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4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39)
벽은 석재(石材)를 바탕으로 목재(木材)로 된 얇은 판을 덧붙인 모양이었다.
덕분에 작은 못, 가느다란 핀으로도 종이나 얇은 가죽을 쉽게 박아놓을 수 있었고 쉽게 떼어낼 수도 있는 듯했다. 그 흔적이 여기저기 작은 조각을 물고 여전히 박힌 못과 핀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서, 이 벽에 붙었다 떼어지는 길드의 공시(公示)가 매우 많고 자주라는 것을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벽의 상태는 투란에게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 이게 다 뭐야. 소집에 대한 이야기가 어디 있는 거야, 대체!’
얼핏 봐도 수십 장…… 세기 시작하면 당장 백여 장은 훌쩍 넘어버릴 낌새가 역력한 공시 중에서 공납이나 공역에 대한 것이나 당장 헌터를 소집한다는 이야기가 담긴 것을 찾아내는 것은 의외로 어렵잖은가.
―새로 붙여진 것부터 보면 쉽게 보일 것 아니냐?
‘어제 그제 일이라고. 새로 붙은 거는 거의 어젯밤이나 오늘 아침에 붙인 것도 있잖아! 공역이 어쩌고 하거나 말거나 여기저기 헌터 모집은 잔뜩 하는구만.’
드라고니아의 제안을 이미 시도하고 있던 탓에 투란은 조금 삐죽거리는 대꾸를 소리 없이 질러댈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길드 퍼브와 다른 퍼브의 온갖 상황이 이 게시벽에서도 잔뜩 엿보이는 듯하잖나.
알드바인의 상아탑에서는 뭔 일이 크게 났다고 하는데, 한편에서는 그런 거 모르겠고 말썽부리는 몬스터부터 잡아 죽이자라고 하는 듯하니…….
투란으로서는 큰일에 대한 궁금증을 쉽게 풀기 어려울 듯해서 은근히 짜증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뭔 의뢰가 이리 잔뜩이냐?
‘응?’
드라고니아가 불쑥 던진 물음이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헌터 길드, 주로 몬스터 헌터가 그 주류인 길드의 공고가 게시된 벽이다. 그러니 몬스터 사냥을 위한 헌터의 모집, 현상금에 관한 것이 대부분인 것이 당연하잖나? 그런데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것인가?
―뭔 길가에 돌멩이처럼 몬스터가 넘쳐나는 것 같잖아. 거리의 풍경을 생각해봐라. 몬스터 따위는 알 바 아니란 듯이 살고 있는데, 여기 게시된 꼴을 보면 세상이 온통 몬스터로 가득 찬 것 같다고.
‘그야 주변에서 설치는 녀석들에 대한 것을 다 모아놓은 거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여긴 몬스터 헌터를 위한 길드라고.’
―그렇다고 해도…… 마수 수준의 몬스터까지는 그렇다 쳐도, 저기 기재된 몬스터가 뭔지 보라고. 기간틱 크랩(Gigantic Crap)? 화이트 레이크를 다 뒤져도 한 마리 있을까 말까 한 놈일 텐데 버젓이 그려진 채로 꽂혀 있잖아. 그리고 빅 트롤은 갈기 산맥을 들락거리며 호숫가를 들락거린다고 써 있지? 갈기 산맥은 트롤 계통에게 그리 좋은 서식지가 아니라고! 근데 그런 게 있다고 사냥 공고를 붙여놨잖아. 그것 말고도…….
‘꽤 오래된 거구만. 몇 년 동안 못 잡아서 낡은 공고를 읽고 있었냐.’
드라고니아가 뭘 보고 말하는가 잠시 의아해 하다가 눈동자에 아예 윌 라이트를 이용한 마킹까지 해준 덕에 기간틱 크랩과 빅트롤에 대한 게시물을 겨우 찾아본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말했다.
―저런 몬스터는 크고 넓은 지역에…… 갈기 산맥이나 화이트 레이크정도 되는 넓은 곳에서도 보통 한 마리 정도 있을까 말까 하단 말이다! 그런데 여기 공고된 게시가 대체 몇이냐고! 이건 무슨 산맥 안쪽 깊은 곳을 뒤져서 도감이라도 만들어 둔 것 같잖아.
‘춤추는 산맥에 온 걸 환영해. 몬스터가 들짐승, 날짐승처럼 넘쳐나는 곳이니 너무 놀라지 말라고. 아, 잠깐! 너, 드라코눔에서 이 근처에 대해 자세히 조사했다고 했잖아? 왜 이런 거 보고 놀라는데?’
투란은 팔짱을 끼고 벽을 주욱 다시 훑어보면서 드라고니아가 대체 왜 놀라는가를 의아해 했다. 드라코눔의 아칸으로서 분명히 이 화이트 레이크 쪽에 대해서는 훨씬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뭐가 그리 놀랍다는 것인가?
―여기는 쇠퇴하고 말라비틀어져 죽었어도 거신목의 영역이다. 마수가 몬스터를 위압하는 곳이지. 화이트 레이크 역시 엷다고 해도 정화의 속성을 지닌 거대한 호수라고. 이렇게 한 마리 있을까 말까 해야 할 몬스터가 수십 마리 규모로 출몰할 곳이 아니야. 춤추는 산맥 내에서도 아주 특이한 하이랜드란 말이다! 그리고 잘 봐, 대부분 몇 년 사이에 추가된 놈들이잖아.
볼을 손끝으로 긁적이면서 드라고니아의 낯선 말을 이해하려 애쓰다가 투란은 문득 생각나는 대로 대꾸해야 했다.
‘그래? 그렇다면…… 역시 길드 퍼브에서 소곤대던 것처럼 이상한 조짐이 몇 년 전부터 있기는 했다는 거네. 아하, 그래서 마스터 홀시딘이 몰튼노트나 무쇠뿔 오우거 쪽을 되도록 빨리 정리하려 서둘렀던 모양이네. 역시 사람보자마자 끌고 간 짓이 성질 탓만은 아니었나…….’
생각을 하다보니 투란에게 홀시딘이 한 짓이 역시 더 깊은 속을 간직해서 단순하지 않다는 깨우침이 저절로 찾아오는데…….
―저 녀석들이 왜 널 향해 오지?
‘어? 누가?’
갑작스런 말에 투란은 다가서는 기척을 분별하면서 의아해 했다.
―성벽 경비하던 놈들 말이야.
드라고니아가 다시 확실하게 말해줬고, 그 순간에 투란은 턱하니 어깨를 짚으면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라펜이란 것을 바로 알았다.
“음화하핫! 투란! 다시 만나서 반가워!”
“에…… 여기서 뭘……?”
슬쩍 어깨를 낮추고 한걸음 떨어지면서 투란이 돌아보며 멋쩍은 웃음과 함께 물으려 했다.
라펜의 곁에는 잔뜩 찌푸린 마켈도 함께 있었다.
―흐흠, 상금 걸어서 두들겨 맞은 원한을 풀려나?
갑작스럽게 인간의 성향에 대해서 분석했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리는데, 명백하게 투란을 놀리는 말투였다. 이를 들은 척도 않고 투란은 라펜과 마켈에게 집중하며 눈을 깜박였다.
라펜이 흐흣 하면서 다시 투란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말한다.
“반갑다니까! 에이, 설마 모클에게 맞은 일 갖고 너한테 뭐라 하려고 아는 척했겠어? 하핫! 그런 까마득한 옛날 일은 잊은 지 오래라고.”
“잊었군요?”
잊었다면서 지금 입에 담는 꼴은 뭔가?
투란은 헛웃음과 함께 확인하듯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라펜은 고개를 팍팍 끄덕이면서 말한다.
“그럼, 잊었지! 아, 그보다 말이야…… 혹시 어디 참여할 파티를 고르고 있는 거 아니야? 초보 사냥꾼이 길드에 와서 게시판에 몰두하는 이유가 대부분 그건데…….”
“신기한 게 많아서 구경하는 중이었죠. 근데 경비 관두면 바로 사냥나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런 벽 구경할 초보도 아니면서,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투란이 살짝 눈을 가늘게 하면서,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을 피해 반격하듯이 되물었다. 이는 바로 라펜을 웃게 했다, 조금 크게 헛기침하듯!
“응? 어흠! 어허헛! 아, 그게 말이지…….”
슬쩍 라펜이 말을 망설이면서 눈알을 굴리는데, 곁에서 가만히 보던 마켈이 불쑥 입을 열어 말한다.
“우리 파티가 쪼개져서 끌려갔어. 뭔 급작스러운 스카우트 일에 말이야. 덕분에 며칠 푹 쉬는 꼴이 되었지. 그리고 우리도 끌려 나갈 참이고.”
“에? 뭐예요, 그게?”
투란이 둘을 훑어보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공역이니 뭐니 해도 결성된 파티를 해산시켜서 따로 끌고 가는 일이 되던가?
뭔가 투란이 아는 헌터의 상식…… 파티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들었던 얘기랑은 매우 다른 상황이었다.
라펜은 웃음으로서 이를 대강 얼버무리려는데, 마켈이 굵직하고 짜증이 어린 목소리로 또박또박 투란에게 설명한다.
“우리 파티가 한꺼번에 길드 공역을 치르던 중이었거든. 라펜과 나는 경비로, 다른 녀석들은 성벽 순찰이라든가 성벽 너머 산속에 자리 잡은 헌터 촌락을 둘러본다든가 하면서 말이야. 요 며칠 사이로 다들 공역이 끝나는가 했는데…… 갑자기 소집을 한 거지. 덕분에 공역 중이던 파티 멤버는 꼼짝없이 끌려갔어. 그리고 얘랑 나는 이렇게 떨궈진 채로 빈둥거리면서 노는 꼴이 되었지.”
“아, 노는 중이었군요.”
앞을 뚝 잘라내면서 투란은 끝말만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여줬다.
순간 마켈이 울컥한 표정을 짓는데, 라펜이 바로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한다.
“아냐! 노는 게 아니라 대기 중이었어! 우리한테도 이 소집에 따라 성벽 너머 평원 순찰을 시키겠다고 했는데…… 둘만 갈 수는 없으니까, 몇 명 더 채워질 때까지 대기하라잖아. 그래서 여기서 대기 중이었는데, 투란 네가 온 거지! 그러니 당연히 반갑게 인사를 한 거고!”
“흠? 흐음…….”
라펜을 향해 투란이 매우 심하게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켈이 새삼 짜증이 난다는 듯이 라펜을 보면서 길게 한숨을 쉬는데, 조금 전에 투란의 한마디에 울컥한 것보다 라펜 때문에 더 심하게 짜증 난다는 태도가 꽤나 분명하게 드러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를 숨기지 않고 바로 입으로 뱉어내기도 하니…….
“말 좀 돌리지 마라! 너 그런 버릇 때문에 괜히 의심만 사잖아! 요점만 말하라고, 요점만!”
라펜이 상처 입었다는 듯이 마켈을 바라봤고, 투란은 이 둘이 대체 뭔 일로 자신에게 다가왔는가 새삼 의아해서 호기심어린 눈빛을 반짝이는데…… 저 편에서 우렁찬 외침이 격하게 터져 나와 셋의 관심을 확 끌었다.
“아, 진짜! 너무하잖아! 가고 싶은 곳으로 좀 보내줘도 되잖아! 공역으로 소집했으면서 그런 것 정도는 해줘도 되잖아! 어차피 한번 둘러보는 일이라면 다른 녀석들 보내도 되잖아! 우린 갈기 산맥이 아니라 남쪽 수림(樹林)으로 가고 싶다니까! 거기나 거기나가 아니라고! 마수 구경하려고 내가 룬디아크 공방까지 가서 삼 년씩이나 걸려 장비 맞춘 줄 알아! 기껏 장비 맞춰 왔더니 하이랜드 평원이랑 산기슭 순찰 돌고 촌락 구경이나 하고 오라니! 우리 팀을 보라고, 그건 정말 아니잖아?”
창구에 들이대고, 창고 옆 벽을 치고 창구 앞의 접수대를 쿵쿵 주먹으로 찍으면서 외치는 이는 크고 균형 잡힌 체격이었고, 그 주변에도 비슷한 분위기를 띤 이들이 팔짱을 낀 채로 서서 고개를 끄덕대며 외침에 동의하는 듯했다.
투란은 그들이 누군가 몰랐고, 뭐가 불만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투란의 귓가에 조금 전 외침 속의 한마디는 쏙 들어왔으니…….
“룬디아크……?”
라펜이 바로 투란의 중얼거림을 들었다는 듯이 대꾸한다.
“베즐이로군. 베즐 팀이야. 몇 년 만이네?”
마켈이 바로 이 말을 받아 중얼거린다.
“삼 년이라잖아. 쉬고 갔다 오는 시간까지 더하면 대강 사오 년 만인가?”
투란을 둘을 흘깃하면서 눈을 깜박여 보였다.
마켈은 입을 다물었고, 라펜은 이번에야 말로 자신의 차례라는 듯이 소곤대는 소리로 투란의 귓가 쪽에 이야기를 뿜어낸다.
“저 목소리 큰 녀석이 베즐이야. 사오 년 전에 꽤 큰 사냥을 성공시킨 사냥꾼이지. 저 주변에 있는 녀석들이 바로 베즐을 리더로 삼은 팀 멤버들이고…… 어디 갔나 했는데 진짜로 룬디아크 공방까지 다녀왔나 보네. 근데 하필 지금 돌아왔냐…… 응? 아, 산기슭은 알드바인에서 엘데인까지 이어지는 갈기 산맥 기슭…… 뭐, 한참 내려가는 길이기는 하지만 하도 넓고 완만해서 평원이잖아? 암튼 몬스터 헌터라서 마수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고 콧대 세우는 녀석들인데…… 쟤네한테 평원이랑 산기슭 순찰을 맡기려나 보네?”
“거기…… 마을이 있어요?”
투란은 문득 촌란이란 한마디가 스쳐간 것을 되짚으면서 물었다.
라펜이 ‘응?’ 하는 사이 마켈이 대신 주절거림을 피하겠다는 듯이 빠르게 대답해준다.
“마수 사냥꾼이 거처를 만들었는데, 어쩌다보니 작은 마을 규모까지 된 곳이 있어. 엘데인과 알드바인의 중간 거점으로 종종 이용되고는 하지.”
“아, 그랬군요.”
투란은 라비엔에서 알드바인으로 올 때, 마법의 마차로 중간 어디도 거치지 않고 직행으로 온 것을 기억하면서 대충 알아들은 척했다. 오면서 거치지 않은 경계 도시 엘데인은 꽤 자주 들어서 슬슬 귀에 익은 채이도 했다. 그 중간에 있다는 몇 곳의 마을은 완전히 낯설기는 했지만…….
“베즐이 화낼 만하기는 하지. 저번 사냥으로 번 돈을 다 쏟아부어서 룬디아크 공방까지 가서 뭘 사왔는데 오자마자 공역 소집이라면서 돈 되는 몬스터보다 마수 낯짝이 훨씬 많은 산기슭을 다녀오라고 하니 말이야.”
라펜이 혀를 차는 시늉을 하면서 말을 맺었다.
투란은 ‘그런가?’ 하면서 그러려니 하는데, 마켈이 눈을 가늘게 하면서 중얼거린다.
“수가 모자라네.”
“응? 뭔 소리야?”
라펜이 의아해 하는데 마켈이 다시 말한다.
“베즐 팀…… 공역 순찰에는 수가 모자란다고.”
저편에서 마켈의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 다시 베즐의 큰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왜애! 아, 우린 팀이라고 했잖아! 산기슭 소풍 다녀오라면서 우리 팀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는 또 뭐냐고오! 우리 팀에다가 이상한 녀석들 붙일 작정이야? 대체 우리한테 왜 이러냐니까!”
이는 결국 창구 안에서도 으르렁거림을 터지게 했으니…….
“규정이라고 했잖앗! 너네한테만 이러는 게 아냐아! 이번 일은 위력 순찰이라고 했잖아! 간보려고 튀어나오는 쬐그만 몬스터 떼는 보자마자 박멸(撲滅)하는 거라고! 쉬운 일 아니라고! 너네 팀처럼 겨우 상급 문턱에 겨우 닿은 녀석들한테 맡길 일도 아니얏! 일손이 부족해서 맡기는 거라고오!”
베즐을 더욱 격하게 만드는 소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