…….”
투란은 새삼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봤다.
북쪽 성벽에서도 간단히 세척했어도 거리를 거닐던 꼴사납던 차림새는 여전했다. 돌아와서 한 번 더 씻으며 반쯤 벗어놓기는 했어도 역시 긁히고 찢겨 올이 나간 옷을 복구하지는 않았으니 당연하기는 했다. 물론 그런 겉모습과 달리 몸은 꽤 버틸 만하다고 생각했고, 그저 졸음이나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졸리지 않은데?”
딱히 몸의 상태를 강제하지 않아도 잠이 모자라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자고 일어났기 때문이란 것을 투란은 금세 알 수 있었다.
제란드가 투란의 혼잣말에 다시 큰 소리로 대꾸해준다.
“자고 일어났잖아. 누나랑 다들 아직 자고 있으니까, 너무 시끄럽게 하지 마.”
이 말끝의 살짝 소곤거리는 낌새에 투란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는 사람 방해하면 안 되지! 아, 그런데 어디 가?”
“호수에 낚시하러.”
“낚시?”
“여기 접어놨잖아, 낚싯대.”
제란드는 몸을 살짝 돌리면서 활통처럼 허리에 매달아놓은 원통을 보여줬다.
투란이 며칠 전에는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갸웃하다가 투란은 아래로 고개를 내밀면서 말한다.
“나중에 나도 가르쳐줘!”
“그래. 오늘은 어디 가려고?”
제란드는 투란이 지금 당장 따라붙지 않는다는 것을 의아해 하며 되묻고 있었다.
“길드! 뭔 일인가 알아봐야지. 알드바인에 정말 큰일이 나려는지 말이야.”
말하는 투란의 표정은 마치 큰 일 나면 제일 먼저 도망치겠다는 듯해서 제란드가 웃고 말았다.
“알아내면 알려줘.”
“응!”
투란이 파닥대듯 고개를 끄덕였고 제란드는 큼직한 물통을 들고 낚싯대가 접힌 채 담겼다는 원통을 엉덩이에 붙은 꼬리처럼 대롱거리면서 멀어져갔다.
잠깐 계단에 앉은 채로 투란은 제란드가 언덕 비탈길을 따라 사라지는 광경을 바라봤고, 성벽 쪽에서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다. 멀리 보이는 화이트 레이크의 하얀안개는 여전히 구름처럼 꾸물거리고, 그루터기를 벽 삼아 숨은 듯한 상아탑은 높은 끝자락만 살짝 보일락 말락 했다.
“진짜 아침이네. 사람들이 다 깨어나는 중인가.”
서서히 알드바인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낌새가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중얼거렸다.
―이제야 아침이라고 인정하냐? 그래서, 오늘은 어쩔 거냐?
드라고니아는 더 놀리고 싶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기지개를 펴듯이 두 팔을 활짝 치켜 올리면서 일어난 투란은 소리 없이 짧게 대꾸한다.
‘가까운 퍼브부터 더듬어봐야지. 길드에서 구체적으로 내놓은 얘기가 없어도 퍼브라면 제멋대로 추측을 하거나 상황 파악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이 아침에?
‘나도 챙겨 입고 나갈 거니까, 나갈 때가 되면 누군가 있을 거라고! 아니, 퍼브잖아! 퍼브! 집에 안 가고 밤새 틀어박혀 있는 작자가 한둘이었냐?’
아침의 깨어나는 분위기를 뒤늦게 떠올리고 당황하려다가 투란은 퍼브의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살짝 으르렁거렸다.
결국 드라고니아는 키득거리는 듯했고, 투란은 방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차림새를 다기 갖추기 시작했다.
“이건 마법사의 음모야!”
“맞아! 우리가 쉬는 꼴이 보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
“열 달 동안 일없어 쉬어야했구만, 열한 달 전에 번 돈에 대해 이제 와서 세금을 내놓으라니! 나쁜 마법사 놈들!”
“못된 마법사! 내가 이 술을 다 죽인 다음에 죽여주겠어!”
첫 번째 스쳐간 퍼브에서 투란은 ‘모든 나쁜 짓은 전부 마법사 탓이다!’라고 떠드는 주정뱅이들을 잠깐 구경했다. 전혀 쓸 만한 얘기는 없었다.
두 번째 퍼브에서도 역시 비슷했다.
“그래, 내가 어떻게 그년을 죽여줬냐 하면……!”
“치마는 들쳐봤어?”
“발목을 잡고 가랑이까지 벌려봤다니까!”
“날아오는 칼을 피해 도망쳤다면서?”
“뭐? 누가 그래! 내가 하룻밤을 어떻게 불태웠는데!”
다만 마법사고 뭐고, 누군가가 어디서 하룻밤을 어떻게 보냈는가를 놓고 거짓말이네 진짜네 하며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세 번째 퍼브에서 코고는 소리와 의자에서 굴러떨어진 주정뱅이가 꽥꽥 거리다가 다시 잠드는 꼴을 엿봤다.
이쯤에서 드라고니아가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아무 일도 없는 것 아니냐? 괜히 마법사들만, 상아탑에서만 긴장해서 여러 사람을 경계시키는 거 아냐?
‘그럴 리는 없을걸? 무슨 일인지 몰라도 아직 제대로 실감나는 게 아닐 뿐인 거지. 근데 이 지경이면…… 역시 길드에 직접 들러보는 게 빠르겠네. 아, 그래서 길드나 길드 퍼브에 들러보라 한 건가?’
문득 스펫이 한 말을 떠올리면서 거리에 나와 비질하는 사람들을 흘깃하며 투란은 앞으로 몇몇 더 있는 퍼브를 거쳐가는 대신에 곧바로 헌터 길드 쪽으로 향했다.
―길드 퍼브는 다를 거라고 기대하는 거야?
‘다르지. 거긴 나이 먹고 숙련된 헌터들이 항상 자리 잡고 있으니까. 그래서 자주 안 갔잖아. 아직 제대로 전부 숨길 자신이 없어서.’
투란은 툴툴거리며 가볍게 걸음을 재촉했다.
퍼브와 다양한 가게, 공방이 즐비한 거리 쪽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길을 걷다보니 간혹 창문턱에 팔을 걸치고 세상을 향해 연기를 뿜어내는 노인도 있었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왁자지껄하니 바쁜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하클의 장비까지 잔뜩 갖춘 채로 거길 가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조금 의아한 듯이 물었다.
확실히 이 아침에 투란은 하클이 제작한 장비를 제대로 갖춰 입고 있었다. 장화부터 암밴드, 벨트…… 홀시딘에게서 샀던 벨트와 장비, 마법주머니까지 모두 챙긴 채였다.
‘이대로 출발할 경우를 생각해봤어. 준비를 완벽하게 갖췄다고 하면 바로 뭔 일인지 알려줄 수도 있거든.’
―흠? 혹시 시알라의 아침 요리를 피하는 거냐? 저녁에 기대하라고 했는데?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이 잠깐 움찔했다.
하지만 투란은 바로 이를 부정하며 힘차게 걸었다.
‘그런 거 아니거든! 이제 많이 나아져서 먹을 만했다고! 어차피 사람 먹으라고 만든 요리인데 피하겠어? 나, 그보다 험한 것도 잔뜩 먹어본 사람이라고!’
―그래, 그래도 그 참신한 맛은 색다른 경험이라 이전에 뭘 겪었든 다 무시하게 해주긴 하는군. 이해했다.
‘야, 나 도망가는 거 아냐!’
―그렇다고 해두지.
‘우씨!’
드라고니아와 툭탁거리며 알드바인의 깨어나는 아침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투란은 공방 거리 아래쪽, 여관이 즐비한 거리에 자리 잡은 헌터 길드에 도달했다. 길드 건물의 옆에는 이제 슬슬 밤새 켜져 있던 문가의 등불을 끄는 퍼브가 있었다.
오면서 지나쳤던 퍼브와는 이모저모로 분위기가 다른 퍼브 안에는 소곤거리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살짝 문 너머로 보이고 있었다.
투란은 길드 쪽으로 모르는 척 다가서면서 퍼브 안의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데 헌터스 배너의 오러에 의해 강화된 청각에도 들릴락 말락 해서 아예 프로브의 청각까지 동원해야 투란은 들을 수가 있었다.
“정리 좀 하자고, 그래서 범람은 아닐 거라고?”
“범람일 수도 있다니까.”
“고블린 호드는 그래도 예상하지 않았나?”
“예상보다 몇 년 빨랐다더군.”
“그래, 올해는 거미군단이 문제일 수 있다고 했지.”
“정작 거미군단은 요상하게 처분이 돼버렸는데…….”
“역시 안쪽 깊숙한 곳에서 일이 터진 건가.”
“사육자(飼育者)가 품고 있던 것을 해방한 낌새도 보인다던데…….”
“하지만 사육자가 나섰다면 이건 너무 조용하잖아?”
“그래서 상아탑에서는 사육자에게 무슨 일이 난 거라고 추측하나보더군.”
“이 이상은 억측뿐이겠지?”
“정찰을 기다려봐야겠지.”
소리가 잦아들었고, 투란은 길드 안에 들어섰다.
분명히 이른 아침이기는 했지만 이미 여러 패의 헌터가 오가면서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는 풍경이 곳곳에서 보였다. 한쪽 벽에는 여러 가지 공고(公告)가 게시된 채였고, 문의 맞은편에는 벽에 구멍이 뻥뻥 뚫린 것처럼 창구(窓口)가 열린 채로 길드의 일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란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투란은 일단 게시판 벽을 향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