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4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43)
“이봐, 베즐!”
성난 목소리는 마켈이었다.
이어서 어이없어 하는 라펜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러니까, 이 들판을…… 하이랜드의 들판을 가로질러서 알드바인의 성벽이라든가 엘데인의 성채에 남부 습지, 그 밀림의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거네? 그런데 우리는 지정된 인원을 성벽 나서기도 전에 하나 떨구고…… 셋을 자빠뜨린 채 온 거야? 하, 하, 하.”
베즐은 라펜의 지적에 바로 반박을 한다.
“그놈들은 몬스터 사냥 중에 동료의 뒤통수를 거침없이 치는 놈들이었어! 칠왕국에서 그 패거리에 건 상금이 얼마인 줄 알아? 금전 세 닢이라고, 금전 세 닢! 고작 서넛에 불과한 녀석들이 거의 몬스터 레벨인 현상금이 걸린 거라고! 그런 것들 데리고 몬스터 앞에…… 마수가 아닌 짐승 앞에라도 서기 싫어! 넌 그런 게 좋아?”
라펜은 입을 다물었다.
언제 뒤통수칠지 모르는 위험인자를 품고 뭘 어떻게 하든 간에 예상에서 벗어난 짓을 하기 일쑤인 몬스터랑 맞서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그래도 마켈은 무겁게 몇 마디 더 한다.
“그렇다면 길드에서 그놈들 정체를 밝히고 딴 놈들을 받았어야지! 너네 팀이야 자신 있는지 몰라도 우린…….”
“괜찮아. 산기슭 정찰이라고.”
베즐은 마켈의 말을 자르며 어깨를 으쓱했다.
문득 마켈도 ‘어? 아.’ 하면서 말을 멈췄다.
미묘한 침묵 사이로 바람이 스쳐갔고 베즐 팀의 멤버, 원래 투란이었다가 이름을 고쳤다는 테란이 다시 작게 꺼낸 소리가 울린다.
“게다가 촌락 순찰이기도 하지. 어쨌든 사람 없는 곳을 한정 없이 헤매는 것도 아니니까. 후딱 해치우자고.”
라펜과 마켈이 한숨을 쉬는 듯했고, 투란은 묵묵히 듣다가 중얼거린다.
“몬스터도 아닌데 금전 현상금이라…… 대단하네요. 그런데…… 남부 습지란 곳에는 비싼 몬스터가 많이 나오나요? 그게 이 들판으로 나온 거예요? 산기슭에서 만날 일은 없겠죠?”
이는 곧 베즐 팀을, 라펜과 마켈에게서 새로운 침묵을 끌어냈다.
그 침묵 위로 졸음이 가득한 슬리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운에 달렸군. 이 들판에서 남부의 몬스터를 만나느냐, 마느냐…… 만나면 감당할 수 있으려나.”
투란이 입을 다물고 눈을 깜박이며 둘러봤다.
슬리피는 졸린 듯이 끔벅대는 눈꺼풀 속에서 묘하게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드러낸 채로 입가에 옅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마치 어떤 몬스터를, 이 산기슭에서 보기 힘든 어떤 몬스터를 만나게 될까를 기대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라펜과 마켈은 서로의 장비를 되짚고 더듬으면서 난감해 했다.
둘은 아무래도 지금 갖춘 것으로는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의 범위가 좁아서 곤란하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베즐 팀은 곤란함도, 기대도 없이 묵묵히 자신들의 장비를 한 번씩 더듬으며 점검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분위기 속에서 팔짱을 낀 채로 멀리 바라보는 베즐의 목소리가 울린다.
“정찰의 목적은 분명해졌군. 이 들판을 헤매다가 산기슭에 도달할 수 있는 놈이 어떤 놈들인지 파악하면 되는 거야. 가능한 한 빨리 움직이는 편이 좋겠지? 나무 방책 하나 없는 들판에서 뭘 만나기는 싫잖아.”
일행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로브로 미리 둘러보지 않을 참이냐?
‘응. 아무래도 눈치가 빠르잖아. 한마디라도 미리 뭘 말하면 당장 뭐가 있는가 의심부터 할걸.’
―위험할 텐데?
‘그렇지는 않을걸.’
―뭘 근거로 그리 판단하지?
‘저 팀…… 애초에 위험한 곳에 가겠다고 생떼 쓰고 있었잖아. 위험할지 모른다고 짚어주긴 했지만…… 위험해서 불안해하진 않았어. 오히려 기대하는 모습이라고, 저건…….’
―실력도 있기는 하지.
‘그래, 그러니까 일단은 어떻게 하나 보자고.’
―일단 본다…… 목숨이 날아갈 때까지 볼 참인 거냐?
‘뭐? 아니, 그렇게까지는…….’
―현상금 걸린 놈들은 어떻게 되든 구경만 했잖아.
‘음침하니 내 주머니 탐내던 녀석들이었잖아! 아, 그 놈들 혹시 내 마법배낭을 눈치챈 건가?’
―알 수 없지. 다만 홀시딘이 걸어놓은 그 검은 사자 머리를 조금 유심히 보기는 했다. 딱히 마력을 품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력을 감지하는 거야 마력 없는 자라도 가능하니까.
‘마력? 그건 거미 그물을 한 겹 더 씌워놔서 막아두지 않았나? 애초에 감지될 마력을 뿜어내는 것도 아니잖아. 홀시딘이 꽤나 신경 썼다고, 이거…….’
―그래, 보통은 몰라보지. 어쩌면 정말로 물 한 모금 얻으려 한 것일 수도 있고.
‘흠, 그건 시비 걸려는 핑계였어. 에잇, 몰라. 나중에 좀 더 잘 위장해놓자고.’
빠른 속도로 선두를 달리는 베즐, 그 팀과 나머지 일행의 맨 뒤를 차지하면서 투란은 등에 건 장검, 배낭을 조금 고치면서 달리는 속도를 살짝 올렸다. 다들 빠른데 너무 자신이 쳐져서 조금 곤란해 하는 듯한 태도를 꾸몄지만, 만약의 경우라면 즉각적으로 검을 빼서 반응할 수 있는 자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없이 해가 저물어갔을 뿐이고…….
“여기서 밤을 보내자.”
베즐이 멈추면서 저무는 해를 보며 일행을 향해 외쳤다.
가장 먼저 슬리피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주섬주섬 자신의 배낭 안에서 담요를 꺼내는가 싶더니 바로 몸에 덮으며 누워버렸다!
라펜과 마켈이 그 모습에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베즐 팀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이들답게 동시에 움직이면서 야영에 대해 이것저것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팀 이외의 일행은 자신들의 야영지에 초대된 손님이라는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투란은 그 와중에 베즐 팀의 활카엘이 둥글고 투명한 것을 눈에 붙이는 것을 봤다. 눈꺼풀 사이에 끼워 눈알을 덮는 것처럼 붙이는 광경이었다.
그게 뭔가에 대해 라펜도 궁금한 듯이 묻는다.
“뭐야, 그거? 갑자기 눈에 뭘…….”
“렌즈다. 스카우팅 렌즈.”
대답은 베즐이 했다.
라펜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켈도 의아한 듯이 소리 낸다.
“망원경이냐? 눈에 끼우는 외눈알 안경 같은?”
투란은 이 의견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망원경을 대신하는 특별한 도구라고 생각하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활카엘은 대답하지 않고 멀리 들판과 산기슭의 수풀을 둘러봤다.
베즐이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대답한다.
“망원경이랑은 조금 달라. 낮이든 밤이든 꿰뚫어 보니까. 더불어 움직이는 것이라든가 심하게 뭔가 배어있는 풍경도 분별해주지.”
“배어있는……?”
라펜이 웅얼거렸다.
베즐은 팀 멤버들이 배낭 안에서 이것저것 꺼내서 펼치며 오두막같은 천막을 치는 광경을 살피면서 조금 더 이야기한다.
“독이라든가 그런가 있잖아. 그리고 지나치게 습하거나 건조해서 위험한 곳도 분별해줘. 금전으로 산 룬디아크 공방 물품이야. 마법이 안 통하는 곳에서도 쓸 수 있는 귀한 거야.”
라펜과 마켈, 투란은 눈을 껌벅이면서 야영지로 삼은 곳의 주변을 둘러보는 활카엘을 멀뚱거리면서 바라봤다. 새삼 렌즈라는 물건이 굉장히 신기하다는 듯…….
그러다가 투란이 갸웃하면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근데 그걸 왜 지금…… 오면서 끼우고 있으면 안 되는 거였나…….”
들으라고 대놓고 꺼낸 말인지라 베즐이 쓴웃음을 흘리면서도 대답을 한다.
“시각에 상당히 부담을 주거든. 시야의 간격이 완전히 엉기고 헝클어진다고 해야하나? 암튼 걷고 뛰면서 끼우고 있기에는 좀 힘들어. 활을 쏘는 입장에서는 헌터스 배너의 시각강화보다도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니까…….”
“아, 그렇군요.”
조금 멋쩍게, 이번에는 제대로 베즐을 향해 대답해줘서 고맙다는 태도로 투란이 대꾸했다.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활카엘은 주변을 다 둘러본 듯, 렌즈를 떼어내고 천막을 치는 작업에 동참했다. 베즐은 팀 멤버들이 야영을 준비하는 동안 느릿하니 주변을 거닐면서 팔짱을 낀 채로 구경이라도 하는 듯했다.
투란은 슬리피가 새근거리며 자는 광경과 베즐 팀의 야영준비를 둘러보며 마켈과 라펜에게 묻는다.
“어쩔 거예요?”
슬리피처럼 담요 한 장 꺼내서 퍼져 누울 것인가, 아니면 라펜과 마켈도 두툼한 배낭에서 뭘 꺼내 저렇게 비바람을 막을 잠자리를 만들 것인가.
라펜이 혀를 차며 대답하듯 말한다.
“쳇, 역시 마법배낭이었군. 잔뜩 싸 왔구만!”
베즐 팀은 보통 배낭의 용량으로는 담아올 수 없는 정도의 물품을 꺼내서 오두막 같은 천막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가늘고 튼튼하며 긴 막대가 기둥이 되었고, 두툼한 천이 벽이 되며…… 소재와 상관없이 제대로 십여 명 이상이 들어가 쉴 수 있는 커다란 오두막이었다.
마켈이 그 크기를 가늠하다가 불쑥 묻는다.
“우리도 신세질 수 있겠어?”
두리번거리듯이 홀로 한가한 베즐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밖에 따로 자다가 이상한 놈에게 인간 고기 맛을 보게 할 수는 없잖아. 이 들판, 빅울프도 나다닌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이 소리에 라펜과 마켈, 투란까지 스윽 슬리피를 향해 눈길을 보냈다.
베즐의 말 따위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새근거리며 맨땅에 누워 담요 한 장 덮고 자는 잠꾸러기는 어쩔 것인가?
베즐이 히죽 웃으며 이런 의문에 응하듯이 말한다.
“제 발로 들어오지 않겠다면, 그냥 묻어버릴 거야. 흙 좀 덮었다고 죽을 놈은 아니잖아?”
“야. 숨구멍은 뚫어줄 거냐?”
갑자기 한쪽 눈만 뜬 채로 슬리피가 묻고 있었다.
투란은 물론 라펜과 마켈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천막 치는 것을 도우란 것도 아니고 다 짓고 나서 들어오란 것인데, 저 잠꾸러기는 파묻힌 채로 숨 쉴 궁리부터 한단 말인가!
베즐은 바로 손끝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답한다.
“그냥 뒈져! 자다가 뒈져!”
“매정한 놈…….”
슬리피는 뜨고 있는 한쪽 눈알을 굴리면서, 천막이 완성되었는가를 가늠하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이없어 투란이 웃음을 흘렸고, 라펜과 마켈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 사이에 슬리피가 다시 웅얼거리는 소리를 낸다.
“근데…… 저녁은 언제 먹냐?”
“네놈 끼니는 네놈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베즐이 발끈한 소리를 뿜어냈다.
그리고 베즐 팀에서 테란이 혀를 차며 말한다.
“어이, 우리도 웬만하면 사냥 좀 해야해. 들토끼든, 들개든…… 새를 잡든 넝쿨을 캐오든 해야 한다고. 비상식량 까지 않으려면 말이야.”
씩씩거리면서 베즐이 소리친다.
“카엘, 활! 뭐 잡을 놈 없었냐?”
활카엘이 묘하게 불린 자신의 호칭에 낯을 구기면서도 익숙한 듯이 대답한다.
“개도 없고 토끼도 없어. 쥐는 몇 마리 있지만…… 비상식량 까는 게 좋을걸. 사냥하기에는 좀 어려운 곳이다. 여기서 한 이십 킬로를 더 간다면 몰라도…….”
잠깐 고민하던 베즐이 슬쩍 라펜과 마켈, 투란을 보며 말을 흘린다.
“다녀올래?”
마켈이 준엄한 목소리로 바로 답한다.
“안 해!”
라펜은 마켈의 말투가 재밌는지 킥킥거리다가 대답한다.
“해가 다 저물었다고. 수십 킬로를 헤매면서 먹을 것 구하려고 사냥할 여유가 없지. 오랜만에 돌아왔다고 갈기 산맥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고.”
베즐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변명하듯 말한다.
“몇 년 지났으니까 혹시나 해서 한 말이야. 안 되면 마는 거지. 어이, 비상식량 까야겠다.”
한데 이 소리에 잠깐 누웠음에도 부스스하니 몸을 일으키면서 슬리피가 한마디 덧붙이고 있으니…….
“나눠주는 거야?”
“넌 자! 그냥 자! 네 끼니는 네가 해결하라고 했잖아!”
베즐이 바로 발끈해서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라펜은 이 소리에 잽싸게 보탠다.
“우린 나눠주는 거지? 그렇지? 좋아! 아, 나중에 식대 주면 되잖아! 현상금도 챙겨준다는데 식대쯤이야!”
투란은 마켈이 인상 쓰는 꼴을 보면서 라펜이 굉장히 잔꾀를 부린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물론 그 발상에는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투란이었다!
“꼭 내라, 꼭!”
베즐이 라펜을 향해서도 으르렁거렸다.
마켈은 조금 더 인상을 구기는데, 그 모습은 마치 가만히 있었으면 식대를 아낄 수 있었다고 라펜을 탓하는 듯하다?
그 분위기를 읽으며 투란은 가만히 멀리 보는 시늉을 했다.
고요한 밤의 풍경 속으로 산과 들의 짐승이 내는 작은 소리가 벌레들의 작은 소란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첫날 야영은 그렇게 매듭지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