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4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44)
둘째 날도 별일 없었다.
첫째 날과 다른 점은 해가 노을을 드리우기 전에 빠르게 라펜과 마켈이 먹기 위한 사냥에 나섰고 베즐 팀은 더 빠르게 야영준비를 했으며, 슬리피는 멀뚱거리며 앉아서 졸다가 천막이 완성되기가 무섭게 엉금엉금 기어 들어가 잠들었다는 정도였다.
베즐은 여전히 야영준비 같은 일에는 손을 거들지 않았고 그저 어슬렁거리는 듯한 태도였고 투란은 한편에서 멀뚱거리며 앉아서 구경하는 입장이었다.
라펜과 마켈은 토끼 서너 마리, 작은 새 두어 마리…… 덤으로 토끼의 덩치의 절반 정도 크기인 쥐를 네댓 마리 잡아서 돌아왔다. 이 사냥감은 한꺼번에 모조리 요리되었고, 베즐 팀이 꺼낸 접시에 담겨서 골고루 나눠졌다.
한참 자고 있는 듯했던 슬리피 몫까지 나눠졌는데, 그 몫의 접시가 내려놓아지기가 무섭게 슬리피가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베즐과 라펜이 조그맣게 뭐라 핀잔했지만 슬리피가 과연 귀 담아 들었는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요리의 맛에 대해 뭐라 하는 소리는 전혀 없었고, 다들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묵묵히 천막 안으로 들어가 드러눕고 있었다.
베즐은 그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천막 주변을 맴돌며 뭔가 혼자 생각에 잠겨서 나중에 자겠다는 듯한 태도였고, 투란은 라펜과 마켈까지 천막 안으로 사라진 다음에 넌지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그냥 자면 돼요?”
“응? 아, 그래. 우리 팀이 밤경계를 맡을 거야. 우리 버릇이니까 딱히 부담 갖지 말고 쉬어.”
베즐의 대답은 어제와 똑같았다.
어제 그런 같은 말을 했다는 것도 홀랑 잊은 것처럼, 마치 외워서 대답하는 것처럼!
투란이 작게 한숨을 쉬는 척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니, 그제서야 베즐은 자신이 어제랑 똑같이…… 다소 무성의하게 대답했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말을 보탠다.
“팀으로만 다니다 보니까…… 팀 멤버 중에 누가 쉬는 꼴을 못 본다고 해야 할까? 암튼 그냥 그러려니 하고 가서 쉬어.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네, 뭐…… 나야 좋지만요.”
투란은 간단히 대꾸하고 베즐을 남겨둔 채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 배치한 그대로, 투란의 몫인 한 귀퉁이가 비워진 채였다.
바닥에는 넓고 두터운 융단을 깔아서 제법 침상의 분위기를 띄웠고 다들 그 위에 자신만의 잠자리를 준비한 듯했다.
투란이 흘깃 보니 어제처럼 라펜과 마켈은 다시 한 번 장비를 점검하고 잠들려는 듯했고, 슬리피와 베즐 팀은 밤은 무조건 자는 것이라는 듯이 대강 드러누워 이미 눈을 감고 있었다.
딱히 어제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가만히 빈 곳에 앉아 배낭과 검을 풀어 옆에 놓고 드러누운 투란은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가만히 납득했다.
“지루하지. 몬스터가 나오기를 바랄 정도로 지루해져. 그게 추적이란 거야. 그런데 그렇게 지루하다고 멍청한 짓 하다가 몬스터를 만나면 바로 죽는 거야. 그러니까 잔뜩 날을 세우고 대비해야 해. 근데…… 너무 지루해서 긴장이 풀리고 날이 무뎌진다고!”
샤오 마을이 다른 곳과 달리 마음에 드는 것이 뭐냐는 물음에 지루하지 않다면서, 다른 곳에서 몬스터를 쫓고 사냥할 때 위험에 빠지는 까닭이 뭐냐는 말에 대해 나온 대답이었다. 저 말에 대해 샤오 마을의 아이들은 굉장히 갸우뚱했었다.
몬스터가 나오지 않아 지루하다니…… 대체 어떤 세상이냐고.
마을 밖에서 눈치 보며 지나가는 것이 짐승처럼 생겼더라도 몬스터이기 쉬운 곳이었으니 당연한 의문이기는 했다.
‘조심해야겠어. 아무 일 없다고 긴장 풀면 안 되겠는걸.’
알드바인의 북쪽 성벽 너머를 혼자 헤맬 때랑 다른 느슨함을 느끼면서 투란은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하지만 밖에서는 베즐이 경계를 돌고 있었고, 그 팀 멤버는 물론이고 이제 라펜과 마켈마저도 슬리피처럼 늘어지는 중이었다.
밤 경계의 순번이 아예 없다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투란도 슬슬 하루의 마무리를 짓겠다고 찾아오는 잠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둘째 날이 지나갔다.
그리고 셋째 날은…….
울퉁불퉁한 곳곳에서 피비린내가 짙게 흘렀다.
들개 떼가 토막난 채로, 머리가 뜯겨진 채로 갖가지 몰골로 널브러져 있었다.
들소 한 마리는 뱃가죽이 뜯겨진 채로, 네 다리와 등골 쪽이 잔뜩 물어뜯긴 채로 들개 떼의 중심인 듯이 놓여 있었다.
개의 이빨 자국이 들소의 몸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유난히 돋보이는 이빨 자국 하나는 절대로 개가 아니란 것을 과시하듯이 들소의 목덜미와 가슴 언저리까지 널찍하니 남겨져 있었다. 단숨에 들소를 한 입 배어 물고 간 흔적이었고, 찢겨진 채로 질질 흘려진 다른 부분과 다르게 텅빈 결손(缺損)이 돋보였다.
“랩티드인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찍힌 발자국을 찾아낸 베즐이 중얼거렸다.
베즐 팀 멤버들도 찬성하는 모양이었다.
“랩티드야. 대강 이, 삼십 마리 규모인 무리로군.”
“큰턱 우두머리가 있는 무리 같아. 굵고 큰 발자국이 있어.”
두 카엘이 흩어진 채로 소리치고 있었다.
베즐은 팀 멤버들의 이어지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묻는 소리를 낸다.
“슬리피, 너 랩티드 무리랑 만난 적 있나? 라펜, 너네는?”
슬리피는 반쯤 졸음이 가신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라펜은 어깨를 으쓱하며 ‘두어 번.’이라고 하다가 투란을 보며 묻는다.
“투란, 랩티드 알아?”
“도마뱀 괴물 패거리라고 듣기만 했어요. 만난 적은 없…… 을걸요? 지나다 큰 도마뱀이 낮잠 자는 꼴은 가끔 보기는 했지만…….”
투란은 내가 본 그것이 랩티드였을까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듯이 웅얼거리며 대충 대답을 흘렸다. 여기 찍힌 발자국이 멜란드가 삼키고 고생했던 랩티어의 발자국이랑은 확실히 달랐고, 랩티어는 제 곁에 누가 있는 꼴을 못 본다는 듯이 냅다 깨물어 삼키는 놈이니까…… 확실히 랩티드 무리는 경험이 없다!
베즐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슬리피와 투란을 둘러보며 말한다.
“랩티드 무리와 만나면 조심할 것만 일러두지. 랩티드 무리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우두머리인데, 여기 지나간 랩티드 무리는 패거리의 다른 놈보다 키가 크고 입이 더 사납고 큰 놈일 거야. 아래턱이 더 험상궂은 놈이지. 대강 큰턱 우두머리라고 하는데…….”
“그놈부터 잡아야 딴 놈들이 흩어지나요?”
투란이 눈을 반짝거리는 표정으로 슬쩍 끼어들며 물었다.
베즐의 얼굴이 바로 구겨졌고 세차게 저어졌다.
“절대로 그러면 안 돼! 슬리피, 너 명심해! 슬링샷 한 방으로 제일 위험한 놈 대가리부터 터뜨리는 짓, 절대로 하면 안 돼!”
묻기는 투란이 물었지만 베즐의 경고는 슬리피에게 집중된 듯했다.
슬리피가 조금 불쾌한 듯, 하지만 귀찮다는 듯이 짧게 묻는다.
“왜 안 돼?”
투란은 슬리피가 슬링샷에 아주 능숙하고 대단한 실력이란 것을 염두에 두면서 베즐의 다음 말에 귀를 쫑긋했다.
“랩티드는 우두머리가 무력화되거나 죽으면 바로 그 우두머리를 뜯어먹으니까! 주변에 누가 있든 말든 상관없어! 일단 우두머리 고기를 씹는 게 우선이야.”
“그사이에 다 죽이면 되잖아?”
슬리피는 베즐의 말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노골적인 표정으로 되묻고 있었다.
투란도 ‘그러네?’라고 고개를 갸웃하는데, 마켈이 한숨과 함께 베즐을 대신해서 말한다.
“변이하거든. 우두머리 살점을 씹은 놈들은 우두머리의 형태와 성질을 물려받아서 변이를 해. 그 자리에서 곧바로. 그러니까 한 마리가 강한 무리가 갑자기 그 한 마리처럼 전부 강한 무리가 되는 거야. 랩티드 사냥의 까다로운 점이 그 부분이지. 가장 강한 놈부터 잡아 죽이고 약한 놈을 차례대로 죽일 수가 없어.”
베즐이 바로 이에 보태듯 강조한다.
“알았지? 절대로, 절대로 우두머리라든가 우두머리처럼 세 보이는 놈부터 잡자고 하면 안 돼!”
“처음 듣는 얘기야. 진짜 그래? 정말로 제일 위험한 놈을 가장 나중에 잡아야 하는 거야?”
졸음이 조금 가신 듯, 슬리피가 아주 마땅치 않다는 듯이 되묻고 있었다.
베즐은 화를 내는 대신에 한숨을 쉬었다.
“그거 의심하다가 실패가 반, 성공이 반인 몬스터로 만들어줬다고. 우리랑 같이 있을 때는…… 우리랑 함께 랩티드를 만나면 그냥 구경이나 한다 치고 가만히 있어! 확인하고 싶으면 나중에 따로 랩티드 무리를 찾아서 해결하라고.”
투란은 ‘반반 몬스터?’라고 중얼거리며 라펜과 마켈을 흘깃했다.
라펜은 이런 투란의 눈길에 나직하니 대답한다.
“보면 알겠지만, 은근히 만만해 보이거든. 그래서 대놓고 제일 세 보이는 우두머리부터 팍 때려잡으면 나머지는 겁먹고 도망갈 것처럼 보여. 그러다 역습당해서 몰살당한 파티가 꽤 많아. 아는 놈들이라도 웬만큼 숫자 맞추지 않으면 랩티드 떼랑은 싸우기 힘들고…….”
“그렇군요. 우리 숫자로 어떻게 되겠어요?”
투란도 목소리를 잔뜩 낮춰서 살그머니 물었다.
라펜은 어두운 낯을 찌푸린 채로 베즐 팀을 둘러봤다.
베즐이 그 눈길을 안다는 듯, 투란의 말도 들었다는 듯이 대답한다.
“여기 이래놓은 무리라면 우리 팀만으로 상대할 수 있어. 큰턱 우두머리도 그럭저럭 센 놈이니까. 우습게 보고 우두머리부터 때려잡아서 전부 우두머리 만들어서 싸우지만 않으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투란이 살짝 안심했다는 표정을, 라펜도 ‘그렇다면야 뭐…….’ 하며 조금 밝은 낯빛을 띄우는데 마켈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한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응?”
베즐이 눈을 깜박였다.
베즐 팀 멤버 몇몇이 혀를 차며 한숨을 쉬었고, 마켈이 그에 동참하듯 혀를 차는 소리를 내면서 말한다.
“여기, 알드바인에서 겨우 사흘 거리라고. 우리가 왜 이런 파티가 되어 나왔는가, 팀 리더인 네가 까먹냐!”
“에, 그랬…… 지?”
베즐은 슬쩍 노려보는 눈길을 피하면서 웅얼거렸다.
만나서 싸울 경우에 대해서는 잔뜩 궁리했지만, 자신의 팀만이 아닌 다른 이들과 함께 나온 까닭에 대해서는 홀랑 잊고 있었던 것이 아주 분명한 모습이었다.
팀 리더인 베즐의 그런 몰골이 답답하다는 듯, 팀 멤버인 테란이 중얼거린다.
“지도 꺼내라고, 지도. 길드에서 임무용으로 받아왔잖아.”
“아, 그건……. 야, 활카! 너한테 맡겨놨잖아.”
베즐은 한쪽 눈에 렌즈를 끼고 멀리 보는 활카엘을 부르며, ‘내가 지금 너 때문에 욕먹는 중이야!’ 란 시늉을 했다.
하지만 활잡이 카엘은 이런 소리에, 이런 상황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알드바인에서는 사흘 거리겠지만…… 저쪽 산기슭 마을까지는 하루도 안 걸린다. 게다가 그건 우리 걸음이고…… 랩티드라면 여기서 이래놓고 마을까지 한 시간도 안 걸려서 갈 수 있어. 지도에 표기된 대로라면 저쪽 마을은…… 새로 터를 닦은 화전민이 대부분이고 방책도 겨우 2미터짜리를 세워놨다고 했어.”
“그쪽으로 갔냐?”
베즐이 조금 심각하게 랩티드 무리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활카엘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갸웃하며 말한다.
“발자국은 그리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보이는 거로는 완전히 확인이 안 되네. 중간에 산으로 기어 올라갔거나 숲으로 빠져들 수도 있으니까. 쫓아갈지 말지…… 베즐, 정해야겠어.”
베즐은 팔짱을 낀 채로 잠시 고민했다.
베즐 팀은 조용히 주변을 마저 살피면서 기다렸고, 슬리피는 선 채로 조는 모습을 보였다. 라펜과 마켈은 이제까지 걸어온 거리를 돌아가야 하는가를 가늠하듯 알드바인 쪽을 보고 구릉이 넓게 펼쳐진 듯한 들판 너머를 흘깃거렸다.
투란은 이런 헌터들의 모습을 마음 한구석에 기억해두면서 들소 가까이 붙어서 이리저리 훑어봤다. 들개 떼가 들소를 잡아먹다가 갑작스럽게 포위당해 죽은 채로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광경이 저절로 마음속에 그려지는 잔해였다.
그 흩어진 잔재 속에서 피어나는 냄새…….
―뭐야, 먹을 궁리 하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이 피비린내 가득한 난장판 속에서 들소와 들개의 잔재를 놓고 먹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고민하는 낌새를 느낀 듯이 묻고 있었다.
‘그야……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사냥보다 훨씬 쉽잖아. 이 아저씨들이 어떻게 하려는가를 모르겠네. 잠깐 구경해봐야겠어.’
투란은 혀를 날름하면서 베즐을 흘깃했다.
마침 베즐도 뭔가 생각하며 눈길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투란이 들소 앞에 쪼그리고 앉은 꼴을 봤다. 베즐은 투란과 눈을 마주치고는 문득 알았다는 듯이 쓴웃음을 피워 올리면서 큰소리로 말한다.
“그렇군. 랩티드는 심심풀이로 짐승을 물어죽이지. 이빨이나 침에 독이 있는 경우도 아니긴 하군. 이봐, 먹을 수 있는 거는 좀 챙겨도 되겠다! 알드바인으로 되돌아가느냐 마느냐는 마을까지 간 다음에 정하자. 아직 멀쩡한지, 이미 전멸했는지 정도는 확인을 해줘야지.”